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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욱 또야 사야도 / 아나파나사띠(ānāpānasati)

通達無我法者 2013. 9. 17. 23:43

 

 파욱 또야 사야도 / 아나파나사띠(ānāpānasati)

 

인도 델리대학교 불교학과 박사과정

 일중스님 정리

 

 

 

희망에 부풀었던 21세기의 새 출발은 전쟁 테러 등, 여러 정치적인 문제들과 자연 재난 등으로 심하게 얼룩지고 말았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럽게도 이 지구 땅에는 또한 ‘수행과 명상(meditation)’ 이라는 새로운 봄의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특정한 소수의 사람들만 수행해왔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수행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른바 ‘수행의 보편화’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불자들이나 수행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남방 수행법’ 하면 바로 ‘위빠사나’ 라고 익숙하게 알고 계신다.

그러나 남방불교 수행법은 위빠사나 수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마타 수행(samatha-bhāvanā)과 위빠사나 수행(vipassanā- bhāvanā) 두 가지가 있다.

 

이번에 필자는 이 글에서 위빠사나 수행보다는 사마타 수행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미얀마의 파욱 센터에 계시는 파욱 사야도가 지도하시는 사마타 로서의 호흡관 수행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

 

지난해 11 30 <근본불교 수행도량 홍원사>에서는 호흡관(ānāpānasati) 수행을 주제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진 국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그 때 파욱 사야도가 오셔서 호흡관 수행에 대한 특별법문을 해주시고, 4일간 사마타 수행으로서의 호흡관 수행을 해보는 집중코스도 있었다.

 

매일 저녁마다 법문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으며, 낮에는 사야도와 함께 수행도 하고 개개인의 수행을 점검하는 인터뷰도 있었다.

이 글은 사야도의 세미나 법문, 4일간의 저녁법문 그리고 몇 권의 책과 2차 자료들을 참고하면서, 사야도가 지도하시는 사마타 수행으로서의 호흡관에 대해서 정리할 것이다.

그럼 먼저 파욱 사야도가 어떤 분인지 간략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사마타 수행의 큰 스승, 파욱 사야도(Pa Auk Sayadaw)

 

미얀마의 남부도시, 몰라민에는 파욱(Pa-Auk) 숲속 센터가 있다. 드넓은 산자락을 의지하여

수행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데, 가운데 계곡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큰 선실과 후원, 비구스님들과

남자 수행자들의 거처가 있고, 계곡의 오른쪽에는 틸라신(사미니 스님들)과 여자 수행자들의 거처가 있다. 그리고 산 위쪽으로 올라가면 집중수행에 전념하는 소수의 외국인 비구스님들과 남자

수행자들이 머무는 별도의 꾸띠들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 파욱 사야도, 아친나(Achinna) 스님이

주석하고 계신다.

 

김 재성 선생이 쓴 <세계의 수행자-미얀마 파욱 사야도>라는 법보신문의 기사(797)에 의하면, “파욱 사야도(1934- ) 10세에 출가하여 ‘아친나’라는 법명으로 사미가 되었고,

20세에 비구계를 받았다. 사원의 전통교육을 받으면서 고급빨리 시험에 통과하고,

1956년에는 사설법사 시험에 합격하여 법사(Sasanadhajasiripavara-dhammācariya)가 되었다. 1964년에는 마하시 센터에서 마하시 사야도와 우 빤디따 사야도의 지도 아래 위빠사나 수행을 했으며, 같은 해에 사야도는 숲 속에 들어가 수행을 했다. 그러다 1966년에는 탄린 사야도(Than lyin Sayadaw)로부터 6개월 반 동안 4대 관찰 수행을 지도받았고, 쉐테인도 사야도(Shwe thein daw Sayadaw)로부터 3개월 반 동안 입출식념(호흡관) 수행을 지도받았다.

 

현재의 파욱 숲 속 센터에 정착하기 전에 3-4 곳의 숲 속 수행처에서 집중 수행을 하였다. 그러다가 1981년 파욱 센터의 2대 주지스님이었던 악가빤냐(Aggapanna) 스님이 입적하시면서 이 수행처를 아친나 스님이 맡아서 지도하라는 유언을 하셨다. 그 이후 아친나 스님은 현재까지 24년 동안 파욱 센터에서 경전 연구와 수행지도를 해오고 있다.” ‘파욱 사야도’라는 호칭은 파욱 센터에 계시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야도의 이러한 수행 이력과 해박한 교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순수 위빠사나 수행이 주류를 이루는 미얀마에서 사마타 수행 전통을 되살렸고, 이 수행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분으로 미얀마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대만이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 등지에서도 집중수행을 지도하고 계신다. 사야도가 가르치는 수행법들의 문헌적 근거는 빨리 초기경전과 『청정도론(淸淨道論)』 그리고 아비담마 문헌들이다.” 『청정도론』의 선정 편에 언급된 40여 가지의 사마타 수행 대부분을 실제로 수행자들에게 지도하시는 것으로 봐도, 사야도는 확실히 사마타 수행의 대가이자 큰 스승이라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사마타 수행부터 시작하여 위빠사나 수행 그리고 도()와 과()를 얻어 수다원이 되기까지, 수행의 전 과정을 아주 심도 있고 체계적으로 지도하신다.

 

파욱 사야도가 지도하시는 주요 수행법

 

사야도가 가르치시는 수행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사마타 수행으로서의 호흡관(ānāpānasati) 수행법이고,

둘째는 사마타 수행으로서의 4가지 보호수행법이 있으며,

셋째는 4대 수행으로 시작하는 위빠사나 수행이 있다.

 

이 세 가지 수행법에서 호흡관은 사야도가 수행자들에게 삼매와 선정을 개발하게 하는데

주로 이용하는 수행주제이다. 수행자가 일정기간 센터에서 머물며 호흡관 수행을 하면,

니밋따(nimitta, 心象, 혹은 表象)가 뜨면서 초선을 비롯한 4선정을 얻게 된다.

 

만약 수행자가 호흡관으로 4선정에 도달하고, 선정에 대한 5가지 자유자재함을 숙달했으며

삼매로 인해 얻어진 빛이 밝게 빛날 때, 수행자가 원한다면 거기서 바로 위빠사나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거기서 더 몸의 32부분에 대한 수행, 백골관, 색깔 까시나(kasina)

수행 등으로 무색계 4선정을 얻게 하는 사마타 수행을 하게 한다고 무념스님이 번역한 『사마타 그리고 위빠사나』는 밝히고 있다.

