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일물의 깨달음에 관하여

通達無我法者 2008. 9. 24. 19:37

구멍없는 피리소리에 모든 중생 고향 찾네

 


<사진설명>금강경오가해를 강의하고 있는 덕민스님이 불국사 승가대학에서 포즈를 취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네


부처님은 일물이란 존재에 대해 깨닫고 난 뒤에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움에 젖어있었습니다. 부처님 뿐 아니라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지요. 지난 번 까지는 일물의 본체에 관한 설명이었고 오늘 강의는 일물의 깨달음에 관한 부분입니다.

我迦文 得這一著子 普觀衆生 同稟而迷 歎曰奇哉 向生死海中 駕無底船 吹無孔笛 妙音 動地 法海 漫天 於是 聾騃盡醒 枯槁悉潤 大地含生 各得其所

우리 석존께서 이 ‘한물건’을 깨달으시어, 중생이 모두 똑같이 이 하나를 품 받아 지니고 있으면서도 미혹한 채 있음을 널리 살피시고 탄식하시기를 기이한 일이로다 하셨다. 생사의 바다 가운데로 나아가 밑바닥 없는 배를 운항하며 구멍 없는 피리를 부시니 묘음이 땅을 흔들고 법문의 바다가 하늘까지 넘실거렸다. 이에 귀먹고 어리석은 범부들이 모두 깨어나고 마르고 시든 외도들도 윤택해졌으며 대지가 머금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다 그 고향을 찾았으니

설의)此物 非聖非凡 而凡而聖 非淨非染 而染而淨 所以 道 手把破砂盆 身披羅錦綺 有時 醉酒罵人 忽爾燒香作禮 比之空日 空豈長晴 亦豈常雨 日豈長明 亦豈常暗 一念迷也 雲起長空 上明下暗 一念悟也 風掃迷雲 上下洞徹 染淨所以興也 聖凡所以作也 聖凡 旣作則感應 生焉 凡在迷而渴仰風化 聖在悟而爲物興悲 所以 我迦文 於寂滅場中 初成正覺 作獅子吼 奇哉奇哉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但以妄想執着 而不證得 於是 運無緣慈 說無言言 廣演敎海 遍注衆生心地 使之道芽 榮茂 心花 發明 大地同春 萬物 咸熙

이 한 물건이 성인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지만 범부노릇도 하고 성인노릇도 한다. 청정하다 할 수도 없고 물들었다 할 수도 없지만, (잘 못살 땐) 오염되고 (본모습일 땐) 청정하다. 이런 까닭으로 말하되, ‘손에는 깨진 술잔을 잡았는데(혼미한 상태) 몸으로는 아름다운 비단옷을 두르고, 어떤 때에는 술에 취해 사람을 꾸짖다가 금방 부처님께 향을 사루고 예배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였으니, 허공과 태양에 비교하건대 허공이 어찌 영원히 맑기만 하며 또한 어찌 항상 비만 오겠으며, 또 태양은 어찌 영원히 밝겠으며 어찌 항상 어둡기만 하리오? 한 생각이 미혹하면 구름이 허공에 일어나서 위로는 밝고 아래로는 어두우며, 한 생각 깨달으면 바람이 미혹의 구름을 쓸어버려 위아래가 환하게 통해 있으니, 이런 것이 더럽고 깨끗함이 일어나는 까닭이며 성인이나 범부가 지어지는 까닭이 되는 것이다. 성인과 범부가 지어지면 곧 그에 상응함이 노출되어, 범부는 미혹하여 성인의 교화의 바람을 목마르게 우러르고 성인은 깨달음으로 중생을 위하여 자비를 일으키나니, 이런 까닭으로 우리 부처님께서 적멸장(寂滅場) 가운데서 처음으로 정각(正覺)을 이루고 사자후를 내시되 “기특하고 기특한지라, 널리 바라보건대 일체중생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건마는 단지 망상과 집착 때문에 증득하지 못한다” 라고 하셨다. 이에 無緣慈悲(선별 없는 자비)를 운전하시며 무언의 말씀을 설하시어, 가르침의 바다를 넓게 펼쳐서 중생의 심지에 물을 대어 도의 싹을 틔우고 무성히 자라 마음의 꽃이 밝게 빛나도록 하시니, 대지가 함께 봄을 맞이하고 만물이 기뻐하였다.

