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밀린다판하(Milindapanha)

Ⅲ. 논란 - [1장] 2. 부처님은 전지자(全知者)다.

通達無我法者 2008. 11. 3. 21:37

 

 

        Ⅲ. 논란
      
                [1 장]
      
        2. 부처님은 전지자(全知者)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은 무엇이든지 알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이 모든 것을 아심은 숙고(熟考=傾注)에 의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숙고하시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존자여, 부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 것이 추구(尋求)하므로 도달 되는 것이라면, 그는 모든 것을 아셨을 리 없습니다. 대왕이여, 여기 쌀 7암마나(약 두 말)반 씩을 실은 수레 100대가 있다고 합시다. 사려 없는 사람이 그것을 잠깐 훑어보고, 쌀알이 모두 얼마나 될지 셈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마음(心)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미망(癡)과 번뇌와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몸과 계행과 마음과 지혜의 수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사고력이 약하고 행동이 느립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수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대(竹)를 끌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즉, 대(竹)가 번성하여 넓게 퍼져 있고 축 늘어져 있으며 얼크러져 있고 가지들이 서로 맞물고 있는 것을 끌어 낼 때 그 동작은 둔하고 더딥니다. 왜냐하면 가지들이 복잡하게 얼크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아까 말한 사람들의 마음은 활동이 느리고 둔합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번뇌로써 일그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첫째 종류의 마음(第一心)입니다. 다음에 이것과 구별되는 둘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악한 생존의 길이 막히고, 정견(正見)을 얻어 스승의 가르침을 식별하여 성자(聖者)류의 경지에 든 사람들은 세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 있는 한,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보다 높은 영역에 관해서는 마음의 활동이 더디고 행동이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세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三處)에 있어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그 이상의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번뇌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 마디까지 매끄럽고(淸淨), 그 윗부분은 가지들이 휘감겨 맞물고 있는 큰 대를 끌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당길 때, 매끄러운 세 마디까지는 쉽게 움직이지만, 그 위쪽은 꼼짝도 않습니다. 이것이 둘째 종류의 음(第二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셋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탐욕과 노여움과 미망이 줄어들어 단 한번만 망집(妄執)하는 생존으로 돌아오는 경지에 이른(一來果) 사람들은, 다섯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五處)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용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영역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용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다섯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그 이상의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번뇌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 마디까지는 매끄럽고 그 위쪽은 가지들이 휘감겨 얽히어 맞물고 있는 큰 대를 끌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당길 때, 매끄러운 다섯 마디까지는 손쉽게 움직이지만, 그 위쪽에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탐욕과 노여움과 미망이 줄어들어 단 한번 망집하는 생존으로 돌아오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다섯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 있어서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높은 영역에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이것이 셋째 종류의 마음(第三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넷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감각적 욕망이 생존을 일으키는 하위의 다섯 가지 속박(五下分結)을 벗어나서 두 번 다시 생존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른(不還果) 사람들은 열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十處)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영역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열 가지 속박을 벗어난 상태에서 마음이 청정하지만, 그 이상의 높은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번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열 마디까지는 매끄럽고 그 윗부분은 가지들이 휘감겨, 맞물고 있는 큰 대를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당길 때, 매끄러운 열 마디까지는 손쉽게 움직이지만, 그 윗부분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넷째 종류의 마음(第四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다섯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더러움이(四대악)이 그치고, 마음의 때를 씻고, 번뇌를 내쫓고, 청정한 수행을 완수하고, 해야 할 선행을 마치고, 속박의 짐을 버리고, 참뜻(眞實義)을 성취하고, 윤회하는 생존에 집착하는 속박을 끊고, 아무 것에도 걸리지 않는 지혜에 이르러 부처님의 제자로써 청정한 수행도를 성취한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치는 경계(聲聞境)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스스로 깨친 사람의 경계(緣覺境)에 있어서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성문(聲聞)의 경계에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스스로 깨친 연각(緣覺)의 경계에서는 마음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줄기에 달린 모든 가지가 제거된 큰 대를 끌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를 끌어당길 때, 모든 마디가 매끄럽고, 대 줄기에 얽히고 걸려있는 것이 없으므로 빠르고 쉽게 끌어당길 수 있는 것처럼,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성문의 경계에서는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스스로 깨친 사람의 경계에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이것이 다섯째 종류의 마음(第五心)입니다. 