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유가사지론 제 10 권

通達無我法者 2007. 12. 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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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지론 제 10 권
  
  
  미륵보살 지음
   삼장법사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3) 유심유사 등 3지 ⑦
  
  욕애(欲愛)란 무엇인가?
  욕계(欲界)의 제 행(行)을 연(緣)으로 하여 생기는 것이며, 욕계에서 염오(染汚)의 희구(希求)를 행하여 이것에 의하여 능히 욕계의 고(苦)의 과(果)를 생기게 하는 것을 말한다.
  색애(色愛)란 무엇인가?
  색계(色界)의 제 행(行)을 연(緣)으로 하여 생기는 것이며, 색계에서 염오(染汚)의 희구(希求)를 행하여 이것에 의하여 능히 색계의 고(苦)의 과(果)를 생기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무색애(無色愛)란 무엇인가?
  무색계(無色界)의 제 행(行)을 연(緣)으로 하여 생기는 것이며, 무색계에서 염오(染汚)의 희구(希求)를 행하여 이것에 의하여 능히 무색계(無色界)의 고(苦)의 과(果)를 생기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욕취(欲取)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욕구[諸欲]에 있는 욕탐(欲貪)을 말한다.
  견취(見取)란 무엇인가?
  살가야견(薩迦耶見)을 제외한 그 밖의 견(見)에 있는 욕탐(欲貪)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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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금취(戒禁取)란 무엇인가?
  삿된 원[邪願]에서 일어나게 되는 계금(戒禁)에 있는 욕탐(欲貪)을 말한다.
  아어취(我語取)란 무엇인가?
  살가야견(薩迦耶見)에 있는 욕탐(欲貪)을 말한다.
  처음 것1)은 욕계의 고(苦)의 과(果) 만을 생기게 하며, 나머지 세 가지2)는 모두 3계(界)의 고(苦)의 과(果)를 생기게 한다.
  욕유(欲有)란 무엇인가?
  말하자면 욕계(欲界)의 전시유(前時有)3) 업유(業有) 사유(死有) 중유(中有) 생유(生有) 및 나락가(那落迦) 방생(傍生) 아귀(餓鬼) 인(人) 천(天)의 존재[有]를 총괄적으로 설명하여 욕유(欲有)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먼저 지었던 제 행(行)이 번뇌(煩惱)를 섭수(攝受)함4)으로써 훈습을 일으키는 것[熏發]이다.
  색유(色有)란 무엇인가?
  말하자면 나락가 방생 아귀 인(人)의 존재[有]를 제외한 그 나머지가 색유(色有)인 줄 알아야만 한다.
  무색유(無色有)란 무엇인가?
  말하자면 다시 중유(中有)를 제외한 그 나머지가 무색유(無色有)임을 알아야만 한다.
   무슨 이치 때문에 소위 나락가(那落迦) 방생(傍生) 아귀(餓鬼) 인(人) 천(天)의 유(有)와 업유(業有)와 중유(中有)의 7유(有)를 세우는가?
   세 가지 소작(所作)에 의하기 때문이니, 첫째는 능인(能引)의 유(有)5)
  
1) 욕취(欲取)를 가리킨다.
2)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와 아어취(我語取)를 가리킨다.
3) 본유(本有)를 의미한다.
4) 애취(愛取)의 번뇌에 적셔지는 것[潤]을 말한다. 즉 업(業)이 애취(愛取)의 적셔지는 연[潤緣]을 입어서 장차 과(果)를 초래하려 함을 이름하여 유(有)라고 한다.
5) 업유(業有)를 말한다. 업(業)은 능히 여러 가지 유(有)를 끌기[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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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서 한 가지를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취유(趣有)의 유(有)6)로서 한 가지를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수용과(受用果)의 유(有)7)로서 다섯 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생(生)이란 무엇인가?
  태생(胎生)과 난생(卵生)의 두 가지 생(生)에 있어서 처음 생(生)을 의탁할 때를 말한다.
  등생(等生)이란 무엇인가?
  그 몸[身分]은 완전하게 되었으나 아직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를 말한다.
  취(趣)란 무엇인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말한다.
  기(起)란 무엇인가?
  나오고 나서 증장(增長)하는 것을 말한다.
  출현(出現)이란 무엇인가?
  습생(濕生)과 화생(化生)의 두 가지 생(生)에서 몸[身分]이 갑자기[頓] 생기는 것을 말한다.
  온득(蘊得)이란 무엇인가?
  그 여러 가지 생위(生位)에서 5취온(取蘊)이 구르는 것[轉]을 말한다.
  계득(界得)이란 무엇인가?
  즉 그 제 온(蘊)의 인연에 포함되는 성품[性]을 말한다.
  처득(處得)이란 무엇인가?
  즉 그 제 온(蘊)의 그 밖의 연[餘緣]8)에 포함되는 성품[性]을 말한다.
  제 온(蘊)의 생기(生起)란 무엇인가?
  즉 그 제 온(蘊)이 매일 매일의 음식으로 자라는 것[資長]을 말한다.
  
6) 중유(中有)를 말한다. 중유는 후유(後有)에 나아가는[趣] 유(有)이기 때문이다.
7) 나락가(那落迦) 방생(傍生) 아귀(餓鬼) 인(人) 천(天)의 5취(趣)를 말한다. 5취(趣)는 과보(果報)를 수용(受用)하는 유(有)이기 때문이다.
8) 4연(緣) 가운데에 친인연(親因緣)를 제외한 소연연(所緣緣) 등무간연(等無間緣) 증상연(增上緣)의 세 가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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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근(命根)의 출현(出現)이란 무엇인가?
  즉 그 제 온(蘊)이 그 밖의 수명의 힘 때문에 상속(相續)을 얻어서 머무르는 것을 말한다.
  이 생지(生支)의 약의(略義)란 생(生)의 자성(自性)과 생(生)의 처위(處位)와 소생(所生)과 인연에 포함되는 것[因緣所攝]과 임지로 끈 것[任持所引]과 구생의지(俱生依持)를 말하며, 이를 약의(略義)라고 한다.
  쇠(衰)란 무엇인가?
  의지(依止)9)가 약하기 때문에 그것을 흔들리게 하는 것을 말한다.
  노(老)란 무엇인가?
  머리카락의 빛깔이 쇠하고 변하는 것을 말한다.
  섭(攝)이란 무엇인가?
  피부에 주름살이 지는 것을 말한다.
  숙(熟)이란 무엇인가?
  화력(火力)이 쇠하고 줄어들어서 다시는 욕진(欲塵)을 수용할 세력(勢力)이 없는 것을 말한다.
  기력(氣力)의 손괴(損壞)란 무엇인가?
  성품[性]에 많은 질병이 있어서 사업(事業)을 할 수 있는 세력이 없는 것을 말한다.
  몸에 검은 점이 난다[黑?間身]란 무엇인가?
  암흑(黯黑)이 출현(出現)하여 그 용모[容色]를 해치는 것을 말한다.
  몸의 등이 굽고 숨을 헐떡거림[身背傴曲喘息奔急]이란 무엇인가?
  걸음걸이[行步]의 위의(威儀)인 몸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며, 이것에 의하여 매우 심하게 헐떡거리면서 숨을 마시는[喘嗽] 것을 말한다.
  모습이 앞으로 굽음[形貌嘍前]이란 무엇인가?
  앉아 있는 위의위(威儀位)로서 몸과 머리가 안으로 굽는 것을 말한다.
  지팡이를 의지함[憑據杖策]이란 무엇인가?
  서 있는 위의위(威儀位)로서 지팡이의 힘에 의지하여 서 있는 것을 말한
  
