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六祖壇經)

육조단경(六祖壇經)-머리말-청화스님 역(譯)

通達無我法者 2007. 2. 16. 18:40

육조단경六祖壇經 

                                                

                                                                   청화淸華

 

   머리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교()나 선()이나, 현교(顯敎)나 밀교(密敎)나

승(大乘)·소승(小乘)이 다 한결 같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가르침 아님이

없다.

   우리 인간(人間)의 근본성품(根本性品)인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비단 인

간성(人間性)의 본원(本源)일 뿐 아니라 유정무정일체존재(有情無情一切存

)의 원(根源)이며 바로 우주생명자체(宇宙生命自體)인 것이다.

   그래서 불성(佛性)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상주불변(常宙不變)

덕보장(萬德寶藏)이며 그대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요 진법계(一眞法

)며 지견(佛知見)인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이다.

   유구(悠久)한 인류역사(人類歷史)를 통()하여 생명(生命)의 실상(

)인 여불성(眞如佛性) 깨달으면 바로 성자(聖者) 인간()과

상(天上)의 도사(導師)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人間) 구경목적(究竟

目的)인 것이다. 

   그런데 불성(佛性) 깨닫는 동서양(東西洋)의 수많은 성전(聖典) 가운

[육조단경六祖壇經]은 가장 직절간명(直截簡明) 견성오도(見性悟道)

문(法門)으로서 우리 중생(衆生)들을 감분참구(感奮參究) 하는

실(切實)참선(參禪)의 성전(聖典)이다.

   물론(勿論) 단경(壇經)에는 고래(古來) 로 가필첨삭(加筆添削)

(批判)있기는 하나, 그 중심사상(中心思想) 무상계의식(無相戒儀式)

으로서의 귀의자성삼신불(歸依自性三身佛)이나, 정혜일체(定惠一體)의 통

찰(洞察)이나, 최상승돈오선문(最上乘頓悟禪門)인 반야바라밀법문(般若波

羅蜜法門)등의 핵심요체(核心要諦)조금도 훼손(毁損)됨이 없이 지금도

오히려, 마치 혜능대사(大師)의 현전(現前)한 육성(肉聲)과 같이 엄연

(儼然)히 약동(躍動)하고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범세계적(汎世界的)으로 혼란(混亂)한 정보(情報)의 탁류(

)속에서 인간지성(人間知性)의 가장 궁극적(窮極的)이고보편적(普遍的)

인 수도법문(修道法門)인 혜능대사(惠能大師) 최상승돈교선법문(最上乘頓

敎禪法門)은 실로 우리 인간실존(人間實)을 일깨우는 최제일(最第一)의

보감(寶鑑)인 동시에 심난(甚難)역사적(歷史的) 무명(無明)을 다스리는

최선(最善)의 등명(燈明)이것이다.

   우납(愚衲)이 경학(經學)에 조예(造詣) 깊은 학승(學僧)이 아닐 뿐 아니라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성승(聖僧)의 분상(分上)도 아니면서, 감敢히, 자고

(自古)로 문제점(問題點)이 많은 육조단경(六祖壇經)번역(飜譯)을 발원

(發願)한 연유(緣由)는 단경(壇經)이 바로 참선수행(參禪修行)의 최상승선

(最上乘禪)의 성전(聖典)에도 불구(不拘)고 정작, 선학도(禪學徒)들이

별로 친근(親近)하게 참구(參究)하지 않는 경향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나머

지 승속간(僧俗間) 누구나가 한결 마음 편하게 단경(壇經)을 독송실수(讀誦

實修하는데, 한낱 볼품없는 타산(他山)의 돌멩이라도 될까 하는 미성(

)에서였다.

   우납(愚衲)이 번역한다고 하여도 모두가 먼저 번역한 여러 선지식(善知

) 노작(勞作)위에 이루어진 서투른 모작(模作) 나지 않는다.

   이번 단경(壇經) 번역의 덕택으로 우납(愚衲)은 팔순(八旬)의 서산락일

(西山落日) 다시금 단경(壇經)공부를 하게 되었고 이러한 연(人緣)

로 유연선려(有緣禪侶)들에게 다소(多少)라도 도움이 될 있다면 참으로

망외(望外)의 행심(幸甚)이 아닐수 없다.

   단경(壇經) 나오기까지 지성(至誠)으로 도와주신 여러 불자(佛子)님

들께 진심(眞心)으로 감사 합장(合掌)하여 마지않는다.

