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118

通達無我法者 2011. 2. 22. 01:01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누구에게나 선한 마음과 선하지 않은 마음이 함께 있으며,

또한 선한 과보의 마음과 선하지 못한 과보의 마음이 함께 있습니다.

이들 마음들은 매 순간 조건에 따라서 바뀌어서 일어납니다.


자신의 마음이 추악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것을 안 마음은 새로 일어난 선한 마음입니다.

이 때 알아차림을 놓치면 후회하는 마음이 새로 일어납니다.


선한 마음으로 추악한 마음이 있는 것을 알았음에도

선한 마음이 일어나서 알게 된 것을 놓치게 되면

이미 지나간 추악한 마음을 붙잡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추악했던 상태에서는 알아차림이 없을 때이고

추악했다고 아는 마음은 알아차림이 있는 상태입니다.

알아차림을 지속하지 않으면 다시 무지의 상태가 됩니다.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추악한 마음이나

추악한 마음을 새로 알아차린 마음이나

추악한 마음으로 인해 다시 괴로워하는 마음이나

모두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의 과정일 뿐입니다.


이것들은 그 순간의 마음들이지 나의 마음이 아닙니다.

추악한 마음이 내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괴로운 것입니다.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한다는 것은

추악한 것을 알아차린 마음을 다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추악한 마음이 있었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 생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그 알아차림을 지속해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해서 오늘도 사리풋다 존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33천에 임하여 마야부인을 위시한 천인들에게 아비담마를 설하셨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제석의 보좌에 여래의 표상을 만들어 놓고 그로 하여금 계속 법문을 하게하고

히말라야의 아노앗따 호수로 매일 내려오셔서 목욕을 하시고 쉬시곤 했습니다.


이때 사리풋다가 와서 부처님에게 아비담마를 듣고서 다시 이를 500명의 제자들에게 전수했습니다.

사리풋다의 뛰어난 지혜는 부처님께서 33천에서 상카사로 내려온 뒤에

회중들에게 각각의 지적수준에 맞는 질문을 하셨는데 마지막 최상의 질문은

아무도 답변하지 못하고 오직 사리풋다만이 답변을 할 수 있었던 데에서 잘 드러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사리붓다를 큰 지혜를 가진 이들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선언하셨고, 지혜에 있어서 여래 바로 다음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법의 스승으로써 누렸던 사리풋다의 위대한 명성은

사후에도 존속되어 후대 불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밀란다왕문경에서 밀란다왕은 나가세나 존자를 사리풋다 존자와 비교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처님 문화에서 법의 사령관 사리풋다 존자를 제외하고는

존자만큼 질문에 잘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리풋다는 제자를 가르칠 때에도 한량없는 인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이 수다원과를 성취할 때까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계속 일깨워서

가르치곤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이라야 새 제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아라한과를 성취한 이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사리풋다 존자는 지혜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한량없는 자비심을 가졌습니다.

또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데도 으뜸이셨습니다.


로싸카 본생경에 따르면 어느 날 사와띠 시내를 탁발하다가 남의 집 하수도에서

밥알을 주워 먹는 로싸카띠사를 보고 매우 불쌍히 여겨서

그를 승원에 데리고 와 손수 목욕을 시키고 출가를 시켰습니다.


까란디야 본생경에 따르면 사리풋다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어부와 낚시꾼처럼

생계 때문에 도저히 오계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5계를 주어서

바른 도로 인도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존자는 또한 설법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으뜸이었습니다.

임종의 병상에 누워 있던 아나따삔디까에게 심오한 설법을 하였고

존자의 설법에 감동한 아나따삔디까는 눈물을 흘리며

이에 견줄만한 법문은 들어본 적이 없노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사리풋다 존자는 또한 한 번 결의한 것은 두 번 다시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때 신자들이 비구들을 위해 과자를 가져왔는데

같이 있던 젊은 비구가 탁발을 나가 그 자리에 없었음으로

신자들은 그 비구를 위해 남겨놓은 여분의 과자마저 존자에게 드시게 했습니다.

그 때 젊은 비구가 돌아와서 자기 몫의 과자가 없어진 것을 알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사리풋디 존자는 무안하여 두 번 다시 그 과자를 입에 대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사리풋다는 평생 과자를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리붓따 존자는 감사하는 마음과 친절, 남을 돕는 마음과 참을성 같은 훌륭한 성품 덕분에

출가자로서의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깊은 교우관계를 많이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또 다른 한 분의 상수 제자인 목갈라나와는 어렸을 적부터 친구이자 도반으로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 친분은 부처님 말년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한 편 사리풋다 존자의 어머니는 삼보에 대해서 내내 증오심을 품어왔던 고집이 센 바라문   이었습니다.

입멸할 때가 왔음을 안 존자는 부처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는

고향 마을 날라까로 돌아와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설법을 하여 수다원과를 얻게 하고는

자신이 태어난 방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었습니다.


