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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5

通達無我法者 2010. 12. 24. 23:09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법은 알아차릴 대상이며 그것 자체가 진리입니다.

대상의 법은 정신과 물질이며, 진리의 법은 무상, 고, 무아입니다.

 

바른 법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상의 법을 보아야 진리의 법을 볼 수 있습니다.

 

바른 법이 있어도 아는 자에게만 법입니다.

법은 지혜가 있어야 보이지 무지하면 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르면 법을 주어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모르면 선법보다 불선법을 얻으려 합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자신이 원했을 때만이 법입니다.

법을 보았을 때만이 비로소 나를 압니다.

나를 보았을 때만이 비로소 법을 압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은 호흡에 관한 것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생명은 호흡과 호흡사이에 매달려 있습니다.

숨을 쉬다가 숨이 끝나면 몸도 끝나고 마음도 끝납니다.

그래서 호흡이 끝나면 한 일생이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그러나 윤회하는 생명은 호흡이 끝나도

그간의 몸과 마음이 일으킨 과보로 인해서

연기가 회전하여 다음에 새로운 생이 생깁니다.

 

하지만 새로 태어날 원인이 없는 사람은

받을 과보가 없어서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죽음을 반열반이라고 하거나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라고 합니다.

 

이때 죽는 마음이나 태어나는 마음이 같은 마음이 아니고,

과보에 의한 새로운 마음이라서 환생이 아니고, 재생이라고 합니다.

환생은 같은 마음이 계속된다는 힌두교의 교리입니다.

불교는 같은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재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때의 마음을 재생연결식이라고 합니다.

 

일부 불교도들이 ‘마음이 몸만 바꾼다’고 하는 환생은

힌두교의 교리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결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으며,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에는 그런 이론이 들어설 자리가 추호도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 그 자체가 부정됩니다.

우리는 이 점을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환생에는 진아, 참나, 주인공이 있지만, 재생에는 무아가 있습니다.

힌두교나 불교나 윤회하는 것은 같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이처럼 환생과 재생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아셔야 하겠습니다.

 

재생을 수용한 이런 죽음이 바로 부처님과 아라한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집착을 한 사람은

다음 생에 받을 것이 있어서 다시 태어나야 하고,

살아있는 동안 갈애와 집착이 끊어진 사람은

받을 것이 없어서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범부는 받을 것이 있어서 호흡이 계속되고

부처님이나 아라한은 받을 것이 없어서 호흡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나 아라한의 죽음은 망각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태어날 원인이 없어서 태어나는 결과가 없을 뿐입니다.

 

깨달음에는 나라고할 만한 자아가 없기 때문에

태어나는 것을 소유하는 자아나 죽는 자아가 없습니다.

 

그래서 범부의 삶은 정신과 물질이 원인과 결과로 지속되는 것이고,

아라한의 삶은 원인이 없어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흡도 나의 호흡이 아니고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조건에 의해 사라지는 일련의 과정만 있습니다.

 

이때 ‘내가 죽고 사는 것’이라는 개아가 없고,

단지 원인과 결과가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만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내가 태어나고 내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있지만, 매순간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이지,

항상하는 마음이 아니라서 나의 마음이 아닙니다.

 

경전 구절에 ‘비구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이 확립될 때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몸이 있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몸이 있을 뿐이지,

거기에 중생, 여자, 남자, 자아, 개아, 진아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몸에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있어서 몸을 소유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알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서 지혜가 나야 합니다.

이렇게 알 때 비로소 모든 집착을 여의고 열반을 성취합니다.

 

이런 과정에 이르기까지 수행자들은 열심히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수행을 하다 그만두면 결코 이런 깨달음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수행의 끈을 붙잡고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궁극에는 가장 훌륭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 보상이 바로 지고의 행복을 얻는 열반입니다.

 

수행자여러분! 인간은 호흡을 하기 때문이 삽니다.

호흡을 통해 숨을 들여 마실 때는 산소를 폐로 보내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영양소를 흡수합니다.

숨을 내 쉴 때는 폐에 있는 가스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호흡을 한다는 것은 산소를 들여 마시고 불순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며,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들숨과 날숨은 생명의 기본요소입니다.

 

누구나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호흡의 상태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흡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측정하기에 좋은 대상입니다.

뿐더러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에 좋은 대상입니다.

일정한 호흡을 지속적으로 내쉰다면

마음의 안정을 얻고 몸의 기능을 향상시킬 것입니다.

 

호흡은 몸이 가지고 있는 바람의 요소입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바람과 진동을 일으키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바람과 진동을 일으킵니다.

 

바람의 요소라고 하는 것은 몸이 가진 지수화풍의 하나로 풍대에 속합니다.

몸은 지수화풍 사대의 기능으로 작용합니다.