 

 

                                            계미년정월망일(癸未正月望日)

                                       환주산방(幻住山房)  청화화남(淸華和南)


 


  일 러 두 기

 


一. [육조단경六祖壇經〕의 가장 오랜 고본(古本)인 동 돈황본(敦煌本)

혜은대사(惠能大師)의 성의(聖意)에 가깝다는 단경연구학자(壇經硏究學

)들의 평(定評)을 참고(參考)하여 번역(飜譯)의 원전(原典)을 돈황본

(敦煌本)으로 정()하일본(日本)의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의 선종사

연구회(禪宗史硏究會)에서 발간(發刊)한〔혜능연구惠能硏究〕와 성철선사

(性徹禪師) 돈황본교주본(敦煌本校注本)과 김지견박사(金知見博士) 돈황

본교주본(敦煌本校注本)을 참고(參考)하였다.

 

二. 돈황본단경(敦煌本壇經)이 분단(分段)이 없는 연면(連綿)한 필사본(

寫本) 해득(解得)의 편의(便宜)를 위하여 혜흔본(惠昕本)ㆍ덕이본(

異本) ㆍ종보본(宗寶本) 등 참조(參照)하여 십절(十節)로 구분(區分)하였

다.


三. 중국(中國)ㆍ한국(韓國)ㆍ일본(日本) 등 동양문화권(東洋文化圈)에서

한문혼용(漢文混用) 자연(自然)한 추세임을 감안하여 주석문(注釋文)

짐짓 국한문혼용(國漢文混用)을 하였다.


四. 한문경전(漢文經典)이 모두 종서(縱書)을 준()하여 그에 따르도록 하

였다.

 

五. 단경(壇經)을 한문(漢文)으로 독송(讀誦)할 편의를 위하여 모든 한문(

)한글음()을 부기(付記)하였다.


육조단경 해제(解題)

 

                                                                             청화스님



 

                      1.회통법문會通法門  




   대승경전(大乘經典)은 『화엄경(華嚴經)』이나 『법화경(法華經)』이

『열반경(涅槃經)』이나 『반야경(般若經)』이나관무량수경(觀無量

壽經)이나 『육조단경(六祖壇經)』이나 모두 한결같이 선() 교()

정토염불(土念佛) 원융무애(圓融無碍)하게 회통한 아뇩다라삼먁삼

보리(阿?多羅三?三菩)이다.


   방편가설(方便假設) 인연비유(因緣譬喩) 생략(省略)하고 오로지

명(命) 실상(實相) 진여자성(眞如自性) 단번에 깨닫는 견성오도

(見性悟道) 역설(力說)함을 선()이라 하고, 언어문자(言語文字)로써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 모든 근기(根機)들을 두루 살펴

극명(克明)하게 표현(現)함은 교()이며, 진여불성(眞如佛性)이란

주생명(宇宙生命) 온전히 명(歸命)하여 수희참구(隨喜參究)함이 정토

염불(淨土念佛) 법문(法門) 것이.


   『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불()은 언제나 동일(

) 뜻으로 설법(說法)하나 중생(衆生) 기연(機緣) 따라 대승(大乘)

소승(小乘)점교(漸敎)돈교(頓敎) 종종(種種) 차별(差別)

()한다.』[불이일음연설법(佛以一音演說法) 중생수류각득해(中生

隨類各得解)]하였고,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모든 부처님은

바로 법계(法界) 몸으로 하나니, 일체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있느니

.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이 마음이 바로 삼십이

상(三十二相) 팔십수형호(十隨形好) 갖춘 원만덕상이니, 이 마음으

부처를 이루고 이 마음이 부처이니라.』[제불여래시법계신(諸佛

如來是法界身) 입일체중생심상중(入一切衆生心想中) 시고여등심상불시

(是故汝等心想佛) 시심즉시삼십이상팔십수형호(是心卽是三十二相八

十隨形好) 시심작불시심시불(是心作佛心是佛)하였다].


