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29 도를 간직하고 뜻대로 살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7:14
29  도를 간직하고 뜻대로 살다   소각 대변(昭覺大辯)스님 
 

 1. 수좌 소각 대변스님이 세속을 떠나 여산(廬山) 서현사(棲賢寺)에 머물면서 항상 대나무 지팡이 하나와 떨어진 짚신 한 켤레만을 지니고 다녔다. 이런 꼴로 구강(九江)을 지나자 동림(東林)의 혼융(混融)스님이 보더니 이렇게 꾸짖었다.
"스님이란 사람들의 모범이다. 행동거지가 이 꼴이니 자신을 경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의 차리는 것이 엉망이구나."
수좌 변(辯)스님은 웃으며 대꾸하였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즐거움이니, 내게 무슨 허물이 있겠읍니까?" 
그리고는 붓으로 게송을 써 놓고 가버렸는데, 그 게송은 이렇다.

날더러 형편없다 흉보지 말라.
형색이 초라하다고 도마저 궁하겠는가.
짚신은 호랑이 같이 사납고
지팡이는 용처럼 꿈틀거리네.
勿謂棲賢窮 身窮道不窮
草鞋獰似虎 杖活如龍
목마르면 조계수(曹溪水) 마시고
배고프면 율극봉(栗棘蓬) 먹는다네.
고지식한 돌대가리여
다들 아상에 빠져 있구나.
渴飮曹溪水 饑呑栗棘蓬
銅頭鐵額漢 盡在我山中
혼융스님은 이를 보고 부끄러워하였다. 『월굴집(月窟集)』

2. 수좌 변(辯)스님이 혼융스님에게 말하였다.
"조각된 용이 비를 뿌릴 수 없듯, 그림 속의 떡으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듯, 납자들이 안에 실다운 덕이 없으면서 밖으로 화려하고 교묘한 것만을 믿는다면, 마치 썩어서 물이 새는 배에다 화려하게 단청을 하고서 허수아비 사공으로 육지에 닿으려는 것과 같다. 이는 실로 구경거리야 되겠지만 물을 건너다 갑자기 풍파라도 만난다면 위태롭지 않겠는가." 『월굴집(月窟集)』

3. 이른바 큰스님이라 하는 이는 부처님을 이어 교화를 드날리는 자이니, 요컨대 자기부터 깨끗이 하여 대중에 임하고 일을 벌이면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해를 따져 마음을 이랬다 저랬다 해서야 되겠는가.
내게 주어진 일을 당연히 이렇게 하면 될 뿐, 성취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는 옛 성인이라도 꼭 기약하지는 못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구차한 말을 하겠는가.

4. 불지(佛智)스님이 서선(西禪)에 살 때였다.
다른 납자들은 제것을 챙기고 정돈하느라 정신없는데, 수암(水庵)스님만은 천성이 조용하고 따뜻하며 자기 몸 봉양하는 데는 지극히 박절하였지만 고고한 모습으로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는 한번도 구차하게 미련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불지스님은 그에게 꾸짖는 투로 말하였다.
"어쩌면 이렇게도 바보스러울까."
수암스님은 대꾸하였다.
"제가 물건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여 정돈할 만한 물건들이 없을 뿐입니다. 
제게도 돈이 있다면 털옷 한두 벌 해 입고 도반들과 함께 어울리겠읍니다만 가난하여 도무지 어찌해 보질 못하겠읍니다."
불지스님은 웃으면서 억지로는 안되겠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드디어는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