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시중21/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8. 31. 14:34
시중 21


13-10 사종(四種)의 무상경(無相境)

問, 如何是四種無相境 師云, 儞一念心疑 被地來礙하며 儞一念心愛 被水來溺하며 儞一念心瞋 被火來燒하며 儞一念心喜 被風來飄하나니 若能如是辨得하면 不被境轉하고 處處用境이라 東涌西沒하며 南涌北沒하고 中涌邊沒하며 邊涌中沒하야 履水如地하며 履地如水하니라 緣何如此 爲達四大如夢如幻故니라

“무엇이 네 가지 형상이 없는 경계입니까?”

“그대들의 한 생각 의심하는 마음이 흙이 되어 가로 막으며,

한 생각 애착하는 마음이 물이 되어 빠지게 하며,

한 생각 성내는 마음이 불이 되어 타게 하며,

한 생각 기뻐하는 마음이 바람이 되어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알아낼 수 있다면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가는 곳마다 경계를 활용 할 것이다.

동쪽에서 나타났다가 서쪽으로 사라지고,

남쪽에서 나타났다가 북쪽에서 사라지고,

가운데서 나타났다가 가장자리에서 사라지고,

가장자리에서 나타났다가 가운데서 사라진다.

땅을 밟듯 물을 밟고, 물을 밟듯 땅을 밟는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사대육신(四大肉身)은 꿈과 같고 허깨비 같은 줄 통달하였기 때문이다.”


강의 ; 사람의 몸을 위시해서 물질을 형성하고 있는 네 가지요소인 지수화풍 사대(四大)란 무엇인가? 임제스님의 독특한 해석이다.

의심하는 마음과 애착하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이다.

이것이 곧 사대를 만들었다.

이 네 가지 마음은 우리들의 한 생각에서 일어 난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그 네 가지 마음에서 일어난 지수화풍이라는 경계도 내가 끌려 다니지 않고 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한 생각에서 일어난 팔만사천 번뇌가 헛것이듯이 그 번뇌에 의해서 생긴 지수화풍과 삼라만상도 꿈과 같고 허깨비 같은 줄 통달하였기 때문이다.

사대육신과 육신에서 일어나는 의심하고 애착하고 성내고 기뻐하는 등등의 인간의 감정들은 어째서 꿈과 같고 허깨비 같은가?

아는 이야기로 하면, 나를 형성하고 있는 몸과 마음이라는 오온은 왜 허망한가?

왜 공인가?

범소유상은 왜 개시허망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도 홀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물질도 마음도 다 같다.

모두가 이것과 저것이 서로 의지해서 하나의 존재를 형성한다.

마치 갈대 묶음이 둘이 있을 때 서로 의지해서 서 있을 수 있듯이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쿼크도 끝내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무엇과의 결합체이다.

이와 같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모두가 서로 서로 의지했을 때만 존재한다.

의지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연생기(因緣生起)하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인 원인과 조건,

곧 연기에 의해서 존재한다.

그렇게 존재하는 것은 분과 초를 다투는 시한부 존재다.

시한부 존재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을 공(空)이라고 한다.

어떤 감정과 어떤 물질이든 다 같다.

사랑도 미움도 본래로 공인데 시한부 인연에 의하여 한순간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공이고 허망이고 무상이다.

그래서 연기가 곧 공이고 공이 곧 연기며 연기가 곧 여래의 큰 깨달음이다[諸行無常一切空 卽是如來大圓覺]. 또 중도(中道)다.

이 원칙에는 부처도 중생도, 미진도 우주도, 정신도 물질도 예외일 수 없다.

하물며 생노병사와 우비고뇌이겠는가.

이와 같이 모든 존재의 실상은 공이기 때문에 공으로만 보면 모든 고통과 일체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반야심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텅 비어 없는 것으로 보면 “동쪽에서 나타나서 서쪽으로 사라지고, 남쪽에서 나타나서 북쪽에서 사라지고, 가운데서 나타나서 가장자리에서 사라지고, 가장자리에서 나타나서 가운데서 사라진다. 땅을 밟듯 물을 밟고, 물을 밟듯 땅을 밟는다.”고 자유자재한 대해탈의 삶을 말하고 있다. 이 한 구절로 결론짓자. 사대여몽여환(四大如夢如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