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54. 부활(復活)과 성불(成佛)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21:25

 

 

부활(復活)과 성불(成佛)

염주 굴리며 정좌한채 조용히 입적

달마가 안치된 관을 여니
시신이 보이지 않았다
짚신 한짝만 놓여 있을 뿐



유지 삼장법사가 떠난 뒤 술렁이던 분위기는 차츰 가라앉았다. 달마는 저녁예불을 마친 다음 평소처럼 천성사 뒷산에 올라가 활공(活功)을 하려고 했다. 석대(石臺)처럼 생긴 바위 위에서 팔다리를 움직이며 준비 동작을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뱃속에서 쥐어뜯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다. 달마는 참을 수가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달마의 얼굴과 몸에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 광경을 옆에서 본 동자승은 크게 놀랐다. 한달음에 절로 뛰어 내려가 이상(異常) 사태를 알렸다. 종정을 비롯한 수많은 스님들이 산으로 올라가 달마를 절 안으로 모셔왔다.

달마가 통증을 느낀다거나 몸져 눕는다는 것은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절 안의 대중들은 영문을 몰라했다. 걱정의 심도 또한 깊어만 갔다. 하지만 달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를 견지했다. 달마는 이미 사태의 전말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달마의 일과(日課)는 자로 잰 듯 규칙적이었다.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정오(正午)가 지나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정좌 수행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이 날은 이런 일과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유지 삼장의 갑작스런 방문 때문이었다. 달마를 시봉하는 동자승은 유지 삼장이 선물로 놓고 간 향차를 마치 보물처럼 소중하게 다뤘다. 저녁예불을 마친 뒤 큰스승에게 향차를 정성스럽게 끓여서 바쳤다. 달마는 평소처럼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 마셨다. 차 향기가 야릇하고 맛 또한 특이했지만 특별히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 향차는 고도(高度)로 정제된 독차(毒茶)였다. 달마는 차근차근 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유지 삼장은 소림사에 있을 때도 다섯 번이나 나를 독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던가. 그가 다시 독차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단순한 질투심이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적개심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일인 듯싶었다. 달마는 이 땅에서 인연이 다한 것을 절감했다. 그는 유지 삼장이 선물로 준 향차가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라는 것을 이미 예감했었다. 하지만 달마는 그것을 과감하게 던져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을 의심하기보다는 애써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령 잘못해서 독차를 마셨다 하더라도 달마에게는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공력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해독하려고 하지 않았다. 달마는 눈을 살며시 내려감은 채 과거를 돌이켜 보고, 현재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왜 사랑하는 부모와 정을 끊고 계율이 엄격한 불문(佛門)에 들어와 선법(禪法)의 정상을 추구했는가? 무엇 때문에 편안하고 대우받는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나아가 왕가의 가업을 이으려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을 위하여 짚신만 신고 운수행각을 했으며 죄악으로 도탄에 빠진 생령들을 제도하려고 했는가? 그리고 이제 독차의 죄악 속에 걸려든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법(法)인가, 성(性)인가? 무(無)인가, 공(空)인가?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그러나 달마의 의식은 이미 통증을 벗어나 있었다. 달마의 의식은 마치 거대한 파도에 실린 한 조각 배처럼 멀리 멀리 떠나고 있었다. 그 배엔 자비심이 실려 있었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닻이 올라 있었다.

달마는 해독의 조치를 서둘러 취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비법도 쓰지 않았다. 그 순간 달마는 진정으로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얻었다.

달마는 누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천성사의 모든 승려들을 불러모으게 했다. 향탕으로 목욕을 한 다음 가사를 차려 입고 짚신을 신었다. 손에 든 염주를 굴리면서 정좌한 상태에서 조용히 입적했다. 이 때가 바로 위 나라 효장제(孝莊帝) 영안 원년(서기 528년, 단기 2861년) 무신(戊申) 음력 10월 5일이었다.

달마가 10월 상달에 입적한 사실은 선종의 본바탕과도 연관되는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동녘 땅에서 비롯된 하나(一)의 천부진법(天符眞法)을 회귀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온 달마가 바로 10월 상달에 이승을 마감한 것은 시(始)와 종(終)이 하나(一)임을 상징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천성사의 종정은 곧 바로 사람을 소림사로 보내 혜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혜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왔다. 혜가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 좌탈(坐脫)한 스승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혜가는 종정을 비롯한 천성사의 승려들과 상의하여 묘지를 고르고 안장 법회를 준비했다.

달마의 묘지는 웅이산(熊耳山)으로 정해졌다. 웅이산은 숭산(崇山) 동남쪽에 위치한다. 등봉현(登封縣), 밀현(密縣), 우현(禹縣)의 세 고을 경계선상에 우뚝 솟은 명산이다. 웅이산의 산봉우리는 해맞이의 모양을 하고 있고, 암석들은 영롱한 빛을 발했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의 선경(仙境)인 금강산과 비교되기도 했다.

