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주자의 삼수(三首) 시(詩) 해설

通達無我法者 2008. 9. 24. 19:33

 

 

소쩍새 애달픈 울음은 수행자의 고뇌라!
 
천지보다 앞서지만 시작이 없고

천지가 사라져도 종말이 없다

요사이 토함산은 철쭉이 한창이고 소쩍새의 울음도 한창입니다. 오뉴월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철쭉은 소쩍새가 피를 토해 그렇다고 합니다. 한 맺힌 듯 애절하게 ‘歸蜀道, 歸蜀道’ 하면서 향수와 심금을 울리는 소쩍새의 울음에는 자규가 되어서야 고향(蜀)에 돌아갈 수 있었던 亡子(촉나라의 두우라는 임금)의 恨이 어려 있습니다. 스님이었던 외삼촌(언충)에게서 불교도 배우고 복고학자인 공자를 성인으로 모시며 유학(儒學)을 집대성한 宋나라 주자(朱子)는, 시종이라는 벼슬을 내려줄 임금의 명을 기다리며 관중의 嵩壽寺에 은거하는 동안, 밤이 깊어질수록 애통함이 짙어지는 소쩍새의 울음이, 벼슬에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주자 자신의 안타까움과 같았는지, 다음에 소개하는 삼수(三首)의 시를 지었습니다. 금강경학인(金剛經學人)에게는 소쩍새가 되어서까지 돌아가야 했던 그 고향이 객진번뇌(客塵煩惱)로 잃은 우리 본분의 마음이며, 자규불(子規佛)의 피나는 울음은 지옥과 세간에서의 고통을 구하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의 자비심인 줄 알아야 합니다.

1) 子規
空山初夜子規鳴 靜對琴書百慮淸
텅 빈 산 초저녁에 자규가 우는데(鳴)
고요히 琴書를 마주하니 잡다한 생각이 맑아지네.
喚得形神兩超越 不知底是斷腸聲
몸과 마음의 초월을 일깨워 얻는다하여
애달픈 울음소리조차 느끼지 못하랴.

空山中夜子規啼 病怯餘寒覓故衣
텅 빈 산 한 밤중에 자규가 우는데(啼)
남아있는 추위가 걱정되어 낡은 옷 덧입었네.
不爲明時堪眷戀 久知岐路不如歸
좋은 때도 모르고 (벼슬에) 미련 두어 안타까워하면서
갈림길서 망설임은 (고향으로) 돌아감만 못하네.

空山後夜子規號 斗轉星移月尙高
텅 빈 산 새벽녘에 자규가 우는데(號哭)
북두칠성 굴러가고 달은 더욱 높아라.
夢裡不知歸未得 已驅黃犢度寒皐
꿈에서도 갈지 말지 알지도 못하는데
마음은 이미 송아지와 고향언덕 넘어가네.
<보충설명>
1. 琴과 書는 玉과 함께 선비들이 갖추기 좋아했습니다. 琴은 줄이 늘어지지도 않고 팽팽하지도 않아야 좋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中道의 의미가 있으며, 텅 빈 울림통에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진공묘유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또한 玉은 겉으로 얼핏보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듯하나 차가운 성질(冷徹한 理性)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므로 선비가 갖추어야 하는 德性의 의미가 있습니다.
2. 鳴은 평상적인 울음, 啼는 애가 끊기듯 처절한 울음, 號는 울다가 지쳐서 눈물이 마른 채 쉰 목소리로 우는 울음입니다. 소쩍새가 밤새도록 단장의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은 수행인의 용맹정진과 견줄 수 있습니다.
* 底: ‘何(어찌하)’ 의 의미. * 감권연; 고향에 돌아감이 더 좋을지도 모르는데 벼슬길에 나서는 게 이루어지지 않아 권권히 그리워하는 것을 안타깝게 견뎌야 하는 상태를 말함.