9) 몸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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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혼매(昏昧)란 무엇인가?
  누워 있는 위의위(威儀位)로서 자주 거듭 자는 것을 말한다.
  리열(羸劣)이란 무엇인가?
  이 위(位)10)에 힘이 없어서 빨리 깨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손멸(損滅)이란 무엇인가?
  염혜(念慧)가 쇠퇴(衰退)하는 것을 말한다.
  쇠퇴(衰退)란 무엇인가?
  염혜(念慧)가 약하기 때문에 선법(善法)에 이르러도 현행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제 근의 기숙[諸根耆熟]이란 무엇인가?
  몸이 약해지고 여의어지는 것을 말한다.
  공용의 파괴[功用破壞]란 무엇인가?
  그 경계(境界)에 대하여 다시는 뛰어나지[明利] 않는 것을 말한다.
  제 행이 썩었기 때문[諸行朽故]이란 무엇인가?
  그 후에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를 말한다.
  그 형의 부패[其形腐敗]란 무엇인가?
  수명[壽量]이 다하려고 하여 몸의 형상이 무너지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사업(事業)에 다시는 공능(功能)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 늙음[老]의 약의(略義)란 의지(依止)가 무너져가며[變壞], 수염과 머리카락이 무너져가며, 충열(充悅)이 무너져가며, 화력(火力)이 무너져가며, 무병(無病)이 무너져가며, 색상(色相)이 무너져가며, 위의(威儀)가 무너져가며, 무색(無色)의 제 근(根)이 무너져가며, 유색(有色)의 제 근(根)이 무너져가며, 시분(時分)이 이미 지나갔으며, 수명[壽量]이 다하려는 것을 말하니, 약의(略義)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런 저런 유정[彼彼有情]이란 무엇인가?
  나락가(那落迦) 등을 말한다.
  
10) 혼매(昏昧)할 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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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의 종류[有情種類]란 무엇인가?
  즉 그 일체(一切)를 말한다.
  끝나다[終]란 무엇인가?
  여러 유정들이 뼈 마디[支節]가 풀리면서[離解] 죽는 것을 말한다.
  다한다[盡]란 무엇인가?
  여러 유정들이 뼈 마디[支節]를 풀림으로써 죽는 것을 말한다.
  무너진다[壞]란 무엇인가?
  식(識)이 몸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사라진다[沒]란 무엇인가?
  모든 색근(色根)이 소멸하는 것을 말한다.
  목숨을 버린다[捨壽]란 무엇인가?
  기(氣)가 다하려고 하는 단계[位]를 말한다.
  따뜻함을 버린다[捨煖]란 무엇인가?
  제 온(蘊)을 버리는 움직이지 않는 단계[不動位]를 말한다.
  명근의 사멸[命根謝滅]이란 무엇인가?
  때에 맞게 죽는 것[時死]을 말한다.
  죽는다[死]란 무엇인가?
  갑작스러운 연[橫緣]을 만나서 때에 맞지 않는데[非時] 죽는 것을 말한다.
  시운이 다한다[時運盡]란 무엇인가?
  처음 죽고 나서 아직 오래되지 않은 단계[位]를 말하며, 또한 사마업(死魔業)을 시운이 다한다고도 한다. 이 죽음[死]의 약의(略義)란 죽음[死]과 죽음의 법[死法]과 죽음의 차별과 죽음의 후위(後位)를 말하며, 이를 약의(略義)라고 한다.
  위와 같은 것을 연기의 차별이라고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무슨 인연(因緣) 때문에 무명(無明) 등의 여러 유지(有支)에 이와 같은 차례를 만들어서 설하는가?11)
  
11)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앞에서는 연기(緣起)의 체성(體性) 연기(緣起)의 문(門) 연기(緣起)의 의미[義] 연기의 차별(差別)에 대하여 설하였고 이하는 다섯 번째로 연기(緣起)의 차례[次第]에 대해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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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어리석은 자[愚癡者]는 반드시 먼저 알아야 할 대상[事]에 대해서 어리석어서, 다음에 곧 그것에 대해서 사행(邪行)을 일으키며, 사행(邪行) 때문에 마음으로 하여금 전도(顚倒)하게 하며, 마음이 전도하기 때문에 생을 맺어서 상속하며[結生相續], 생(生)이 상속하기 때문에 제 근(根)이 원만(圓滿)해지며, 근(根)이 원만해지기 때문에 두 가지12) 경계를 수용(受用)하며, 경계를 수용하기 때문에 탐착(耽著)하고 희구(希求)하며, 희구하기 때문에 비로소 구할 때에 번뇌가 무성하게 자라며[滋長], 번뇌가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후유(後有)의 애(愛) 비애(非愛)의 업을 일으키며, 일으킨 업의 무성히 자라는 힘 때문에 5취(趣)의 생사(生死)에서 고(苦)의 과(果)가 생기며, 고(苦)의 과(果)가 생기고 나서 노(老) 사(死) 등의 고(苦)가 있으니, 내신(內身)이 달라져서[變異] 끌어당긴 노(老) 사(死)의 고(苦)와 경계가 달라져서 끌어당긴 우(憂) 탄(歎)의 고(苦)와 열뇌(熱惱)의 고(苦)를 말한다. 그러므로 세존(世尊)께서는 이와 같은 차례로 12지(支)를 설하신 것이다.
  다음에 차례[次第]의 차별(差別)이 있으니, 두 가지 연(緣), 즉 첫째 내신의 연[內身緣]과 둘째 경계를 수용하는 연[受用境界緣]에 의해서 연기(緣起)의 차례[次第]를 건립하는 것을 말한다. 내신의 연[內身緣]이란 앞에 6지(支)에 포함되는 것이며, 경계를 수용하는 연[受用境界緣]이란 뒤의 6지(支)를 포함하는 것이다. 먼저 내신(內身)에 대해서 아집(我執) 등의 어리석음을 일으키고 이것에 의해서 제 업(業)에 의해서 끌어당긴 고(苦)의 과(果)의 이숙(異熟)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업들을 일으키며, 이미 일으키고 나면 곧 그 업(業)들을 따라서 많은 심사(尋思)를 일으킨다. 업(業)과 식(識)과 조반(助伴)에 의하기 때문에 능히 미래[當來]의 세 가지 고(苦)의 과(果)를 부르니, 근(根)이 처음에 일어날 때 포함되는 고(苦)의 과(果)13)와 근(根)이 원만(圓滿)할 때 포함되는 고(苦)의 과(果)14)와 경계를 수용할 때 포함되는 고
  
