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指·무비스님

버릴 것이 없으면 생사를 벗어난다

通達無我法者 2010. 2. 14. 21:24

 

 

버릴 것이 없으면 생사를 벗어난다

〈13〉제7불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⑥ 방하착하라


世尊 因黑氏梵志 以神通力 左右手 擎合歡梧桐花兩株 來供養佛 佛召仙人 梵志 應諾 佛云 放下着 梵志 放下左手一株花 佛 又召仙人 放下着 梵志 又放下右手一株花 佛 又云 仙人 放下着 梵志 云 世尊 我今兩手花 皆已放下 更放下什 佛云 吾非令汝 放下手中花 汝今當放下外六塵 內六根 中六識 一時放下 到無可捨處 是汝脫生死處 梵志 於言下 悟去

흑씨범지가 신통력으로써 좌우 양손에 오동나무 꽃 두 그루를 들고 와서 부처님께 공양하는데 부처님이 선인을 부르니 범지가 “예”하고 대답하였다.

부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내려놓아라.” 범지가 왼쪽 손에 들고 있던 꽃 한 그루를 내려놓았다. 부처님이 또 다시 선인을 불러서 “내려놓아라”라고 하였다. 범지가 또 다시 오른손에 있는 꽃 한 그루마저 내려놓았다.

부처님이 또 말씀하시기를, “선인이여, 내려놓아라.”

범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양 손에 들고 있던 꽃을 모두 내려놓았는데 다시 무엇을 ‘내려놓아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로 하여금 두 손에 들고 있는 꽃을 ‘내려놓아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대는 지금 마땅히 밖으로는 6진과 안으로는 6근과 그 중간으로는 6식을 일시에 다 내려놓고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이것이 그대의 생사를 벗어나는 경지이니라.” 범지가 그 말씀에 깨달았다.



삶의 전 영역 내려놓으면

거기엔 삶도 죽음도 없다


해설 : 무수한 불교의 명언 중에서도 이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만치 좋은 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자들에게는 조주스님의 방하착이 가장 친숙한데 알고 보니 세존께서 일찍이 이 방하착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떤 수행승이 조주스님에게 와서 묻기를,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아니했을 때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조주스님이 말하기를 “방하착하라”라고 하였다. 그러니 수행승이 다시 따지기를,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말씀입니까?”라고 하니 조주스님이 왈, “내려놓기 싫거든 짊어지고 가거라”라고 한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이 조주스님의 이야기의 근거는 곧 세존과 바라문교의 수행자 범지와의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같은 방하착이라도 조주스님은 대단히 직설적이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데 반해서 세존은 지극히 자비스럽고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하셨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처님의 설법은 활과 같이 가르치고 조사들의 설법은 활줄과 같이 가르친다고 하였다. 활은 굽어있고 활줄은 직선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방하착이라는 법문을 가지고 서로 비교해보면 그 성격이 더욱 명확해진다.

세존은 지금 들고 있는 꽃을 내려놓으라는 뜻이 아니고 그대의 삶의 일체를 모두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사람들의 삶의 일체란 나라는 주관과 남이라는 객관이다. 그 주관은 6근으로 세분하고 객관은 6진으로 세분한다.

그 주객사이에서 우리들의 인식작용이 저절로 생기게 되는데 그것이 6식이다. 이 모든 것이 곧 우리들 삶의 전영역이다. 이와 같은 우리들 삶의 전 영역을 다 내려놓으면 거기에는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 그래서 세존이 “생사를 벗어나는 경지”라고 말씀한 것이다.

조주스님의 이 방하착이라는 한마디 말씀이 오랫동안 참선수행자들에게는 천근의 무게와도 같은 풀지 못할 화두였다. 그 화두를 일찍이 세존은 아주 친절하게 차근차근 설명하셨다. 세존의 친절한 설명이 조주스님의 낙처(落處)와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그 답은 우리들의 몫이다.

무비스님 / 조계종 전 교육원장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