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37

通達無我法者 2011. 1. 5. 00:21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오늘도 부처의 조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7불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7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7불 중 첫 번째이신 위빠시 붓다시대의 사람의 수명은 84000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기 붓다 시대의 사람의 수명은 70000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웨싸부 붓다의 시대의 사람의 수명은 60000살이었습니다.

그리고 까꾸산다 붓다의 시대의 사람의 수명은 40000살이었습니다.

꼬나가나마 붓다 시대의 사람의 수명은 30000살이었습니다.

그리고 까사빠 붓다 시대의 사람의 수명은 20000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시대에 태어나셨던 고따마 붓다시대의 사람의 수명은

100살을 넘기지 못합니다.


여러분!

이렇듯 이 겁의 시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사람의 수명이라는 것이 이렇게 길 때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30세가 될 때는 부처가 출현하지 않는다고 경전에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수명이 너무 낮으면 무상을 느끼기에 부족한 시대라고 합니다.


사실 이런 것 하나를 보더라도 우리의 삶의 역정이 얼마나 긴 것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지금 우리의 인생이 매우 짧다는 것이며,

생명은 쉬지 않고 윤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고통과 슬픔이 있더라도

그것은 짧은 한순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는 시간 개념을 가져야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붓다는 그 시대 사람의 수명의 3분의 2 정도밖에 살지 못합니다.

고따마 붓다께서도 평균 100세 수명에 80세를 사셨습니다.

고따마 붓다께서는 살아계실 적에

내가 더 살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다음에는 위빠시붓다와 시기붓다 웨사부 붓다의 신분은

무사계급으로 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까꾸산다 붓다, 꼬나가나마 붓다, 까사빠 붓다의 신분은

브라만 계급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따마 붓다의 신분은 무사계급인 왕족으로 출생하였습니다.


이상의 붓다들이 모두 브라만이나 무사계급인 왕족으로 태어났으며,

낮은 계급이나 천민의 계급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이것은 보살들이 그만큼 큰 공덕을 쌓아 현세에 붓다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교리로 보면 죽을 때의 마음이 다음 생을 결정합니다.

또한 선업은 선업의 과보를 받고, 불선업은 불선업의 과보를 받기 때문에

선업을 쌓은 보살이 붓다로 태어날 때,

최상의 과보를 받기 때문에 신분은 당연히 최고의 신분으로 태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여러분! 또 하나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모든 붓다는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이룹니다.


위빠시 붓다는 바바라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시기 붓다는 분다리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웨싸부 붓다는 싸라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까꾸산다 붓다는 치리사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꼬나가나마 붓다는 오잡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까사빠 붓다는 미구휼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따마 붓다는 보리수나무 아래서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룩하셨습니다.

이상 역대의 부처들은 모두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특징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은 많은 제자 중에서 뛰어난 두 상수 제자를 둡니다.

위빠시 부처님에게도 두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 제사와 껀다 였습니다.

시기 붓다의 제자는 아비부와 삼바바 였습니다.

웨싸부 붓다의 제자는 부유와 울다마 였습니다.

까꾸산다 붓다의 제자는 쌀리와 비루 였습니다.

꼬나가나마 붓다의 제자는 써반나와 울다루 였습니다.

까사빠 붓다의 제자는 쩨사와 바바라 였습니다.

고따마 붓다의 두 제자는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라는

두 상수 제자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고따마 붓다께서 사리불과 목련존자가 처음에 찾아왔을 때

이미 전생에 업으로 만나도록 되어있는 것을 아시고

어서오너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반기셨습니다.


위빠시 붓다의 시자이름은 무후입니다.

시기 붓다의 시자는 인혜입니다.

웨싸부 붓다의 시자는 적멸입니다.

까꾸산다 붓다의 시자는 선각입니다.

꼬나가나마 붓다의 시자는 안화이고

까사빠 붓다의 시자는 선우이고

고따마 붓다의 시자는 아난입니다.


여러분! 모든 부처가 시자를 가졌다는 특징도 있지만,

또 한 가지 시자들이 천재적인 기억력을 소유한 사람으로,

시자로 책봉됩니다.


부처님은 45년간 전법을 펴십니다.

아난의 경우는 25년 동안 부처님을 시봉했는데, 

시봉하지 못한 20년 동안의 법문을 다시 듣고 모두 기억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모두 이러한 기억에 의해 경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경장의 첫마디는

모두 아난존자가 외워서 구술한 것입니다.

이렇게 구술된 것을 다시 비구들이 합송으로 외워서

지금 우리 세대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현재 미얀마에서 보름에 한 번씩 열리는 포살에서는

초기불교 당시의 경전의 외우는 의식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경전을 외웁니다.


다음에 또 다른 특징들이 있습니다.

모든 부처들은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반드시 결혼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부처로 출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결혼을 해서 인생의 고(苦)를 경험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위빠시 붓다의 아들의 이름은 방응입니다.