12) 촉(觸)과 수(受)를 말한다.
13) 12지(支) 가운데 명색(名色)에 배대된다.
14) 12지(支) 가운데 6처(處)에 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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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苦)의 과(果)15)를 말한다. 즉 명색(名色)을 처음으로 하고 촉(觸)을 마지막으로 한다.
  또한 현법(現法)에서 촉(觸)을 의지하고 수(受)를 연(緣)으로 하여 애(愛)를 일으키며, 경계를 수용하는 연[受用境界緣]에 의해서 폭넓게 추구를 일으키니, 어떤 경우에는 사업문(事業門)에 의하고 어떤 경우는 이양문(利養門)에 의하고 어떤 경우는 계금문(戒禁門)에 의하고 어떤 경우는 해탈문(解脫門)에 의해서 욕구(欲求)와 내신구(內身求)와 삿된 해탈구[邪解脫求]를 일으킨다. 이와 같이 구할 때 먼저 일으킨 번뇌와 업(業)이 끌어당긴 5취(趣)의 생사(生死)의 과(果)를 생기게끔 한다. 이미 생기게 되고 나면 노(老) 사(死)가 뒤따른다.
  다시 차례의 차별이 있으니, 첫째는 출세간(出世間)의 청정(淸淨)을 즐기는 것이며, 둘째는 세간(世間)의 청정(淸淨)을 즐기는 것이며, 셋째는 경계를 즐겨 집착하는[樂著] 것이며 세 가지는 유정취(有情聚)에 의하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취(聚)에 의하기 때문에 여러 연기(緣起)들을 멸(滅)하여 백정품(白淨品)을 증장한다.
  두 번째의 유정취(有情聚)에 의하기 때문에 여실하게 여러 진리[諦]의 도리를 알지 못한다. 만약 정념(正念)에 머무르면 어떤 경우는 복업(福業)을 짓고, 어떤 경우는 유루(有漏)의 닦음[修]에서 끌어당긴 부동업(不動業)을 짓는다. 만약 정념(正念)에 머무르지 않으면 곧 비복업(非福業)을 일으키는데, 어떤 경우는 후회[追悔]에서 끌어당긴 것을 일으키고, 어떤 경우는 후회하지 않는 환희(歡喜)에서 끌어당긴 마음을 일으켜서 상속하고 머문다. 그것은 또한 앞과 같이 하(下) 중(中) 상(上)의 생처(生處)16)의 순서대로 능히 미래의 세 가지 고(苦)의 과(果)를 부르니, 명색(名色)을 처음으로 하고 촉(觸)을 마
  
15) 12지(支) 가운데 촉(觸)에 배대된다.
16) 하(下)란 비복업(非福業)으로서 능히 3악취(惡趣)를 부르는 것이며, 중(中)이란 복업(福業)으로서 능히 욕계(欲界)의 인(人) 천(天)의 선취(善趣)를 부르는 것이며, 상(上)이란 부동업(不動業)으로서 능히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생처(生處)를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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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막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의 유정취(有情聚)에 의하기 때문에 현재의 경계를 수용하여 생기게 되는 수(受)에 의하여 현법(現法)에서 앞에서와 같이 뒤의 6지(支)를 일으키니, 수(受)를 처음으로 하고 노(老) 사(死)를 마지막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거꾸로의 차례에서 노(老) 사(死)를 맨 처음으로 하여 여러 연기(緣起)들을 설하는가?17)
   생(生) 및 노(老) 사(死)는 능히 고제(苦諦)를 나타내는 것으로써 진리[諦]를 선설(宣說)하는 도리18)에 의지하기 때문이니, 세존께서 "신명색(新名色)19)이 멸(滅)하는 것을 상수(上首)의 법(法)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무슨 까닭에 무명(無明)들의 멸(滅)을 상수(上首)로 한다고 말씀하지 않았는가?
   심해탈자(心解脫者)에 의하여 시설하기 때문에 그 현법(現法)에 있어서의 종자(種子)의 고(苦)와 미래의 고(苦)의 과(果)가 생기지 않고 멸하므로 명색(名色)을 맨 처음으로 하고 수(受)를 마지막으로 하여 구경(究竟)의 멸(滅)을 얻는다고 설하신 것이다. 또한 현법(現法)에서 여러 가지의 수(受)를
  
17)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연기(緣起)의 체성(體性) 연기(緣起)의 문(門) 연기(緣起)의 의미[義] 연기의 차별(差別) 연기(緣起)의 차례[次第]에 대해서 설하였고 이하는 여섯 번째로 연기(緣起)의 석난(釋難)에 대해서 기술한다.
18) 4제(諦)의 관법(觀法)이란 과(果)를 알고 난 후에 인(因)을 끊는다는 도리에 의해서 고제(苦諦)를 먼저 관(觀)한 후에 집제(集諦)를 관(觀)한다는 것이다.
19) 현재의 식(識) 명색(名色) 6처(處) 촉(觸) 수(受)의 종자는 무시이래(無始以來) 존재하므로 이를 구식(舊識) 또는 구명색(舊名色) 등이라고 하며, 이 종자로부터 새롭게 현행(現行)하는 미래의 생(生) 노사(老死)를 신식(新識) 또는 신명색(新名色) 등이라고 한다. 대개 미래의 생(生) 노사(老死)는 현재(現在)의 식(識) 명색(名色) 등의 종자로부터 현행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서는 오직 명색(名色)이 멸(滅)한다고 하였지만 그 뜻은 식(識) 6처(處) 촉(觸) 수(受)의 4지(支)의 멸(滅)도 포함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명색(名色)의 체(體)는 포괄적으로 식(識) 등의 5지(支)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지 명색(名色)만이 멸한다고 했을지라도 이미 그 밖의 4지(支)의 멸(滅)도 겸하여 설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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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을 때 애(愛)와 수면(隨眠)은 영원히 뽑혀서 일어나지 않는 것을 설명하여 멸(滅)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것20)이 멸하기 때문에 그것을 맨 처음[先]으로 하여 나머지 지(支) 또한 멸한다. 이와 같은 등의 종류가 연기(緣起)의 차례[次第]를 선설(宣說)하는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무슨 까닭에 연기(緣起)를 설하여 연기(緣起)라고 하는가?21)
   번뇌(煩惱)의 계박(繫縛)으로 여러 취(趣)에 나아가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에 연기(緣起)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글자에 의지하여 이름을 해석하는 것이다. 다음에 뭇 연(緣)에 의탁하여 속히 사멸(謝滅)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화합하여 생기기 때문에 연기(緣起)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찰나의 의미[刹那義]22)에 의해서 해석하는 것이다.
  다음에 뭇 연(緣)이 지나갔는데도 버리지 않고 자상속(自相續)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기 때문에 연기(緣起)라고 이름한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기며 그 나머지는 아니다"고 설하신 것과 같다. 이러한 의미[義]에 의지하기 때문에 이름을 해석하는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 수시로 사멸(謝滅)하고 다시 상속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연기(緣起)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수시로 무너지고 수시로 멸하는 의미[數壞數滅義]에 의해서 해석한 것이다.
  다음에 과거세(過去世)에서 연성(緣性)을 깨닫고 나서 똑같이 상속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연기(緣起)라고 이름한다. 세존께서 "나는 이미 깨닫고 나서 바르게 선설(宣說)을 일으킨다. 곧 이것에 의해서 전전(展轉)하며 설을 전한다[傳說]"고 하기 때문에 연기(緣起)라고 이름한다.
   무명(無明)은 행(行)에 대해서 몇 가지의 연(緣)이 되는가?23)
  
