달라이라마

달라이라마의 행복론 / 8. 우리는 무엇때문에 고통 받는가

通達無我法者 2008. 3. 31. 15:09
 
 
달라이라마의 행복론 / 8. 우리는 무엇때문에 고통 받는가
 
"인간의 고통스런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삶의 불가피한 슬픔을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되며, 삶의 문제들을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가치있는 방법이다 "

"삶에는 반드시 문제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삶에서 가장 큰 문제는 늙고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도저히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피하거나 단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일시적인 안도감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난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자신의 고통을 정면으로 맞선다면 더 나은 입장에서 문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령 당신이 전투를 하려고 하는데 적군의 상태와 전투능력을 알고 있다면 이를 테면 그들이 가진 무기의 종류같은 것을 안다면 막상 전투가 벌어질 때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서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문제를 피하는 대신 그것에 맞선다면,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고통을 참는데 도움을 주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삼사라 즉 깨닫지 못한 존재는 본질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육체적인 고통을 겪거나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면 물론 순간적으로 '아, 이런 고통은 정말 싫어!' 하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곧이어 고통을 거부하고 싶은 느낌이 들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 난 이런 일을 겪어선 안돼!' 하지만 그 순간 또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바로 이 몸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자신은 그런 고통을 받을 이유가 없고 단지 고통의 희생양이라는 거부감이 조금은 누그러질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이런 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고통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티벳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할 때, 사람에 따라서는 그 상황을 눈앞에서 보면서 답답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그사람은 속으로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지만 또다른 시각에서보면 티벳 또한 삼사라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구와 우주 전체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어쨌든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고통에 대한 당신의 태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합니다.
당신은 기본적으로 고통이 부정적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하고, 어떤 의미에선 실패를 뜻하는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가지면 어려운 상황이 닥쳐 그것에 압도당할 때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생겨서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반면에 당신이 근본적으로 고통이 자기 존재의 자연스런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삶의 시련에 부딪칠 때도 의심할 여지없이 잘 견뎌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을 어느 정도 참지 못한다면 당신의 삶은 비참해지고 사는 것이 마치 한밤중에 악몽을 꾸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당신은 인간존재란 본질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으며 기본적을 불만족스런 상태에 있다고 말하는데, 나에겐 그것이 아주 비관적인 말처럼 들립니다.
사실 기운이 빠지는 느낌입니다]

"내가 존재의 불만족스런 성격에 대해 말할 때 당신은 어느 정도 불교를 염두에 두고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들은 적당한 맥락, 다시 말해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말한 고통에 대한 시각을 적당한 맥락에서 보지 않으면 다소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오해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압니다.
따라서 고통의 문제에 대한 불교의 기본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붓다가 중생들에게 직접 가르친 것 중에서 첫번째 가르침은 '네가지 고귀한 진리'의 원칙입니다.
그리고 그중 첫번째 원칙이 '고통의 진리'입니다.
이것은 인간 존재가 가진 본질적인 고통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통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고통의 원인을 없앰으로써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불교도들의 시각에 따르면, 고통의 근본 원인은 무지와 욕망과 미움입니다.
이것들은 '마음의 세가지 독약'으로 불립니다.

불교에서 사용할 때 그 단어들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지'는 흔히 쓰이는 것처럼 어떤 정보를 모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아와 모든 현상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사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욕망과 미움같은 고통스런 마음을 제거하면, 완전히 순수한 마음의 상태가 되어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시각에서 볼 때 삶 속에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런 성찰은 오히려 고통의 근원을 없애기 위해 수행을 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만일 희망도 없고 고통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없다면 고통에 대한 생각은 단지 우울하고 매우 부정적인 생각이 될 것입니다."

[아이를 잃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까요?]

"그것은 어느 정도 사람들 각자가 갖고 있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환생을 믿는다면 그것에 의지해서 슬픔과 고통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분명히 마음에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환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상실감에 대처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이런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너무 많이 걱정하고 상실감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리고 한없는 슬픔을 끝없이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해로운 행동이고 건강도 잃게 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죽은 사람에게도 아무 도움이 안될 것입니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과 어머니, 형님을 잃었습니다.
그분들이 돌아가셨을 때 난 물론 너무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난 그렇게 속을 태워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분들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차분한 마음으로 그분들의 소망을 내가 대신 이루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난 그렇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과 정말 가까운 사람을 잃었다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난 생각합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어떤 사람을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의 소망을 대신 이뤄주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처음엔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실감과 고통이 계속 되도록 놔두면 위험합니다.
그런 감정을 억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기감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그런 슬픔을 겪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밖에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울증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와 비슷하거나 더 심한 비극을 겪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단 그 사실을 깨달으면 당신을 자기 혼자만 비극을 겪고 있는 듯한 고립감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그것을 당신에게 어느 정도 마음의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