2) 祖師入滅傳皆妄 今日分明坐此臺
원효대사 입멸이란 傳言은 모두가 거짓말
오늘도 또렷하게 원효대에 앉으셨네.
杖頭有眼明如漆 照破山河大地來
주장자에 눈이 있어 밝기가 칠흑인데
산하대지를 눈부시게 비추어 깨뜨렸네.
- 鏡虛 -

<보충설명> 이 시는 원효스님께서 해제 뒤에 지으신 것입니다. 법은 다 같아도 법을 쓰는 모습은 스님마다 모두 틀립니다. 경허스님은 할(喝)과 방망이를 쓰는 기질이 원효스님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금정산 원효대에 오르신 경허스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爀爀한 원효스님과 수행자로서의 공감이 있어 이 시를 지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에서 맛볼 수 있는 경허스님의 법 기량은 ‘一物序’를 지은 함허당 득통선사의 열반송(湛然空寂本無一物 靈光爀爀洞徹十方 更無身心受彼生死 去來往復也無罣碍)에서 느껴지는 맛과 닮았습니다.
*장두유안: 원효스님의 주장자(一物)에는 눈(智慧)이 있다. 대부분의 큰스님이 법상에서 주장자를 드는 것은 원효스님의 주장자처럼 ‘한 물건’을 대변하는 것이다. *명여칠: ‘한 물건의 밝기가 日月보다 밝고 어둡기가 칠흑보다 더 어둡다’는 ‘一物序’의 문장에서 詩語로 생략하여 인용한 것. *조파산하대지: 지팡이(지혜)로 삼라만상 모든 것을 비추어 깨뜨렸다는 뜻. 즉, 주관과 객관, 능소(能所)를 모두 끊어버렸다는 뜻.

不曰神乎 昭昭於俯仰之間 隱隱於視聽之際
決定是無 性自神解 決定是有 尋之無蹤 此所以爲神也
싱그럽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예를 갖추고 우러르는 동안에도 또렷이 밝고, 보고 들을 즈음에도 은은히 묻어나오며
결정코 없다고 하면 성품이 스스로 신비롭게 잘 알고, 결정코 있다고 하면 자취를 찾을 수 없으니, 이 것이 신비롭다고 하는 이유다.

不曰玄乎 先天地而無其始 後天地而無其終

有形之最先者 天地也 有形之最後者 亦天地也 有形之最先者 天地也 而天地 以此爲始 此 物之所以始者 不可得而窮也 所以始者 旣不可得而窮則所以終者 亦不可得而窮也 此所以爲玄也

현묘하다 말하지 않겠는가? 천지보다 앞서 있었지만 그 시작이 없고 천지가 사라져도 그 종말이 없으니
모습이 가장 먼저 생긴 것이 하늘과 땅이고, 모습이 가장 나중까지 존재하는 것도 하늘과 땅이다. 모습이 가장 먼저 생긴 것이 하늘과 땅이지만 하늘과 땅도 이 한 물건으로써 시작되었으니, 이 한 물건의 시작이 되는 이유를 얻어서 가히 궁구할 수 없다. 한 물건의 시작을 이미 얻어서 궁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침이 되는 이유도 또한 궁구해서 얻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玄함이 되는 이유다.

空耶 有耶 吾未知其所以

物體深玄 虛澈靈通 有不定有 無不定無 言語道斷 心行處滅 故云爾
공한 것인가? 존재하는 것인가? 나는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일물의 몸통이 깊고 현현하고, 텅 비어 훤히 트이고, 신령스럽게 걸림없이 통해서, 있다고 하나 결정코 있는 것이 아니고, 없다고 하나 결정코 없는 것도 아니니, 말로 표현 할 길이 끊어지고 마음으로 헤아릴 자리도 없기 때문에 ‘한 물건’이라 말했을 따름이다.

*昭昭: 분명히 드러나게 밝은 것. *新: 신비롭다, 신명난다, 신선하다는 뜻. 순자에 ‘莫神一好’ 가 있는데 이 때에는 ‘하나(한 물건)을 좋아하는 것 보다 더 신명나는 일은 없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부앙지간: 몸을 낮추어 절하고 존경하여 우러름을 말함. 예를 갖추는 일상생활의 의미. *間: 시간적 의미. *際: 시간과 시간 사이의 짧은 틈. 공간적 의미. *玄: 너무 깊고 오묘하여 드러나지 않고 가물가물한 상태. *隱隱: 있는 듯 없는 듯. (금강경에서 언급하는 無實無虛의 상태) *耶: 의문조사.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