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120

通達無我法者 2011. 2. 22. 20:39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수행은 괴롭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수행을 합니다.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괴로움을 대상으로 본 지혜가 났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을수록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됩니다.


모든 장애는 대상이며 스승의 역할입니다.

장애가 크면 클수록 스승의 역할이 커지는 것입니다.


어떤 괴로움이거나 괴로움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괴로움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괴로움이 있을 때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괴로움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괴로울 때 괴로움을 주는 대상을 보지 말고

그 대상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바른 수행을 할 수가 있으며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은 교재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제 15장 위빠사나 수행과 알아차림의 확립에 대해서 공부하시겠습니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위빠사나 수행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수행 방법의 하나입니다.


수행은 대상과 하나가 되어서 선정의 고요함을 얻는 사마타 수행이 있고

그리고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려서 통찰 지혜를 얻는 위빠사나 수행이 있습니다.

이렇게 분리해서 알아차릴 때만이 통찰 지혜가 생겨서 무상, 고, 무아를 알 수가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우리말로는 올바른 직관, 또는 통찰, 또는 내관이라고 하며

그리고 직관이라고도 합니다.


올바른 직관은 팔정도의 바른 길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통찰이란 말은 대상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려서

꿰뚫어서 보는 것을 말합니다.

통찰은 모두 밝혀서 알아차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관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기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을 내관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직관이란 말은 추리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대상을 직접 알아차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또한 위빠사나 수행을 관법 수행이라고도 하는데

‘관한다’라는 것은 한문으로 볼 때는 볼 관(觀)이지만

여기서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본다는 뜻으로 관법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빨리어, 위빠사나라는 말은 우리말로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됩니다.


다음에 수행이라고 하는 뜻은 명상 또는 마음을 계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빨리어로 바와나라고 합니다.


마음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아닌

몸과 마음을 실천하는 행위를 해야 합니다.


마음의 계발이란 말은 정신적 수련과 정신적 계발을 의미합니다.

이는 평온과 고요함을 통해서 지혜가 향상되어 깨달음을 얻는 것이며,

이 깨달음이란 바로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이란 알아차리는 것이며 알아차려서 바르게 사는 방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하다고 할 때는 관용과 지계와 수행이라는 세 가지의 조건이 성숙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선을 실천하는 필수 덕목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천적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하셔야 하겠습니다.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포함하여 수행을 하는 것을

경전에서는 ‘알아차림을 확립한다’라고 합니다.


알아차림을 빨리어로 사띠(sati)라고 하는데

사띠는 확립한다는 말을 뜻하는 빠타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을 확립한다는 말을 사띠빠타나 라고 합니다.

이것을 중국에서 염처경이라고도 하고

저희는 염처경 또는 대념처경이라고도 부릅니다.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것은 대상에 알아차림을 겨냥하고

알아차림을 지속해서 튼튼하게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대상과 함께 있을 때만이 고요한 집중이 되고

이러한 고요한 집중에 의해서만이 통찰 지혜가 생깁니다.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경인 사띠빠타나수타는

부처님께서 수행은 이렇게 한다는 것을 밝힌 가르침이십니다.

그래서 상좌 불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읽히고 있으며

수행자에게 있어서도 가장 핵심적인 경전입니다.


사띠빠타나수타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맛지마니까야에 있는 것을 염처경이라고 하고 디가니까야에 있는 것을 대념처경이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가 같은 내용이지만 대념처경에서는 법념처의 사성제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목표와 방법이 분명한 수행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행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목표만 있고

그것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what, 영어로 what만 있고 how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만 있고 어떻게가 없어서 수행이 왜곡되고

우리는 바른 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위빠사나 수행은 무엇과 어떻게를 모두 충족시켜 주는 수행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법들이 경전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위빠사나 수행은 스승들과 상세한 면담을 받으면서 수행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수행자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믿을만한 수행을 발견한다는 것도 선업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을 배우시는 여러분은 선업의 공덕이 있어서 이 수행을 배우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위빠사나 수행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염처경은 불교도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경전입니다.

네 가지의 염처(念處)는 마치 탑으로 올라가는 네 곳의 계단과 같습니다.

어느 계단으로 올라가든 탑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네 개의 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몸이라는 문을 통해서 열반에 이를 수 있고,

느낌이라는 문을 통해서 열반에 이를 수가 있으며,

마음이라는 문을 통해서 열반에 이를 수가 있고,

법이라는 문을 통해서 열반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위빠사나 수행은 네 가지 대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첫째, 몸에 대한 알아차림

둘째,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

셋째,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

넷째, 법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이것을 사념처(四念處)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 네 가지를 사념처라고 하는데 네 가지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을 확립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바른 마음가짐으로써 진리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몸을 알아차리는 것은 육신의 덧없음을 알아차리고,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은 감각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의식의 무 실체를 알아차리고,

법을 알아차리는 것은 존재의 무상, 고, 무아를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그러면 신념처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신념처를 빨리어로 가야누빠사나라고 합니다.

