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앙산행위의 깨침

通達無我法者 2007. 12. 14. 17:32

“깨침의 길은 의문 속에 있느니”

선법의 도리 밖에서 찾는건 잘못

글보다 몸으로 불법 깨쳐라 지적

 

앙산행위가 현수교학의 좌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이르는 곳마다 선림이 성행하여 선림종사들의 명성이 자자하였기에 내심으로 못마땅해 하였다. 예전에 함께 공부했던 법량도 선에 입문한 것을 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선자로 있으니까 선종지의 심오한 뜻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없겠는가.” 법량이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 말해주겠네.” 그러자 행위가 말했다. “너 미쳤구나.” 법량이 말했다. “내 미친 행위는 이제 그쳤지만 그대는 지금 막 미친행위가 치성하구나.” 그리고는 법량은 급히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러자 앙산행위는 다른 도반들에게 말했다. “법량은 무척 흡족해 하고 있어. 틀림없이 선법에는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야.” 그리고는 혼자서 남선사를 참방하고 그곳에서 2년 동안 머물렀다.

 

그 동안 남선사의 조실에 들어갈 때마다 남선사는 지긋이 눈을 감고서 양구하였다. 행위가 물었다. “제가 올 때마다 눈을 감는 이유가 뭡니까.” 남선사가 말했다. “마곡선사는 양수가 올 때마다 호미를 들고 풀을 맸었는데 그것으로 양수는 깨칠 수가 있었다. 나는 그대가 올 때마다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다. 그대가 비록 깨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어떤 의심이 생긴다면 충분하지는 않다만 그래도 괜찮다.”

 

이에 행위는 분명하게 이해할 수가 없어서 서쪽으로 가고자 하였다. 어느 날 밤에 한 승과 함께 남선사 곁에 머물게 되었는데 승이 물었다. “법화경에는 ‘일체중생이 읊는 다라니를 이해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다라니의 말이란 무엇입니까.” 이에 남선사가 향로가 있는 곳을 바라보자 승은 향로에 손을 대고는 불기운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불기운은 없었다. 그러자 곧장 향을 하나 사루어 놓고는 제자리에 가 있었다. 그러자 남선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 다라니이니라.” 행위가 놀라면서도 기뻐서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겠습니까.” 남선사는 승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했다. 승이 발을 내리고는 물러났다. 그러자 남선사가 말했다. “만약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대가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겠는가.” 이에 행위가 비로소 깨침을 얻었다.

 

앙산행위(仰山行偉, 1016~1080)는 황룡혜남의 제자이다. 처음에는 현수법장의 화엄교학을 강의하였다. 남방으로 유행을 하였는데 선림이 크게 성황을 이루고 있음을 알고는 교학을 버리고 강서의 황벽산에 있던 혜남선사에게 참하였다. 그곳에서 6년의 수행을 하여 깨침을 얻고 혜남선사가 입적하자 앙산으로 가서 그곳에 주석하였다. 남선사는 황룡혜남으로서 임제종의 제8대 조사이면서 황룡파의 개조이다.

 

법량이 말한 ‘내가 죽은 후에 말해주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의 선법의 도리를 단적으로 피력한 것이다. 그러나 행위는 그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궁구하려고 그 동안 공부해오던 화엄교학을 그만두고 마침내 선에 입문하게 되었다. 또한 법량의 ‘내 미친 행위는 이제 그쳤지만 그대는 지금 막 미친행위가 치성하구나’라는 선법을 더욱더 분명하게 제시한 말이었다. 미쳤다는 것은 깨침을 밖에서 추구하려는 행위로서 번뇌와 잡념을 그만두고 마음속으로 추구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법량은 행위에게 글을 통하여 불법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대하여 살짝 코멘트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행위는 근기가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몸소 선법을 배우려고 황룡혜남의 법석에 참여했다. 혜남은 일상의 도리를 그대로 깨침으로 간주라는 조사선법의 실천자였다. 향을 피우는 향로에는 향이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도리를 연출하여 행위의 마음에 깨침의 불을 지펴주고 있다. 이에 행위는 그 불이 무엇인지를 알기는 하겠는데 분명하지 않자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였다. 혜남은 그와 같은 의문으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행위의 깨침이라는 것을 지적해주고 있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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