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금강반야바라밀경 해설

通達無我法者 2008. 9. 24. 19:44

 

金剛刀로 아상 인상 베어내네
 

‘금강경오가해 강의’는 불국사 승가대학 학장 덕민 스님이 지난 4월 1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불국사교육문화회관에서 강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법보신문은 덕민 스님의 ‘금강경오가해 강의’를 시간적-지리적 제약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불자들을 위해 지면을 통해 그 생생한 현장을 전달합니다.




空에 집착해 空이 空 아닌 줄 모르고

有에 집착해 有가 有 아닌 줄 모른다


견고한 금강지혜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고

날카로운 금강지혜 중생원결 끊을 수 있다



우리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줄여서 흔히 ‘금강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그 뜻을 새기면 ‘금강반야경’ 이라고 해야 합니다. 금강이란 말은 견고하다, 날카롭다, 어둠을 제거하고 밝혀준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반야’를 수식해주는 형용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야’가 ‘금강’보다 더 중요한 요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진설명>불국사 교육문화회관에서 금강경오가해 강의를 하고 있는 덕민 스님.

또, 흔히 般若波羅蜜多心經의 '心'을 ‘마음'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반야가 마음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고 ’心'은 핵심 되는 경전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심장'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반야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실상반야입니다. 일물(一物)의 공적한 진리 그 자체를 말하므로 이경(理經)이라고도 합니다. 또, 어떤 것으로도 결코 파괴되지 않는 견고함을 지녔기 때문에 견(堅)이라 말합니다. 둘째, 관조반야입니다. 공적의 진리를 체현시켜 허공같은 마음으로 육바라밀과 보현행(普賢行)을 실천하는 것이므로 행경(行俓)이라고도 합니다. 또, 자기와 사물을 관조(觀照)하고 부정해서 능소(能所)를 없앤 후에 다시 공적한 진리를 날카롭게 파악한다는 뜻으로 이(利)라고도 합니다. 셋째, 문자반야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글로 펼쳐주므로 교경(敎經)이라고도 합니다. 또, 어두운 방을 등불로 환하게 밝혀주듯 중생의 탐진치(貪嗔痴)와 번뇌(煩惱)망상(妄想)을 환하게 깨우쳐주기 때문에 명(明)이라 표현합니다.

以金剛之堅利 剗我人之稠林 照慧日於重昏 開惑霧於三空
금강의 견고함과 날카로움으로 아상과 인상의 빽빽한 숲을 잘라버리고 지혜의 밝은 빛을 重昏에 비추시며 의혹의 안개를 삼공에 열어서


설의) 我人稠林 蔚於心地 金剛焰下 掃地無蹤 法與非法此二惑霧 掩蔽性空 故曰重昏 慧日 一照 重昏 頓破 三空 顯現

아상과 인상의 빽빽한 숲이 마음 땅에 울창하다가 금강의 불꽃 아래에 소제한 땅처럼 자취가 사라진다. 법과 비법이라는 이 차별적인 두 가지 의혹의 안개가 성품의 공한 이치를 가리우므로 ‘중혼’ 이라 하시니, 지혜의 햇살로 한번 비춤에 중혼이 몰록 없어지고 삼공(三空)이 환히 드러나는 것이다.

使之出斷常坑 登眞實際 敷萬行花 成一乘果
단견과 상견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게 하여 진실된 이치에 오르게 하며 만행(바라밀)의 꽃을 피워 일승의 과를 성취케하시니


설의) 法非常而執爲有 性非斷而執爲空 執爲空而不知空之不空則是落斷見坑也 執爲有而不知有之非有則是落常見坑也 實際者 空有兩忘 一味亦亡之處也 佛以三空 開示 使之不落斷常之坑 頓超空有之外 如是圓修 如是圓證也

법은 항상됨이 없지만 집착하여 有로 알고, 성품은 단멸이 아니지만 집착하여 空하다고 생각하나니, 空에 집착하여 空이 空 아닌 줄을 모르는 즉 이는 斷見의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고, 有에 집착하여 有가 有 아닌 줄을 모르는 즉 이는 상견의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다. 진실된 이치는 空과 有를 모두 여의고 그 한 맛 또한 떼어버린 당처이니, 부처님이 삼공(三空)으로써 진리를 열어보이사 모든 사람들로하여금 단견과 상견의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空과 有의 밖으로 몰록 뛰어넘게 하시니, 이와 같이 원만히 닦고 원만히 증득함이라.

