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35. 소림사에 주석하시다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18:29

 

 

소림사에 주석하시다

“혜광이 절절한 음성으로 거듭 애원을 하니…”

체면 내팽개친 간청
“지난날의 무례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소림사 주지 혜광은 동굴 앞에서 계속 읍소했다.

“조사님, 소승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소림사로 내려가시지요. 소림사의 대중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조사님을 모시고자 하오니 부디 승낙하여 주시옵소서.”그러나 선정에 든 달마의 입에선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미 체면 따위는 팽개쳐 버린 혜광은 절절한 목소리로 애원을 거듭했다.

이윽고 선정에서 깨어난 듯 달마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주지께서 이렇게 큰 예를 차리시니 오히려 노납이 불편하구려. 어서 일어나시지요.”달마는 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혜광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손수 혜광을 일으켜 세웠다. 혜광은 황송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다시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지난날의 무례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달마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지난 일은 두 번 다시 거론하지 맙시다. 주지께서 친히 이 곳까지 오셨는데 나가서 맞이하지 못한 노납이 오히려 미안하구려.”혜광이 펄쩍 뛰면서 정색을 했다.

“조사님의 지혜와 인자함에 다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찌 소승을 그렇게까지 예우하시는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인의 얘기를 듣고 오늘에야 비로소 조사님께서 이 곳에 계신 줄 알았습니다. 이런 불찰은 백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조사님께서 수 년 동안 동굴에서 면벽 좌선하시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이미 불과(佛果)를 통해 증명하셨는데 어찌 더 주저하겠습니까. 조사님께서 저희 절에 주석하시면서 중생을 교화해 주십사 하는 것이 저희들의 소원입니다.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달마는 겸손하게 사양했다.

“노납은 옛날 치우가 공부하던 이 동굴을 빌려 선법을 수행하면서 조금은 깨달은 바가 있기는 하오. 하지만 주지께서 몸소 노납을 청하시다니, 실로 황송한 말씀이외다.”달마의 말이 끝나자 혜광은 다시 간절하게 호소했다.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조사님께서 여러 해 동안 벽관하시면서 선을 닦으시어 그림자가 석벽에 들어가 박히었으니 이미 그 법력이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어찌 저희가 모를 수 있겠습니까. 조사님께서는 부디 하산하셔서 설법교화를 하시옵소서. 소림사에 있는 승려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소서. 조사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거듭 간곡하게 바라옵나이다.”달마는 법연이 이미 닿았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모른 척 하면서 여전히 정중하게 사양했다.

“주지께서 노납을 버리지 않고 거두어 주시겠다니 참으로 감사하오. 주지께서는 노납이 선을 닦아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만, 아직 한 단계가 남아 있소이다. 오직 주지와 여러 승려들의 관용을 바랄 뿐이오. 노납이 다시 몇 년을 더 정수(精修)할 수 있도록 시간을 좀 주실 수는 없겠소이까. 때가 되면 즉시 내려가리다. 그리고 다시 천축으로 돌아가 평생의 소원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그러나 혜광은 달마의 겸양하는 말에 더욱 조바심이 났다. 자칫 조사를 모실 수 없을까 싶어 애간장이 타올랐다. 다시 합장하며 무릎을 꿇고 몇 번이나 절을 하면서 애원했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중생을 제도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조사님께서 성불하는 길을 깨우치시고도 하산하지 않으시겠다면 저희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선정의 바른 법을 어떻게 전하며 또 중생을 어떻게 구할 수 있겠습니까. 소승의 이 진정한 마음을 갸륵하게 여기시고 소림사에 머무시어 그 법을 길이 전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비록 소림사가 불편하실지라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소승은 모든 것을 바쳐 받들겠나이다.”이쯤 되면 달마라고 할지라도 더 이상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뒷날로 미룰 수 있는 아무런 명분이 없었다. 달마는 할 수 없다는 듯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주지와 여러 스님들의 그 뜻을 어찌 노납이 모른 척할 수 있겠소. 소림사로 내려가서 널리 정법을 펼쳐 중생을 구하는데 힘을 다하도록 합시다.”혜광과 여러 승려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일제히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큰절을 올렸다.

“조사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달마는 말이 난 김에 서둘러 혜광의 안내를 받아 소림사로 내려갔다. 소림사의 분위기는 마치 봄을 만난 듯 포근했다. 천 명이 넘는 소림사의 승려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중하게 조사를 모셨고 하늘같이 받들었다.

비록 백 살이 훨씬 넘은 노인이었지만 달마는 젊은이 못지않게 정정했다. 게다가 그의 주변엔 신비로운 빛이 감돌았다. 요즘 말로 오로라의 붉은 원광이 달마의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달마의 법력을 말해 주는 상징이었던 셈이다.