               2.귀의자성삼신불歸依自性三身佛


 

   달마대사(達磨大師, ?~528)로부터 육조(六祖) 혜능대사(惠能大

,638~713)까지를 통칭(通稱)하여 순선시대(純禪時代) 하는데, 그것은

달마대사(達磨大)의 친찬(親撰)이라는 『소실육문(少室六門)』의 「이

입사행(二入四行)」의 법문(法門)이나 「안심법문(安心法門)」으로부터

삼조승찬대사(三祖僧璨大師, ?~606)의 『신심명(信心銘)』을 거쳐 사조

(四祖) 도신대사(道信大, 580~651)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

便法門)』과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602~675)의 『수심요론(修心

要論)』과  육조(六祖) 혜능대사(惠能大師)『육조단경(六祖壇經)』에 이

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자성(自性-자기본성己本性 진여불성眞如佛

)에 온전히 귀의(歸依)함을 간곡심절(懇曲心切)게 역설(力說)하고 있

는 것이다. 

   특()히 단경(壇經)에서는 자성(自性)ㆍ불성(佛性)이란 표현(表現)을

황본(煌本)에는 팔십여(八十余)번, 유통본(流通本-덕이본德異종보

宗寶本)등에는 백여(百余) 번이나 되풀이 강조(强調)하였는데, 혜능대사

(惠能大師)께서는 귀의삼신불(歸依三身佛) 설할 때 대중(大衆)들에게 혜

능대사(惠能大師) 자기(自己) 입[,]을 따라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에 귀의(歸依)하고 원만보신불(圓滿報身佛)에 귀의(歸依)하고 천백억화신

불(千百億化身佛)에 귀의(歸依)합니다.』를 세 번씩 삼창(三唱)을 되풀이

하도록 하여 제각기(各己) 자기자성(自己自性)을 스스로 깨닫게 하리라는

열화(烈火)같은 투철한 서원(誓願)으로 대중(大衆)으로 하여금 깊은 감분

정진(感奮精進)을 다짐케 하였다.

 

   이렇듯 자성불(自性佛) 신앙(信仰)이 확립(確立)되면 필수적(必須的)으

자성(自性)을 깨닫는 수행(修行)을 결행(決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무상참회無相懺悔


 

   일체만유(一切萬有)인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 본래(本來)로 진여불

성(眞如佛性)이기 때문에 근원적(根源的)으로는 일체선악(一切善惡)에 따

른 죄성(罪性)이 존재(存在)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중생(衆生)의 무명분별(無明分別)로 인()하여 시비선악(是非善惡)

이 있게 되므로 진참회(眞懺悔) 곧 무상참회(無相懺悔)란 자기본성(自己本

)인 자성(自性) 곧 불성(佛性)이 본래청정(本來淸淨)함을 통찰(洞察)하여

일체시일체처(切時一切處)의 생각생각에 자성(自性)을 여의지 않고 무염

오(無染汚)인 무주상행(無住相行)을 여행(勵行)하는 것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마음바탕에 그릇됨이 없음이 자성(自性)

계(요), 마음바탕에 어지러움이 없음이 자성(自性)의 정()이요, 마음바

탕에 어리석음이 없음이 자성(自性)의 혜()라』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現實的)으로 숙업(宿業)을 벗어나지 못한 업식중생(業識

衆生)의 분상(分上)으로서는 무상참회(無相懺悔)의 도리(道理)에 입각(

)하여 모든 악()을 단호(斷乎)히 짓지 않고 결정(決定)코 모든 선()

닦는 계율(戒律)과 일체윤리행(一切倫理行)을 실천(實踐)해야 하는 것이다.

 

 

                 4.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모든 존재(存在)의 실상(實相)을 비추어 보

는 최존최상(最尊最上)의 지혜(智慧)이다. 반야지혜(般若智慧)로 통찰(

)할 때 우주만유(宇宙萬有)는 본래(本來)로 일미평등(一味平等)한 진여

법계(眞如法界)인이다.

 

   따라서 반야지혜(般若智慧)가 있으면 불지(佛智)요 성지(聖智)며 반야지

혜(若智慧)가 없으면 중생(衆生)의 분별지(分別智)요 범부(凡夫)의 망념

(妄念)인 것이다. 그래서 반야지(般若智)는 중생(衆生)을 미혹(迷惑)한 차

안(此岸)에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인도(引導)한다 하여 도피안(到彼

)이라 하며 일체불보살(切佛菩薩)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공덕

(功德)을 찬탄(讚嘆)하였다. 『지도론(智度論)』에 『반야바라밀시제불모

제불이반야위사(般若波羅蜜是諸佛母諸佛以般若爲師)』라고 하였다.

