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50. 의발전수(衣鉢傳授)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21:18

 

 

의발전수(衣鉢傳授)

“진경은 無字經이니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몸에 지니고 있느니라”



달마는 사자경(四字經)과 육자경(六字經)을 설명한 데 이어 이른바 삼장 십이부(三臧十二部)도 풀이해 주었다.

“진경(眞經)은 종이에 쓰여진 경과 동일하지 않느니라. 따라서 종이 위에서 진경을 찾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니라. 하지만 종이 위에 쓰여진 글자라고 할지라도 그 뜻을 꿰뚫어 아는 사람은 진경의 참뜻을 알게 되느니라. 진경은 무자경(無字經)이니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몸에 지니고 있느니라. 본래부터 무일자(無一字)이지만 깨달아 닦으면 주야사시(晝夜四時)로 밝은 빛을 뿜어 내느니라. 사람의 몸은 비록 작으나 소우주(小宇宙)이니 삼장 십이부가 모두 그 안에 있느니라.”혜가는 머리 숙여 스승에게 물었다.

“삼장 십이부를 보다 자세히 풀이해 주시옵소서.”
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게송을 읊었다.

“금강경은 머리(頭)이니 그것이 신(信)인줄 누가 아는가. 반야경은 다리(脚)이니 누구에게 물어서(問) 알 수 있을까. 관음경은 눈(眼)이니 방촌(方寸)에서 떠나지 않도다. 뇌음경(雷音經)은 귀(耳)이니 가야금과 거문고 소리로다. 미타경(彌陀經)은 코(鼻)이니 현(玄)에서 나와 빈(牝)으로 들도다. 법화경은 혀(舌)이니 호흡의 맑음을 혀끝으로 길들이는구나. 다심경(多心經)은 마음(心)이니 침묵이 위본(爲本)이로다. 청정경(淸淨經)은 뜻(意)을 지키는 것이니 전강(前降) 후승(後昇)이로다. 청룡경(靑龍經)은 왼쪽 간(肝)이니 목모(木母)가 수정(守定)하도다. 백호경(白虎經)은 오른쪽 폐부(肺腑)이니 금공(金公)이 보살피도다.
북극경(北極經)은 물(水)을 다스리니 신장(腎臟)에 담아 두도다. 황정경(黃庭經)은 비장(脾臟)의 중궁(中宮)이니 법륜(法輪)을 돌게 하도다. 삼장법사(三臧法師)는 서천(西天)으로 가기 위해 천신만고했도다. 구구(九九)의 재(災)와 팔십일(八十一)의 난(難)을 겪으며 사중득생(死中得生)했도다.
삼장은 곧 성(性)이고 손오공은 심(心), 사오정은 명(命), 저팔계는 정(精), 백마(白馬)는 의(意)이니 오행(五行)에 배합(配合)하도다. 삼장법사 일행이 서행(西行)하기 14년. 십만팔천리(十萬八千里)를 가서야 비로소 뇌음(雷音)을 듣도다.
처음엔 무자(無字)의 경(經)이었지만 뒤에 글자로 옮겨 고쳤도다. 십이부의 진묘품(珍妙品)이 모두 사람 몸에 있거늘, 티끌 세상의 사람들은 너무나 미매하여 깨닫지 못하는구나.
분명 진경(眞經)이 초생료사(超生了死)의 도(道)이거늘 찾아 닦으려 하지 않는구나. 중과 도인들은 갖가지 경전에 매달려 목탁 치며 염불만 하는구나. 치심(癡心)으로 귀혼(鬼魂)을 제도한다고 착각하고 성심과 경건함이 없구나.
오훈채(五 菜)와 삼염(三厭)을 마구 먹고 냄새나는 입으로 독경하며 염불하는구나. 가짜를 찾아 예배하고 부주(符呪)를 사르니 이토록 불문(佛門)을 깔볼 수 있을쏘냐. 부처님은 우선 이들의 망령(亡靈)에 죄삼등(罪三等)을 부가하리라. 가짜 중과 도인들의 과오를 빠짐없이 기록하여 때가 되면 예외없이 삼도(三途) 즉 화도(火途)=지옥도(地獄道), 혈도(血途)=축생도(畜生道), 도도(刀途)=아귀도(餓鬼道)의 고통을 치루게 하리라.