달마는 소림사에 온 첫날부터 모든 승려들을 불러 놓고 정법을 강설했다. 그의 손에는 아무런 경전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강법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모든 경전에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무불통지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다.

흔히 달마가 서쪽에서 올 때 ‘무자진경(無字眞經)’을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무자진경’은 두 갈래로 풀이된다. 하나는 책으로 된 경전 따위는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진법은 글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달마의 법은 문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달마는 하나(一)의 진법인 ‘무자진경’을 가르치는 데 정성을 다 쏟았다. 피로를 전혀 모르는 그의 왕성한 활동력에 모든 승려들이 혀를 찼다. 승려들도 본받아 공부와 홍법(弘法)에 날이 지새는 줄을 몰랐다.

달마가 소림사에 주석했다는 소식은 날개가 달린 듯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소문이 증폭되어 신비스런 이야기가 덧붙여짐으로써 마치 달마가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인양 여기지기까지 했다. 낙양과 숭산 일대에서는 스님이든 속인이든 소림사에 가 보지 않고선 사람 축에도 못 끼었고, 더군다나 이야기 상대조차 될 수 없었다. 한동안 향과 종이의 수요를 따르지 못해 낙양의 종이 값과 향 값이 폭등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달마의 법요(法要)를 듣고자 했다. 달마는 그것을 뿌리칠 길이 없었다. 달마는 매일처럼 하루에도 서너 번씩 법을 설했다. 달마의 초인적인 강설에 혜광 이하 승려들은 다만 경탄할 따름이었다. 달마는 설법을 하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그의 입 속에선 단침이 넘쳐 흘러 목마름이 없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이의 설법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는 표본이 되고도 남는 것이라고 모두가 소곤거렸다. 뿐만 아니라 어느덧 달마는 ‘대접받는 스님’의 자리에서 떠나 있었다. 스스로 대접하는 스님의 자리를 견지했다. 승려와 속인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이라면 직접 나서서 대접하는 스님이 된 것이다. 달마는 조사라는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그는 모든 한계와 장애를 뛰어넘었다. 세속(世俗)과 비속(非俗)도 뛰어넘고 오로지 중생을 구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달마는 이제야 스승 반야다라 존자가 이른 대로 법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동쪽 땅으로 다시 회귀시킨 천부의 진법을 그가 펼칠 수 있는 날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달마에겐 하루가 새로웠다. 그는 온갖 정성을 기울여 하루하루를 마무리지었다. 불가에선 원래 정력(定力)을 중요시하고 인정발혜(因定發慧)를 강조해 왔다. 인정발혜란 선정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로지 마음을 한 뜻에 모아야 비로소 정진을 계속할 수 있고 보고(寶庫)까지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법이다. 달마는 승려나 속인에게나 예외 없이 이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을 진실로 지키고 실천하지 않고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달마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편을 썼다는 것도 지적했다. 이것이 문파가 되어 대승, 소승, 공종(空宗), 유종(有宗)으로 나뉘고 급기야 팔만사천이 되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문파를 막론하고 끝까지 수행하면 모두 번뇌에서 벗어나고 깨달음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깨달음의 길로 가느냐의 여부는 오직 본인의 결심과 의지 그리고 앞을 향해 정진해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법이다. 이것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자기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진법을 밖에서 구하려고 안달들이다. 달마는 이 점을 늘 안타깝게 여겨왔다. 달마는 법을 설하는 일 이외는 여전히 산에 있는 석굴로 돌아가 계속 면벽 좌선을 했다. 달마 스스로 감히 정진을 게을리 할 수가 없었다. 깨달음은 수행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달마는 문자 그대로 장좌불와(長坐不臥)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눕는 일 없이 오직 앉아 있는 수행으로 일관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달마의 몸과 석벽에 각인된 그림자는 명실공히 하나가 되었다. 달마가 앉아 있는 그 자리는 몸과 바위가 하나가 되어 밝고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휘감겼다. 빛의 파장과 입자가 동굴 속에 가득 채워졌다. 달마가 동굴을 나와 소림사를 갈 때마다 보기(寶氣)와 신광(身光)이 산줄기를 타고 아래로 내리 꽂혔다. 소실산의 모든 산봉우리가 춤을 추듯 넘실거렸고 온갖 새들은 환희의 합창을 했다. 조사 달마의 위용은 산을 뒤엎는 듯싶었다. 소실산의 여러 사원과 암자, 동굴, 촛불, 향불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다 왜소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 모든 것들이 달마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경배하는 형국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분위기는 소실산에 저절로 감돌았고 소림사에도 가득했다. 그리고 소림사에 있는 승려들뿐만 아니라 이 곳을 찾은 수천 수만의 중생들 마음 속에도 가득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을 딱 짚어서 말해 낼 수 없었다. 그저 웬일인지 예전과 다른 느낌이 들었고 영롱한 빛에 휩싸이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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