20) 애(愛)와 수면(隨眠)을 가리킨다.
21)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앞에서는 연기(緣起)의 체성(體性) 연기(緣起)의 문(門) 연기(緣起)의 의미[義] 연기의 차별(差別) 연기(緣起)의 차례[次第] 연기(緣起)의 석난(釋難)에 대하여 설하였고 이하는 일곱 번째로 연기(緣起)의 석사(釋詞)에 대해서 기술한다.
22) 대중부(大衆部)와 화지부(化地部) 등에서 12연기는 무위법(無爲法)이라고 말하는 주장과 정량부(正量部)의 1기의 사상설[一期四相說]과 구분되는 것이다.
23)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앞에서는 연기(緣起)의 체성(體性) 연기(緣起)의 문(門) 연기(緣起)의 의미[義] 연기의 차별(差別) 연기(緣起)의 차례[次第] 연기(緣起)의 석난(釋難) 연기(緣起)의 석사(釋詞)에 대하여 설하였고 이하는 여덟 번째로 연기(緣起)의 4연(緣)과 2인(因)에 대해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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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가지 색(色)의 행(行)에 대해서는 증상연(增上緣)이 되고, 무색(無色)의 행(行)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등무간연(等無間緣) 소연연(所緣緣) 증상연(增上緣)의 세 가지 연(緣)이 된다. 이와 같이 그 밖의 지(支)의 연(緣)이 되는 많고 적음도 위와 같이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유색(有色)의 지(支)를 유색(有色)의 지(支)에 대하면 하나의 증상연(增上緣)이 되고, 무색(無色)의 지(支)에 대하면 즉 소연연(所緣緣)과 증상연(增上緣)의 두 가지 연(緣)이 된다. 무색(無色)의 지(支)를 유색(有色)의 지(支)에 대하면 오직 한 가지 연(緣)24)이 되고 무색(無色)의 지(支)에 대하면 등무간연(等無間緣) 소연연(所緣緣) 증상연(增上緣)의 세 가지 연(緣)이 된다.
   무슨 까닭에 여러 가지 지(支)들은 서로 대하여[相望] 인연(因緣)이 없는가?
   인연(因緣)은 자체(自體) 종자(種子)의 연(緣)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25)
   여러 가지 지(支)들이 서로 대하여 인연(因緣)이 없다고 한다면 무슨 까닭에 인과(因果)의 체성(體性)에 의지하여 연기(緣起)를 건립한다고 설하는 것인가?
   증상연(增上緣)에 포함되는 인발인(引發因) 견인인(牽引因) 생기인(生起因)에 의지하기 때문에 설하여 인(因)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몇 가지 지(支)가 인인(引因)26)에 포함되는 것인가?
   무명(無明)으로부터 수(受)에 이르기까지이다.
  
24) 증상연(增上緣)을 말한다.
25) 무명(無明)의 종자는 오직 무명만을 생기게 하고 나머지 지(支)를 생기게 하지 않으며, 나머지 지(支) 또한 각각 자체(自體)만을 생기게 하고 다른 지(支)를 생기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6) 생인(生因)에 반대되는 것이다. 이 인인(引因)을 원과(遠果) 잔과(殘果)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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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가지 지(支)가 생인(生因)에 포함되는 것인가?
   애(愛)로부터 유(有)에 이르기까지이다.
   몇 가지 지(支)가 생(生) 인(引)의 두 가지 인과(因果)에 포함되는 것인가?
   현법(現法) 후법(後法)에 있어서 식(識) 등으로부터 수(受)에 이르기까지이며, 생(生) 로(老) 사(死)의 단계[位]에 있어서 포함되는 여러 가지 지(支)이다.
   만약 무명(無明)이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로써 인(因)으로 삼는다고 말한다면 무슨 인연 때문에 연기(緣起)의 가르침에서 먼저 설하지 않았는가?27)
   그것28)은 부단(不斷)의 인(因)이고 잡염(雜染)의 인(因)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어리석지 않은 사람은 이 작의(作意)를 일으키지 않지만 잡염(雜染)의 인(因)에 의하기 때문에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다. 무명(無明)의 자성(自性)은 염오(染汚)이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의 자성(自性)은 염오(染汚)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29)은 무명을 염오할 수 없으나 무명의 힘에 의해서 염오된다. 또한 생(生)의 잡염(雜染)은 업(業)과 번뇌(煩惱)의 힘에 의해 훈습이 일어나게[熏發] 되지만 업(業)의 초인(初因)을 초연기(初緣起)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를 설하지 않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자체(自體)를 자체의 연(緣)이라고 설하지 않는가?
   그 자체가 만약 다른 연(緣)을 만나지 않으면 자체에서 잡염(雜染)을 키울[增長] 수가 없고 또한 줄일[損減]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설하지 않
  