이중에 풍대는 다른 요소들과 함께 몸을 유지하는 기본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호흡의 들숨은 바람을 폐가지 전달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코로 호흡을 할 때 배나 다른 부위가 움직이는 것은 바람의 요소로 인한 진동이지

바람이 배까지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호흡은 크게 보면 풍대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코나 폐가 있는 가슴의 움직임은 호흡에 속하지만,

배의 움직임은 호흡이라기보다 풍대의 요소로 보아야 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단전호흡은 없습니다.

다만 코의 호흡으로 인해 일어나는 배의 풍대입니다.

코로 들여 마신 바람이 즉시 배까지 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배도 호흡이라고 본다면 혼란이 생깁니다.

물론 큰 틀 안에서 호흡도 풍대의 하나이지만, 여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념처경의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수행에서는 배에 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코의 호흡이 아닌

배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지도하셨습니다.

그러자 일부의 교학자들이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의 수행법을 비판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호흡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하시 방식으로 볼 때 배의 일어남과 꺼짐은

호흡에 의해서 일어나는 풍대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마하시 사야도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 지도하신 배의 움직임은

신념처 수행의 여러 가지 종류 중에서 사대의 요소인 풍대에 속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의상 배의 움직임을 호흡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이렇게 알아야 경전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에서 호흡은 매우 중요한 대상입니다.

몸을 알아차릴 때 여러 가지의 대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호흡은 가장 두드러진 것이기 때문에 수행자들의 주된 대상입니다.

 

호흡은 생명이 살아있는 한 가장 분명한 대상일 뿐만 아니라

언제나 가장 뚜렷하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좋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분명한 대상이라고 해서

항상 쉽게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호흡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힘을 쓰거나 긴장을 하면 오히려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호흡이 아닌 강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다가 호흡이 나타나면 가볍게 주시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볍게 라는 것은

처음부터 호흡을 잡으려고 무리하게 힘을 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호흡을 잡으려고 무리하게 힘을 쓰면 호흡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가볍고 부드럽게 호흡을 주시해야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없애려고 하지 않는 수행입니다.

어떤 대상이나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호흡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하면 결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호흡을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호흡을 일부러 길게 내쉬거나 참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호흡법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수련을 하는 수행법이지

지혜를 얻고자 하는 위빠사나 수행의 호흡법이 아닙니다.

 

일정기간 호흡을 참고 있다가 내쉬는 경우에는

잘못하면 치명적인 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호흡을 만들어서 할 경우에는 쉽게 피곤해져서 수행을 계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호흡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수행의 발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몸의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돌이킬 수 없는 병을 일으키는 현상이라고

알아야 되겠습니다.

 

몸은 저 스스로의 자율조절 기능하면서 호흡을 합니다.

그래서 거친 숨을 내 쉴 때는 그만큼 산소가 필요하거나

탄산가스를 배출할 필요가 있어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체가 요구하고 있는 호흡을 역행하면

거듭 말씀드린 대로 병에 걸릴 위험이 있습니다.

뿐더러 이런 수행은 위빠사나 수행의 방법이 아니라고 아셔야 합니다.

 

사마타 수행을 하면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릴 때는

어떤 행동을 하거나 오직 호흡 하나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호흡이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많은 대상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물론 위빠사나 수행의 주 대상도 호흡이지만

가장 강한 대상으로 나타날 때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없는 호흡을 알아차리려고 하거나

호흡이 없기 때문에 일부러 만들어서 알아차려서도 안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호흡 하나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몸을 알아차릴 때 강한 대상이 나타나면

호흡이 아니더라도 다른 강한 대상을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알아차려야 할 호흡은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호흡에 국한해서는 안 됩니다.

코, 가슴, 배, 몸의 일부, 전면 등 등 어디에서나

강하게 일어나는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물론 배에서 알아차리다가 가슴에서 강한 호흡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가슴으로 와서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가슴에서 호흡을 알아차릴 때는 사념처 수행을 모두 할 수가 있습니다.

화가 날 때 먼저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런 뒤에 화가 난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화가 난 마음으로 인해서 가슴에서 일어나고 꺼지는 호흡이나

그 느낌을 알아차리면 좋은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슴에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신수심법 사념처를 모두 실천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무엇을 하거나 할 때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그래서 아무 때나 호흡을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일을 하거나 걸을 때는 일하는 것이나 걷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호흡은 좌선을 하거나 와선을 할 때 움직이지 않을 때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걸을 때는 발의 움직임이 크기 때문에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을뿐더러,

운전을 할 때도 전방을 주시해야 하기 때문에 호흡을 알아차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자에게 호흡은

주로 움직이지 않을 때 알아차리기에 좋은 대상입니다.

 

처음에 호흡을 알아차릴 때는 일어남 하나만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얼마간 지나면 다시 사라짐 하나만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집중력이 생기면 그 뒤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더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면 일어남, 꺼짐, 쉼이라는

쉼의 휴지를 알아차리면 여러분들이 훌륭한 수행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