 

그 다음 호흡관이나 흰색 까시나로 얻어진 선정의 빛을 바탕으로

자비희사 4무량심과 불수념(佛隨念), 죽음에 대해 명상하는 사념(死念), 그리고 부정관 등을 수행하게 한다. 4 가지는 수행자가 여러 가지 위험요소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고 보호해주기 때문에, 보호 수행법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위빠사나 본수행으로 들어가기 전에 닦아야 할 가치 있는 수행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사마타 수행으로 얻은 선정의 집중력을 바탕으로 4대 수행을 통한 위빠사나를 시작한다. 본격적인 위빠사나 수행에 앞서 두 단계를 거친다고 지산스님이 <한별심리연구소>에서 발표했던 글(2004)은 밝히고 있는데, 사야도가 지도하는 위빠사나 수행에 대해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자세히 인용해보고자 한다.

 

... 첫 번째가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궁극적 실재를 분별 확인하는 단계이고,

두 번째가 12연기의 관찰을 통해 모든 현상의 인과를 살펴보는 단계이다.

이 두 단계가 파욱 센터에서의 수행을 다른 순수 위빠사나 수행과 구별 짓는 깊이 있는 수행이라고 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몸을 대상으로 지수화풍 4대를 관찰함으로써 물질을 이루는 극미 요소인 깔라빠(kalāpa)를 확인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깔라빠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인 지수화풍 4대와 색깔, 냄새, , 영양소와 부차적 요소인

감성물질 요소, () 요소, 심장 토대 요소들까지 확인한다. 이 단계까지 확인해야만 물질의 궁극적 실재를 본 것이고, 그래야만 제대로 위빠사나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깔라빠의 요소들을 확인한 다음에는 한 깔라빠가 생멸할 때, 17번 생멸한다는 심찰라를 확인한다. 또한 낱낱의 마음()과 마음부수(心所)들의 생멸을 확인한다. 이 단계까지 봐야만 정신의 궁극적 실재를 본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낱낱이 깔라빠의 생멸과 심찰라의 생멸을 보아야만 진정한 위빠사나 수행이 가능하다는 취지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신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 어느 시점에 작용했던

마음상태에서의 마음부수들과 대상을 확인하는 훈련을 반복하며,

점점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금생의 첫 순간, 전생의 마지막 순간의 마음 작용과 대상을 확인함으로써 전생의 어떤 업으로 인해 금생에 이런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확인한다. 말하자면 12연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단계인데, 이러한 과정들이 다른 순수 위빠사나 수행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과정이며, 그러기 위해서 선정을 통한 강한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두 과정이 보통 위빠사나 16단계 지혜의 과정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에 해당되는 단계인데, 세 번째 단계부터가 본격적인 위빠사나 수행으로 깔라빠의 생멸과 심찰라의 생멸을 대상으로 무상 고 무아의 삼 특성 관찰을 시작한다. 그 뒤로 위빠사나 지혜가 계속 진전되어 11번째 단계인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에 이르게 되고, 여기에서 관찰을 깊게 해나가면 마침내 모든 현상의 소멸을 체험하면서 열반을 증득하기에 이른다.

 

대개의 경우 처음 열반을 증득하기 전에 수행자는 색계 초선에 든다. 그 뒤에 색계 초선에서 나와 초선에 있었던 선정 요소를 반조하면서 그것들의 무상이나 고, 무아의 한 특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열반을 체득하게 된다. 일단 열반을 증득한 사람은 그 뒤 수다원과 의식 상태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훈련을 받으며, 이 훈련이 완료되면 사야도는 손을 떼고 그 뒤의 수행은 각자에게 맡기는 듯하다.

 

여기까지가 파욱 사야도가 지도하시는 위빠사나 수행으로 수다원과에 들기까지의 전 수행과정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호흡관 수행법이 차지하는 위상과 문헌적 근거

 

빨리(Pāli) 초기경전인 『상응부(SN , 317, 328)』에 의하면, 부처님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전 보살시절에 열심히 닦고 익혔던 수행법은 입출식념, 즉 들숨날숨을 관찰하는 호흡관(ānāpānasati) 수행이다. 부처님은 바로 이 수행법을 통해서 마음이 완전히 해탈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은 깨달은 이후 우안거 결제 중에도 늘 이 호흡관 삼매에 머무셨다.

그러면서 이 호흡관 삼매는 성인, 브라마, 여래의 거처가 되고, 또한 이생에 행복하게 머무는 거처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부처님이 깨닫기 전에는 물론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실 때,

그리고 깨달은 이후에도 늘 이 호흡관 수행을 하셨음을 살펴볼 때, 우리는 호흡관 수행이 바로 부처님의 수행법이라고 알 수 있다.

 

열반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던 『대념처경』의 4념처 에서 이 호흡관이 언제나 첫 번째 수행법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선정을 얻는 수행에서 이 호흡관은 가장 으뜸이자 근본이 되는 수행주제(mūla-kammaṭṭhāna)라고 하며, 보통 모든 부처님들이 다 이 호흡관 수행을 통해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신다고 한다.

 

이렇게 호흡관 수행법은 초기불교에서나 남방 수행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수행법의 근거는 『입출식념경』, 『대념처경』 그리고 『청정도론』이다.

 

대념처경』은 호흡관을 비롯한 4념처의 여러 수행 방법들을 많이 언급한다.

그것에 비해서 『입출식념경』은 호흡관 수행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데, 16단계로 설명하면서

그것들을 다시 신수심법 4념처로 나누고 있다.

 

그럼 먼저 『입출식념경』의 호흡관(ānāpānasati) 수행 부분에서 신념처 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경전의 이해가 선행될 때, 사야도의 법문을 쉽게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그는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 ‘나는 길게 들이쉰다.’ 라고 알아차린다.

   그는 숨을 길게 내쉬면서, ‘나는 길게 내쉰다.’ 라고 알아차린다.

 

2. 그는 숨을 짧게 들이쉬면서, ‘나는 짧게 들이쉰다.’ 라고 알아차린다.

   그는 숨을 짧게 내쉬면서, ‘나는 짧게 내쉰다.’ 라고 알아차린다.

