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36. 신광(新光)대사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18:31

 

 

신광(新光)대사

“종이에 떡 그릴터이니 먹어 보시겠소”

“법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경전 속에 있소”
“글씨에 무슨 영험이…”



겨울이 오고 여름이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일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날도 해는 어김없이 서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달마는 석굴에서 면벽좌선을 끝내고 평소대로 굴 밖으로 나왔다. 잠시 권법연습을 했다. 달마가 연습한 권법은 이른바 소림무술의 원류(原流)를 이루는 것이다.

달마는 소림사에 있는 동안 독특한 심의권(心意拳)을 가르쳤다. 이것은 발타 대사가 펼친 천축의 무공에 의성(醫聖) 화타(華陀)가 창안한 오금희(五禽戱)의 도인법(導引法)을 가미해서 개발한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심의권의 특징은 주먹 쓰기보다 마음 쓰기가 우선한다는 데 있다. 진정한 힘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는 게 심의권의 요체이다.

심의권의 기본은 달마가 저술한 관심론(觀心論)과 역근경(易筋經), 세수경(洗髓經)에 자세히 쓰여 있다. 물론 세수경과 관련해서는 그 내용의 전모가 전해져 내려오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청나라 때 출간된 ‘세수경부역근경(洗髓經付易筋經)’이란 책을 보면 그 대강을 알 수 있다.

달마는 권법연마에 이어 경공(輕功)을 연습했다. 절벽을 평지처럼 달리는가 싶더니 나무 사이를 새처럼 날았다. 달마가 일찍이 양자강 물 위를 걸어서 도강한 것도 물론 경공을 펼쳤기 때문이다. 거의 한 시간 가량 연습에 몰두하고 나자 달마의 온몸은 마치 비에 젖은 것처럼 땀으로 흥건했다. 달마는 동굴 위로 뛰어올라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하늘 끝에 매달린 그윽하고 우아한 저녁노을이 달마를 감싸안았다. 석양이 산 아래로 침몰한 뒤에도 여전히 달마의 몸에선 노을빛이 은은하게 발산되었다.

옛말에, 명산(名山)이란 그 높이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신선이나 참도인이 머무는 곳이 명산이라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물도 그 깊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용이 있으면 곧 신령한 곳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화룡동굴 역시 달마가 면벽좌선함으로써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달마가 옛 인연을 좇아 찾은 것이 바로 이곳 치우동굴이지만 사람들은 고사(故事)는 까마득하게 잊은 채 사람들은 달마의 존재 자체만을 입에 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달마동굴’이라고 고쳐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달마는 산천이 어둠에 파묻히는 경관을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엔 어둠과 경치의 조화조차도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비쳐졌다. 그는 이곳이 선종을 번창시킬 땅이 되기에 손상에 없다는 것을 새삼 확신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달마의 입에선 한탄의 신음소리가 간단없이 흘러 나왔다. 왜 그랬을까? 거기엔 분명 까닭이 있었다. 달마는 스스로 이미 황혼에 접어들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수행은 원만에 도달했지만 머지않아 원적(圓寂)하는 그 날이 올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조사의 조위(祖位)를 계승하게 하여 선종의 정법을 널리 펴게 할 것인가? 달마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승에 있어서의 마지막 과제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제대로 법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구법하는 자가 가르침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법만으로 전법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전법이 오직 한 사람에게만 이루어진 것은 그것을 말해 준다. 심지어는 선(禪)이라는 글자만 하더라도 단(單)한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것(示)이라는 함의(含意)를 지닌다고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다. 물론 선이란 선나(禪那)의 준말로 천축말인 범어의 ‘디야(dhyana)’의 음역이지만 한자의 뜻풀이가 정곡을 찌르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한 사람에게만 법을 전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방법론으로 보면 거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많은 제자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전자의 전형적인 예로는 흔히 석가모니 부처가 선택한 가섭 존자가 손꼽힌다. 후자의 경우는 반야다라 존자가 달마에게 전법한 것을 전형으로 삼는다. 물론 달마의 전법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달마의 전법은 제자를 찾아 수만리 길을 떠난 사례의 극치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달마는 한 사람의 법제자에게 하나(一)의 진법을 전하기 위해 육신의 생명조차 내던지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제자는 달마가 참스승인 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시해 버리고 박대했다. 달마는 그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달마는 그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곳 화룡동굴이 바로 그 제자와 다시 만날 장소라고 굳게 믿었다.

달마는 더 이상 산야에 깔리는 어둠의 광경을 관상하고 싶지 않았다. 깊은 한숨을 내뱉으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좌선하던 돌바닥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의 망막엔 그가 점찍었던 제자와 처음으로 만났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달마가 신광(神光) 대사를 처음 만난 것은 낙양의 향산사(香山寺)에서였다. 신광 대사는 그곳에서 무려 49년 동안이나 만권 경전을 설법함으로써 천하에 이름을 드날리던 고승이었다. 그의 강론을 듣기 위해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에 대한 추앙도 대단했다.

달마는 물론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척하고 사람들 틈에 끼어서 그의 설법을 들으려고 법당으로 들어갔다.

