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행록24/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9. 10. 15:57
 

행록 24

53 삼산이 만 겹의 관문을 가두어 버렸다

到大慈하니

慈在方丈內坐어늘

師問, 端居丈室時如何

慈云, 寒松一色千年別이요

野老拈花萬國春이로다

師云, 今古永超圓智體

三山鎖斷萬重關이로다

慈便喝한대

師亦喝하니

慈云, 作麽

師拂袖便去하니라

대자스님이 계신 곳에 갔을 때, 대자스님이 방장실에 앉아 계셨는데 임제스님이 여쭈었다.

“방장실에 단정히 앉아 계실 때는 어떻습니까?”

“추운 겨울에도 소나무는 한결같아서 그 푸른빛이 천 년을 빼어났고, 시골의 노인이 꽃을 꺾어 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고금에 길이 뛰어난 크고 원만한 지혜의 본체여, 삼산(三山)이 만 겹의 관문을 가두어 버렸더라.”

대자스님이 대뜸 “할!”을 하시니, 임제스님도 “할!”을 하셨다.

대자스님이 “어떤가?” 하시니, 임제스님은 소매를 떨치며 가 버렸다.

 

강의 ; 강설은 아무리 잘해봐야 어차피 군더더기다.

혹이다. 군더더기 소리를 부치자면 이렇다.

방장실에 단정히 앉아있는 그 사람을 대자스님과 임제스님이 서로 지극히 절제된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방장실에 단정히 앉아있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사람이다. 불생불멸의 참 생명이다. 사시(四時)의 변화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천 년을 빼어났다는 말은 시간적으로,

온 세계라는 말은 공간적으로 그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또 임제스님이 읊은 “고금에 길이 뛰어난 크고 원만한 지혜의 본체여,”란 말 역시 사람 사람들의 집안에 단정히 앉아 있는 참 부처를 뜻한다.

그는 옛도 아니고 지금도 아니다.

본래로 완전무결하고 원만구족한 지혜의 본체다.

여기서 삼산(三山)이란 신선들이 살기 때문에 속인의 발길이 닫지 않는 전설의 산이다.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빌어서 방장실에 단정히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사람 사람들의 본분의 산,

무위진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사람을 극한의 높이까지 끌어 올려 표현하였다.

그 표현은 둘 다 아름답고 유현하고 고고하지만 말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뒤늦게 그것을 알고는 “할”로써 날려버렸다.

대자스님이 “어떤가?”라는 말에 임제스님은 소매를 떨치며 가버렸다.

참 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