 

3. ‘나는 호흡의 전체를 경험하면서 숨을 들이쉴 것이다.’ 라고 수행하며,

   ‘나는 호흡의 전체를 경험하면서 숨을 내쉴 것이다.’ 라고 수행한다.

 

4. ‘나는 몸의 작용을 고요하게 하면서 숨을 들이쉴 것이다.’ 라고 수행하며,

   ‘나는 몸의 작용을 고요하게 하면서 숨을 내쉴 것이다.’ 라고 수행한다.

 

이것이 호흡관의 16단계에서 첫 번째 네 단계이다.

주석서는 이 부분을 선정을 얻기 위한 사마타 수행으로 설명하고 있고,

파욱 사야도도 이 주석 전통을 따라 사마타 수행으로 수행자를 인도하고 있다.

 

파욱 사야도가 지도하시는 사마타 수행으로서의 호흡관 수행법

 

이 부분은 11 30일 사야도가 하신 첫 번째 저녁법문(조성순 법우님 통역)의 내용으로 대신한다. 법문이 중심이되 다른 책들을 참고하면서 약간의 첨삭을 했다.

 

부처님 당시부터 비구, 비구니, 사미, 사마니, 재가신자 여러분들은 다함께 모여 수행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법을 얻고, 수행을 통해 목표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 여기 이 자리에서 모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수행이란 계율의 청정(戒淸淨)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8계를 받아서 계율의 청정을 이룬 다음에는, 마음의 청정(心淸淨)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청정을 위해서 여러분은 근접삼매(upacāra-samādhi)와 본 삼매(appanā-samādhi),

즉 색계 4선과 무색계 4선을 닦아야 합니다.

 

그럼 왜 여덟 가지 선정을 닦아야 하는가?

여덟 가지 선정을 닦아야 하는 이유는 궁극적인 진리인 빠라맛타(paramattha)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선정을 얻게 되면 가장 먼저 궁극적인 진리인 궁극적인 물질과 정신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정을 닦은 후 빛을 얻어서, 그 빛과 삼매의 힘으로 여러분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물질(rūpa)과 정신(nāma)을 볼 수 있습니다. 빛의 도움을 받을 때에만 궁극적인 물질과 정신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상응부』 진리상응(sacca-samyutta)에서 부처님은 4성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고집멸도 4성제를 모르면,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매를 닦아 그 삼매의 힘으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4성제를 정확하게 보고 알 수 있습니다. 4성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알 때, 우리는 열반에 도달하고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4성제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과 정신의 무더기(五蘊)가 바로 고()입니다.

 

고의 원인이 되는 갈애가 바로 집()입니다.

()와 집()은 여러분이 향상 발전시켜야 할 위빠사나의 대상입니다.

고제와 집제를 그냥 보는 것인 아니라 무상 고 무아, 삼법인으로 보면서 위빠사나 수행을 닦아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단계별로 위빠사나를 계속 수행해나갈 때, 여러분의 수행은 향상되어서 마침내는 도(, magga)와 과(, phala)를 얻게 될 것입니다. 도와 과를 얻을 때 여러분은 궁극적인 평안함(열반)을 대상으로 가지면서 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선정과 삼매의 도움 없이는 최종의 목표인 도와 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4성제를 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본다(如實知見)는 것입니다.

상응부』 진리상응(sacca -samyutta)의 삼매경(samādhi-sutta, SN , 414)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비구여, 삼매를 개발하십시오. 삼매가 있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무엇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하는가? 그것은 곧 4성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삼매를 개발하면 우리가 보아야 하는 대상인 4성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삼매를 개발하기 위해서 『청정도론』에 나온 40여 가지의 사마타 수행주제 중에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설명할 것은 바로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호흡관)입니다.

 

아나빠나사띠는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 두 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금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사마타 수행법으로서의 아나빠나사띠입니다.

 

아나빠나사띠 수행을 할 때는 보통 좌선의 자세가 좋습니다.

허리를 곧게 펴고 다리는 결가부좌나 반가부좌처럼 다리를 겹치는 것보다,

나란히 놓는 평좌가 좋습니다. 곧으면서도 편안하게 앉은 자세는 몸에 긴장이나 피로를 주지 않아서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럼 지금 수행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수행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들숨 날숨이 긴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둘째,  들숨 날숨이 짧은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셋째,  (들숨 날숨의) 시작과 끝, 즉 호흡의 전체를 알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넷째,  들숨 날숨이 고요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먼저 숨이 길고 짧은 것을 알아야 하는데, 숨이 길고 짧은 것은 숨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숨을 시간을 말합니다. 때에 따라 숨이 길고 짧을 때가 있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것을 인위적으로 길게 하거나 짧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호흡을 길면 길다고, 짧으면 짧다고 다만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수행자는 들숨날숨이 길든 짧든, 호흡의 시작과 끝(호흡의 전체)을 다 알아차리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설령 숨이 가빠서 호흡이 짧더라도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들숨 날숨을 지켜볼 때, 호흡의 시작과 끝을 어디에서 봐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코끝이나 윗입술 사이, 어느 곳이든지 숨이 두드러지게 부딪히고 접촉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곳의 한 점에 마음을 챙기고, 호흡이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호흡의 시작과 끝을 지켜봐야 합니다. 윗입술 부분이 좀 더 명확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수행자들 스스로가 바람이 부딪히면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곳에 마음을 고정시키고 보십시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몸 안으로 바람을 따라가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람을 따라가게 되면 그것은 4대 수행이 됩니다. 바람이 코끝이나 윗입술 사이에 부딪히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곳에 마음을 고정시키고 들숨 날숨을 보아야 합니다.

코끝이나 입술 위를 보지 않고 바람의 움직임을 따라가게 되면, 그것은 4대 중에서 풍대를 보는

수행이 됩니다. 그것을 보게 되면 코가 딱딱해져서 있는 그대로의 들숨날숨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4대 관찰을 따로 시작하게 되면 그 때는 몸 전체를 보게 될 것입니다만,

지금 여기서 하고자 하는 것은 아나빠나사띠이기 때문에, 코끝이나 윗입술 위 어느 한 부분을 봐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호흡이 두드러지게 접촉되는 한 점에 마음을 두고 들숨날숨을 지켜보십시오.