무신 음력 10월 28일 달마의 시신은 웅이산 아래에 안장되었다. 혜가는 스승을 기리기 위해 웅이산 아래의 정림사(定林寺) 안에 7층 불탑을 조성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1년이 훌쩍 지났다. 초가을의 파미르 고원은 한겨울처럼 찬바람이 몰아쳤다. 3년 전 위 나라 문제(文帝)가 서역으로 파견했던 사신(使臣) 송운(宋雲)은 파미르 고원의 동쪽 끝 총령(蔥嶺)을 넘고 있었다. 추위에 지친 송운은 잠시 산마루에 멈춰 서서 멀리 고향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건너편 산에서 기골이 장대한 맨발의 스님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노을에 비친 스님의 모습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법당에 안치된 금동불처럼 느껴졌다. 가까이 오는 스님을 보니 오른손에는 검은색 염주, 왼손에는 짚신 한 짝을 들고 있었다. 스님을 맞는 송운의 자세는 어느덧 경건해졌다.

송운은 스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찍이 소림사에서 본 일이 있는 달마 조사를 이런 곳에서 만난다는 것은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송운은 너무나 반갑고 기쁜 나머지 제대로 인사도 차리지 못한 채 합장의 자세로 물었다.

“소관이 인연이 있어 여기서 다시 조사님을 뵙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사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는지요?”달마가 산마루에 올라서면서 대답했다.

“서역으로 가는 길이외다. 한데 대인께서는 웬일로 이 저녁에 길을 서둘고 있는 것입니까?”송운은 사신으로 갔다 오는 길이라는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달마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대인께서는 너무 서둘러 가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위 나라는 새 임금인 효장제가 즉위해 계십니다. 그전 임금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달마는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쏜살같이 총령을 넘어갔다. 송운은 달마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길을 서둘러 두 달만에 고도(古都) 낙양(洛陽)에 도착했다. 과연 달마가 말한 대로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송운은 놀라움과 함께 달마에 대한 외경심 같은 것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송운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달마를 만났던 총령은 어떤 곳인가? 구도자가 서천 성토(聖土)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땅이 아닌가? 그렇다면 달마가 그곳을 지나갔다는 것은 진짜 불생불멸(不生不滅) 무거무래(無去無來)의 불신(佛身)이 서천 극락세계로 갔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위 나라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은 왕실과 백성을 위해 커다란 축복이고 영광임이 분명했다. 송운은 즉시 효장제에게 상소의 글을 올렸다.

효장제는 불교를 믿고 승려를 존중하는 덕 있는 황제였다. 송운의 글을 읽은 황제는 한편 의심하면서도 기쁨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송운을 입궐케 하라고 명했다.

송운은 황제 앞에 나아갔다.

“네가 송운인가? 네 죄를 알렸다!”
효장제의 청천벽력 같은 첫마디에 송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효장제는 송운이 올린 글을 땅바닥에 던지면서 힐문했다.

“네가 어찌 짐을 기만하려고 이런 글을 올렸단 말이냐?”
“폐하, 소신이 어찌 감히 폐하를 기만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네가 정말로 총령에서 달마 조사를 만났단 말이냐?”
“폐하, 소신이 올린 글은 모두가 사실입니다. 만일 기만한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소신을 참수의 형으로 다스려 주시옵소서.”송운의 자세는 진지하게 이를 데 없었다. 효장제는 마음이 흔들렸다. 이미 죽은 달마를 총령에서 만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웬일인지 믿고 싶었다. 효장제는 송운의 목을 담보로 웅이산 달마의 묘를 파서 직접 확인해 보라고 명했다.

황실의 어병들은 삽과 괭이를 들고 삽시간에 묘지를 파헤쳤다. 달마가 좌화(坐化)한 관이 드러났다.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관 뚜껑을 열었다. 관속에선 뜻밖에도 향기가 진동했다. 향내는 하늘로 솟아 십 리밖까지 퍼져나갔다. 과연 관속에는 달마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다. 한 짝의 짚신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었다.

효장제는 너무나 놀라 그 자리에서 관을 향해 부복했다. 송운의 말을 믿지 않고 관 뚜껑을 연 것 자체가 큰 죄를 범한 것이라고 자책했다. 어병들에게 명하여 짚신을 꺼내 오게 하고 제단을 차려 모든 신하와 함께 사죄의 큰 제사를 올렸다.

다음날 효장제는 달마가 남긴 짚신 한 짝을 소림사로 옮기게 했다. 그 짚신을 잘 모셔 달마가 성불한 증명으로 삼고 모든 승려와 신도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하라고 유시를 내렸다. 이 소식을 들은 2조(二祖) 혜가는 소림사에 있는 모든 승려들을 이끌고 미리 산문 앞으로 나와 있었다. 큰 제단을 차려놓고 영접했다. 이를 기점으로 소림사는 달마 생전 때보다 더욱 유명해 지고 활기가 넘쳐흘렀다. 하나(一)의 진법을 골간으로 한 달마의 대승선법은 비로소 활짝 꽃피게 되었다. 동녘 땅 모든 곳에서 만 리를 멀다하지 않고 출가하고자 하는 승려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총령에서 달마를 만난 송운도 머리를 깎고 소림사에서 출가했다. 효장제는 송운을 이른바 어승(御僧)으로 봉하고 자신이 지은 불경죄(不敬罪)를 속죄케 하는 데 진력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