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24. 무승 철타의 공세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8:28

 

 

무승 철타의 공세

강가에는 배가 보이지 않았다…“저 놈 잡아라”

군졸들이 마구잡이로
동태사 방방마다
샅샅이 수색했다



무승 철타는 동태사에 도착하는 즉시 군졸들을 풀어 절 주변을 겹겹이 에워싼 다음, 사미승을 불러 내어 절문을 열게 했다. 철타의 행동거지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철타는 스승 통미장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제보대로 보리달마가 동태사에 들어갔다면 절 안에서 하룻밤 유숙케 하는 것은 물론이고 누구보다도 통미장로가 앞장 서서 달마를 보호할 것이라 생각했다. 통미장로의 성품으로 미루어 왕궁에 보고할 리도 없거니와 달마를 붙잡아서 내 준다는 것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철타는 호위군졸을 이끌고 절문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법당에서 새벽예불을 준비하던 스님이나 마당을 쓸던 행자승들은 모두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상대가 낯익은 철타이기 때문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고 하는 행동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절에 머물면서 기도를 드리던 신도나 시주들은 꼭두새벽부터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철타와 군졸들이 마구잡이로 방문을 열어젖히고 샅샅이 검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 보아도 달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아 있는 오직 한 곳은 장로의 거실뿐이었다. 철타의 머리에 문득 의구심이 일었다. 혹시 통미장로가 달마를 숨겨 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장로의 방 안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철타는 군졸들을 이끌고 주지의 방으로 향했다. 통미장로는 벌써 일어나 앞마당에서 운기를 하면서 선무공(禪武功)을 연마하고 있었다. 장로는 이미 철타가 나타난 것을 알고 있었다.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일부러 아침수련을 앞마당에서 하는 중이었다.

철타가 허겁지겁 달려오는데도 장로는 모르는 척했다.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내공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철타는 한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곧바로 통미장로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대사님. 소승 철타 문안인사 드리옵니다.”
통미장로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살며시 눈을 떴다.

“이 새벽에 웬일이냐? 절로 돌아오기로 작정하고 온 것이냐?”
철타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합장의 자세로 예를 올렸다.

“그런 것이 아니옵고….”
“그런 것이 아니라니…. 그러면 무슨 일이라도 난 거냐?”
철타는 마치 통미장로의 속내를 아는 듯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대사님.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온 것은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그 사람이 누구냐?”
“서천(西天)에서 온 달마입니다. 달마가 이 절에 들어온 것을 보았다는 보고를 받고 왔습니다.”“음, 그런가….”
통미장로는 요사채 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가 저쪽 선방에 가서 직접 찾아보도록 하게.”
철타는 손을 가로 흔들면서 대답했다.

“벌써 찾아보았습니다. 샅샅이 뒤진 끝에 이 곳에 온 것입니다.”
철타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방을 힐끗 훔쳐보았다. 통미장로는 순간 동요했다. 스승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미세한 변화를 놓칠 철타가 아니었다. 그는 달마가 거실에 숨어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철타는 일어서더니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고 그대로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아니 네가….”
통미장로는 철타의 무례한 행동에 크게 노했다. 손으로 철타를 잡아끌어 제자리에 앉히고 꾸짖었다. “네놈이 미쳤구나. 그게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더냐!”
철타는 얼른 예를 갖추면서 말했다.

“스승님, 제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황제의 성지를 받들어 반드시 달마를 데리고 황궁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만약 대사님께서 자비심으로 그것을 막으시면 어쩔 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 일이니 너그러이 굽어살펴 주십시오.”“성상께서 조사를 황궁으로 다시 모셔 오라 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조사를 죽이려고?”
“아닙니다.”
“그를 천축으로 다시 몰아내려고?”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보리달마를 찾는다는 것이냐?”
철타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했다.

“대사님께서 모르시는 게 있습니다. 황제께선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조서를 보내 달마를 황궁으로 모셔 왔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달마는 성상의 공덕을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옷소매를 휘두르며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황제께선 매우 진노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달마를 찾아 궁 안에 머물게 하고 싶어하십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화해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통미장로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게 그렇게 된 일이란 말이냐?”
“성상의 성격은 스승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미 동태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만약 달마를 황궁으로 모셔가지 못하면 스승님도 그렇거니와 저도 성상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통미장로의 입가엔 웃음이 꽃피었다.

“좋다. 네가 때맞춰 잘 왔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조사께서는 강을 건너 북쪽 땅 위 나라로 갔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라. 내가 조사께 아뢰고 모시고 나올 테니….”주지는 거실 문 앞으로 다가가 몸을 굽혀 공손히 말했다.