今般若經者 妙音之所流 法海之所自者也

지금의 반야경은 묘음이 흘러나온 곳이며 법의 바다도 거기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설의)般若 一物之强稱 經者 現物之具也 此乃金口親宣 不是餘人之所說 法門淵源 不同瑣瑣之敎乘
반야라는 것은 ‘한 물건’에 억지로 붙인 이름이요, 經이란 것은 ‘한 물건’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또 이 금강경이야말로 부처님께서 金口로써 친히 펼치신 말씀이지 다른 사람의 말한 바가 아니니, 법문의 깊숙한 근원이 자질구레한 二乘의 가르침(소승경전들)과는 같지 않다.

〈보충설명〉
1. 我迦文의 我는 ‘우리’ 라는 뜻으로 가깝고 친근하며 존중의 뜻이 담긴 표현입니다.
2. 논어의 述而篇에는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공자님이 말씀하사대, 성현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전해주지만 마음대로 지음이 없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옛것과 전통을 따르고 좋아하지만, 우리 노팽의 가르침을 존경하며 그윽한 마음으로 견주어 본다.) 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공자도 ‘우리’ 라는 표현을 넣어 殷나라 賢人인 노팽에 대해 내면의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3. 同稟이란 모든 중생의 本來淸淨心은 그 稟이 같다는 뜻입니다.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이도령을 만나 기뻐할 때 그 곳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는 장면,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눈을 뜰 때 모든 맹인이 함께 눈을 뜨는 감격스런 장면 등은 모두가 하나이며 같은 품으로 이루어졌음을 표현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곧 화엄의 세계이자 금강경의 세계죠.
4. 무저선과 무공적은 부처님의 49년 설법에 대한 비유입니다. 마음자리는 뚫으려해도 그 밑바닥이 없습니다. 따라서 무저선은 무량한 중생을 모두 태우고 갈 수 있는 반야의 배지요.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설법은 구멍을 뚫어 한정된 소리만 내는 세간의 피리와 달리 구멍이 없기 때문에 무량한 묘음을 낼 수 있는 반야의 피리입니다. ‘石人夜聽木鷄聲’ (돌사람이 밤마다 나무로 만든 닭의 울음을 듣는다.)’도 무저선과 무공적처럼 나무와 닭에 존재하는 무한한 생명을 표현하는 염송입니다. 思量分別이 끊어진 무심의 상태에서는 무정의 설법에 생명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선시 맛보기
眞覺國師의 漁父詞
1. (眞空) :
一葉片舟一竿竹 一蓑一笛外無畜 直下垂綸鉤不曲 何擄漉 但看負命魚相觸
일엽편주에 대나무 장대 하나
도롱이 한 벌과 피리 한 대 외에는 지닌 것 없는 채
낚시줄 드리워도 낚시바늘 구부리지 않았으니
어찌 건져올리리, 그저 목숨버린 물고기가 닿기만 지켜볼 뿐
2. (妙有) :
海上烟岑翠簇簇 洲邊霜橘香馥馥 醉月雲飽心腹 知自足 何曾夢見閒榮辱
노을빛 바다엔 뫼뿌리가 병풍처럼 촘촘히 펼쳐지고
서리맞은 물가의 귤나무는 향기가 물씬하여
달에 취하고 구름 즐기며 마음이 흠뻑 배부르니
자족을 알았는데, 어찌 꿈에라도 한가롭게 영욕의 흔적이 있으랴
3. (自由自在) :
脫略塵緣與繩墨 騰騰兀兀度朝夕 獨是一身無四壁 隨所適 自西自東自南北
티끌 같은 인연과 세상살이 모두 던져 버리고
당당하고 오똑하게 아침저녁 보내니
혼자 뿐인 이 한몸에 사방이 툭 트여서
가는 곳마다, 저절로 동서남북 자유롭네
4. (眞俗不二, 色空一如) :
落落晴天蕩空寂 茫茫烟水虛碧 天水渾然成一色 望何極 更兼秋月蘆花白
맑게 갠 하늘은 탕탕히 비워지고 밝은데
아득한 노을빛 물결은 허공에 닿아서 함께 출렁이니
하늘과 바다가 어울려서 한 빛깔 이루네
어찌 끝을 바라볼 수 있으리, 가을달과 갈대꽃이 하얗게 겹쳐 아우르는데~