言言利刃當陽 句句水灑不着
말씀 말씀은 날카로운 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과 같고, 구절 구절은 물로 씻어내어 티끌이 붙어있지 않음과 같다.


설의) 金剛妙慧 堅不爲物挫 利能斷衆生冤結 般若雄詮 金剛妙慧之所現發 故 利能破衆生疑網 堅不爲外魔所壞
금강의 묘한 지혜는 견고하기 때문에 어떤 사물로도 부실 수 없고 날카롭기 때문에 능히 중생의 원결을 끊을 수 있으니, 반야의 웅대한 말씀은 금강의 묘한 지혜가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날카로움은 능히 중생의 의심으로 얽힌 그물을 파괴할 수 있음이요, 견고함은 외도와 魔群도 파괴할 수 없음이다.

流出無邊法門海 孕育無限人天師
가없는 법문의 바다를 흘러 나오게하여 한량없는 인천(人天)의 스승을 (이 금강경을 통해) 길러내시니.


설의) 佛之與法 皆從此經流出 故 云爾
부처와 더불어 법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흘러나오므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보충설명> 금강경을 통한 발심수행 인연은 아주 많습니다. 육조스님도 금강경의 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는 구절에서 발심하여 오조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불국사 조실, 월산스님도 육조스님의 가사를 받은 태몽으로 태어나, 출가한 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쌍계사에 모셔져있는 육조의 정상탑에 삼십여년간 향화공양을 올리곤 했습니다. 규봉스님, 부대사, 그 밖의 여러 제왕들도 금강경을 통해 정진했습니다.

<낱말풀이>
* 아상과 인상: 나에 대한 우월감이 아상, 대상에 대한 차별심이 인상.
* 삼공(三空) : 나에 대해 마음을 비우는 我空과 대상에 대해 마음을 비우는 法空과 비웠다는 생각조차 버리는 俱空.

* 단견(斷見)과 상견(常見) : 태어난 생명이 한번 죽으면 그 것으로 끝난다는 견해는 단견이고, 무상한 현상들이 영원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상견.
* 수쇄불착: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구슬처럼 또르르 굴러 떨어지듯 물을 뿌렸을 때 아무 것도 붙어있지 않은 모습.


禪詩 맛보기

1. 人間之要路通津 眼無開處 山間之綠水靑山 夢有歸時
사람들이 오가는 중요한 길목에서는 눈을 열어도 배울 곳 없고(공간)
산간의 녹수청산은 꿈에서라도 돌아가 쉴 때가 있다.(시간)

- 崔致遠 -

<보충설명> 최고운 선생은 당나라에서도 그 학문의 깊이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귀국하여 신라의 정신문화를 꽃피우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세간의 시비에 휘말려 말년에는 자연과 더불어 지냈습니다. 고운선생의 이 시는 자연의 포용성과 경건함에 대해 눈을 열게 해줍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교통의 要路와 나루에서는 시비만 많았지 눈을 활짝 열어도 배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녹수청산은, 비록 발길은 돌리지 못하더라도 꿈속에서나마 언제든지, 허덕이는 우리의 마음을 고향으로 인도해줍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산 속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는 우리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살아갑니다.

