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입출식념경(入出息念經)

13. 心念處에 대한 가르침

通達無我法者 2007. 12. 7. 11:55

13. 心念處에 대한 가르침

 

비구들이여, 때에 다라서 '나는 마음을 깨달아 받아들이면서 입식하겠노라.'하고 익히고, '나는 마음을 깨달아 받아들이면서 출식하겠노라.'하고 익히고, '나는 마음을 지극히 기쁘게 하면서 입식하겠노라.'하고 익히고, '나는 마음을 지극히 기쁘게 하면서 출식하겠노라.'하고 익히고, '나는 마음을 고정하면서 입식하겠노라.'하고 익히고, '나는 마음을 고정하면서 출식하겠노라.'하고 익히고, '나는 마음을 해탈하면서 입식하겠노라.'하고 익히고, '나는 마음을 해탈하면서 출식하겠노라.'하고 익힌다. 이와 같이 마음을 따라서 관하면 그때에 비구여, 전일한 정진과 올바른 앎과 생각함이 있고,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조복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생각함을 잃거나 옳지 않은 앎이 있는 입출식념의 수습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음을 따라서 관하면 전일한 정진과 올바른 앎, 생각함이 있고,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조복하여 머문다.

해설
마음을 따라서 관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마음은 항상 움직이면서 변하므로 무상하다. 마음은 마치 숨의 들어오고 나감과 같이 항상 움직이면서 생과 멸을 되풀이한다.

마음의 실상은 호흡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마음과 호흡이 하나가 된 세계에서는 호흡의 출입식이 무상하면 마음도 무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흡의 무상함을 알면 마음의 무상함도 알게 된다. 마음은 볼 수도 없고 만질수도 없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다. 마음과 호흡이 같이 하고 있을 때에는 마음도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을 깨달아서 아는 것은 관이라고 한다. 마음은 이처럼 실체가 없으면서도 있으며 항상 움직이고 있다. 마음에는 기쁨이 있고 고정된 적정의 상태와 해탈도 있다. 이와 반대로 마음에는 괴로움과 산란함도 있으며 집착의 매임도 있다. 마음의 실상을 알면 마음의 본래 상태가 기쁨이고 적정이며 해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되었을 때는 괴롭고 산란해지며 집착에 매인다. 그러므로 수행은 본래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흔히 본래의 마음은 청정하다고 한다. 청정은 곧 기쁨이요 적정이며 해탈이다. 마음의 조복과 신심이 청정이라고 말해진다. 번뇌가 조복되고 고가 없으니 기쁨이요, 무루(無漏)의 본심에 돌아왔으니 적정이요, 다시는 윤회에 들지 않으니 해탈이다.

마음은 몸을 떠나서 있을 수 없다. 몸이 호흡을 떠나서 있을 수 없듯이, 그러므로 호흡과 마음이 청정한 세계에 머물면 열반이다.

호흡은 몸을 건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안정시킨다. 마음의 안정은 이런 기쁨이나 적정, 해탈에 이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일시적인 안정은 안정이 아니다. 호흡이 나를 떠나지 않고 마음이 나를 떠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이런 세계로 나가게 된다. 그래서 《안반수의경》에서는 자신으로 돌아온 환(還)에서 정(淨)으로 나간다고 했다. 환이란 주체의 확립이다. 주체가 확립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주와 객이 둘이 아닌 세계로 나가게 된다. 무아는 확립된 주체를 통해서 주체가 객체와 하나가 되어 주와 객을 나눌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주와 객이 자재롭게 조화되는 세계이다. 무아는 주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있으면서 없는 것이다. 무아(無我)는 무심(無心)이다. 무심은 뛰어난 기쁨이 있고 고요함 속에 머물러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