 

 들숨날숨을 보는 이것은 빠라맛타(paramattha), 즉 궁극적인 진리를 보는 것이 아니고 빤냐띠(paññatti), 즉 개념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숨은 들숨으로 알아차리고, 날숨은 날숨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들숨날숨을 보면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단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호흡을 고요하게 지켜볼 수 없다면, 『청정도론』 주석서에서는 호흡의 숫자를 세도록 설명합니다. 그러나 만약 들숨날숨을 고요한 상태에서 분명하게 지켜볼 수 있다면, 굳이 숫자를 셀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이 호흡이라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자꾸 밖으로 향해 나갈 때, 여러분은 호흡과 함께 숫자를 세는 방법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들숨날숨을 쉬면서 그 끝에 숫자를 세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하나’

다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둘’

그 다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셋’ ... ...

그와 같이 해서 여덟까지 셉니다.

 

이렇게 들숨날숨을 여덟까지 세는 동안 여러분은 ‘내가 오로지 여기에만 마음을 집중하리라’ 라고 단단하게 마음을 먹으면서 시도해보십시오. 좌선시 마음이 들숨날숨에 한 시간, 혹은 한 시간 30분 정도 고요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숫자를 세는 방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30분이나 한 시간도 고요하게 유지할 수 없을 때, 여러분은 숫자를 세는 방법으로 마음의 고요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것으로서 오늘 법문을 마칩니다. 오늘 배운 방법으로 수행을 계속 해보시기 바랍니다.

 

 

파옥사야도의 가르침과 다른 전통의 수행법과 비교

 

그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파욱 사야도가 지도하시는 호흡관 수행을 다른 전통의 수행법과 간단히 비교해보고자 한다. 마하시 전통의 수행법에는 들숨날숨을 관찰하는 호흡관 수행법이 사실 없다고 본다. 호흡으로 인한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하는 것은 호흡관이 아니라, 지수화풍 4(四大)에서 공기, 바람의 요소를 관찰하는 풍대(風大) 수행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엔카가 지도하는 호흡관 수행법은 파욱 사야도가 가르치는 호흡관 수행법과 유사한 점도 있으나, 분명한 차이가 있다. 유사한 점이라면 고엔카나 파욱 사야도가 모두 이 호흡관을 하면서 들숨날숨을 지켜보는 장소를 코끝이나 윗입술의 한 지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엔카가 지도하는 호흡관은 사띠와 집중력을 기르는데 초점을 둘뿐 선정으로 이끌지 않고,

들숨날숨을 지켜보는 단계가 지나면 바로 동일한 장소인 코끝이나 윗입술의 한 지점에서

감촉과 느낌(감각)을 보게 한다. 이 두 가지 점으로 볼 때, 고엔카가 가르치는 호흡관은 사실 사마타라고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 반면 파욱 사야도는 호흡관을 4선정으로 이끄는데 초점을 맞추고, 수행이 진전됨에 따라 니밋따(nimitta)를 통해 선정에 들어가도록 지도한다는 점에서, 파욱 사야도가 지도하는 호흡관은 『청정도론』에서 설명하는 사마타와 일치한다. 그리고 선정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를 수행하기 때문에. ‘계정혜 3학’이라는 수행의 근본체계를 가장 완전하게 이행하는 수행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서 계속)

미얀마 파욱 사야도가 지도하시는

호흡관(ānāpānasati) 수행법 (2)

 

 

필자가 스리랑카에서 유학하던 1997, 위빠사나 수행을 좀 더 잘 하려면 사마타 수행을 먼저 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우안거를 나러 파욱 숲속 센터에 간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인 수행자들은 다 마하시(Mahasi) 계통의 센터에 있었기 때문에, 파욱 숲속 센터에는 필자가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그때 우기가 얼마나 지독하던지 필자는 우기철의 숲속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 달 내내 병치레만 했다. 그러면서도 사야도께 직접 호흡관 수행을 지도받으며 정기적으로 면담을 하면서 지냈던 경험이 있다. 그 분의 가르침을 글로 정리하는 지금, 울창한 숲에 끊임없이 내리는 비와 계곡의 물, 공양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스님들의 긴 행렬, 선실의 정경 그리고 사야도의 소박한 꾸띠 등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지난번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호흡관 수행에 나타나는 니밋따와 삼매 그리고 선정의 성취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바른 삼매(正定 sammā-samādhi)란 무엇인가?

 

사마타 방법으로서의 호흡관(ānāpānasati)은 들숨날숨에 마음을 집중하여 삼매를 개발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바른 삼매의 힘이 갖추어졌을 때, 몸과 마음의 현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통찰력은 수행자를 열반으로 이끌어 윤회에서 해탈하게 하기 때문에, 삼매를 개발하는 것은 큰 관건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삼매의 힘이 약하면 통찰력도 약할 것이고, 통찰력이 약하면 본질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힘이 없기에 수행결실이 나올 수 없다. 그렇기에 파욱 사야도는 호흡관 수행으로 삼매(혹은 4선정)에 도달하는 것이 다음 단계의 위빠사나 수행을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럼 과연 바른 삼매(正定 sammā-samādhi)란 무엇이며,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가? 『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에 의하면, 바른 삼매(正定)란 바로 초선, 2, 3선 그리고 4선을 말한다. 수행자들이 바른 삼매인 이 4선정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파욱 사야도는 『입출식념경(Ānāpānasati Sutta)』이나 『대념처경』에서 제시하는 호흡관의 4단계 수행을 지도하신다. 이 경전들에 의하면, 수행자는 먼저 적절한 장소에 가서 바른 자세를 취한 다음, 아래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 긴 숨은 길다고 알아차릴 것

둘째, 짧은 숨은 짧다고 알아차릴 것

셋째, 숨의 처음과 중간, , 즉 호흡의 전체를 다 알아차릴 것

넷째, 숨을 고요하게 하도록 노력할 것

 

이것이 바로 4선정을 성취할 수 있는 간략한 방법이다.

 

사실 4단계라고는 하지만, 실제 수행 상에서는 이 네 단계가 동시에 일어난다고 한다.

