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六祖壇經)

[제2장 정혜일체] 二. 정(定)과 혜(惠)는 본래로 하나

通達無我法者 2007. 2. 16. 20:57
二. 정과 혜는 본래로 하나(1)

 


   『선지식들이여, 나의 이 법문은 정과 혜로써 근본을 삼나니, 첫째로 미

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

니니라. 곧 정은 바로 혜의 몸이요 곧 혜는 바로 정의 작용이니, 혜가 나타

날 때 정이 혜 안에 있고, 또한 정이 나타날 때 혜가 정 안에 있느니라.

   선지식들이여, 이러한 뜻은 곧 바로 정과 혜를 함께 함이니라.

   도를 배우는 이는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

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각기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짓는

이는 법에 두 가지 모양()이 있는 것이니라.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서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지혜와 선정을 함께 함이 아니요, 마음과 말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 가지면 선정과 지혜가 곧 함께 함이니라.

   스스로 깨달아 수행함은 말로 다투는 데 있지 않으며, 만약 앞뒤를 다투

면 이는 곧 미혹한 사람으로서 이기고 지는 것을 끊지 못함이니, 도리어

*법집과 아집이 생겨(생법아生法我) *네 모양(사상四相)을 버리지 못함이

니라.』

 


[주해註解]

*생법아生法我 : 법집(法執)과 아집(我執)을 일으키는 망견(妄見). 법집(法執)은 객관(客觀)

인 물심(物心)현상을 실재(實在)하는 줄 잘못 알고 고집하는 것. 또는 교법(敎法)에 얽매여

집착하고 도리어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함. 아집(我執)은 무아(無我)의 도리를 모르고

자기 심신(心身)이 실재한다고 집착함.

*사상四相 : 아상(我相)ㆍ인상(人相)ㆍ중생상(衆生相)ㆍ수자상(壽者相). 범부중생(凡夫衆

生)의 네 가지 잘못된 견해. ①아상(我相): 오온(五蘊)이 화합(和合)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실재의 아(我)와 아(我)의 소유(所有)가 있다고 집착하는 소견. ②인상(人相): 아(我)는 인간

(人間)이어서 축생(畜生) 등과 다르다고 집착하는 소견. ③중생상(衆生相): 아(我)는 오온법

(五蘊法)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라고 집착하는 소견. ④ 수자상(壽者相): 아(我)는 일정한

기간의 목숨이 있다고 집착하는 소견.

 

二. 정과 혜는 본래로 하나(2)



   *일행삼매(一行三昧)란 어느 때나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곧은 마음을 행(상행직심常行直心)하는 것이니라. 【정명경淨名經에 말씀

하기를「곧은 마음이 바로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바로 정토라」고 하였느

니라.  

   마음에 아첨하고 굽은 생각을 가지고 입으로만 법의 곧음을 말하지 말라.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

자가 아니니라. 단지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음을

일행삼매라고 하느니라.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의 모양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곧은

마음은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망심을 제거하여 일으키지 않

음이 일행삼매라고 하나, 만약 이와 같다면 이러한 법은 무정(無情)과 같은

것이니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니라.  

   도()는 모름지기 통하여 흘러야 하나니, 어찌 도리어 정체할 것인가?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바로 통하여 흐르는 것이요, 머물러 있으면 바

로 속박이 되는 것이니라.  

   만약 앉아서 움직이지 않음이 옳다고 한다면 사리불이 숲 속에 조용히 앉

아 있는 것을 유마힐이 꾸짖었음이 합당하지 않느니라.  

   선지식들이여, 또한 어떤 분이 사람들에게 「앉아서 마음을 관찰하고 깨

끗함을 관찰하되 움직이지도 말고 일어나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이것으

로써 공부를 삼게 하는 것을 보나니,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문득 거기에 집착하여 전도(顚倒)됨이 수 백 가지이니, 이렇게 도를 가르치

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애써 알아야 하느니라.』  

   『선지식들이여, *정과 혜(定惠)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그 빛과 같으

니라.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빛이 없으므로 등불은 빛

의 몸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이니, 이름은 비록 둘이나 몸은 둘이 아니니,

정과 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주해註解]

*일행삼매一行三昧 : (Ekavyuha-samadhi)는 전 우주의 온갖 물심(物心)현상은 평등하고

진여불성(眞如佛性)의 한 모양인 줄을 관찰하는 삼매. 일상삼매(一相三昧)라고도 하고 일상

장엄삼매(一相莊嚴三昧)라고도 함. 사조(四祖) 도신대사(道信大師)가 【입도안심요방편법문

入道安心要方便法門】에 『아차법요(我此法要)는 【릉가경楞伽經】의 제불심제일(諸佛心第

一)과 【문수설반야경文殊說般若經】의 일행삼매(一行三昧)에 의(依)한다』하였음. 도신대

사(道信大師)는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입도(入道)의 요문(要門)이라 하였으며, 신회대사(神

會大師)도 『만약 심심법계(甚深法界)에 료달(了達)하려는 자(者)는 바로  일행삼매(一行三

昧)에 입(入)하라고 설(說)하며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즉시일행삼매(卽. 卽是一行三昧)

라』하였다.