27)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앞에서는 연기(緣起)의 체성(體性) 연기(緣起)의 문(門) 연기(緣起)의 의미[義] 연기의 차별(差別) 연기(緣起)의 차례[次第] 연기(緣起)의 석난(釋難) 연기(緣起)의 석사(釋詞) 연기(緣起)의 4연(緣)과 2인(因)에 대하여 설하였고 이하는 아홉 번째로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해서 기술한다. 먼저 이 서른 가지의 분별연(分別緣) 가운데 첫 번째로 12지(支)의 상호 연관되는 2지(支)에 대하여 밝힌다.
28)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不如理作意]를 말한다.
29) 불여리작의(不如理作意)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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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것이다.
   무슨 인연 때문에 복행(福行)과 부동행(不動行)은 바른 간택(簡擇)의 공력(功力)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이에 무명을 연(緣)으로 한다고 설하는가?
   세속의 고(苦)의 인(因)을 요달(了達)하지 않는 것이 연(緣)이 되어서 비복행(非福行)을 일으키고, 승의(勝義)의 고(苦)의 인(因)을 요달(了達)하지 않는 것이 연(緣)이 되어서 복(福)과 부동행(不動行)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그것30)은 무명으로써 연(緣)이 된다고 설하는 것이다.
   경(經)에서 설했듯이, 제 업(業)은 탐(貪) 진(瞋) 치(癡)를 연(緣)으로 삼는다고 하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오직 치(癡)만이 연(緣)이 된다고 설하는가?
   여기에서는 복(福) 비복(非福) 부동업(不動業)의 연(緣)을 통틀어 설한 것이니, 탐(貪) 진(瞋) 치(癡)의 연(緣)은 비복(非福)의 업(業)만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신업(身業) 어업(語業)은 사업[思]에서 일으킨 것이며, 이것은 곧 행(行)도 또한 행(行)에 연(緣)인데 무슨 까닭에 단지 무명(無明)이 행(行)에 연(緣)이라고만 설하는가?
   일체(一切)의 행(行)을 일으키는 연(緣)에 의해서 설하기 때문이며, 또한 선(善)과 염오(染汚)의 사(思)를 일으키는 연(緣)에 의해서 설하기 때문이다.
   식(識)도 또한 명색(名色)을 연(緣)으로 하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단지 행(行)을 연(緣)한다고만 설하는가?
   행(行)은 식(識)의 잡염(雜染)에 연(緣)이 되고 후유(後有)의 과(果)를 능히 이끌며 능히 생기게 하기 때문에 명색(名色)이 소의(所依) 소연(所緣)이 되어 일어나는 연(緣)인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명색(名色)도 또한 대종(大種)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촉(觸)에 의해서 생기는 것인데, 무슨 까닭에 단지 식(識)만을 연(緣)으로 한다고 설하는가?
   식(識)은 그것의 친생인(親生因)이 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생기고 나서
  
30) 복행(福行)과 부동행(不動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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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은 바로 생길 때에 대종(大種)과 촉(觸)은 오직 능히 그것을 위해서 건립인(建立因)이 될 뿐이다.
   경(經)에서 설했듯이, '6계(界)31)를 연(緣)으로 하여 모태(母胎)에 들어간다'고 하였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오직 식계(識界)만을 설하는가?
   만약 식계(識界)에 있으면 모태(母胎)에서 결정적으로 정혈(精血)과 대종(大種)과 복혈(腹穴)을 빠뜨리지 않기 때문이며, 식계(識界)가 뛰어나기[勝] 때문이며, 또한 일체(一切)의 생(生)과 일체(一切)의 유(有)가 생길 때에 의하여 설하기 때문이다.
   6처(處) 또한 음식(飮食)을 연(緣)으로 하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단지 명색(名色)을 연(緣)으로 한다고만 설하는가?
   여기에서 명색(名色)은 그것32)의 생인(生因)임을 설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생기고 나면 역시 음식을 임지인(任持因)으로 삼기 때문이다.
   촉(觸)은 세 가지의 화합[三和]을 연(緣)으로 하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단지 6처(處)를 연(緣)으로 한다고만 설하는가?
   만약 6처(處)가 있으면 반드시 나머지 두 가지가 있어서 빠뜨리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6처(處)가 뛰어나기[勝] 때문이며, 6처(處)는 두 가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핍박받는 것[自所逼迫]이거나 남에 의해 핍박받는 것[他所逼迫]이거나, 때[時]를 기다려[候] 달라지거나[變異], 선업으로 끌어당긴 것[先業所引]이 모두 수(受)를 생기게 할 수 있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단지 촉(觸)이 그것의 연(緣)이 되는 것만을 드러내는가?
   촉(觸)은 그것의 근인(近因)이기 때문에, 촉(觸)으로 끌어당긴 것[所引]이기 때문에, 나머지 연(緣)에서 생기게 되는[所生] 수(受)도 또한 촉(觸)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촉(觸)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치우치게 설하는 것이다.
   경(經)에서 또한 무명(無明)을 연(緣)으로 하여 애(愛)를 생기게 하며, 애(愛)에 따르는 경계(境界) 또한 연(緣)이 될 수 있다고 설하는데, 무슨 까
  
31)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 식계(識界)를 말한다.
32) 6처(處)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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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에 여기에서는 단지 수(受)가 연(緣)이 된다고만 설하는가?
   수의 힘[受力] 때문에 상사(相似)의 경(境)33)에서 어떤 경우는 화합을 구하고 어떤 경우는 분리[乖離]를 구한다. 단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수(受)의 상(相)에 대하여 여실하게 알지 못하는 우치력(愚癡力) 때문에 이것에 의하여 능히 그 마음을 제어(制御)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끊어지지 않은 수면(隨眠)에 의하여 그것34)을 따르는 제 법(法)에 취(取)가 모두 생길 수 있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애(愛)는 취(取)의 연(緣)이 된다고만 설하는가?
   희망(希望)에 의하여 생기기 때문에 추구(追求)할 때에 능히 수면(隨眠)을 일으키는 것이며, 그것에 수순(隨順)하는 법(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미 무명(無明)이 연(緣)이 되어서 업유(業有)을 일으킨다고 설하였는데, 무슨 까닭에 지금 취(取)만이 유(有)의 연(緣)이 된다고 설하는가?
   취력(取力) 때문에 곧 그 업으로 하여금 이런 저런 생처(生處)에서 식(識) 명색(名色) 등의 과(果)를 능히 끌어당기는 것이다.
   생(生) 또한 정혈(精血)을 연(緣)으로 하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유(有)만이 생(生)의 연(緣)이 된다고 설하는가?
   유(有)가 있기 때문에 필히 나머지 연(緣)도 빠짐없이 있는 것이며, 또한 유(有)가 뛰어나기 때문에 오직 그것만이 연(緣)이 된다고 설한 것이다.
   원행(遠行)과 불평등(不平等)을 피하지 않는 것과 남으로부터 핍박받은 것[他所逼迫]이 연(緣)이 되기 때문에 노(老) 사(死)를 얻게 되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단지 생(生)만이 노(老) 사(死)의 연(緣)이 된다고 설하는가?
   비록 그 여러 가지 연(緣)에 의한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생(生)을 근본
  