이 경전 내용을 가지고 파욱 사야도가 수행자들을 어떻게 지도하시는지 다시 한 번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수행법을 확실하게 숙지하기 위해서 사야도의 넷째 날 법문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호흡관(아나빠나사띠)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법

 

여러분에게 이미 말했듯이, 바람이 부딪히는 곳,

코와 위 입술 사이의 한군데를 정해 놓고 숨을 알아차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만이 사마디(삼매)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장소 저 장소로 옮겨 다니면

사마디의 개발을 완성하는데, 즉 선정을 얻는데 굉장히 더디고 어렵습니다.

바람이 부딪히는 그 장소가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한 장소를 정해놓지 않으면 호흡을 따라갈 확률이 많기 때문에, 한 장소를 정해 놓고 호흡을 보라는 것입니다. 적당한 곳, 즉 코끝에서부터 위 입술사이 어느 지점이든 상관없습니다.

어느 한 군데를 정해놓고 호흡을 따라가지 않으면서, 바람을 가장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는 곳을 지켜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들숨날숨을 따라가게 되면, 그것은 4대 수행이 됩니다.

지정한 한 장소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이 고요해지면, 장소가 불분명해지고 오히려 들고나는 공기가 더욱 더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들숨과 날숨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알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들숨 날숨을 지켜보는데 생각이 들어오거나 마음이 방황한다면,

여러분은 숫자를 셀 수 있습니다. 8정도를 기억해서 하나에서 여덟까지가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에서 여덟까지를 세고, 다시 또 하나에서 여덟까지 세는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을 30분에서 한 시간정도까지 해보십시오. 그래서 좌선할 때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고요해졌다고 생각하면, 숫자 세는 방법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들숨날숨을 어떻게 봐야 되는가?

호흡의 길고 짧음, 호흡의 시작과 끝을 봐야 합니다.

호흡의 길고 짧음을 볼 때, 여러분은 ‘길고 짧음’, 아니면 ‘시작과 끝’이라고

마음속으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만약 꼭 그렇게 하고 싶다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단지 들숨은 들숨으로, 날숨은 날숨으로 알아차리면 충분합니다.

 

호흡이 길든 짧든 그 시작과 끝도 다만 알아차리면 됩니다. 굳이 이것이 호흡의 시작이고,

이것이 끝이라고 마음속으로 읊조릴 필요는 없습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바람의 시작과 끝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수행하면서 바람의 들어오는 시작과 끝을 계속 보게 되면, 우리는 몸이나 코 등, 다른 것은 전혀 의식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바람만 의식할 수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상태입니다. 이렇게 바람(공기)만 의식할 때, 우리는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이상 좌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들숨날숨을 보고 있으면 호흡이 점점 미세해집니다. 호흡이 점점 미세해지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아나빠나사띠 수행법에서 이것이 네 번째 순서의 ‘숨을 고요히 하면서 들이쉬고 내쉰다’는 부분입니다. 그러면 왜 고요해진 호흡을 좋다고 하는가? 마음이 가라앉고 사마디가 깊어졌을 때, 호흡이 미세해지기 때문입니다. 거친 호흡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호흡이 아주 미세해졌을 때, 니밋따(nimitta 心象 혹은 表象)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호흡이 거칠면 니밋따가 나타났을 때, 호흡과 니밋따가 하나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호흡과 니밋따가 둘이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고요한 호흡이 훨씬 좋습니다. 호흡이 고요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미세해지면 거기서 더욱 더 마음을 기울여 집중해서 봐야 됩니다.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마음집중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결국 니밋따가 나타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빛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빛이 여기저기 나타나는데, 그때 수행자가 빛을 따라 여기저기를 보게 되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쌓아온 사마디가 흩어집니다. 사마디가 좋아져서 빛이 몸 전체에 나타난다고 해도 그 빛은 대상이 아닙니다. 계속 들숨날숨을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호흡이 미세해지면서 길든지 짧든지, 그 시작과 끝을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앉아서 볼 수 있다면, 이 사람에게 니밋따가 나타날 확률이 높습니다.

 

호흡관 수행에 나타나는 ‘니밋따’ 란 무엇인가?

 

그럼 여기서 먼저 니밋따(nimitta 心象)가 무엇인지 정확한 개념을 알아야 한다. 미산스님의 논문에 의하면, ‘니밋따란 어떤 물체나 호흡현상을 지속적으로 응시한 결과 마음에 나타나는 그 물체나 현상의 모양()을 말한다. 예를 들면 적색이나 청색의 원반을 계속 응시하고 있은 후 그 물체를 더 이상 보고 있지 않아도 그것의 모양과 색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을 심상(心象), 즉 니밋따(nimitta)라고 한다. 호흡관 수행에서 호흡 자체는 기체이며, 그 색과 모양은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호흡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어느 한 지점을 정하고 호흡을 계속 관찰하고 있으면, 호흡이 미세하고 깊어지면서 그곳에서 호흡의 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대림스님이 번역한『청정도론(Visuddhimagga)』의 호흡관 수행편에서는 니밋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별빛처럼 마니주처럼 진주처럼 나타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거친 촉감을 가진 목화씨와 거친 촉감을 가진 심재로 만든 못처럼 나타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긴 허리끈처럼 화환처럼 한모금의 연기처럼 나타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퍼진 거미줄처럼 구름의 장막처럼 연꽃처럼 수레바퀴처럼, 일륜처럼 월륜처럼 나타난다. 이처럼 니밋따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호흡에 대한) 그들의 인식( saññā)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니밋따는 이 인식에서 생겼고, 인식이 그 근원이며 원천’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 니밋따는 어디에서 나오고, 무엇이 니밋따를 나타나게 하는가? 무념스님이 번역한 사야도의 책에서 말하길, ‘니밋따는 집중된 마음에서 나온다. 심장토대에 의존해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마음상태는 호흡을 불러일으키며, 이 호흡으로부터 실제의 아나빠나 니밋따(ānāpāna-nimitta)가 나온다. 모든 마음상태가 다 니밋따를 생성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집중된 마음만이 니밋따를 나타나게 한다. 니밋따가 콧구멍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것은 실제 니밋따라고 할 수 없다. 집중 때문에 니밋따가 일어나지만, 이 경우에는 실재 ‘아나빠나 니밋따’는 아니다’라고 한다. 사실 이런 니밋따 개념은 『입출식념경』이나 『대념처경』 등의 초기경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후대의 주석서들과 『청정도론』에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사마타 수행주제(kammaṭṭhāna) 중에서 10가지 까시나(kasina)와 호흡관 수행에서는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이 니밋따를 통해서 수행자가 선정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흡관 수행에서 니밋따가 없다면, 특히 빠띠바가 니밋따가 없다면 선정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사야도는 말씀하신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끄샤트리야 왕후가 전륜성왕이 될 태아를 보호하듯이, 농부가 잘 익은 농작물을 보호하듯이 이 니밋따를 잘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고 했다. 이런 니밋따에는 세 종류가 있고 세 종류의 삼매와 관련이 되는데, 이 부분은 파욱 사야도의 법문을 직접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니밋따(nimitta 心象)의 종류와 삼매(samādhi)와의 관계

