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조용(四照用)
示衆云, 我有時先照後用하며 有時先用後照하고 有時照用同時하며 有時照用不同時니라 先照後用은 有人在요 先用後照는 有法在요 照用同時는 駈耕夫之牛하며 奪飢人之食이니 敲骨取髓하고 痛下鍼錐요 照用不同時는 有問有答하며 立賓立主하야 合水和泥하야 應機接物이니 若是過量人인댄 向未擧已前하야 撩起便行이라 猶較些子니라
임제스님이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어느 때는 먼저 지혜로 비춰보고, 뒤에 작용을 하며,
어느 때는 먼저 작용을 하고 나중에 비춰 본다.
어느 때는 비춤과 작용을 동시에 하며, 어느 때는 비춤과 작용이 동시가 아닐 때도 있다.
먼저 지혜로 비추고 뒤에 작용하는 것은 사람이 있는 데 해당된다.
먼저 작용을 하고 뒤에 비춰 보는 것은 법[대상]이 있는데 해당된다.
비춤과 작용이 동시인 경우에는 밭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고,
굶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 것처럼,
뼈를 두들겨 골수를 뽑아내고,
아픈데다가 다시 바늘과 송곳으로 침을 꽂는 것이다.
비춤과 작용이 동시가 아닐 때는,
물음이 있으면 답이 있고 손님[객관]도 세우고 주인[주관]도 세운다.
물에 합하고 진흙에 합하여 근기에 맞춰서 사람들을 제접한다.
만약 뛰어난 사람[過量人]이라면 법을 거량하기 전에 떨치고 일어나 곧 가버린다.
그래야 조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강의 ; 임제의 사조용이다.
이 내용은 없는 책도 있다.
서문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보면 있어야 옳다.
사람들을 대하여 깨우치고 법을 쓰는 경우에 이러한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최상의 지혜를 일깨워 주려면 먼저 사람을 잘 관찰하는 지혜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할을 하던지 방을 휘두르던지 하는 행동이 뒤따를 것이다.
그런 경우를 사람이 있는데 해당한다고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탈인(奪人) 탈경(奪境)의 경우는 부정하는 것으로 드러내고,
여기서는 긍정하는 방법으로 드러낸다.
표현은 달라도 뜻은 같다.
사람이 있다. 법이 있다. 라는 것은 사람은 주체적 사람,
법은 경계며 대상이다.
사람만 두기도 하고 법만 두기도 한다는 뜻이다.
요는 비춤과 작용이 동시인 경우[照用同時]가 문제다.
밭을 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아 버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굶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아 버리는 것은 또 어쩌자는 것인가?
뼈를 두들겨 골수를 뽑아내고,
아픈데다가 다시 바늘과 송곳으로 침을 꽂는 것은 또 어떤가?
위와 같은 상황들은 조용(照用)을 동시에 당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소낙비는 오는데 끌고 가던 소는 도망을 가고,
지고 있는 짐은 무거워 걸을 수 없는데 설사까지 났다.
라는 우리들의 옛 말과 유사하다.
사람을 정신없이 만든다.
혼비백산이다.
그러나 그 그림이야말로 볼만한 가치가 있다.
비춤과 작용이 동시가 아닐 때[照用不同時]는 물음이 있으면 답이 있어서 매우 친절하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 물로 뛰어드는 노파심이다.
그래서 좀 뛰어난 근기들은 재미가 없어서 떨치고 가버린다.
이 단락에서는 이 말이 좋은 말이다.
합수화니 응기접물(合水和泥 應機接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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