33) 수(受)의 경(境)과 애(愛)의 경(境)이 매우 비슷[相似]한 것을 말한다. 낙수(樂受)의 경(境)에서는 화합하려고 하고, 고수(苦受)의 경(境)에서는 떨어지려고 하기 때문에 상사(相似)의 경(境)이라고 이름한다.
34) 수면(隨眠)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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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根本)으로 하기 때문이며, 비록 그35) 연(緣)들을 빠뜨리고 오직 생(生)만을 연(緣)으로 할지라도 반드시 노(老) 사(死)가 있기 때문이다.
   이 12지(支)는 몇 가지가 번뇌도(煩惱道)이며, 몇 가지가 업도(業道)이며, 몇 가지가 고도(苦道)인가?36)
   세 가지가 번뇌도(煩惱道)이며, 두 가지가 업도(業道)이며, 그 나머지는 고도(苦道)이다.
   몇 가지가 오직 인(因)에만 속하고, 몇 가지가 오직 과(果)에만 속하며, 몇 가지가 오직 인(因) 과(果)에 통하는가?37)
   맨 처음 것38)은 인(因)에만 속하고, 다음의 하나39)는 과(果)에만 속하며, 그 나머지 것은 인(因) 과(果)에 통한다. 또한 이 질문에 대하여 다시 다른 대답[答]을 할 수 있으니, 세 가지는 오직 인(因)에만 속하고, 두 가지는 오직 과(果)에만 속하며, 그 나머지는 인(因)이면서 과(果)인 줄 알아야만 한다.
   몇 가지가 독상(獨相)이며, 몇 가지가 잡상(雜相)인가?40)
   세 가지가 독상(獨相)이며, 행(行) 등은 잡상(雜相)이다.
   무슨 까닭에 행(行)과 유(有)는 잡상(雜相)인가?
   두 가지에 의하여 설하기 때문이니, 말하자면 애(愛)와 비애(非愛)의 과(果)를 능히 끌어당기기 때문이며, 또한 능히 취(趣)의 차별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35) 원행(遠行)과 불평등(不平等)을 피하지 않는 것과 남으로부터 핍박받은 것[他所逼迫]을 가리킨다.
36)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그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두 번째로 연기지(緣起支)와 3도(道)와의 관련을 밝힌다.
37)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그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세 번째로 각각의 연기지(緣起支)와 인과(因果)의 관련을 밝힌다.
38) 무명(無明)을 말한다.
39) 행(行)을 말한다.
40)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그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네 번째로 연기지(緣起支)의 독상(獨相)과 잡상(雜相)의 구분에 대하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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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까닭에 식(識)과 명색(名色)과 6처(處)의 일부분은 잡상(雜相)인가?
   세 가지에 의하여 설하기 때문이니, 말하자면 잡염(雜染)할 때[時]에 의하기 때문이며, 윤택할[潤] 때[時]에 의하기 때문이며, 구를[轉] 때[時]에 의하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식(識)부터 수(受)까지와 노(老) 사(死)는 잡상(雜相)인가?
   두 가지에 의하여 설하기 때문이니, 말하자면 낱낱이 고(苦)의 상(相)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끌어당김[引]과 생겨남[生]의 차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다음에41) 연기(緣起) 가운데에 삭왕(數往)의 의미[義]란 무엇을 말하는가?
  생기고 나서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義]를 말한다.
  화합(和合)의 의미[義]란 무엇을 말하는가?
  여러 가지 연(緣)의 취집(聚集)의 의미[義]를 말한다.
  기(起)의 의미[義]란 무엇을 말하는가?
  여러 가지 연(緣)이 화합하여 서로 끌어당겨서[引攝] 새롭게 생기는 의미[義]를 말한다.
  연기(緣起)란 무엇을 말하고, 연생(緣生)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제 행(行)이 생겨서 일어나는 법성(法性)을 연기(緣起)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곧 그것42)이 일어나고 나면 연생(緣生)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몇 가지 지(支)가 고제(苦諦)에 포함되면서 현법(現法)에 고(苦)가 되는가?43)
   두 가지이니, 생(生)과 노(老) 사(死)를 말한다.
  
41)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의 내용으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다섯 번째로 경(經)에서 말한 연기(緣起) 명의(名義)에 대하여 해석한다.
42) 연기(緣起)를 가리킨다.
43)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여섯 번째로 4제(諦)와의 관련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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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가지 지(支)가 고제(苦諦)에 포함되면서 미래[當來]의 고(苦)가 되는가?
   식(識)으로부터 수(受)에 이르기까지의 종자(種子)의 성품[性]이다.
   몇 가지 지(支)가 집제(集諦)에 포함되는가?
   그 밖의 지(支)이다.
   무명(無明)은 행(行)에게 구유연(俱有緣)이 되는 것인가, 등무간연(等無間緣)이 되는 것인가, 구원멸연(久遠滅緣)이 되는 것인가?44)
   3연(緣)이 모두 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무지(無知)에 의해서 제 행(行)을 수순하는 법(法)에 구유복장(俱有覆障)의 연(緣)이 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대상[事]에 대하여 제 행(行)을 일으키는 것이며, 또한 악견(惡見)과 방일(放逸)이 함께 작용하는 무지(無知)에 의해서 무간멸(無間滅)이 일어나는데[生起]에 연(緣)이 되어서 제 행(行)을 일으키는 것이며, 또한 무지에 의해서 구원멸(久遠滅)이 인발(引發)하는 데에 연(緣)이 되기 때문에 그것에 따른 미래 생[當生]의 상속(相續)을 건립하는 것이다.
   어떻게 제 행(行)이 식(識)에 대하여 세 가지 연(緣)이 되는지 알아야만 하는가?
   능히 그것의 종자(種子)를 훈발(熏發)하기 때문에 구유연(俱有緣)이 되며, 그 다음으로 그것의 세력에 의하여 구르기 때문에 무간멸(無間滅)이 일어나는데[生起]에 연(緣)이 되며, 그것에 의하여 미래[當來]의 과(果)가 생기기 때문에 구원멸(久遠滅)이 인발(引發)하는 데에 연(緣)이 된다.
  행(行)이 식(識)에 대한 것이 위와 같듯이 식(識)이 명색(名色)에 대하는 것과 명색(名色)이 6처(處)에 대하는 것과 6처(處)가 촉(觸)에 대하는 것과 촉(觸)이 수(受)에 대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어떻게 수(受)가 애(愛)에 대하여 세 가지 연(緣)이 되는지 알아야만 하는가?
   그것에 의하여 애착(愛著)을 일으키기 때문에 구유연(俱有緣)이 되며,
  
44)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일곱 번째로 각각의 지(支)와 3연(緣)의 관계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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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으로부터 곧바로[無間] 그것의 세력으로 추구(追求) 등의 작용(作用)을 일으켜 구르기 때문에 무간멸(無間滅)이 일어나는데[生起]에 연(緣)이 되며, 미래[當來]를 건립하여 그것의 상속(相續)으로부터 벗어나기[解脫] 어렵기 때문에 구원멸(久遠滅)이 인발(引發)하는 데에 연(緣)이 됨을 알아야만 한다.
   어떻게 애(愛)가 취(取)에 대하여 세 가지 연(緣)이 되는가?
   욕탐(欲貪)과 함께 작용하여 취(取)를 수순하는 법(法)에 대하여 안립하려고 욕락(欲樂)하기 때문에 구유연(俱有緣)이 되며, 등무간(等無間)의 세력(勢力)에 의하여 구르기 때문에 생기연(生起緣)이 되며, 미래[當來]를 건립하여 그것의 상속으로부터 벗어나기[解脫] 어렵기 때문에 구원멸(久遠滅)이 인발(引發)하는 데에 연(緣)이 된다.
   어떻게 취(取)가 유(有)에 대하여 세 가지 연(緣)이 되는가?
   그것과 함께 함으로써 업(業)으로 하여금 제 취(趣)45)의 과(果)를 부르기 때문에 구유연(俱有緣)이 되며, 그것의 세력에 의하여 이 태어난 곳[生處]에서 능히 식(識) 등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무간멸(無間滅)이 일어나는 데[生起]에 연(緣)이 되며, 또한 그 계(界)의 공능(功能)을 끌어당겨 일으키기[引發] 때문에 구원멸(久遠滅)이 인발(引發)하는 데에 연(緣)이 된다.
   어떻게 유(有)가 생(生)에 대하여 세 가지 연(緣)이 되는가?
   그것의 종자(種子)를 훈발(熏發)하기 때문에 구유연(俱有緣)이 되며, 그것의 세력이 곧바로[無間] 따라 구르기[隨轉] 때문에 생기연(生起緣)이 되며, 비록 오래 전[久遠]에 멸했을지라도 과(果)가 구르기 때문에 인발연(引發緣)이 된다.
  유(有)가 생(生)에 대한 것과 같이 생(生)이 노(老) 사(死)에 대하여 연(緣)이 되는 것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46) 유지(有支)를 건립하는 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뛰어난 부분[勝分]47)에 나아가 건립하는 것이니, 취(取)에 섭수되는 업(業)을 말하며,
  
