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하는 이야기
1. 젊은 직조공
지금부터 몇 가지 격려하는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면 청중들은 경청한 그대로 명상하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설법이 끝난 다음에 그렇게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숫자는 실로 대단히 많았습니다. 주석서에 의하면, 때로는 법문이 끝난 다음에 팔만 사천 명이나 되는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기는 아주 쉬운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열심히 수행하고 있지만, 아직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어떤 차이가 있어서 그럴까?'
여기서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주석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만 제시하고 청중들의 수준 등의 상세한 것은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설법하시는 분은 바로 부처님 자신이었습니다. 청중들도 또한 지혜의 완성을 계속 추구해 온 사람들입니다. 그 예로써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한 때 부처님께서 오늘날의 알라하바드(Allahabad)인 알라위(Alavi)에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주제는 죽음을 알아차리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청중들에게 내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내 죽음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내 인생은 죽음과 더불어 끝날 것입니다. 내 죽음은 불가피합니다. 내 인생은 불확실하지만 죽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사왓티(Savatthi)로 돌아가셨습니다.
알라위의 청중들 중에는 직조공인 16세의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때부터 죽음에 대한 알아차림을 계발했습니다. 3년 후에 부처님께서 알라위에 다시 오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청중들 앞에 앉으시고 나서 소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젊은 여인이여, 그대는 어디서 오는가?'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릅니다.' 계속 물으셨습니다. '어디로 가는가?' 대답은 '세존이시여, 모릅니다.'이었습니다. '모르는가?' '세존이시여, 압니다.' '아는가?' '세존이시여, 모릅니다.'
사람들은 소녀를 몹시 경멸했습니다. 그들은 그녀가 부처님께 무례하게 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소녀에게 그녀의 대답을 설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잡담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어디서 왔냐고 물으실 때 저는 즉각 어떤 의미심장한 것을 묻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가 전생 어디로부터 왔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실 때, 제가 가려는 다음 생을 물으신 것입니다. 이것도 모르므로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제가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제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언제 죽는지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녀의 대답에 대해 '사두(잘 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세 번째 질문처럼 우리가 죽을 것이 확실합니다. 언제 죽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두 번째 질문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던져 봅시다. 그것은 참 어려운 질문이지요? 그러나 어렵지 않게 대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몸으로 하는 행위, 말로 하는 행위, 생각으로 하는 행위를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행위가 많습니까, 나쁜 행위가 많습니까? 좋은 행위가 많다면 좋은 곳에서 태어날 것입니다. 나쁜 행위가 많다면 나쁜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행위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쁜 곳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기 위해서는 위빠싸나 명상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은 최소한 수다원의 단계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걸로 충분합니까? 여러분들이 거기에 도달한다면 나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여러분들은 아라한의 과(果)를 얻을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 젊은 직조공 이야기로 되돌아갑시다. 그녀는 부처님의 법문이 끝나자 수다원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3년 간 죽음에 대한 알아차림을 지속적으로 계발한 결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같았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제따(Jeta) 숲에 계실 때 매일 법문을 하셨습니다. 사왓티 사람들은 저녁 때 깨끗한 옷을 입고 꽃과 향을 공양물로 가지고 와서 법을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라자가하(Rajagaha)의 대나무 숲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계를 지키고 있는 동시에, 법을 들으면서 명상에 몰두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명상 스승으로부터 법을 경청하고 실천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는 법문하시는 분이 부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실천하지 않고 배겨낼 수 있겠습니까? 법문을 경청하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전에 들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비구, 비구니, 남자 불자, 여자 제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은 지혜의 완성을 추구해온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청중들의 성향에 맞게 법문하셨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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