시기 붓다의 아들은 무량이고

웨싸부 붓다의 아들은 묘각이고

까꾸산다 붓다의 아들은 상승이고

꼬나가나마의 아들은 도사이고

까사빠 붓다의 아들은 집권이고

고따마 붓다의 아들 이름은 라훌라입니다.


우리가 라훌라를 말할 때는 ‘장애가 생겼구나!’로

장애라는 의미로 고따마 붓다가 붙여준 이름입니다.  

이처럼 붓다가 되는 과정에서 모두 결혼을 하고 아들을 두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는 무상과 고통이라고 말하는 불만족을 알기 위해서 하나의 필요한 과정입니다.

결혼을 해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한 뒤에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음으로 경전의 대본경에 위빠시 부처의 출생에 관한 여러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고따마 싯달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위빠시 보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갔는데

바른 알아차림이 어지럽히지 않았다.


그때 땅이 진동하고 큰 빛을 뿌려 널리 세계를 비치니

해와 달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모두 환하게 되어

어둠 속에 있던 중생들이 서로 마주 보게 되었고

자기네가 사는 세상을 알게 되었다.


그때 이 광명은 악마의 궁전까지 비쳤고,

제석천을 비롯한 천신들과 범천, 사문, 바라문, 기타 중생들이

널리 큰 광명을 받았으며, 하늘의 광명은 저절로 빛을 잃었다.


여러분!

이것은 위빠시 보살이 입태를 할 때의 광경입니다.

다음은 태어날 때의 광경을 보시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고따마 붓다께서 비구들에게 설법하신 내용입니다.


위빠시 보살은 태어날 때 오른쪽 옆구리로 나왔는데,

오로지 한 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다.

오른쪽 옆구리로 나와서 땅에 떨어지자

부축하는 사람 없이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사방을 둘러보고 손을 들어

천상천하에 나만이 높다.

중생들을 나고 늙고 앓고 죽는데서 건져주리라 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법이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특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빠시 보살이 오른쪽 옆구리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했을까요?


자!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도에는 네 계급의 출생이 있습니다.

여기서 브라만 계급은 이마로 낳고,

왕족 또는 무사계급은 크샤트리아라고 해서 옆구리로 낳습니다.

그리고 바이샤계급은 무릎으로 낳고,

수드라 계급은 발바닥으로 낳는다는 신분에 따른

상징적인 표현을 말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도

단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이 한 문장에 그치지 않습니다.

바로 이 말은 천상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법으로

중생들의 고통인 생노병사를 끊어주겠다는 그런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부처님이 태어나서 내가 잘났다고 그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부처는 내가 없는 무아를 설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부처는 이 세상에 내가 없다는 무아를 설하러 오셨기 때문에,

무아를 통하여 깨달음을 얻으라는 말씀을 하시려고 출현하셨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최고라는 의미로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부처님께서 설하신 무아를 알아서 무엇을 할까요?

바로 무아이기 때문에 집착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완전한 무아를 느끼지 않고서는 집착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집착이 끊어졌다는 것은 깨달음에 이fms 자연적 결과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삼법인을 깨닫고 그 결과로 집착이 끊어져서

자연스럽게 열반에 이르게 됩니다.


삼법인 중에서 무상은 다른 사람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적인 내용이지만 원래 삶이 불만족이며 고통이라는 것과

나는 없다는 무아는 오직 부처님만이 설할 수 있는 위대한 법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설하신 무상도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어떤 절대적인 존재, 초월적 존재가 항상 거기에 있다고 알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무상, 고, 무아는 존재하는 것들의 일반적 특성이지만

부처가 찾아내신 위대한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열반은 오직 붓다에 의해서 설해지고,

우리는 그 방법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어느 성자도 무상, 고, 무아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 어느 성자도 열반을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무상 고 무아를 알아야 집착이 끊어져서 열반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열반은 윤회가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윤회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부처의 가르침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는 세월을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고통을 거듭해야 됩니다.


이 외에도 위빠시 보살이 태자로 태어났을 때,

전륜성왕과 같은 32상호를 갖는 것이며,

어느 날 밖에 나가 차례로 늙은이를 보고, 앓는 환자를 보고,

죽은 사람을 보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는 사문을 보고 나서 출가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수행을 하면서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새겨볼 때

지혜가 생기고, 안목이 생기고, 깨달음이 생기고, 통달이 생기고,

슬기가 생기고, 증험이 생겼습니다.


보살은 거꾸로 또는 바로 가는 12연기의 인연을 알아차리시고

마침내 더 없는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위빠시 붓다가 처음에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두 가지 관법을 닦았습니다.


하나는 안정을 얻는 관법으로 아는 관인데,

이것은 사마타 수행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관법으로 출리관인데,

이것은 지혜가 나는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번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상 위빠시 붓다의 경우와 같이 다른 붓다의 경우도 매우 유사한 것이 많습니다.

이들 붓다는 하나 같이 동일한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환경이나 수행방법이나 깨달음을 얻는 지혜가 모든 같은 것들입니다.

붓다마다 다른 것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시대의 고따마 붓다께서 하신 말씀이

더욱 완벽한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진리임을

우리가 오늘 다시 한번 새겨봐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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