45) 5취(趣)를 말한다.
46)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여덟 번째로 유지(有支)의 승분(勝分)과 전분(全分)을 밝힌다.
47) 뛰어나다는 것[勝]에 대해서 오직 업(業), 즉 두번째의 행지(行支)만을 열번째의 유지(有支)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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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이미 말한 것과 같다. 둘째는 전체적인 부분[全分]48)에 나아가 건립하는 것이니, 업(業) 및 식지[識]에서부터 수지[受]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종자(種子)가 취(取)에 섭수(攝受)되는 것을 건립하여 유(有)라고 하는 줄 알아야만 한다.
   이 여러 유지(有支)들은 오직 다음 차례[次第]의 행(行)에게만 연(緣)이 되어 노(老) 사(死)까지에만 이르는 것인가, 곧 다른 업용(業用)이 있는 것인가?49)
   곧 이 업용과 각기 다른 작용의 대상인 경(境)에서 그 상응하는 것과 같이 모든 업용(業用)도 알아야만 하리니, 이를 제 2의 업용(業用)이라고 이름한다.
   무명은 행(行)에게만 연(緣)이 되는가, 다른 지(支)에게도 연(緣)이 되는가?
   무명(無明)은 노(老) 사(死)에 이르기까지에도 연(緣)이 되지만 앞에서 오직 행(行)에게만 연(緣)이 된다고 말한 것은 단지 가까운 연[近緣]의 의미만을 설한 것이다. 나머지 것도 모두 이와 같이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 뒤에 있는 지[後支]는 앞에 있는 지[前支]의 연(緣)이 아니다. 왜냐 하면 뒤에 있는 지[後支]를 끊기 위하여 부지런히 공용(功用)을 지으면 앞에 있는 지[前支]에서 끊어지듯이, 앞이 끊어졌기 때문에 뒤도 또한 따라서 끊어지며 앞을 끊기 위하여 부지런히 공용(功用)을 지어서 뒤에 있는 지[後支]에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50)만이 저것51)의 연(緣)이 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48) 실의(實義)에 의거하여 업(業)에다 식지(識支)에서부터 수지(受支)까지의 다섯 가지를 합한 여섯 종자(種子)가 취(取)로 말미암아 자윤(滋潤)되는 것을 바꿔 이름하여 유(有)라고 하고 열 번째의 유지(有支)를 세운다.
49)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그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아홉 번째로 각 지(支)의 업용(業用)에 대하여 밝힌다.
50) 앞에 있는 지[前支]를 가리킨다.
51) 뒤에 있는 지[後支]를 가리킨다.
 
[294 / 829] 쪽
   어찌하여 (경[經]에서)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此有故彼有]'고 말씀하시는가?52)
   아직 끊어지지 않은 연[未斷緣]에 의하여 그 나머지 것이 생기게 되는 의미[義]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경[經]에서)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此生故彼生]'고 말씀하시는가?53)
   무상연(無常緣)에 의하여 그 나머지 것이 생기게 되는 의미[義]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경[經]에서) '생이 있기 때문에 노사가 있으며[有生故有老死], 반드시 생연(生緣)에 의하여 노사(老死)가 있으며, 이와 같이 내지 무명(無明)이 행에 대한다'고 말씀하시는가?
   이 말씀[言敎]의 도리에 의해서 실체가 없이 작용하는 연[無實作用緣]으로부터 그 나머지 것이 생기게 되는 의미[義]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경[經]에서) '생이 있기 때문에 노사가 있으며[有生故有老死], 생(生)의 연(緣)을 떠나서는 노사(老死)가 있지 않으며, 이와 같이 내지 무명은 행(行)에 대한다'고 말씀하시는가?54)
   이 말씀[言敎]의 도리에 의해서 자상속연(自相續緣)으로부터 곧 자상속(自相續)의 그 나머지 것이 생기게 되는 의미[義]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만약 무명(無明)이 연(緣)이 되는 법(法)이면 그 법은 행(行)인가? 가령 행(行)이라면 그 무명(無明)은 연(緣)이 되는가?55)
   4구(句)를 지어야 한다. 혹 어떤 행(行)은 무명이 연(緣)이 되지 않으니, 무루(無漏)와 무부무기(無覆無記)의 신(身) 어(語) 의행(意行)을 말한
  
52)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열 번째로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등의 경문(經文)에 대하여 해석한다. 이는 무작연생(無作緣生)을 현시하는 부분이다.
53) 무상연생(無常緣生)을 현시하는 부분이다.
54) 세용생(勢用生)의 뜻을 현시한다.
55)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열 번째로 각 지(支)의 연(緣)의 관계를 4구(句)의 분별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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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혹 무명이 연(緣)이 되면서 행(行)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행(行)에 포함되는 유지(有支)를 제외한 그 밖의 유지(有支)를 말한다. 혹 무명이 연(緣)이 되면서도 행(行)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 복(福) 비복(非福) 부동(不動)의 신(身) 어(語) 의행(意行)을 말한다. 이와 같은 상(相)을 제외한 것이 네 번째의 구(句)이다.
   행(行)이 연(緣)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식(識)인가? 가령 식(識)이라면 행(行)이 연(緣)이 되는가?
   4구(句)를 지어야 한다. 혹 행(行)이 연(緣)이 되면서도 식(識)이 아닐 경우가 있으니, 식(識)을 제외한 그 밖의 유지(有支)를 말한다. 혹 식(識)이면서 행(行)이 연(緣)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숙생(異熟生)을 제외한 무루(無漏)의 식(識)과 무부무기(無覆無記)의 식(識)을 말한다. 혹 식(識)이면서 행(行)이 연(緣)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 후유(後有)의 종자식(種子識)과 과식(果識)을 말한다. 이와 같은 상(相)을 제외한 것이 네 번째 구(句)이다.
  이러한 도리(道理)에 의하여 내지 촉(觸)이 수(受)에 연(緣)이 되는 것도 그 상응하는 것에 따라서 4구(句)로 알아야 한다.
   수(受)가 연(緣)이 되는 것은 모두 애(愛)인가? 가령 애(愛)라면 모두 수(受)가 연(緣)이 되는가?
   4구(句)를 지어야 한다. 혹 애(愛)이면서도 수(受)가 연(緣)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승(勝)56) 해탈(解脫)57)을 희구(希求)하거나 선애(善愛)에 의지하여 그 밖의 애(愛)를 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혹 수(受)가 연(緣)이 되는 것이면서도 애(愛)가 아닌 경우가 있으니, 무명촉(無明觸)에서 생겨나는 수(受)가 연(緣)이 되는 것을 제외한 그 밖의 유지(有支)의 법(法)에서 생기는 것을 말한다. 혹 수(受)가 연(緣)이 되는 것이면서 애(愛)인 경우가 있으니, 무명촉(無明觸)에서 생기게 되는 수(受)가 연(緣)이 되어서 염오(染汚)의 애(愛)가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이와 같은 상(相)을 제외한 것이 네 번째 구(句)이다.
  