양무제(梁武帝)가 불교를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대도(大道)는 밝히지 못했도다. 그는 단지 불문을 일으켜 이익만 취하려 획책했을 뿐이로다. 어찌 불법(佛法)을 문란케 하여 후생(後生)을 그르칠 줄 알았으랴.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진(眞)과 가(假)의 길을 잘 살필지어다. 무자경(無字經)으로 자기를 초탈하고 나아가 불문의 종친(宗親)들을 제도할지어다.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전법된 지 28대에 이르렀도다. 동쪽 땅에서 본래의 그 사람을 찾아 도의 뿌리를 잇게 하도다. 그대에게 지점(指点)한 것은 황태아(皇胎兒)를 갖게함이니 방문(旁門)을 버리고 정도(正道)를 따르도록 할지어다. 진결(眞訣)을 전하여 받았으니 초생료사할지어다.”혜가에게 구전심결(口傳心訣)로 진경을 전한 달마는 소림사에서 전의수법(傳衣授法)의 의식을 거행했다. 달마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법명이 혜가임을 공표하노라. 아울러 그대가 노납의 선종법사(禪宗法嗣)임을 선포하노라!”달마는 승려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축에서 갖고 온 낡은 붉은색 가사와 음식 담는 그릇을 혜가에게 물려주었다. 선종에서 의발(衣鉢)을 전법의 증표로 삼는 것은 이때부터 비롯된 전통이다. 하지만 이 전통도 2대 혜가에서 6대 혜능까지만 이어졌을 뿐이다. 이것은 진법이 단전(單傳)되는 전통이 혜능 이후로는 복수(複數)로 분파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가사를 입을 때 오른쪽 팔을 바깥으로 내어 놓는 전통은 3대 승찬 이후의 승려들이 오늘날까지도 지켜 오고 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2조 혜가가 달마 조사로부터 법을 전수받을 때 눈밭에서 왼쪽 팔을 계도(戒刀)로 베어 바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그 하나요, 두번째는 좌방(左旁) 곧 사도(邪道)를 버리고 우방(右旁) 곧 정도(正道)로 매진하겠다는 것을 다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달마가 혜가에게 의발을 전할 때의 또 다른 예화(例話)로 이른바 안심(安心)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마음에 만법(萬法)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데 저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요?”달마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내 앞으로 갖고 오너라. 너를 위해 안심(安心)을 주리라.”혜가는 스승의 말에 따라 자심(自心) 즉 자기의 마음을 찾아 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음을 찾으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사옵니다.”
혜가는 솔직하게 마음이 불가득(不可得)임을 고백했다. 이에 달마가 즉답했다.

“내가 이미 너를 위해 마음을 편안케 해 주었느니라.”
달마의 해답은 불가득이 곧 안심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물론 혜가가 스승 달마에게 구한 마음은 소아(小我)의 자아심(自我心)이었다. 이에 반해 달마가 혜가에게 찾아 준 마음은 대아(大我)의 자연심(自然心)이었다. 자아심과 자연심은 같은 것일까 혹은 별개의 것일까? 이것을 분별하여 알아 내는 것이야말로 안심을 찾는 지름길임을 달마는 깨우쳐 준 셈이다. 청산(靑山)은 본래 부동(不動)이다. 흰 구름만이 절로 오고갈 뿐이다. 여기에서 불역(不易)과 변화를 깨닫는 것이 바로 안심으로 귀결된다.

소림사에서 전법의식을 끝마친 달마는 공식적으로 법제자가 된 혜가를 대동하고 치우 동굴 곧 달마 동굴로 올라갔다. 혜가는 스승을 따라 면벽 좌선에 열중했다. 때때로 시간을 내 스승과 함께 선법을 논했다. 역근법(易筋法) 세수법(洗髓法) 등 두 가지 공법으로 이뤄진 선체조도 전수받았다. 하지만 혜가는 선체조나 선무공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문이 일었다.

