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27 시초에서 조심하여 재앙에 대비하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7:10
27  시초에서 조심하여 재앙에 대비하다   수좌 음(踵)스님 
 

1. 만암 도안(萬庵道顔:1094∼1164)스님이 말하였다.
묘희스님이 지난날 경산(徑山)에 머물 때 야참(夜參)하는 차에 다른 몇 종풍(宗風)을 지지하는 논조를 펴다가 조동 종지(曹洞宗旨)에 이르러서는 그칠 줄 몰랐다. 다음날 수좌 음(踵)스님이 묘희스님에게 말하였다.
"세간을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원래 작은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종풍〔宗風〕을 진작하려 한다면 시기를 따라 폐단을 바로 잡을지언정 당장 보아 통쾌하다 해서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스님께서 지난날 납자시절이라 해도 허망하게 다른 종지(宗旨)를 논해서는 아니되거늘, 하물며 지금 보화왕좌(¿華王座)에 올라 선지식이라 일컬어지는 경우에야 더욱 그러하지 않겠읍니까?"
스님은 "하루 저녁 그저 지나가는 말일 뿐이었네"하고 변명하였으나 수좌는 "성현의 학문은 천성에 근본하였읍니다. 이렇게 경솔하게 해서야 되겠읍니까?" 하면서 따졌다.
스님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으나 수좌는 그래도 말을 그치지 않았다.

2.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묘희스님이 형양(衡陽)에 귀양가자 시자 현(賢)스님이 깎아내리는 말을 적어서 큰 방 앞에 걸어보이자 납자들은 부모를 잃은 듯 눈물을 흘리고 근심스럽게 탄식을 하면서 안절부절하였다.
그러자 수좌 음(踵)스님이 대중방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인생의 화환(禍患)이란 구차하게 면하지 못한다. 가령 묘희스님이 평생을 아녀자처럼 아랫자리에 매달려 있으면서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오늘같은 날은 없었으리라. 더구나 옛 성인들에게 부응하는 길은 여기에 그치지 않으니 그대들은 무엇이 괴로와 슬퍼하는가?
옛날 자명(慈明)·낭야(¿)·곡천(谷泉)·대우(大愚)스님이 도반이 되어 분양선소(汾陽善昭:947∼1024)스님을 참례하러 가는데, 마침 서북지방에서 전쟁을 하였으므로 드디어는 옷을 바꿔입고 대열에 끼어서 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경산과 형양은 멀지 않고 길은 막힘이 없으며 산천도 험하지 않다. 묘희스님을 뵙고자 한다면 다시 무엇이 어렵겠는가."
이 말로 온 대중이 잠잠하더니 다음날 줄지어 떠나버렸다. 『여산지림집(廬山智林集)』

3.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묘희스님이 매양현(梅陽縣)으로 오신 일을 가지고 더러 이런저런 말이 있자 수좌 음(踵)스님이 한마디 하였다.
"대체로 사람을 평가하려면 허물있는 가운데서 장점을 찾아야 된다. 어찌 허물이 없는 데서 단점만을 끄집어내려 하는가. 그의 마음은 살피지 않고 자취만 가지고 의심한다면 실로 무엇으로써 총림의 공론을 맞춰주겠는가.
더구나 묘희스님의 도덕과 재주는 천성에서 나왔으며 뜻을 세워 일을 주도함이 의로움을 따를 뿐이다. 스님의 도량은 누구보다도 뛰어난데, 지금 조물주가 억제하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니, 뒷날 스님이 불교 집안의 복이 될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듣고 나서는 사람들이 다시는 거론하지 않게 되었다.

4. 수좌 음(踵)스님이 만암스님에게 말하였다.
"선지식이라 불리우는 자는 마음을 씻어내야 하며, 지극한 공정(公正)으로 사방에서 오는 납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중에 도덕과 인의를 지닌 자가 있으면 원수처럼 틈이 있다 해도 반드시 써주어야 하며, 간사하고 음흉한 자라면 개인적으로 은혜가 있다 해도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그리하여 찾아오는 사람들로 하여 각각 지켜야 할 바를 알아 일심동체가 되게 하면 총림은 안정되리라." 『여묘희집(與妙喜集)』

5. 또 이렇게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주지된 자라면 누구인들 법도와 질서가 반듯한 총림을 세우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총림을 진작시키는 자가 드문 이유는 도덕을 잊고 인의를 폐지하며, 법도를 버리고 개인의 감정에 맡겼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불교가 시들어가는 것을 진정 염려한다면 자기부터 바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고 훌륭한 사람을 선발하여 돕게 하며, 덕망있는 분을 권장하고 소인을 멀리해야 한다. 절약·근검을 자신부터 실천하고 덕과 은혜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채용하여 일 맡고 시중들고 하는 사람들이 덕있는 자를 모시고 아첨하는 자는 멀리할 줄을 알게 되며, 치졸한 비방과 편당(偏黨)하는 혼란이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마조(馬祖)·백장(百丈)스님과도 짝이 될 수 있고, 임제(臨濟)·덕산(德山)스님의 경지에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지림집(智林集)』

6. 수좌 음(踵)스님이 말하였다.
"옛날 성인은 재앙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하늘은 어찌 이 못난 놈을 버리시는가' 하고 탄식하였다. 범문자(范文子)는 말하기를 `성인만이 안팎에 환란이 없을 수 있으니, 스스로가 성인이 아니고서야 바깥이 편안하면 반드시 마음이 근심스럽다' 하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어질고 총명한 이는 환란을 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시초부터 조심하여 스스로 방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약간의 근심과 수고로움이 있다 해도 반드시 진정한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재앙·근심·비방·모욕은 아마 요순(堯舜) 같은 성인이라 해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 나머지의 경우이겠는가." 『여묘희서(與妙喜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