 

   이른바 육바라밀중(六波羅蜜中)의 오바라밀(五波羅蜜)인 보시(布施)ㆍ

지계()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 등()의 수행덕목(修行

德目)도 모든 명상(名相)을 여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근본(根本)

로 하여야만 비로소 명실공(名實共)히 오바라밀(五波羅蜜)이 되는 것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선지식(善知識)이여, 지혜(智慧)로 관조(

)하면 안팎이 사무치게 밝아서 자기 본심(本心)을 알게 되고 본심을 알면

본래 해탈(解脫)됨을 알게 되나니 바로 반야삼매(般若三昧)요 곧 무념(

)이니라. 무엇을  무념(無念)이라 하는가? 일체법(一切法)에 염착(染着)

하지 않음이 바로 무념(無念)이니라.」고 하였다. [선지식(善知識) 지혜관

조(智慧觀照) 내외명철식자본심(內外明徹識自本心) 즉본해탈(卽本解脫)

즉시반야삼매즉시무념(卽是般若三昧卽是無念) 하명무념(何名無念) 약견일

체법(若見一切法) 심불염착(心佛染着)시위무념(是爲無念)]. 

 


          5.일상삼매一相三昧일행삼매一行三昧

 

  

   돈황본단경(敦煌本壇經)에는 일행삼매(一行三昧)만을 역설(力說)하여

행주좌와일체처일체시(行住坐臥一切處一切時)에 순일직심(純一直心)함을

일행삼매(一行三昧)라 하였는데 덕이본(德異本)이나 종보본(宗寶本)에는

정종분(正宗分)에 일행삼매(一行三昧)을 언급(言及)하고, 다시 [부촉품(

囑品)]에서 한결 구체적(具體的)으로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

三昧)를 재차(再次) 강조(强調)하였다.


   특()히 사조(四祖) 도신대사(道信大師)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

安心要方便法門)】에는 【일상삼매(一相三昧)는 우주법계(宇宙法界)가 진

여실상(眞如實相)의 일상(一相)이기 때문에 일상삼매(一相三昧)라 하고, 생

각생각에 일상삼매(一相三昧)를 여의지 않고 참구수행(參究修行)함을 일행

삼매(一行三昧)라 하였으며,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일상삼매

(一相三昧)에 입()하고자 하면 마음속으로 오로지 한 부처[불,]의 명

호를 상속(相續)하여 외우면 즉시(卽時) 염중(念中)에 능()히 과거(過去)

ㆍ미래(未來)ㆍ현재(現在)의 제불(諸佛)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일불공덕

(一佛功德)과 무량제불(無量諸佛)의 공덕(功德)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리고 【문수설반야경(文殊說般若經)】을 인용(引用)하여 「부처를 염

()하는, 염불(念佛)하는 마음이 바로 불()이요 망상(妄想)하는 마음이

바로 중생(衆生)이며 염불(念佛)은 곧 (염심念心)이고 구심(求心)은 바로

구불(求佛)인데, 왜 그런가 하면 마음은 본래 모양이 없고 부처[불,]

한 모습이 없기 때문에 마음과 부처가 둘이 아닌 도리(道理)를 알면 바로

이것이 안심(安心)이니라」하여 이른바 「안심법문(安心法門)」 (달마,

) 의 원리(原理)를 도파(道破)하였으며, 그리하여 『항상 염염(念念)히 불

()을 억념(憶念)하면 반연(攀緣)이 일어나지 않으며 번연(飜然)히 모든

상을 여의고 여실(如實)하게 평등무이(平等無二)한 여래진실법성신(如來眞

實法性身)을 성취(成就)하게 되나니, 달리 이름하여 정법(正法)이라 하고

또한 불성(佛性)이라 하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하고, 정토(淨土)라 하

고, 보리(菩提)라 하고, 또한 금강삼매(金剛三昧)ㆍ본각(本覺)ㆍ열반계(

槃界) 등 비록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모두가 동일(同一)한 진여불

성(眞如佛性)이니라 』하였다.


   달마대사(達磨大師)로부터 전승(傳承)되어온 수행법(修行法)을 극명(

)하게 밝힌 사조(四祖) 도신대사(道信大師)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

道安心要方便法門)】과 육조(六祖) 혜능대사(惠能大師)가 【단경(壇徑)

에서 결정설법(決定說法)한 직절간명(直截簡明)한 수행법(修行法)을 통

()하여 순선시대(純禪時代)의 수행법(修行法)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입각(立脚)한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가 혜능대사(

能大師)의 직설(直說)대로 최존최상승최제일(最尊最上乘最弟一)의 수행법

(修行法)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