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39

通達無我法者 2011. 1. 5. 23:26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무명 때문에 눈이 먼 사람이고,

알아도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무명에서 깨어나는 것도 자신의 역할이며,

믿음을 갖는 것도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무명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져야하며,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야합니다.

믿음은 경전을 읽고, 법문을 듣고,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해야 생기게 됩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생애와 부처님께서 고행을 하신 수행의 과정과

그리고 어떻게 연기를 발견하셨는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서는

‘나라다 마하테라’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부처님에 대한 교육의 상세한 내용은 그렇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무사계급이셨기 때문에

전투며 무예에 대한 특별한 훈련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학문도 병행하셨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께서 열여섯 살이 되어서

같은 나이인 아름다운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을 했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 이후에 거의 13년간 그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궁궐 밖의 변천하는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행복에 빠져있었습니다.

 

이후에 부처님께서는 왕자로서의 사치스러운 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셨습니다.


나는 극도로 화려한 생활을 했다.

부친은 나를 위하여 궁궐에 세 개의 연못을 만들어 주었다.

각각의 연못에는 파란 연꽃, 빨간 연꽃, 그리고 하얀 연꽃이 피었다.


나는 카시의 특산품인 백단향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나의 터번, 튜닉, 옷 그리고 망토는 모두 그곳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낮과 밤으로 내가 더위, 추위, 먼지, 이슬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나의 머리에는 항상 백산이 드리워져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백산은 흰 우산입니다.)


나를 위해서 세 개의 궁궐이 지어졌다.

하나는 추운계절, 하나는 더운 계절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장마철에 대비해서 세 개의 궁궐이 만들어졌다.


4개월의 장마기간에 나는 장마철을 위한 궁전에 살면서

한번도 밖에 나오지 않고 여자 무희들에 둘러싸여 하루 종일 즐겁게 지냈다.

 

다른 사람들의 가정에서 곡식찌꺼기와 쉰 음식을 노예와 일꾼들에게 줄때,

부친의 왕궁에서는 그 이상의 쌀과 고기 등의 음식을 노예와 일꾼들에게 주었다.

이렇게 사신 것을 회상하셨습니다.


이렇게 사시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점차 진실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사색적인 성격과 무한한 연민의 정은

그를 왕궁의 덧없는 즐거움에 단순히 탐닉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고통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고통을 받는 인류에 대해서는 깊은 동정심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안락과 번영의 가운데에서도 그는 보편적인 고통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러한 본능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괴롭고,

또 번뇌와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

만약 내가 이런 본능적인 것들에 지배된다면

어떻게 이러한 것들의 무의미를 깨달아서 완전한 자유인 열반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세속적인 생활은 속박되고 제한되어 있고 투쟁의 연속이다.

그러나 출가자의 삶은 드넓게 열려있는 하늘과 같다.

세속에 살면서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청정한 삶을 살아가려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어느 화창한 날에 그는 바깥세상을 보려고 궁궐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삶의 진실한 면을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궁궐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 그는 인생의 장밋빛 모습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면, 인류의 공통적인 면은 의도적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해왔던 것을 처음 생생하게 현실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공원으로 가는 도중에 그의 관찰력이 있는 눈으로

늙은 사람, 병자, 시체, 거룩한 고행자의 이상한 모습들을 차례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앞의 세 개의 장면은 삶의 엄연한 법칙과 인류가 겪는 보편적인 법칙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 고요한 평화를 얻는 길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 네 가지의 예기치 않았던 광경이 이 세상을 싫어하고 출가하게끔 마음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는 감각적 즐거움의 무가치를 깨달았고

진리와 영원한 행복을 찾아서 속세를 떠나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사색에 잠기면서 마지막 결정을 내리고 막 공원을 떠나려고 하는 순간,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는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소중하고 유일한 자식을 하나의 장애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평범한 아버지라면 이 즐거운 일을 환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싯다르타 태자는

‘아! 장애가 태어났구나! 속박이 생기는구나!’ 라고 소리쳤습니다.

이때의 장애가 라훌라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이신 정반왕은 어린 손자를 ‘라훌라’ 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궁궐은 싯다르타 태자에게 있어서 더 이상 명상하기에 쾌적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매력적인 젊은 부인도 사랑스러운 어린 아들도

출가를 하려는 그의 결심을 결코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성실한 남편이나 아버지, 또는 심지어 왕 중의 왕이 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고 유일한 역할을 무한히 하게 될 운명이 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궁궐의 유혹적인 것들은 더 이상 그를 기쁘게 하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떠날 때가 무르익어 갔습니다.

