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10
12-2 모든 것이면서 모든 것이 아니다
道流야 山僧說法은 說什麽法고 說心地法이니 便能入凡入聖하며 入淨入穢하며 入眞入俗하나 要且不是儞眞俗凡聖이라 能與一切眞俗凡聖 安著名字요 眞俗凡聖이 與此人安著名字不得이니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산승의 설법은 무슨 법을 설하는가.
심지법(心地法)을 설한다.
그래서 범부에게도 들어가고 성인에게도 들어가며,
깨끗한 곳에도 들어가고 더러운 곳에도 들어가며,
진제(眞諦)에도 들어가고 속제(俗諦)에도 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그대들의 진(眞)․속(俗)․범(凡)․성(聖)이 아니면서 모든 진․속․범․성으로 더불어 이름을 붙여 준다.
그러나 진․속․범․성이 이 사람[참사람,心]에게 그런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강의 ; 임제스님의 설법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종지가 무위진인(無位眞人)이며,
일심(一心)이다.
그 일심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될 수 있다.
그래서 곳곳에 다 들어간다.
그러나 그 일심은 일심대로 있다.
모든 것이 다 될 수 있고 모든 곳에 다 들어간다고 해서 결코 뒤섞여 분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참사람은 차별이 없이 가만히 있는데 온갖 이름들을 다 붙여 차별된 사람을 만든다.
설사 진·속·범·성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그런 진속범성의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그는 처음부터 그렇게 규정지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변화무쌍한 세상의 차별상을 보지 말고 차별 없는 진짜 사람을 보라.
금 불상이나 금 돼지를 보지 말고 금을 보라는 말이다.
전단 나무로 중생의 모습과 불보살의 모습과 동물의 모습으로 천만 가지 형상을 조각하지만,
그 나무의 향기를 맡아보면 모두가 전단향의 향기가 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임제스님의 마음은 언제나 오늘 이 순간 보고 듣는 분명한 이 사람이다.
일체 진·속·범·성의 차별은 없다.
이 단락의 중요한 구절은 심지법(心地法)이다.
보살계를 설하는 내용도 심지법문이 그 종지(宗旨)가 된다.
불교는 마음을 빼 버리면 아무 것도 없다.
삼라만상과 일체만유는 모두가 이 마음이 만든 것이다.
삼계가 오직 마음이다[三界唯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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