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25. 일위도강(一葦渡江)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8:30

 

 

일위도강(一葦渡江)

달마를 실은 갈대묶음은 북쪽으로 흘러갔다 병사들도 무릎을 꿇고 모두가 한마음이 된 듯 한없이 절을 했다 
무승 철타가 이끄는 군졸들을 뒤따라 수많은 인마(人馬)가 먼지를 일으키며 강변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보리달마는 너무나 많은 병력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음 한 구석에선 격렬한 소용돌이가 일었다. 무제 소연은 그토록 악랄한 자란 말인가? 강을 건너 북상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강변에서 잡아 처형하려고 하는 것인가?무승 철타는 동태사에서 달마를 놓치자마자 무제에게 상황보고를 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통미대사의 말로 미루어 달마가 강을 건너 북위(北魏)로 갈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체하다간 달마를 끝내 놓쳐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책임추궁까지 당할 염려가 있었다.

보고를 받은 양 무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비록 달마에게 섭섭함과 노여움을 갖긴 했지만 그래도 무제는 한 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철타가 달마를 다시 데려오기만 한다면 그에게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고 한동안 궁성에 머물게 할 작정이었다. 시간을 두고 마음을 돌리게 하여 어떻게 하든 나라와 백성에게 도움이 되게 하고 싶은 것이 무제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달마는 영영 양 나라를 떠나려 하는 것이 아닌가. 무제는 이런 행위를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북위로 가기 위해 양자강을 건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제는 긴급명령을 내려 양자강가에 있는 배는 고깃배까지 모두 철수시키고 엄중하게 감시토록 했다. 그리고 무승 철타와 호위병뿐만 아니라 예하의 장군들까지 총출동시키곤, 강변을 샅샅이 뒤져 달마를 잡아오라고 명했다.

보리달마는 비록 속사정을 소상히 알 수는 없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많이 눈에 띄던 고깃배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것도 그렇거니와 철타와 군졸들이 풍기는 살기(殺氣)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변은 순식간에 군졸들로 가득찼다. 철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달마를 향해 걸어 나갔다. 달마는 꼼짝없이 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철타와 호위군졸 몇이라면 자신의 공력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지만 구름처럼 에워싼 수많은 병력을 뚫고 도망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달마 앞에 뚫린 길은 오직 한 군데밖에 없었다. 바로 양자강 옆으로 뻗은 갈대밭으로 통하는 외길이었다. 달마는 농부들의 작업장이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갈대밭을 헤치고 들어갔다. 벌써 농부들은 몸을 숨겨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달마는 멀리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이미 해가 하늘 높이 솟았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시야에 거리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강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양자강은 바다처럼 넓어 보였다. 달마는 물가로 달려가면서도 머리 속은 강을 건너갈 묘책을 찾기에 바빴다.

달마는 갈대밭에 버려진 몇 묶음의 갈대더미를 보면서 비로소 입가에 웃음을 흘렸다.

“옳거니, 좋은 수가 떠올랐다.”
그리고 갈대 한 묶음을 집어 들어 강물 위로 던졌다. 이어 가볍게 몸을 날려 그 위에 몸을 실었다. 갈대 묶음은 달마의 몸무게 때문에 그대로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무릎까지 물에 잠겼다. 그러나 갈대 묶음 한 가닥이 수면 위로 길게 삐죽 나와 있어 그런 대로 그것을 잡고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달마는 일찍이 연마해 둔 비장의 공법을 써서 강을 건널 작정이었다. 우선 합장한 자세로 갈대끝을 잡았다. 눈을 살짝 내려 깔아 코끝에 집중하고 아랫배 단전에 중심을 두었다. 그리고 선 채로 깊은 숨쉬기에 들어갔다. 달마는 그 순간 모든 것을 잊었다. 달마의 양미간으로 ‘번쩍’하는 섬광(閃光)이 들어와 온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꽁무니뼈 끝에서 정수리로 시원한 기(氣)가 엄청난 속도로 치고 올라 왔다. 달마는 갈대묶음과 함께 가볍게 떠올랐다. 때마침 남풍이 불어 왔다. 달마를 실은 갈대묶음은 미끄러지듯 북쪽으로 흘러갔다. 달마가 잡고 있는 갈대끝은 마치 배의 조타 구실을 하는 것 같았다. 바람 따라 좌우로 흔들리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강 한복판으로 속도를 더해 갔다.

철타와 군졸들이 강가로 몰려들었을 때, 달마는 강 한복판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철타는 상상을 초월한 광경에 완전히 넋을 잃었다. 군졸들도 너무나 신기해 탄성을 내질렀다.