과연 신광의 설법은 소문대로 훌륭했다. 그의 설법은 사람들을 휘어잡고도 남았다. 마치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꽃가루가 내리고 땅에서 무궁한 조화가 일어나기라도 하듯, 옥구슬을 굴리듯 하는 그의 말에 모두가 감복했다. 달마는 마음 속으로 기뻐했다. 그가 점찍은 사람이 그토록 출중하다는 사실에 절로 입가에서 웃음이 배어 나왔다. 설법이 끝난 뒤에도 달마는 웃음 띤 얼굴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것을 놓칠 신광이 아니었다. 신광 대사는 눈앞에 있는 이채로운 늙은 승려에게 신경이 쓰였다. 짙은 구레나룻에 왕방울 눈을 하고 있는 시커먼 중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게다가 설법이 끝났는데도 그대로 앉은 채 자기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광은 언짢은 기분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노승께서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달마가 웃음을 거두고 대답했다.“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왔소이다.”그 소리에 신광이 언성을 높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왔다고요? 나는 여태까지 당신 같은 사람을 본 일이 없소이다. 당신은 도대체 어디 태생이요?”신광은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수많은 신도들의 이름을 모조리 기억했다가 불러주는 그런 스님이었다. 그런 신광 앞에서 신분을 감추거나 속인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달마는 아랑곳 않고 알 듯 말 듯한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렇소이다. 이곳은 오늘이 처음이외다. 그 동안 바쁜 틈을 낼 수가 없어서 오지 못했소이다. 어떤 때는 산에 올라가 영약(靈藥)을 채취하고 어떤 때는 바다에 들어가 진보(珍寶)를 채취했소이다. 게다가 일좌(一座)의 무봉탑(無逢塔)을 수리하여 조성하고 있소이다. 아직 공과(功果)를 이루지 못하였기에 오늘은 틈을 내어 이곳에 온 것이외다. 대사의 높고 깊은 경문의 강설을 듣고 싶소이다.”신광은 달마의 청산유수 같은 말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런 의심 없이 늙은 중이 경전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만 여겼다. 신광은 직접 강설을 듣고 싶다는 말에 오히려 흡족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서둘러 경전을 꺼내 놓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달마는 근엄한 태도로 아무 소리 없이 신광의 설명을 들었다. 신광의 설법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달마는 팔짱을 낀 채 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려 질문을 던졌다.

“대사가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소리에 신광은 충격을 받았다. 경전 풀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무슨 중이냐 싶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말한 것은 바로 법이오!”
달마가 물었다.“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 법은 어디에 있습니까?”
신광이 비웃으며 대답했다.

“법은 바로 이 경전 속에 있소.”
달마가 다시 물었다.

“검은 것은 글자고 흰 것은 종이가 아니오이까? 도대체 법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신광은 그래도 모르겠느냐는 듯이 힘주어 말했다.

“종이 위에 쓰여진 글자에 정법이 있는 것이오.”
달마는 말을 받아 속사포처럼 질문을 퍼부었다.

“글자로 쓰여진 법문에 무슨 영험(靈驗)이라도 있소이까?”
신광이 마치 핀잔하듯 대답했다.

“사람이 낳고 죽는 것, 나아가서 생명을 해탈시키는 법력이 글자 속에 담겨있는 것도 모르시오?”달마는 즉문즉답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곤 신광에게 종이와 붓과 먹을 청했다. 신광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상좌승에게 대령케 했다.

달마는 종이를 펴고 붓에 먹을 듬뿍 묻힌 다음 말했다.

“대사가 말하기를 법은 종이 위에 글자로 쓰여 있고 그것이 사람의 생명을 생사윤회에서 구하는 효험이 있다고 하였소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제부터 종이 위에 맛있는 떡을 그려 넣을 터이니 그것을 먹어 보도록 하면 어떻겠소이까?”신광은 달마의 말을 미친 소리로 치부하듯 대답했다.

“종이 위에 그린 떡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실없는 소리는 하지도 마시오.”그렇다고 물러설 달마가 아니었다.

“만약 종이 위에 그린 떡을 먹을 수 없다면 어떻게 종이 위에 쓰여진 불법으로 사람을 생사에서 구하고 윤회를 해탈시켜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이오. 그 떡을 먹지 못하면 대사가 설법한 것도 무익한 것일 뿐이오. 그런 경전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리 주시오. 불에 태워 버립시다.”신광의 얼굴은 노기로 새파래졌다. 언성을 높여 달마를 꾸짖었다.

“나는 경전을 강설하고 설법하여 수많은 사람을 제도했다. 그것을 무익하다고 말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어찌하여 불법을 그토록 가볍게 천시하는가? 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는가?”

'달마이야기·이규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38. 보정선사(寶靜禪師)   (0) 2008.09.22
37. 무자진경(無字眞經)   (0) 2008.09.22
35. 소림사에 주석하시다   (0) 2008.09.22
34. 석벽에 인각된 달마   (0) 2008.09.22
33. 선무공(禪武功)의 뿌리   (0) 2008.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