다음에 이것들과 구별되는 여섯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스스로 깨친 사람(緣覺)들은 독존(獨存)하고, 스승도 바라지 않고, 외뿔소처럼 홀로 행하고,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청정무구(淸淨無垢)한 마음을 가집니다. 이 같은 사람들은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는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동작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높은, 모든 것을 깨쳐 안 사람의 경계에서는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마음이 청정하지만, 모든 것을 깨쳐 안 사람의 경계는 보다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에 있는 조그마한 시내는 밤낮 마음대로 두려움이 없이 건너는데, 깊고 넓고 깊이도 헤아릴 수 없으며, 끝이 없는 대양(大洋)을 보면 놀라고 주저하여 감히 건너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에는 친숙해 있지만, 대양은 너무나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깨친 사람들 즉, 독존하고 스승도 없고 외뿔소처럼 홀로 행하고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청정무구한 마음을 갖는 사람들은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동작이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경계에서 마음의 활동은 둔하고 행동은 느립니다. 왜냐하면 자기 경계에 있어서는 마음이 청정하지만, 모든 것을 깨쳐 안 사람의 경계는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여섯째 종류의 마음(第六心)입니다. 다음 이것과 구별되어야 할 일곱째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전지자요 열 가지 지혜의 활동을 지닌 자(十力者)는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자신(四無所畏)을 갖고, 열여덟 가지 뛰어난 부처님의 특성을 갖춘 승자(勝者)요, 무애의 지자(智者)입니다. 완전히 바르게 깨친 사람(佛陀)은 어느 곳에서나 마음의 활동은 빠르고 행동은 쉽습니다. 대왕이여, 잘 닦아 녹이 슬지 않고, 마디가 없으며 날카로운 촉이 붙어 있고, 휘거나 구부러짐이 없이 똑바르게 생긴 화살이 있다고 합시다. 그 화살을 힘센 궁수가 부드러운 마지나 면직이나 좋은 모직물에 쏘아댄다면 화살의 활동은 둔하겠습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녁 바탕(布地)은 아주 훌륭하고, 화살은 고도로 조절되어 있고, 궁수는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내가 말한 부처님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佛陀)은 어느 곳에서나 마음의 활동이 빠르고 행동이 쉽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면에 있어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일곱째 종류의 마음(第七心)입니다. 대왕이여, 이들 일곱 가지 마음 가운데서 모든 것을 깨쳐 안 부처님의 마음은 활동력에 있어 나머지 여섯 가지 마음의 활동에서와 같은 계량(計量)을 초월하여, 마음의 청정함과 활동의 민활함을 우리들이 추측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이 행하는 마음의 활동력은 청정하고 민활하기 때문에, 그는 두 가지 신통 변화(神變)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신통 변화에서 `모든 부처님의 마음의 활동은 그처럼 민활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서는 그 이상 아무런 이유를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신통 변화는 전지전능한 부처님의 마음에 의거하는 것이므로, 셈하거나 계산하거나 쪼개거나 분간하거나 할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모든 것을 아시는 부처님의 지혜는 숙고에 의합니다. 심사숙고한 뒤,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압니다. 대왕이여, 이를테면, 사람은 이 쪽 손에 있는 것을 저 쪽 손에 옮겨 놓기도 하고, 입을 열어 말을 하기도 하고, 입에 들어간 음식을 뱉기도 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기도 하고, 팔을 폈다 굽혔다 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부처님의 지혜보다도 느립니다. 대왕이여, 모든 것을 아시는 부처님의 지혜는 보다 더 빠르고, 활동이 보다 더 용이하며, 심사숙고는 보다 더 빠르고 용이합니다. 심사숙고한 뒤 알고자하는 것을 아신다고 할지라도, 부처님을 심사숙고하지 않고 계신다는 이유로 부처님을 전지자(全知者)가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숙고(傾注)는 추구(尋求)에 의하여 행해집니다. 이제 여기서 몇 가지 비유를 들어 이 사실을 확신시켜 주십시오." "대왕이여, 큰 재산가요, 많은 금, 은 부치며 재보와 곡식을 가진 사람이 사아리 미(米)와 비이히 미와 보리와 정미(精米)와 밀과 콩과 완두콩과 그 밖의 모든 식용의 곡식과 버터기름과 버터와 우유와 굳기름(凝乳)과 벌꿀과 설탕과 흑설탕 등, 이 모든 것을 단지와 항아리와 냄비와 갖가지 그릇에 담아서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고 합시다. 그 집에서 환대받을 만찬 손님이 환대를 기대하고 찾아 왔는데, 요리된 음식은 이미 먹어 없어졌으므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항아리에서 정미(精米)를 꺼내 음식을 만든다고 합시다. 식사 때도 아닌 때, 먹을 음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부잣집 사람을 빈곤하다고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여, 왕 중의 왕 전륜왕(轉輪王)의 궁전에서도, 식사 때 외에는 요리된 음식이 갖춰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일반 사람들 가정에서이겠습니까."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는 숙고(傾注)를 결하고 계실 때에도 모든 것을 아시는 지혜(一切知智)를 가지고 계시며, 숙고하신 뒤 무엇이든 마음대로 파악하십니다. 대왕이여, 한 그루의 나무에 과일이 열려 그 과일 무게 때문에 가지들이 휘어질 정도로 늘어져 있으나, 단 한 개의 과일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시다. 떨어진 과일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라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과일은 저절로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과일이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마음대로 그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왕이여, 숙고는 지혜의 필요한 조건입니다. 부처님은 숙고하심으로 무엇이든 마음대로 아십니다." "존자여,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숙고하실 때, 비로소 모든 것을 마음대로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마치 전륜왕이 그의 윤보(輪寶)가 나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마음속에 일으키자마자 윤보가 나타나는 것처럼, 부처님의 지혜는 숙고를 하시자마자 따라 일어납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것은 그대가 `부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확고한 이유입니다. 나는 `부처님은 전지자이시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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