무승 철타는 그제야 깨달은 바가 있었다. 범부의 하잘 것 없는 육신의 눈으로 참 부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크게 뉘우쳤다. 철타는 그 자리에서 두 손 모아 땅바닥에 덥석 엎드려 절을 했다. 진흙바닥에 손과 옷이 더럽혀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조사를 죽이려고 쫓아오다니,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병사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달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모두가 한 마음 한 몸이 된 듯 한없이 절을 했다. 철타는 힘없이 황궁으로 돌아와 모든 사실을 본 대로 보고했다. 무제도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뿐만 아니라 하염없이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참 부처에게 지은 죄를 어떻게 갚음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양 무제는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옥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철타와 내관들도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한동안 눈을 감은 채 미동조차 않던 무제는 무엇에 놀란 듯 소스라치며 일어섰다. 그리고 급한 목소리로 엄명을 내렸다. “조사 보리달마를 해치는 일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전국의 관원들은 앞으로 어떤 스님이든 각별히 대접하도록 하라. 그리고 스님들이 배를 탈 때는 배삯을 받아서는 안 된다.”이것이 계기가 되어 불가에 몸담은 승려들은 역대 왕조에서 배삯을 내지 않고도 배를 탈 수 있는 전통이 세워졌다. 양 무제는 아울러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 7일 동안 재를 올리게 했다. 달마 조사에게 지은 불경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선 그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달마가 갈대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양 나라 전체로 퍼졌다. 백성들은 한결같이 혀를 내두르며 신비로워 했다. 달마를 조사로 섬겨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샘솟았다. 이 같은 소식은 때마침 먼길을 여행하고 돌아온 보지공(寶誌公) 선사의 귀에도 들어갔다.

보지공 선사는 기인인 동시에 국사로 추앙받고 있던 존재였다. 보지공은 흔히 지공(誌公) 또는 보공(寶公)이라고도 불렸고, 묘각대사(妙覺大師)라는 도호로 불리기도 했다.

보지공은 출생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느 날 까치 둥지 속에서 애 우는 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올라가 꺼내온 것이 바로 보지공이었다. 이 아이는 몸은 사람이었으나 손발은 까치를 닮아 있었다. 그러나 자라면서 영특함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글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유불도(儒佛道)의 경전에 무불통지(無不通知)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적을 보여주곤 했다. 꼽추나 절름발이를 만나면 자비심을 베풀어 그들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럴 때마다 예외 없이 정상인으로 되돌아갔다.

이런 보지공인지라 일찌감치 출가했다. 장성해서는 양 나라의 수도 금릉에서 갖가지 소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의 괴상한 용모와 이적 때문에 도성 안이 시끄러웠다. 양 무제는 그런 꼴을 두고 보지 못했다. 그대로 방치해 두다간 백성들을 현혹시킬 뿐만 아니라 왕실의 위엄을 손상시킬 염려가 크다고 생각했다. 황명을 내려 보지공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감옥에 있어야 할 보지공은 그 다음 날도 여전히 성 안을 활보하고 다녔다. 보지공이 분신술(分身術)에 능한 것을 모르는 관원들은 경악했다. 탈옥한 줄 알고 급히 무제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무제는 귀를 의심했다. 탈옥이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관원들을 대동하고 친히 감옥으로 갔다. 감옥 안에는 보지공이 그대로 사슬에 묶인 채 앉아 있었다. 무제는 거짓 보고한 죄를 물어 보고를 올린 신하를 그 자리에서 감옥에 처넣었다. 한데 보지공이 성 안을 활보하고 다닌다는 보고는 계속 해서 올라왔다. 무제가 받은 충격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할 말을 잊은 채 오직 감옥 안의 보지공에게 눈길을 쏟고 있을 뿐이었다.

무제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다. 옥졸들에게 감옥 문을 열게 하고 손수 사슬을 풀어주면서 보지공에게 크게 사죄했다. 무제는 보지공을 극진히 모셔 국사로 대접했다. 그리고 궁성 옆 화림원(華林園)에서 살도록 했다. 무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지공의 가르침을 받았다.

하루는 무제가 공손하게 물었다.

“저는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만승천자가 되어 국사님을 모시고 천하를 호령하게 되었나이까?”보지공은 대답 대신 무제를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무제가 다가오자 그의 손을 잡은 채 입정(入定)에 들어갔다. 무제 스스로 입정하여 숙명통(宿命通)으로 전생을 알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무제는 자기의 전생이 초지(初地) 보살임을 알았다. 이를 계기로 국사에 대한 무제의 존경심은 날로 더해 갔다.

한데 안타깝게도 보리달마가 금릉에 왔을 때 보지공은 산천을 주유하고 있었다. 만약 보지공만 화림원에 머무르고 있었더라도 달마를 둘러싼 불상사는 생길 턱이 없었다.

보지공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무제의 마음 속엔 한 가닥 아쉬움이 남아 꿈틀거렸다. 보리달마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했기에 그의 아쉬움은 차라리 가슴앓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무제는 서둘러 화림원으로 국사를 찾아갔다. 이미 자초지종을 알고 있던 보지공은 덤덤하게 무제를 맞았다.

“대사님께서는 안녕히 다녀오셨는지요.”
무제는 정중하게 합장의 예를 올렸다. 보지공도 합장으로 예를 갖추었다. 무제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그 동안 달마를 초청했던 일에서부터 갈대잎을 타고 강북으로 건너간 일까지 소상히 아뢰었다. 그리고 국사에게 물었다.

“대사님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보리달마는 어떤 위인입니까?”
“그 어른은 관세음보살의 후신이오.”
무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제가 죽을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모셔와 속죄할 수 있겠습니까?”“그 어른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오. 온 나라의 백성들이 가서 청해도 불가능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