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33. 선무공(禪武功)의 뿌리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11:22

 

 

선무공(禪武功)의 뿌리

지인은 그날 이후 틈만 나면 동굴로 올라왔다

이리의 시체를 살펴보니
콧등 급소엔 돌멩이 흔적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고약한 이리 같으니라고! 감히 조사님도 몰라보고 성스러운 동굴을 더럽히려 하다니.”지인은 목에 힘을 주면서 동굴 밖으로 나갔다. 땅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이리를 한 마리씩 집어 들고는 골짜기로 던져 버리려고 했다.

달마는 지인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만치 관심이 컸고 믿음이 갔다. 달마는 큰 소리로 지인을 불렀다.

“여보시게. 잠깐 나 좀 보세.”
막 이리를 들어 골짜기로 던지려던 지인은 순간 당황하면서 동작을 멈추었다. 달마는 지인 옆으로 다가와서 죽은 이리의 앞머리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
달마는 탄성을 금치 못했다. 죽은 이리들은 하나 같이 콧등에 돌멩이를 맞은 흔적이 뚜렷했다. 이리의 급소는 바로 콧등이다. 아무리 드센 이리라고 할지라도 그 곳에 한 방만 맞으면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 달마는 다시 한 번 이리의 시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몸통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는 새삼스럽게 혀를 찼다. 돌멩이 하나로 이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예사 솜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솜씨는 상당한 내공(內功)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공 수련이 깊어지면 아무리 조그마한 돌멩이일지라도 천근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백발백중의 명중률은 물론이거니와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썩은 고목처럼 쓰러지게 마련이다.

달마는 지인을 향해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무공이 이 정도라니. 정말 대단하구만, 대단해.”
지인은 더욱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보잘 것 없는 무술입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단한 무공은 어디서 배운 거요.”
지인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소림사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소림사의 스님들 가운데는 무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특히 내공이 뛰어나 천근을 들 수 있는 힘이 있고, 맨손으로 돌을 부수고 벽돌을 가루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오, 그런가!”
달마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달마는 그것이 어떤 공법이고 어떤 연유로 소림사에 전해졌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달마는 소림사를 개창한 사람이 천축에서 온 발타 대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천축에 있을 때 자신도 일찍이 발타 대사 밑에서 무공을 닦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에서 무공을 닦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법을 시작했을 때부터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부처님의 가르침이 자비와 인욕이긴 하지만 불교에선 인왕존(仁王尊)을 비롯하여 기타의 명왕(明王) 십이신장(十二神將) 등의 상(像)이 무공의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천수관음(千手觀音)상은 손마다 온갖 무기를 들고 있기까지 하다. 이것을 의아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까닭을 알고 보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불교는 자비와 인욕을 가르치는 동시에 그것을 기조로 삼아 이상사회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정의와 정법을 지키고 펴내기 위해서는 맨주먹의 권법(拳法)뿐만 아니라 창과 칼 그리고 활쏘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무술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런 내용은 열반경(涅槃經)에도 뚜렷이 나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당시 사회가 카스트제도의 지배 아래 있던 사회 즉 계급사회였던데 반해 부처님은 인간평등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가진 바라문이나 왕족들의 방해와 박해가 극심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호신과 정법호지를 위해 파사(破邪)할 힘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무술을 연마하고 각종 무기를 다루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초기의 승려들이 수행에서 무공을 닦는 일은 단순한 기력(氣力)이나 체력 강화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발타 대사가 소림사를 창건했을 당시 이 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울창한 숲 속에는 호랑이와 곰, 이리 같은 맹수들이 득실거렸다.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늘 맹수의 습격에 시달렸다. 심지어는 승려들 가운데서도 희생자가 나올 정도였다.

발타 대사는 승려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했다.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아울러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의 ‘소림사 무공’ 또는 ‘소림사 무술’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달마 대사가 훗날 소림사에서 펼친 선과 선무도는 하나의 종주(宗主)를 이루는 확고한 계기가 되었다.

소림사는 역사적으로 수(隋) 나라 문제(文帝)의 절대적인 지원 아래 엄청난 토지를 하사받아 그 위세를 떨쳤다. 수 나라가 망하고 당(唐) 나라로 바뀔 때 중원은 군웅들의 할거로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전쟁의 와중에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일이 있었다. 이때 이세민을 위기에서 구해 준 이들이 다름 아닌 소림사 무승들이었다. 당 나라 태종으로 등극한 이세민은 이 때문에 소림사와 소림사의 승려들을 애지중지했다. 소림사는 황제를 보위한 사찰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달마는 지인을 통해 소림사 승려들의 무술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달마 자신이 익힌 공법을 함께 닦는다면 금상첨화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달마는 문득 지인을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짐짓 무술은 그렇게 아무 때나 쓰는 것이냐고 물었다.