보름 뒤에 목갈라나도 입적을 하였으며, 그로부터 반년 후에 부처님께서도 반 열반에 드셨   습니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커닝햄에 의해 인도의 산치대탑에서 사리풋다와 목갈라나의

사리가 들어있는 두 개의 석재 사리함이 발굴되었고 그 존자의 사리 중에서 일부가

1950년 10월 20일 미얀마에 전해져서 제 6차 결집에 사적지에 세워진

양곤의 깟바이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수행자들이 양곤의 깟바이에서 목갈라나 존자와 사리풋다의 사리를 친견하곤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계속해서 제 14장, 유신견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중에서

세 번째 내용으로 찬나 장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찬나 장로는 왕궁의 시종이었는데, 싯달타 왕자가 진리를 찾아 왕궁을 떠날 때 왕자를 따라   나왔습니다.

찬나는 싯달타 왕자가 붓다가 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구가 되었습니다.

그 때 위빠사나 수행을 매우 열심히 했지만 이상하게도 도과의 첫 번째인 수다원에도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른 비구들에게로 가서 무상과 고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도과를 얻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무려 40년 이상이나 노력을 하면서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는 통찰력을 얻었음   에도 불구하고 도과의 첫 번째 단계에 조차도 이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찬나는 물질이 무상하며 느낌과 지각과 행과

의식 또한 무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아를 대상으로 할 때면 마치 높은 절벽의 가장자리에 서서

어느 순간이라도 곧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오온이 무아라면 그 자신을 도대체 누구로 여겨야 하며

도대체 무엇을 피난처로 의지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아 개념이 너무나 확고하여 무아에 대해서 명상을 할 때면

마치 절벽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듯한 위기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찬나는 도과를 얻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부처님께서 반 열반에 드셨습니다.

낙심과 후회에 젖어 찬나 비구는 이 사원 저 사원으로 옮겨 다니며

다른 비구들에게 가르침과 충고를 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난다 장로야말로 그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실 분이라는 생각이 든 찬나는

자신이 머물던 수행처를 떠나 아난다 장로가 계시는 꼬쌈비로 갔습니다.

찬나의 이야기를 들은 아난다 장로께서는 그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

바로 연기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는 것을 간파하셨습니다.


아난다께서는 찬나를 위로하고, 부처님께서 만타니의 아들인

까짜야나를 가르치신 방식으로 연기법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연기법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찬나는 드디어 유신견과 상견, 단견을

완전히 뿌리 뽑고 종식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도와 과의 깨달음이 그에게 왔습니다.


분명한 것은 찬나 비구가 지난 40년 동안 도, 과의 첫 단계인 수다원조차도

이르지 못한 것은 바로 연기법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연기법은 위빠사나 수행을 열심히 하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만일 수행자가 연기법을 숙지하지 못한다면 오온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일어남과 사라짐이라는 오온에 대한 참된 지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온에 착 달라 붙어있는 사견들을 제거하고 종식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 사견이 있는 한, 사견과는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동반적인 무명과 갈애가 일어나서 그를 지배할 것입니다.

이미 거론한 바와 같이 사견은 무명과 갈애보다도 더 해롭고 나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고귀한 도와 과가 시작되는 수다원의 첫 번째 단계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사견은 사악도로 가는 가장 확실한 토양이 됩니다.

그러나 갈애는 좋은 세계로 가는 것을 가로막지 않습니다.


유신견, 상견, 단견이라고 하는 사견은 무명과 갈애보다 더 무섭고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무명과 갈애가 사악도로 떨어질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라한의 도를 얻어야만 무명을 완전히 뿌리 뽑고 종식시킬 수 있는 반면에

갈애는 그보다 낮은 단계에서 뿌리 뽑을 수 있습니다.


무명이 있을지라도 아라한보다 낮은 세 단계의 도와 과는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신견을 가지고 있으면 결코 수다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신견이 무명보다 더 심각한 번뇌인 것입니다.

그래서 무명 뒤에 숨어서 무명을 움직이는 것이 자아가 있다고 하는 바로 유신견입니다.


화원정사의 기증자로 잘 알려진 보시 수행자 위사카는 수다원을 얻었다고

하지만 위사카에게 일어난 그러한 정신적 괴로움과 절망은

사악도로 떨어지는 위험을 초래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연기의 근본 원인이 무명과 갈애라는 사실을,

그리고 무명과 갈애를 움직이는 범인이 바로 유신견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유신견은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찬나 장로는 매우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이 부처님의 마부였다는 자존심,

그리고 부처님께서 출가할 때 자신이 그 말을 끌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찬나의 아만심을 아신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찬나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찬나가 말을 걸어도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찬나가 유신견을 소멸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찬나가 수다원 도과를 얻은 것은 부처님께서 말을 걸지 말라는 방편을 주셨기 때문에,

매우 마음이 상한 찬나가 자기 자신의 아상을 깨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처럼 내가 무엇이라고 아는 것은 바로 유신견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과를 얻는데 가장 장애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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