*상행직심常行直心 : 항상 순일무구(純一無垢)한 정직(正直)한 마음으로 의지(意志)하고 말

하고 행동하는 것.

*정혜定惠 : 불법(佛法)은 선정과 지혜가 둘이 아님을 근본으로 삼음. 【열반경涅槃經】 이

십팔(二十八)에 『제불세존정혜균등고명견불성(諸佛世尊定惠均等故明見佛性)이라』하였음.

 

 二. 정과 혜는 본래로 하나(3)



  『선지식들이여, 법에는 단번에 깨달음과 점차로 깨달음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달은

이는 단번에  닦느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 것이니, 깨달으면 원

래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장겁長劫)을 *윤회(輪廻)하느

니라.』

   『선지식들이여, 나의 이 법문은 옛부터 단번에 깨침과 점차로 깨달음을

모두 세우나니, *생각 없음을 종(무념위종無念爲宗)으로 삼으며, *모양 없

음을 본체(무상위체無相爲體)로 삼고 *머무름 없음으로 근본(무주위본無住

爲本)을 삼느니라.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여읜 것이요,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을 여읜 것이며, 머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니라.

   그러나 지나간 생각과 지금 생각과 다음 생각이 생각생각 서로 이어져 끊

어짐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法身)이 곧 육신을 떠나느니라.

    생각생각 중에 모든 법 위에 머무름이 없나니, 한 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마다에 머무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부르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

간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하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주해註解]

*장겁長劫 : 오랜 세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

*윤회輪廻 : 사람이 자기가 지은 바 업(業-Karma)에 따라 삼계(三界)-(욕계欲界ㆍ색계色界

ㆍ무색계無色界), 육도(六道)-(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간人間ㆍ천상天上)로 생사(生

死)를 되풀이 하는 것. 업(業)은 신(身)ㆍ구(口)ㆍ의(意)로 짓는 행위와 그에 따른 세력.

*무념無念 : 유무(有無)ㆍ선악(善惡)을 생각하지 않고 보리(菩提), 열반(涅槃)에도 집착하지

않는 순수한 생각을 말함. 무념즉일념즉시일체지(無念卽一念卽是一切智)이며 일체지(一切

智)는 즉시심심반야바라밀(卽是甚深般若波羅蜜)이며 바라밀(波羅蜜)은 즉시여래선(卽是如

來禪)이다. 【신회어록神會語錄】

*무상無相 : 일체사물(一切事物)은 인연(因緣)따라 이루어지고 연(緣)의 변화에 따라 변화

소멸(消滅)되는 것으로서 환영(幻影)에 불과하다.【금강경金剛經】에 『범소유상개시허망

(凡所有相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라 운(云)함.【신회어

록神會語錄】에 『일체중생(一切衆生)은 본래무상(本來無相)이다. 심약무상즉시불심야(心

若無相卽是佛心也)』라 운(云)함.

*무주無住 : 집착(執着)이 없는 것. 【금강경金剛經】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

其心)』. 무소주(無所住), 무집착(無執着)의 청정불심(淸淨佛心)을 말함.


 

 二. 정과 혜는 본래로 하나(4)

 


   『선지식들이여, 밖으로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모양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모양을 여의기만 하면 자성의 본체는 청정한 것이니, 그러므로 모양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느니라.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하나니, 자기의 생각 위에서 경계를 떠나고 법에 대하여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니라.

   *일백 가지 모든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막백물불사莫百物不思)서 생각을

모조리 제거하지 말라. 한 생각 끊어지면 곧 다른 곳에 태어날 수 없느니라.

   도()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할지니, 자기의 잘못

은 오히려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권하겠는가. 미혹하여 스스

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나니, 그러므로 생각없음(무념

)을 세워 종지(宗旨)를 삼느니라. 인연에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

을 내고 생각 위에 다시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

(진로망념塵勞妄念)이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無念)을 세워 종지(宗旨)를 삼느니라.

세상 사람들이 소견을 여의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만약 생각함이 없으

면 생각없음(무념無念)도 또한 서지 않느니라.

   없다함은 무엇이 없다는 것이고 생각함이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없다함은 두 모양(이상二相)의 모든 번뇌를 떠난 것이요 생각함이란 진

여(眞如)의 본성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요 생각은 진여

의 작용이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자성自性)이 생각을 일으켜(기념起念)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나, 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시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는 첫째의 요긴한 뜻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하셨느니라.』

 

 


[주해註解]

*막백물불사莫百物不思 : 무념(無念)이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상

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음을 역설적(逆說的)으로 말한 것으로서, 백물(百物)을 생각하지 않고

염(念)을 단절(斷絶)하면 바로 법박(法縛)으로서 변견(邊見)이라고 함.

*진로망념塵勞妄念 : 진로(塵勞)는 마음을 괴롭히는 번뇌(煩惱). 곧 번뇌망상을 의미함.

*자성기념自性起念 : 자성(自性)은 진여법성(眞如法性)으로서 바로 불성(佛性)을 의미함.

자성(自性) 곧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생각을 일으키면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고 항상

자재(自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