“스승님께 감히 여쭙겠습니다. 청정과 자비와 마음을 위주로 하는 불문에서 주먹과 팔다리를 놀리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온지요?”달마는 웃으며 말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6년간의 고행 끝에 얻으신 것은 육체의 고통을 떠나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느니라. 심신일여(心身一如)이니 마음과 육체를 따로 구분하여 생각해서는 안 되느니라. 육체를 무시한 좌선만으로는 진정한 마음의 평안은 얻어질 수 없는 법이니라. 심신일체의 자기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난행(難行)이나 고행(苦行)만이 참된 수행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느니라.
마음을 도외시한 채 몸을 닦는 것 또한 수행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 심신을 함께 닦는 것은 수행의 상보상성(相補相性)을 도모하는 것임을 명심할지어다.”혜가에게 모든 것을 전한 달마는 소림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혜가는 스승의 훈도를 계속 받고 싶은 심정으로 만류했다. 하지만 달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치 바람처럼 치우 동굴을 떠났다. 떠나는 달마의 뒷모습에선 후광이 빛났다. 혜가는 스승의 뒷모습을 향해 배례(拜禮)하며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혜가는 부복한 몸을 좀처럼 일으킬 수 없었다. 다시는 스승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무거워지며 눈물이 흘려 내렸다.

혜가는 새삼스럽게 책임의 중차대함을 인식했다. 스승의 하해(河海)와 같은 은혜에 감사하는 뜻을 담아 시 한 수를 읊었다.

“선천무위(先天無爲)의 대도(大道)는 성불(成佛)하는 묘용(妙用)의 기관이로다. 초생료사를 등한히 해서는 안 되느니, 얻은 것을 어찌 가벼이 여길 것인가. 나는 생사와 성명(性命)을 위해 왼팔을 베어 내어 전법(傳法)을 얻었도다. 어려움을 이겨 내고 절차탁마하여 하나(一)의 전법을 얻어 밝혔도다. 스승께서 층층이 가르쳐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로다.
풀어 놓으면 하늘과 바다처럼 넓고, 거둬들이면 겨자씨처럼 한끝으로 수습되니 하나(一)로 만(萬)을 꿰뚫는 참이치가 이것이로다. 후배 불자동려들에게 부탁하노니 만금(萬金)을 준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가볍게 전하지 말지어다.
고해의 중생들이 정성과 경건함이 있으면 미망을 떼어내고 참(眞)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도할지어다. 육도의 윤회를 살펴보니 백골(白骨)이 산처럼 쌓여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구나.
천기(天機)를 샅샅이 밝혀 누설하고 싶지만 상천(上天)의 감찰을 피할 수 없어 두렵도다. 다만 반은 밝히고 반은 감추어 후세에 대강 전하도다.
스승에게 현관의 지점(指点)을 구하면 영원토록 극락궁원(極樂宮院)을 증득(證得)하리라.”혜가는 스승에게서 얻은 정법(正法)과 도맥(道脈)의 계승을 못내 감사하며 찬양의 시를 지어서 소리 높여 읊었다.

“불법은 분명히 설명으로 다하지 못하니, 한 권의 심경(心經)은 글자마다 진(眞)이로다. 종이 위에 쓰여진 유자경(有字經)은 원래 무자(無字)경에서 나왔으니 남가몽(南柯夢)을 꿈꾸는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날지어다. 큰바다 파도 속에 등잔불 하나, 심지를 돋우는 사람 없어 뚜렷이 밝히지 못하도다.
만약 명사(名師)를 만나 친히 지점받는다면 안팎으로 사람을 비춰보게 할 수 있으리라. 큰바다 파도 속에 돛대를 세울지어다. 부처님께서 피안(彼岸)에서 기다리신 지 오래로다. 삼환구전(三還九轉)하여 그대들을 제도하려 오셨으니 인연 있으면 만나서 태미(太微) 곧 극락 이천(理天)을 증득하리라.”

출처 : 부다피아 : http://www.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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