딱딱한 나무 둥치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 나오고, 생명이 보이지 않는 낙엽 속에서 어린 나물이 고개를 들고 올라오는가 하면 나뭇잎에서 굴러 떨어지는 빗방울은 아름다운 여인의 눈물 같아 더 아름다워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산 속의 모든 것들은 우리와 평등한 동반자로서 우리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무한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2. 楊花(버들 꽃)

似花還非似花 也無人惜從敎墜
꽃인 듯, 꽃이 아닌 듯
사람의 동정도 못 받고 제 멋대로 떨어져
抛家傍路思量却是無情有思
집 떠나 거리에 구르니 생각할수록 도리어
情 없는 듯 여겨지나 생각은 깊어지네
縈損柔腸困酣嬌眼欲開還閉
부드러운 창자를 아파서 부여잡고
곤하게 단잠 자던 아름다운 눈은
열릴 듯 하다가 도리어 감겼네
夢隨風萬里尋郞去處又還被鶯呼起
꿈결처럼 바람 타고 만리 길 헤매어
님께서 가신 곳 찾다가
꾀꼬리 소리에 꿈마저 조각났네
不恨此花飛盡恨西園落紅難綴
버들꽃 지는 것은 한탄하지 않으면서
서쪽 동산의 붉은꽃 꿰지 못함만 서러워하누나
曉來雨過遺踪何在一池萍碎
동트고 비 스치니 남긴 자취 어디 있나?
연못의 부평초에 망가진 모습 뿐
三分春色二分塵土一分流水
봄빛깔 셋 가운데
둘은 진흙에서 구르고
하나는 물에 섞여 흐르는데
細看來不是楊花點點是別人淚
자세히 보니 버들꽃이 아닐세
한점 한점, 이별의 눈물에 젖은 모습이어라
-蘇東坡(宋)-

<보충설명> 양화(楊花)는 버들솜(柳絮)입니다. 사물을 의인화시켜 지은 영물시(詠物詩)인데 서양에도 많이 소개된 유명한 시입니다. 인간적 정감을 바탕으로 하여, 불법이 절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바닥에도 있고 현실생활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을 선의 경지로 승화시켜 깨우쳐주는 시입니다. 소동파는 동림사의 상총스님을 만나 불법을 배운 뒤, 많은 시를 선의 경지로 승화시켜 남겼습니다.


사화환비사화 야무인석종교추: 바람 부는 대로 움직이는 버들솜이 방안에 들어오기도 하고 발에 걸쳐지기도 하지만, 꽃이면서도 꽃 같지 않아 사람의 관심을 못 끌고 제멋대로 날아다니다가 땅에 떨어져 버린다는 뜻. 從敎墜의 ‘敎’는 부사.

포가방로: 사람대접을 못 받고 객지에 隱居해 살면서 느끼는 동파 자신의 인간적 애환.
사량각시의 是: 무정물이지만 유정물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지시대명사.
무정유사: 정이 없는 듯하지만 생각은 더 깊어진다는 뜻으로 진공묘유의 도리.

영손유장 곤감교안: 춘추시대의 서시라는 미인이 배앓이 할 때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렸는데 그 모습이 더 예뻐서 동네 아낙들이 모두 따라했다고 한다. 이 詩句는 소동파가 버들꽃을 서시의 배앓이 모습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표현.

몽수풍만리 심랑거처 우환피앵호기: 꿈에서라도 님을 찾아가는데, 꾀꼬리 때문에 그 꿈 마저도 깨고 만다는 버들 솜의 신세를 표현. 夢幻 같은 삶에서 깨어나기 위해 여기저기 선지식을 찾아 나섰다가 도리어 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 소리에 짐짓 마음을 꿰뚫어 보게 된다는 수행자를 비유.

불한차화비진 한서원락홍난철: 붉은 꽃은 꿰어서 목걸이를 만드니까 落花가 안타깝지만 (서방극락의 현란한 寶珠로 念珠 만드는 것을 비유) 버들 솜은 떨어져 없어져도 한탄할 일이 없다는 뜻.

효래우과: 비바람 때문에 자취를 찾을 길 없이 흩어진 버들 꽃의 존재, 흙먼지와 흐르는 물 속으로 사라져 가는 봄 빛깔은, 진정한 ‘我’라 부를 것이 없는 無常한 중생계이니 하나하나 살피는 것마다 이별의 슬픔 같은 눈물을 자아낼 만 하며 그 눈물은 무상한 현상을 바라보는 관음보살의 자비의 눈물이기도 하다.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