여기서 가야는 신체, 몸이라는 뜻이며

아누빠사나는 알아차림 또는 알아차림을 지속한다는 수관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알아차림을 말할 때는 반드시 지속적인 알아차림이 포함됩니다.


빨리어 경전의 전편에서는 몸과 마음이라고 말하지 않고

정신과 물질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을 빨리어로는 나마루빠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념처 수행에서만 몸, 신체라는 뜻의 가야를 사용합니다.


경전에서 말하는 몸을 알아차리는 대상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

둘째, 몸의 자세에 대한 알아차림

셋째, 분명한 앎을 지닌 알아차림

넷째, 몸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에 대한 알아차림, 이것은 부정관입니다.

다섯째, 네 가지 물질의 요소에 대한 알아차림, 이것은 사대(四大)입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로 묘지에서 시체의 아홉 가지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수념처 수행에 대해서 잠시 그 종류를 알아보겠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차지하는 느낌의 비중은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느낌으로 압니다.

그러므로 느낌이 없으면 아는 것이 성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위빠사나 수행은 관념이 아닌

몸과 마음에 실재하는 성품을 아는 것으로, 이것들이 모두 느낌입니다.


느낌의 수효는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느낌을 기본적으로는 맨 느낌과 육체적 느낌, 정신적 느낌으로 분류하는데,

맨 느낌은 안, 이, 비, 설, 신, 의(眼, 耳, 鼻, 舌, 身, 意)에 대한 기본적인 느낌을 말하고

육체적 느낌은 좋은 느낌과 싫은 느낌을 말하고,

정신적 느낌은 정신적으로 좋은 느낌, 정신적으로 싫은 느낌, 덤덤한 느낌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심념처((心念處)입니다.

염처경에 있는 알아차릴 마음의 대상은 여덟 가지를 쌍으로 한 열여섯 가지입니다.


심념처(心念處)의 열여섯 가지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탐욕이 있는 마음, 탐욕이 없는 마음,

성냄이 있는 마음, 성냄이 없는 마음,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

위축된 마음, 위축되지 않은 마음,

커진 마음, 커지지 않은 마음,

향상된 마음, 향상되지 않은 마음,

집중이 된 마음, 집중이 안 된 마음,

자유로워진 마음, 자유롭지 않은 마음,

이상의 마음이 있을 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심념처 수행입니다.

이상은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에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을 종합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곡 사야도께서는 위빠사나 수행자가 알아차려야 할 마음을 열세 가지로 분류하셨습니다.

모곡 사야도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내용은 제 19장, 심념처에서 밝혀드리겠습니다.


다음으로 법념처(法念處)입니다.

법은 마음이 알아차릴 대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수행 중에 나타나는 육체적, 정신적 현상이 모두 법(法)이며, 알아차릴 대상에 속합니다.

특히 장애가 일어나는 것도 알아차릴 대상으로서의 법이라고 합니다.


법념처의 다섯 가지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다섯 가지 장애입니다.

감각적 욕망, 악한 의도, 해태와 혼침, 들뜸과 회한, 회의적 의심입니다.


두 번째, 오취온입니다.

색, 수, 상, 행, 식에 대한 집착을 말합니다.


세 번째, 12처입니다.

안, 이, 비, 설, 신, 의와 색, 성, 향, 미, 촉, 법을 말합니다.


네 번째 칠각지입니다.

알아차림, 법에 대한 탐구, 정진, 기쁨, 평온, 집중, 평등

이상의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사성제입니다.

이 사성제는 고, 집, 멸, 도(苦, 集, 滅, 道)를 말합니다.


이상이 위빠사나 수행자가 알아차려야 될 네 가지 염처이고,

그 네 가지 중에 각 각 더 자세하게 알아차릴 내용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만일 몸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신념처 수행을 하는 경우라도

나머지 세 가지의 알아차림을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 네 가지 대상을 이렇게 구별하는 것을 한 대상을 좀 더 강조하거나

분명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위빠사나 수행의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은

하나의 큰 틀 안에서 네 가지 방법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념처(身念處)수행을 할 때에도 느낌과 마음과 법이 함께 작용합니다.

아울러 수념처(受念處)수행을 할 때에도 몸과 마음과 법이 함께 작용합니다.

또 심념처(心念處)수행을 할 때에도 몸과 느낌과 법이 함께 작용합니다.

그리고 법념처(法念處)수행을 할 때에도 몸과 느낌과 마음이 함께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념처(四念處)를 말할 때 네 가지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념처로 구별하는 것은 수행의 대상을

몸으로 할 것인가, 느낌으로 할 것인가, 마음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의 대상인 법으로 할 것인가 하는 염처별 수행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이때 사념처는 주 대상이 무엇이냐를 말하는 것이고

위빠사나 수행은 주 대상에 상관없이 네 가지를 모두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사념처(四念處) 수행은 하나만 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초기불교 > 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연기와 위빠사나/122  (0) 2011.02.22
12연기와 위빠사나/121  (0) 2011.02.22
12연기와 위빠사나/119  (0) 2011.02.22
12연기와 위빠사나/118  (0) 2011.02.22
12연기와 위빠사나/117  (0) 2011.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