 

니밋따, 즉 심상(心象)은 여러 종류입니다. 어떤 사람에겐 회색일 수도 있고, 다른 여러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수행자 각자의 인식(saññ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수행 중에는 여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계속 수행을 해서 들숨날숨과 니밋따가 하나가 되었을 때, 그때는 니밋따를 집중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니밋따와 들숨날숨이 조금이라도 떨어져서 두 개가 되게 되면, 그때는 니밋따를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니밋따가 떴다고 해도 사실 처음에는 니밋따가 오래가지 않습니다. 만약 니밋따가 사라진다면, 다시 들숨날숨을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니밋따의 힘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할 것입니다. 니밋따가 나타났다가 오래 머물지 않고 자꾸 사라진다면, 여러분은 좌선을 하기 전에 한번 서원을 세워보십시오. ‘내가 이번 좌선에서 니밋따를 40분 동안 유지하도록 노력하리라.’라고 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점점 시간을 늘려 가십시오. 그래서 니밋따가 한 시간, 두 시간 동안 머물게 되면, 앞에서 말한 회색은 다시 하얀색으로 변할 것입니다. 회색인 상태를 빠리깜마 니밋따(parikamma-nimitta 예비심상)이라고 할 수 있고, 한 두 시간 지나면서 회색의 니밋따가 더욱 하얀 색으로 변하게 되면, 그 상태를 욱가하 니밋따(uggaha-nimitta 익힌 심상)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밋따의 모양과 색깔은 아주 다양합니다. 그 다양함은 수행자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변하면 니밋따의 모양과 색깔도 변합니다. 그래서 니밋따가 떴을 때는 되도록 마음의 변화가 적은 것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니밋따가 굉장히 둥글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겐 긴 장작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 마음에 달린 것이므로 절대 모양과 색을 봐서는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모양이나 색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면, 그것 때문에 니밋따의 모양도 역시 변하게 됩니다. 니밋따가 들숨날숨의 당처에 확고하게 머물기 전까지 모양과 색을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니밋따가 둥글든지 길든지, 그것 전체를 다 볼 필요는 없습니다. 둥글다고 둥근 것을 돌아가면서 볼 필요도 없고, 길다고 아래위로 다 훑어 볼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보게 되면 사마디의 힘이 점점 약해집니다. 그래서 둥글든지 길든지 간에 그것을 다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오로지 코끝에 들숨날숨만 주시하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들숨날숨을 그 상태에서 계속 보게 되면, 그래서 하얀색의 니밋따를 한 시간 이상 유지하게 되면, 그 니밋따는 새벽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 이것을 빠띠바가 니밋따(paibhāga-nimitta 대체 심상 혹은 닮은 심상)라고 합니다. 대체심상은 어쨌든 반짝 반짝 빛난다고 알면 됩니다. 그래서 빛이 나는 그 상태의 니밋따를 우리는 우빠짜라 사마디(upacāra-samādhi 근접삼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근접삼매에서 계속 사마디를 닦아 사마디의 힘이 좋아졌을 때, 그때 비로소 마음은 대상에 잠겨버립니다. 컵에 작은 돌을 넣었을 때, 그 돌이 물속에 가라앉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대상에 잠겨져버릴 때는 소리도 전혀 들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아빠나 사마디(appanā-samādhi 본 삼매), 혹은 선정(jhāna) 상태라고 합니다. 근접삼매 상태에서는 수행자들이 자주 바왕가의식(bhavaga-citta 존재지속심, 생명연속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바왕가의식 상태에 빠진다는 것은, 수행자가 대상도 모르고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근접 삼매에서 계속 사마디의 힘이 강해졌을 때, 아빠나 사마디(appanā-samādhi), 즉 선정(jhāna) 상태가 됩니다. 이 사마디 상태에서는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동안 바왕가 상태에 떨어지지 않고 선정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근접삼매 상태에서는 선정의 요소가 완전히 계발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아빠나 사마디 상태에서는 선정의 요소가 완전히 개발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자가 착각하기 쉬운 두 가지 주의할 점

 

수행을 진지하게 하다보면 빛이나 광명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파욱 사야도는 여기서 빛과 니밋따를 구별해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빛과 니밋따는 두 개의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태양과 태양의 빛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콧구멍 주변이 아니라, 이마나 머리 위, 또는 다른 부위에서 환히 비추는 광명이나 빛은 니밋따가 아니며, 그 빛으로는 삼매에 들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이런 빛이 나타난 것을 보고 니밋따가 떴다고 착각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수행자가 바왕가의식에 떨어진 것을 보고 열반을 체험했다고 착각하는 경우이다. 근접삼매 상태에서는 선정의 요소들이 완전하게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왕가가 여전히 일어나고 바왕가에 떨어질 수도 있다. 수행자가 이것을 경험하고서 ‘모든 것이 멈췄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열반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바왕가 상태에 떨어진 것은 열반을 체험한 상태와 분명하게 다르다. 바왕가의 작용이 매우 미세해서 수행자가 잘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착각이 일어난다고 한다.

