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指·무비스님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만물은 ‘불생불멸’

通達無我法者 2010. 2. 14. 21:16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만물은 ‘불생불멸’

〈10〉 제7불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③ 열반은 본래 없다


佛 於涅槃會上 以手摩胸 告大衆曰汝等 善觀吾紫磨金色之身 瞻仰取足 勿令後悔 若謂吾滅度 非吾弟子 若謂吾不滅度 亦非吾弟子 時 百萬億大衆 悉皆契悟

(如云 如來不出世 亦無有涅槃也)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회상에서 손으로 가슴을 어루만지시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나의 자마금빛의 몸을 잘 살피고 마음껏 우러러 보아 후회가 없게 하라. 만약 나를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면 나의 제자가 아니며 만약 나를 열반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역시 나의 제자가 아니다.” 그 때에 백 만억 대중들이 모두 다 깨달음을 얻었다.

(이를테면 ‘여래는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으며 또한 열반에 들지도 않았다’라는 말과 같다.)



‘삶과 죽음’의 구별은 본래없어

존재의 실상이 곧 불교의 진리


해설 : 열반회상이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면서 열반경을 설하시던 법회를 말한다. 세존의 한 생애를 두고 볼 때 성도하신 일과 법을 전하는 일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열반에 드신 일이기 때문에 <직지심경>에서 앞의 두 가지 사실에 이어서 육신의 열반을 거론한 것이다.

세존의 열반이란 참으로 중요한 문제다. 세존의 열반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열반과 직결되어 있다. 부처님은 스스로 제자들에게 “나는 이제 곧 열반에 들고 다비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보고 듣고 하던 그러한 부처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한 없이 실컷 보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따라 탄생과 열반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속제(俗諦)며 상견(相見)이며 유상불(有相佛)의 입장이다.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열반경>에서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모든 사람들이 슬피 울었다. 그 슬픔이 심한 경우는 기절까지 하였다”고 한다.

27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불자들은 인도의 불교성지를 두루 참배하다가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모습을 조각한 불상에 참배하고 열반의 광경을 이야기하노라면 모두 눈물을 흘린다. 훌쩍훌쩍 소리 내어 우는 이도 있다. 슬픈 감정은 전이가 잘 된다. 그래서 법당 안은 순식간에 숙연해지고 여기저기서 울먹이는 소리가 많아진다. 부처님의 열반에 대한 불자들의 감정은 이와 같다. 하물며 그 당시에 여러 해를 모시고 살다가 입멸에 드시는 광경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된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안타깝고 비통할 것인가?

그래서 <열반경>은 이러한 상식적인 견해에서 벗어나서 보다 높은 차원의 진실한 생명에 눈을 뜨게 하려고 영원한 불성과 불생불멸의 진여생명을 누누이 설파하였다. 즉 생멸이 있는 눈으로 보면 부처님도 생사가 있지만 생멸을 초월한 눈으로 보면 모든 생명과 일체 만물이 모두 불생불멸의 영원한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열반경>에 이렇게 설하였다. “선남자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달을 보아도 나타나 있지 않으면 달이 없어졌다고 하여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 달은 실로 없어진 것이 아니니라. 또한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달이 나타났다고 하지만 이 달은 실로 나타난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수미산에 가려 있어서 나타나지 아니하나 그 달은 항상 있어서 나타나거나 없어지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여래도 또한 이와 같아서 삼천대천세계에 태어나서 염부제에 부모가 있음을 보이면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여래가 염부제에 태어났다하고 혹 염부제에서 열반을 보이지만 여래는 실로 열반이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공적한 본질의 세계와 유형의 현상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서 불교의 진리를 알게 되고 모든 존재의 실상을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부처님의 열반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만약 나를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면 나의 제자가 아니며 만약 나를 열반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역시 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무비스님 / 조계종 전 교육원장


[불교신문 2459호/ 9월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