〈보충설명〉 진각국사는 염송 삼십권을 지을 때, 불성을 낚는 어부로 수행자를 비유하여 지은 船子스님의 禪詩(千尺絲綸直下垂 一派纔動萬波隨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를 소개하면서 위의 漁父詩로 說誼를 달았습니다. 이 詩는 가락이 붙어 가곡으로 불리웠어요.
수행과정에서의 禪과 詩의 만남은 둘이 아닙니다. 漁父詩는 전국시대 말기에 모함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굴원이의 어부사가 그 근원입니다. 굴원의 어부사 말미에는 어부들에게서 많이 불려진 노래,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는다’는 뜻) 이라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굴원이 어부사 밑에 달아 둔 이 글은, 공자가 제자와 함께 창랑의 물을 건널 때 어린이들이 ‘창랑지수~’하며 부르는 노래가사를 듣고 제자들이 그 뜻을 물었을 때 ‘自取之也’ (스스로 자기 자신이 그 모습을 취한 것이다.’)라고 대답한 내용으로서 ‘맹자’에도 소개되어있습니다. 굴원의 이 어부사를 토대로 당나라 선자화상이 ‘千尺絲綸~’이라는 선시를 지었고, 고려말에 禪과 詩의 만남으로 이규보와 절친했던 진각국사가 이를 다시 선(禪)적으로 승화시켜 어부사를 지어 설의를 달았습니다.

자신이 전생에 스님이었다고 술회한 고려말 대문호, 이규보가 지은 진각국사비문에 의하면 보조스님의 꿈에 설두중현선사가 나타났는데 그 다음 날 진각국사가 보조스님을 찾아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진각국사의 어부사를 잘 소화시킨 함허스님은 일물서에 無底船, 無空笛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더욱 더 禪味를 돋보이게 했습니다. 이렇게 선과 함께 어울린 어부시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로 그 맥이 이어졌습니다.

* 一葉片舟一竿竹一一笛外無畜: 마음 밖에 쌓아둔게 아무 것도 없다는 뜻(무소유)
* 直下垂綸: 불성을 낚기 위해 던진 낚시대
* 鉤不曲: 애초부터 낚아 올릴 고기가 없으므로 낚시바늘이 구부러질 필요가 없음을 의미
* 翠簇簇; 푸른 대나무가 무리지어서 병풍을 두른듯이 보이는 모습. 視覺의 싱그러움
* 香馥馥: 嗅覺의 싱그러움
* 榮辱: 名相에 걸린 세속의 영화와 굴욕이므로 영원하지 못한 것을 일컬음
* 脫略: 세간의 시비분별을 모두 떨쳐버림
* 繩墨: 목수가 나무를 재단할 때 쓰는 먹물 줄. 중생살림에 필요한 생계수단의 뜻
* 騰騰: 해탈을 이룬 몸과 마음이 가볍고 날침을 뜻함
* 兀兀: 명석한 마음으로 오뚜기처럼 쓰러지지 않고 오똑선 모습. 시비를 놓은 상태
* 度朝夕: 시간을 초월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묶이지 않는 상태
* 無四壁: 공간을 초월해서 사방이 툭 트여 향방에 묶이지 않는 상태.(화엄법계)
* 落落: 俗氣가 끊어진 상태
* 天水渾然成一色: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함께 출렁거리는 상태
* 秋月蘆花白: 하늘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함께 넘실거리고 한 빛깔을 이룬 것처럼, 가을달과 갈대꽃도 하얀빛 同色으로 함께 어울린다는 뜻. 서리 내린 뒤에 비치는 맑은 가을 하늘의 달빛은 차갑고 하얗다. 하얀 갈대꽃이, 차갑고 하얀 서리 위에서, 차고 하얀 달빛을 받는 것은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일체를 이루는 경지다.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