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의 강의·혜거스님

〈45〉호흡의 조절(調息)/한결같은 정진은 ‘마음 호흡 몸’ 하나

通達無我法者 2009. 12. 15. 00:49

 

 

한결같은 정진은 ‘마음 호흡 몸’ 하나

〈45〉호흡의 조절(調息)

  
 
자세를 바르게 하고 난 다음에는 호흡을 고르게 해야 한다. 호흡은 조절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 몸 안에서 스스로 조절되고, 의식하지 않아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쉬어진다. 즉,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으로서, 인간의 삶은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달려 있다.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들도 호흡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 호흡에서는 들숨에 의하여 산소가 공급되어 생명이 활력을 얻고 날숨에 의한 신진대사로 노폐물이 몸 밖으로 배출된다. 즉 호흡을 통하여 몸 안에 산소를 받아들여서 피를 깨끗이 하고 다시 몸 안에 생긴 나쁜 독소를 폐를 통해 밖으로 내보낸다. 그러므로 호흡 운동은 폐를 통한 생명력의 끊임없는 공급과 배출이다. 새 것이 들어오면 옛 것이 나가는 운동이다.
 
호흡은 마음의 상태와 많은 관련이 있다. 마음이 동요되면 호흡이 흩어지고, 호흡이 흩어지면 마음도 흔들리게 된다. 우리가 불안하거나 공포에 싸여 있을 때에는 육체의 작용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호흡이 거칠어지게 되지만 정신이 안정되고 평온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호흡이 고르게 되고 행동이 뜻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좌선시 올바른 호흡은 심기상태(心氣狀態)를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마음가짐과 호흡이 직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소지관>에서는 호흡을 풍(風).천(喘).기(氣).식(息)의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풍(風)은 씩씩 소리나는 호흡이고, 천(喘)은 숨이 차서 내는 호흡이고, 기(氣)는 소리도 없고 끊어짐도 없는 호흡이니, 이는 곧 무호흡증과 같은 것이다. 이 3가지를 호흡이 조절되지 못한 모습이라 하고, 나중의 식(息)을 호흡이 조절된 것이라고 한다.
 
호흡이 조절된 상태인 식(息)에 대해서는 “호흡이 소리도 없으며 막히지도 않고 거칠지도 않으므로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호흡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정신이 안정되어 기쁘고 즐거운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라 말하고 있다.
 
좌선을 처음 하는 초심자의 경우 호흡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사실은 호흡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호흡은 신경 쓰지 않아도 늘 쉬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좌선을 하면서 호흡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호흡을 행하여 길게 혹은 짧게
 
숨을 들이마시거나 내보내면서
 
그 숨의 길거나 짧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 기본 수행이다
 
 
좌선시 호흡수행을 하는 방법에는 보통 수식관(數息觀)과 수식관(隨息觀) 두 가지가 있다. 좌선시 호흡관찰을 하는 수행에서는 호흡이 마음의 대상이 된다. 수식관(數息觀)은 수를 세면서 호흡을 고르는 방법으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때 효과가 있다. 이 수식관(數息觀)은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오정심관(五停心觀) 중의 하나로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행법으로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 하겠다.
마음을 쉬어 안정시키는 방법으로 제시된 수식관(數息觀)은 숨이 들어오는 것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수를 세는 것으로 정신을 숨에 집중하여 조화를 이루기 위한 방편이다. 숨이 들어올 때 그 숨의 수를 세면서 정신을 집중하고, 나갈 때 나가는 숨의 수를 세면서 정신을 집중하여 서로 따르게 하면 숨은 올바르게 이루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숨의 들어오고 나감이 그친 듯한 상태가 되어,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숨이 들어왔다 나갈 뿐인 경지에 도달한다.
 
그 방법으로는, 초보자는 처음 숨을 들이쉬면서 하나부터 다섯을 세고, 내쉬면서 다시 하나부터 다섯을 세되, 다섯이 넘어가지 않게 한다. 이런 방법으로 계속해서 들숨 날숨을 반복하다보면 마음이 한결같이 안정되게 된다. 이때에 주의할 것은 수를 세면서 그 수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숨이 나고 드는 것에 따라서 마음이 한결같이 머물게 해야 한다. 이렇게 일정한 수를 세면서 그 수에 집착하지 않고, 숨이 들고 남에 따라서 마음이 편안해 지게 하는 것을 수를 헤아리는 호흡이라 해서 수식(數息)이란 한다.
 
수식관(隨息觀)은 호흡하는 대로 의식이 따라가는 것이다. 그 방법은 고요한 곳에서 몸을 바로 하고 앉아 오로지 한 생각으로 호흡을 하되, 길게 들이쉬고 내쉴 때에는 그 길다는 것을 알고, 짧게 들이쉬고 내쉴 때에는 그 짧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온몸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알아 마음을 다른 데로 달아나지 못하게 한다. 수식관(隨息觀)의 방법에 대해 설한 <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에 잘 나온다.
 
“비구들이여, 길게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길게 입식한다’고 깨달아서 알고, 혹은 길게 내쉬면서 ‘나는 길게 내쉰다’고 깨달아서 알고, 혹은 짧게 들이쉬면서 ‘나는 짧게 입식한다’고 깨달아서 알고, 혹은 짧게 내쉬면서 ‘나는 짧게 내쉰다’고 깨달아서 알고, ‘나는 온 몸을 깨달아서 받아들이면서 입식하겠노라’고 하여 익히고, ‘나는 온 몸을 깨달아서 받아들이면서 출식하겠노라’하고 익히고, ‘나는 몸의 움직임을 고요히 하면서 입식하겠노라’하고 익히고, ‘나는 몸의 움직임을 고요히 하면서 출식하겠노라’하고 익힌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몸에 있어서 몸을 따라 관하면 그때에 비구는 전일한 정진이 있고, 올바른 앎이 있고, 생각이 있고, 세간에 있어서의 탐욕과 근심을 극복하고 조절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그것을 몸속에 있는 몸이라고 부른다. 곧 입출식이다.”
 
즉, 호흡을 행하여 길게 혹은 짧게 숨을 들이마시거나 숨을 내보내면서 그 숨의 길거나 짧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 기본 수행이다. 곧 호흡과 마음이 같이 따라서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호흡의 기본이 된다. 이 호흡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호흡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호흡을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다. 호흡을 의도적으로 길거나 짧게, 또는 강하거나 약하게 해서도 안 된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호흡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과 호흡과 몸이 하나가 되면 한결같은 정진이 있게 되고, 세간에 있어서의 탐욕과 근심을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공부에 전념하는 수행자가 공부에 전념할 때는 호흡을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된다. 그리고 모든 수행에는 반드시 스승이 필요하겠지만 특히 호흡수행에서는 스승의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혜거스님 / 서울 금강선원장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