 

선정의 5요소와 선정의 5가지 자유자재함

 

이 단계의 사야도 가르침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수행자가 빠띠바가 니밋따(대체 심상)에서 마음을 1시간 2시간 3시간 집중하게 되면, 5장애들이 제거되면서 근접삼매와 본 삼매에 도달하게 된다. 이 본 삼매, 그것이 바로 호흡관의 제 1선정이 될 것이다. 수행자가 본 삼매(선정)에 도달하면 마음은 끊어지지 않고 빠디바가 니밋따에 고정된다. 이 상태는 수 시간, 또는 밤새동안 심지어는 온종일 지속될 수 있다. 수행자가 제 1선정(초선)에서 두 세 시간 정도 머물 수 있게 되면, 선정의 5가지 요소를 식별해내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수행자가 선정에서 나올 때 언제든지, 바왕가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심장의 어떤 부분을 뚜렷이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심장의 물질 현상이다. 바왕가 의식은 밝고 빛이 나며, 심장 속의 거울처럼 보인다. 그것은 곧 마음의 문(manodvāra)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한다. 수행자가 마음의 문을 뚜렷이 인식할 때, 거기에 호흡의 닮은 심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 수행자는 선정의 5가지 요소를 뚜렷이 인식하게 된다. 호흡관 선정의 대상은 빠띠바가 니밋따이며, 선정의 5요소는 다음과 같다.

 

1. 빠띠바가 니밋따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으킨 생각(vitakka)

2. 빠디바가 니밋따에 주의집중을 계속 유지하는 지속적인 고찰(vicāra)

3. 빠띠바가 니밋따를 좋아하고 그것에 대해 기뻐하는 희열(pīti)

4. 빠띠바가 니밋따를 경험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행복감(sukha)

5. 빠띠바가 니밋따의 한 지점에 마음을 집중하는 일념(ekkagatā)

 

처음에 수행자는 선정의 요소들을 하나씩 뚜렷하게 인식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5가지 요소들을 동시에 인식하게 된다고 사야도는 말씀하신다.

 

그러면 이제 수행자가 선정에 자유자재로 들어가고 나올 수 있도록 숙달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만약 1선정에 완전히 숙달되지 않았는데 더 높은 선정으로 나가려고 한다면, 1선정을 잃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선정도 얻을 수 없고 모든 선정을 잃을 것이라고 사야도는 말씀하신다. 수행자는 제 1선정의 5가지 자유자재함을 다음과 같이 개발해야 한다.

 

1. 원할 때는 언제든지 제 1선에 들어갈 수 있는 입정(入定)의 자유자재함

2. 마음먹은 시간만큼 1선에 머물 수 있는 머무름의 자유자재함

3. 마음먹은 시간에 1선에서 나올 수 있는 출정(出定)의 자유자재함

4. 1선에서 나온 후 1선의 요소들에 주의를 기울 수 있는 전향의 자유자재함

5. 1선의 요소들을 되새겨(반조) 볼 수 있는 반조의 자유자재함

 

그 다음 제 2선을 얻기 위해서 수행자는 제 1선의 단점과 제 2선의 장점들을 생각한다. 거친 요소들인 일으킨 생각(vitakka)과 지속적인 고찰(vicāra)은 없애기로 마음먹고, 2선에 들기 위해 빠디바가 니밋따에 다시 집중한다. 그러고 나서 선정에서 나와 세 가지(희열, 행복감, 일념) 요소만을 본다면 제 2선을 성취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 2선의 자유자재함을 개발한다. 이런 방식으로 제 3, 4선까지 도달하고 자유자재함을 개발한다. 이런 방법이 경전과 『청정도론』에 근거를 둔 사마타 행법으로서의 호흡관 수행법의 전 과정이다.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하는 시기와 방법

 

수행자가 4선에 도달했고, 5가지 자유자재함도 개발했다면, 이젠 이 4선을 바탕으로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 파욱 사야도에 의하면, 4선정 이후가 위빠사나로 전환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때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 때 삼매의 빛과 힘이 뛰어나기 때문에, 물질과 정신의 궁극적인 실재를 정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선, 2, 3선 이후에도 물질과 정신의 무상, , 무아를 보는 위빠사나(통찰)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선정에 도달하지 못한 수행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들은 위빠사나를 못하고, 위빠사나가 안 된다는 말일까? 그렇진 않다. 파욱 사야도에 의하면 위빠사나를 할 때, 혹은 위빠사나(통찰)가 될 때의 사마디는 본 삼매(선정) 상태가 아니라, 근접삼매나 찰라삼매(khaika-samādhi)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정에 도달한 사람은 선정에서 나온 직후 근접삼매 상태에서 위빠사나를 하는 것이고, 선정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비록 선정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삼매를 최대한 개발하여 근접삼매나 찰라삼매 상태에서 위빠사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정에 도달했거나 도달하지 못한 경우에도 위빠사나가 다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선정에 도달한 사람이 아무래도 삼매력이 강하고 예리해서 통찰을 더욱 더 잘할 수 있다는 점이 차이라고 하겠다. 약한 불빛보다는 아주 밝은 불빛 속에서 사물을 훨씬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원리라고 사야도는 말씀하신다. 그럼 위빠사나로 어떻게 전환하는가? 파욱 사야도 전통에서는 수행자가 4선정에 도달하면 본격적인 위빠사나 수행으로 들어가기 전에, 같은 사마타 범주인 4가지 보호수행법(재애관, 불수념, 사관, 부정관)을 더 닦도록 권유한다. 그런 다음 사대관찰 수행으로 물질과 정신을 식별하고, 12연기 관찰을 통해서 원인과 결과를 식별한다. 이 두 가지는 16단계 위빠사나 지혜(vipassanāāa)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에 해당한다.

 

그리고 물질과 정신에서 무상 고 무아를 보면서 나머지 14단계의 지혜도 단계적으로 성숙시켜 마침내는 수행자가 열반을 체험하고 수다원과에 오르게 된다. 여기까지가 파욱 사야도가 가르치는 지도 방식의 전 과정인데, 그의 가르침은 놀라울 만큼 세밀하고 정확하고 또한 심오하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는데, 이번에 필자가 정리한 호흡관 수행법은 상대적으로 쉬운 초반부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파욱 사야도는 호흡관 수행을 지도하시면서 삼매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하신다.

삼매는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기 때문이다. 생사의, 혹은 번뇌의 강을 건너 열반의 땅에 도달하기 위해서 삼매는 튼튼한 배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열반을 얻기를 바라는가? 위빠사나를 잘 하고 싶은가? 그러면 먼저 삼매를 개발하라.

이것이 바로 파욱 사야도가 지도하시는 호흡관 수행의 간략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자료〕

대념처경(大念處經 Mahāsatipaṭṭhāna Sutta)

입출식념경(入出息念經 Ānāpānasati Sutta)

Pa Auk Sayadaw, Knowing and Seeing, Buddha Dharma Education Association, Inc.,

-------------, The Practice Which Leads To Nibbāna, BDEA Inc.,

-------------, Mindfulness of Breathing and Four Elements meditation, BDEA Inc.,

파욱 사야도,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입출식념경의 수행이론과 실제』, 홍원사, 2005.