“조사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그러나 방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성미 급한 철타는 방문을 열려고 한 걸음 나섰다. 그러나 통미장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몸을 굽히면서 말했다.

“조사님. 모시러 왔습니다.”
방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의외의 정적에 두 사람은 이상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철타가 말했다.

“대사님. 조사께서 아직 잠자리에 계신 것이 아닐까요? 제가 들어가서 살펴보겠습니다”통미장로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철타가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러나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침대 위엔 이불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큰일났다!”
철타는 큰 소리로 외쳤다.
“달마가 또 사라졌다.”
장로는 마음 속으로 크게 놀랐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방 안에선 조사의 숨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던가.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모습을 감출 수 있단 말인가? 조사께선 누구 못지않은 신통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도 몰래 절을 빠져 나가신 것일까? 그렇다면 조사께선 어떻게, 어디로 가신 것일까?보리달마는 장로의 거실 안에서 방밖의 상황전개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통미장로와 철타의 대화를 들은 후 새삼스럽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통미장로에게 더 이상의 번거로움을 끼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거실의 뒷창문을 열고 몸을 날려 빠져 나온 다음 감쪽같이 문을 다시 닫았다. 달마는 빠른 걸음으로 강가로 치달았다.

동이 트고 있었다. 그러나 자욱한 안개 때문에 강가엔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달마의 발걸음에 따라 안개는 흩어지기도 하고 피어 오르기도 했다. 달마는 마치 자기 자신도 안개처럼 느껴졌다. 나부끼면서 매이지 않는 안개. 천지에 노닐면서 작은 오솔길을 달리다간 큰 산허리도 감싸는 안개. 보리달마의 마음은 안개처럼 가벼웠다. 여태껏 이처럼 홀가분하고 상쾌한 적이 없었다. 달마는 순간 해탈의 자유를 누리며 끝없이 펼쳐진 넓은 강물 위에 몸을 실었다.

양자강은 바로 눈 아래 흐르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안개를 뚫고 수면 위에서 솟아올랐다. 강물은 출렁이고 그때마다 금빛으로 반짝였다. 멀리 고깃배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이 달마에겐 한 폭의 그림인양 여겨졌다. 달마의 마음은 스스로 그림 자체가 되었다. 기쁨에 가득 찬 발걸음으로 강가에 도착했다.

한 줄기 바람과 함께 파도소리가 귀를 때렸다. 그 순간 달마의 머리엔 화면이 바뀌었다. 궁 안에서 무제와 논쟁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마음 속에 실망감과 막막함이 또 다시 엄습해 왔다. 그러나 한쪽에선 기쁨과 자신감이 심장의 고동소리와 메아리쳤다. 달마의 머리엔 보살계를 구족한 승려로서 그리고 천축의 조사로서의 위상이 뚜렷이 떠올랐다. 진정 이 곳 진단 땅으로 온 목적은 무엇인가? 달마는 스스로 자문했다. 하나(一)의 진법을 동쪽 땅에 회귀시키고 발전시키고자함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양 무제와의 관계는 어떻게 된 것인가? 바른 가르침을 이해하기엔 무제가 너무나 세속화된 범부가 아니던가? 그렇더라도 이 곳에 머물러 교화의 노력을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달마는 모든 일을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하게 보았다. 자기가 소망하는 바와 남이 받아주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어쨌든 이 곳 양 나라는 떠나야 할 나라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다시 결론지었다. 설령 이 곳에 남아 무제와 재회한다고 하더라도 옥신각신하면서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북쪽의 위 나라는 어떨까? 강가의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달마의 마음 깊은 곳에선 잔잔한 물결이 고동쳤다. 달마는 마치 장승처럼 강가에 우뚝 선 채 움직이는 것조차 잊은 듯싶었다. 새벽녘의 짙은 안개는 이윽고 흩어지고 붉은 태양이 온 누리를 비췄다. 달마는 모든 생각을 멈춘 채 멍하니 강물의 흐름만 바라볼 뿐이었다. 한 줄기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달마는 뺨을 때리는 바람 기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로소 타고 건널 배를 찾기 시작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새벽녘에 그렇게 많던 고깃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멀리 갈대숲 사이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봄을 찾아도 봄은 보이지 않고 / 짚신은 해지고 정신은 피로하네. / 동풍이 불어 강물의 파도를 일으키니 / 봄은 갈대 끝에서 벌써 짙어 가누나….”달마는 노랫소리가 나는 곳으로 찾아갔다. 몇 사람의 농부가 강변에서 낫으로 갈대를 베어 한 묶음씩 묶어놓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고함소리와 함께 철타가 이끄는 군졸들이 달려들었다.

“잡아라! 저놈 잡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