지인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무 때나 무술을 써서는 안 됩니다. 단지 악인이나 맹수가 사원을 침범할 때 사용할 뿐입니다. 저희는 함부로 사람을 다치게 하진 않습니다.”달마는 지인의 대답에 흐뭇해했다.
“옳지! 옳은 말이오. 노납도 천축에서 무공을 조금 익힌 바 있소이다. 소림사에서 내려오고 있는 공법과 대동소이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오. 내, 그대가 원한다면 시범을 한 번 보여주고 싶은데….”지인은 황급히 합장의 예를 갖추고 응답했다.

“조사의 공법으로 소승의 시야를 넓혀 주시옵소서.”
“좋소.”
달마는 그 자리에서 승복을 걷어올리고 무공의 자세를 가다듬었다. 기를 모아 단전에 중심을 잡은 다음 두 발을 가볍게 구르다가 몇 길 높이를 뛰어올랐다. 나뭇가지 위를 마치 평지처럼 날아다녔다. 이 광경을 본 지인은 멍하니 서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신기이시다. 활불(活佛)이시다.”
달마는 가볍게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더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지인을 향해 싱긋 웃었다. 지인은 또 다시 달마를 향해 합장하며 절을 했다.

“이처럼 놀라운 무공에 소승은 그저 감탄할 따름이옵니다. 원하옵건대 소승에게도 한두 가지를 전수해 주시옵소서.”달마는 물론 지인의 입에서 이런 청원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가르쳐 줄 수 있소이다. 한데 소사부는 나와 함께 이 동굴에 남아서 공부할 수 있겠소이까?”지인은 조사의 대답이 너무나 시원시원하여 오히려 불안스러웠다. 눈을 깜박이면서 신중하게 말했다.

“소승이 조사님의 허락으로 이 곳에서 면벽좌선하고 무공의 내외공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니…, 어찌 삼생(三生)에 돌아온 행운이라고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달마는 지인이 왜 그러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이라니? 노납의 무술에 무슨 의문이라도 있단 말이오?”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지인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소승이 어찌 감히 그런 버릇없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지이신 혜광 스님께서도 자주 우리들에게 훈계하셨습니다. 혜광 스님은 선림의 무공은 방대하고 그 깊이 또한 대단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공의 내력이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길이 전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승이 배운 것은 다만 넓은 바다에서 물 한 숟가락을 떠먹은 데 불과한 구우일모(九牛一毛)같은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왕 배우려면 최상승의 것을 배우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옳은 말이오. 지극히 옳은 말이오.”
“다만 제가 염려하는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만약 소승이 이 동굴에 머물며 오랫동안 절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주지 스님께서 반드시 사람을 보내 찾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조사께서 면벽좌선하시는 비밀이 곧 탄로가 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조사께서 몸을 숨기는 것조차도 대단히 어렵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소승이 돌아가서 잠시 이 비밀을 숨기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조사께서 여기에 오래 머무르시면서 수행해 나가시다 보면 반드시 좋은 때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자연히 문파의 편견도 사라지고 대승과 소승이 융합할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소승은 조사께서 선림의 진정한 스승으로 세상에 나가시는 날이 그렇게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달마는 지인이 대견스러워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오. 한데 이 노납을 위하여 과연 비밀을 지킬 수 있겠소?”지인은 엎드려 무릎을 꿇고 달마에게 큰 절을 올렸다.

“조사께서는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를 놓으십시오. 소승은 이제 절로 돌아가겠습니다.”지인은 공손한 자세로 몸을 일으켜 뒷걸음으로 굴을 나왔다. 그리고 몸을 날려 석벽을 타고 산 밑으로 내려갔다. 지인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루가 지난 다음 지인은 기회를 엿보다 몰래 산으로 올라왔다. 달마를 위해 공양할 것을 정성껏 마련해 왔을 뿐만 아니라 작심이라도 한 듯 오랜 시간을 동굴 안에 머물렀다. 조사에게 내공(內功)의 요지와 외공(外功) 특히 경공(輕功)의 기초를 전수받기를 간청했다. 달마는 지인이 원하는 대로 가르쳐 주었다.

지인은 그 날 이후 틈만 나면 동굴로 올라왔다. 그는 대승불교의 선정사상에 대해서도 깊이 알게 되었고 대승공종(大乘空宗)의 성실한 제자가 되었다. 달마에겐 지인이 찾아오는 것이 하나의 즐거운 일과가 되었다. 화룡동굴 안은 조사와 젊은 스님의 기운으로 신비한 조화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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