그는 충실한 마부 찬나에게 애마 칸다카에 말안장을 앉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야쇼다라가 잠들어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방문을 열고서 그는 문간에 섰습니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내와 자식을 침착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을 놔두고 떠나려는 순간에

둘에 대한 강한 연민의 정이 그의 마음속에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연민의 정도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는 부인과 자식이 풍족한 여건 속에서 잘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속세에서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출가하는 것은 그들을 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뒤로 남기고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밤중에 궁궐을 몰래 빠져나가 어둠 속을 달려서 먼 길을 갔습니다.

그는 홀로 외롭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진리와 평화를 찾기 위해 떠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 세상을 포기하고 출가를 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생활을 다 살아온 늙은이의 포기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뒤에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는 가난한 자의 포기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젊음의 열정과 풍부한 부와 번영을 갖고 있는

역사상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왕좌의 포기였습니다.

이렇게 나이 29세의 싯다르타 태자는 역사적인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노마 강을 건너서 그는 둑에서 쉬었습니다.

여기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자신의 장신구와 의복을 찬나에게 건네주면서,

왕궁으로 돌아가서 ‘고행자의 노란 가사를 걸치고 스스로 어려운 생활을 할 것’이라고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한때는 부족한 것이 없이 살던 고행자 싯다르타는

이제 돈 한 푼 없는 방랑자가 되어서 사람들이 주는 자그마한 보시에 의해서 살아갔습니다.


그에게는 일정한 거주처가 없었습니다.

그늘진 나무, 또는 외딴 동굴이 밤낮으로 이어지는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었습니다.

맨발과 까까머리로 태양이 내리쬐는 길과 살을 에는 추위 속을 걸어 다녔습니다.

그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다만 음식을 얻기 위한 발우와

몸을 덮기 위한 알맞은 가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모든 열정을 진리를 찾는 데만 집중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가 된 싯다르타는 마음의 진정한 평화를 찾아서

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고행자인 알라 칼라마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칼라마시여, 나는 당신과 함께 성스러운 생활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그러자 알라 칼라마가 말했습니다.


‘오, 존경하는 이여, 그대는 나와 함께 머물러도 좋소.

지혜가 있는 사람이면 스스로 자신의 직관적인 지혜에 의해서 이 가르침을 깨닫고

오래지 않아 스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요.’


오래지 않아 그는 가르침을 다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조금도 최고의 진리의 깨달음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알라 칼라마는 ‘나는 스스로 깨닫고 그 얻은 상태에서 계속 머문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단순히 믿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알라 칼라마는 이 교리를 이해하고 증득하면서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알라 칼라마시여! 당신이 스스로 직관적인 지혜로 깨닫고 얻은 경지가 어느 정도입니까?’

그러자 알라 칼라마는 깊은 선정의 단계인 무색계를 그에게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알라 칼라마에게는 확신, 근면, 정진, 노력, 선정, 집중, 그리고 지혜가 있다.

나도 이러한 것들을 닦아야겠다.

알라 칼라마는 스스로 깨닫고 그 얻은 상태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 경지를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래가지 않아서 그는 자신의 직관적 지혜로

그 법을 깨닫고 몸소 증득하는 경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결코 그에게는 최고의 진리의 깨달음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알라 칼라마에게 가서 다시 말했습니다.

‘알라 칼라마시여! 이것이 그대가 말한 스스로의 지혜에 의해서 깨닫고

그 얻은 상태에 머무는 최고의 경지입니까?

그렇다면 친구시여! 나 또한 이 법의 최상의 경지를 깨닫고 그 얻은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투심이 없는 스승은 그의 뛰어난 제자가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를 자신의 동등한 수준으로 올려놓고 존경하면서 말했습니다.

 

‘기쁩니다, 친구여. 우리는 너무도 기쁩니다.

우리는 당신과 같은 거룩한 고행자를 존경합니다.

나의 지혜에 의해서 스스로 깨닫고 선언하고 얻은 경지에 머무는 것과 똑같이

당신 또한 스스로 깨닫고 얻은 경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 지혜에 의해서 깨닫고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경지를

나도 나의 지혜에 의해서 스스로 깨닫고 선언하고 그 경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알고 있는 교리를 당신 또한 알며, 당신이 알고 있는 교리를 나 또한 압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그렇습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친구시여, 이리 오십시오.

우리들이 구도의 도반이 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고행자 고타마는 단지 높은 정신적 집중의 단계로 이끌 뿐이지

괴로움을 혐오하게 하고, 괴로움에 초연하게 하여 괴로움을 소멸하게 하는

평온함, 통찰, 깨달음을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지 못하는 수련과 교리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스승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그가 고타마 싯다르타를 원했지만 그는 더 높은 지혜를 향해서 스승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알라 칼라마는 무색계 3선정을 얻은 당대 최고의 스승이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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