파욱 사야도 (무념스님 옮김), 『사마타 그리고 위빠사나』, 인터넷(cafe.daum.net/vipassana)자료실.

파욱 사야도, 호흡관 코스 4일간(2005/11/30-12/2)의 저녁법문 CD, 홍원사, 2005.

김 재성, 「세계의 수행자-미얀마 파욱 사야도(), (), 법보신문(797), 2005-03-30.

대림스님 번역, 『청정도론 2, 초기불전연구원, 2004.

미산스님, 「대념처경 주석서에 대한 이해」, 『대념처경의 수행이론과 실제』, 홍원사, 2005.

일중, 「입출식념경에 나타난 초기불교의 호흡관 수행법」, 한국불교학결집대회논집, 2004.

지산스님, 「순수 위빠사나와 사마타-위빠사나」, 한별심리연구소(발표), 2004.

 

<파욱스님 소개> 파욱 스님은 1934년 미얀마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1944 10세에 출가 하셨으며, 1954 20세에 비구계를 받으시고, 1956 22세에

법사(Dhamm?cariya)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1964 30세 이후 20년 가까이

<숲속 수행>을 하셨으며, 1981 48세에 파욱센터의 제3대 조실스님으로 추대되었습니다.

파욱센터는 “선정을 계발하면 법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계율을 바탕으로 선정(사마타)을 개발한 후, 지혜수행(위빠사나)을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파욱 스님은 1996 62세에 미얀마 정부로부터 ‘위대한 수행지도자’의 칭호를 받았으며,

1997 63세에 “열반에 이르는 수행”이라는 5권의 저서를 출판하셨는데,

이 책들은 방대한 팔리경전을 아우르고 있으며 가르침의 전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99 65세에는 미얀마 정부로부터 ‘가장 위대한 수행지도자’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현재 파욱 스님은 대만,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중국, 일본, 홍콩, 미국, 한국 등

세계 각국을 다니시면서 수행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역자후기

 

내가 미얀마에 온지도 1년이 다 되간다. 이곳저곳 명상센터를 전전해 봤다. 대부분의 명상센터는

수도 양곤에 있거나 그 근방이어서 도시 특유의 번잡스러움과 시끄러움이 있다.

하기야 시골이라 해도 이곳저곳에서 틀어 대는 확성기 소리에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여기는 양곤에서 저녁 7시에 버스를 타면, 그 뒷날 아침에 떨어지는 먼 바닷가 쪽 몰라민이라는

곳이다. 미얀마에는 산도 흔하지 않지만 여기 이 명상센터는 산 속에 위치하고 있다.

절이 그런대로 풍수지리에 따라서 좌청룡 우백호의 중앙에 명상홀이 들어서 있고,

거기서 100개의 계단 아래로부터 수행자의 거주처인 꾸띠(오두막집)가 늘어서 있다.

이곳이 사마타 수행을 하기에 가장 중요한 요건인 고요함이 유지되는 곳이다.


 

 이곳 생활은 아침 3 30분 기상 목탁이 울리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하루에 5 1시간 30분 또는 2시간씩 명상홀에 올라가 명상을 한다.

그 외에는 혼자 명상을 하든지 휴식을 취하든지 마음대로이다.

아침과 점심 공양은 탁발 복장으로 15분 거리의 공양간에 가서 음식을 받는다.

음식은 자기 꾸띠로 돌아가서 먹든지 아니면 공양간에서 먹든지 자유다.

식사는 채식이며 일체 고기는 먹지 않는다

 

 이곳은 다른 명상센터와 달리 인터뷰도 그렇게 강제적이거나 규칙적이지만은 않다.

자기가 의심이 나거나 경계가 일어나면 언제든지 가서 물을 수 있다.

초기에는 별로 물을 일이 안 생기겠지만, 수행이 진보되어 니밋따가 뜨기 시작하면

자주 찾아가서 점검을 받아야 한다

 

 이곳 사야도의 수행이론은 빈틈이 없고 치밀하다.

온갖 경전이나 청정도론 등에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그 때문에 여기에 의심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이 공부방법이 진정한 붓다의 정통 수행법이라는 느낌이 팍 온다.

 

 한국에는 이 명상센터의 수행법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 마하시 계열의 수행법이

알려져 있고, 거기서 대체로 수행체험을 하고 간다. 그래서 미얀마에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수행법을 접하고서 이것이야 말로 모든 사람이 밟아야 할 정통 풀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망상 떨지 말고, 이 책을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하고픈

강한 욕구가 일어났다. 혹시 화두 수행으로 성취가 별로 없는 수행자가 이 수행법과

과거의 인연이 있었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화두나 염불이나 주력 등 여러 가지 수행을 하던 중에 니밋따나 광명이 일어나는 현상이 일어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무시해 버려서 아까운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 니밋따를 이용해서 사선정을 성취한다면, 그 다음 단계는 아주 쉬워질 것이고,

세세생생 수행의 기초가 될 것이다.

 

 번역을 시작할 때는 의도도 좋고 의욕도 있었지만, 수행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번역을 했기에

기간이 오래 걸리고 점점 의욕은 사그라들고 지루해져 갔다. 하지만 성취욕과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한국에 알려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이 책을 마무리 짓는다


내가 남방불교를 접한 기간도 짧고 아는 것도 별로 없어서 혹시 번역이 잘못될 가능성이 많다.

책에 인용한 경전 문구는 일체 다른 번역책을 참고하지 않고 그냥 영어 원문을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에 단어는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 점을 이해하시고,

나는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이 책이 너무 어려우시면 2~3번 읽어 주시기 바라고

아비담마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다른 책을 참고 하시기 바란다.

 

이 책은 판매용이 아닌 법보시용으로 사야도의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이 책을 법보시 용으로 출판하실 분은 역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출판해서 공덕을 쌓기 바란다.

다만 내용은 변경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을 번역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지산 스님과 교정을 보아 주신 김지영보살님 그리고 출판을 맡으신 지훈스님 그 외에 같이 정진하시는 여러 스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