56) 8승처(勝處)를 말한다.
57) 8해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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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애(愛)가 연(緣)이 되는 것은 모두 취(取)인가? 가령 취(取)라면 모두 애(愛)가 연(緣)이 되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후구를 따름[順後句]58)을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모든 취(取)는 다 애(愛)가 연(緣)이 되는 것이다. 혹 애(愛)가 연(緣)이 되는 것이면서 취(取)가 아닌 경우가 있으니, 취(取)를 제외한 그 밖의 유지(有支)와 선애(善愛)를 연(緣)하여 부지런히 정진(精進)하는 등의 여러 선법(善法)을 생기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만약 취(取)가 연(緣)이 되는 것은 모두 유(有)인가? 가령 유(有)라면 모두 취(取)가 연(緣)이 되는가?
   역시 후구를 따라서 (답을) 하겠다. 말하자면 모든 유(有)는 다 취(取)가 연(緣)이 되는 것이다. 혹 취(取)가 연(緣)이 되는 것이면서 유(有)가 아닌 경우가 있으니, 유(有)를 제외한 그 밖의 유지(有支)를 말한다.
   만약 유(有)가 연(緣)이 되는 것은 모두 생(生)인가? 가령 생(生)이라면 모두 유(有)가 연(緣)이 되는가?
   여러 가지 모든 생(生)은 다 유(有)가 연(緣)이 된다. 혹 유(有)가 연(緣)이 되는 것이면서 생(生)이 아닌 경우가 있으니, 생(生)을 제외한 그 밖의 노사(老死)의 마지막 유지(有支)를 말한다.
   만약 생(生)이 연(緣)이 되는 것은 모두 노사(老死)인가? 가령 노사(老死)라면 모두 생(生)이 연(緣)이 되는가?
   모든 노사(老死)는 다 생(生)이 연(緣)이 된다. 혹 생(生)이 연(緣)이 되는 것이면서 노사(老死)가 아닌 경우가 있으니, 소위 질병(疾病)과 원수와 만나는 일[怨憎合會]와 친애하는 이와 떨어지는 일[親愛別離]과 구하는 것이 따르지 않는 것[所求不遂] 및 거기에서 일어나게 되는 수탄(愁歎)과 우고(憂苦)와 갖가지 열뇌(熱惱)이다.
   이 여러 가지 유지(有支)는 몇 가지가 도지(道支)에 포함되는 정견(正
  
58) 넓은 내용[寬]으로써 좁은 내용[狹]을 물으면 후구를 따라서 대답하는 것[順後句答]이며, 좁은 내용[狹]으로써 넓은 내용[寬]을 물으면 전구를 따라서 대답하는 것[順前句答]이며, 서로간에 넓은 것과 좁은 것이 있으면 4구로 분별하여 대답하는 것[四句分別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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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見)에게 뛰어난 장애[勝障礙]가 되는가?59)
   무명(無明)과 그것으로 일어나게 되는 의행(意行)이 일부분[一分]이라도 있으면 능히 뛰어난 장애[勝障]가 된다. 정견(正見)에서 이와 같듯이 정사유(正思惟)와 정정진(正靜進)에서도 그러하다. 만약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일 경우는 신행(身行)과 어행(語行)이 일부분이라도 있으면 뛰어난 장애[勝障礙]가 된다. 만약 정명(正命)과 정정(正定)의 경우는 그 밖의 유지(有支)로써 뛰어난 장애가 됨을 알아야만 한다.
   이 여러 가지 유지(有支)들은 몇 가지가 잡염품(雜染品)에만 속하고, 몇 가지가 잡염품과 청정품(淸淨品)에 속하는가?60)
   네 가지는 오직 잡염품(雜染品)만 있고,61) 그 나머지는 잡염품(雜染品)과 청정품에 통한다.
   어찌하여 생지(生支)는 2품(品)에 통하는가?
   만약 악취(惡趣)와 어려움이 있는 곳[有難處]에 태어나는 경우는 오직 잡염품(雜染品)만이 있으며, 만약 인(人)과 천(天)과 어려움이 없는 곳[無難處]에 태어나는 경우는 잡염품과 청정품에 통한다. 나머지 지(支)는 그 상응하는 것에 따라서 모두 2품(品)에 통하는 줄 알아야 한다.
   어떠한 무명(無明)이 있지 않기 때문에 행(行)이 있지 않으며, 어떠한 무명이 멸(滅)하기 때문에 행(行)이 멸하는가?62)
   세 가지의 발기(發起) 전(纏) 수면(隨眠)의 무명(無明)63)이 있는데,
  
59)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열 두 번째로 8정도(正道)를 장애하는 것에 대하여 밝힌다.
60)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열 세 번째로 연기지(緣起支)의 잡염(雜染)과 청정(淸淨)의 관계에 대하여 밝힌다.
61) 무명(無明) 애(愛) 취(取) 식(識)을 말한다. 식(識)은 중유(中有)의 말심(末心)을 지(支)로 의지하기 때문에 오직 잡염품(雜染品)에 속한다.
62)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열 네 번째로 인(因)이 멸해야 과(果)도 멸함을 밝힌다.
63) 발기(發起)는 업(業)을 일으키는 현행(現行)의 무명으로서 상응(相應)과 불공(不共)에 통하고, 전(纏)은 생(生)을 적시는 현행의 무명으로서 대부분 상응하고만 통하며, 수면(隨眠)은 두 가지 현행의 무명소훈(無明所熏)의 종자(種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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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무명(無明)64)이 멸하기 때문에 저 무명(無明)65)이 멸하며, 저것이 멸하기 때문에 행(行) 또한 따라서 멸하는 것이다.
   어떠한 행(行)이 있지 않기 때문에 식(識)이 있지 않으며, 어떠한 행(行)이 멸(滅)하기 때문에 식(識)이 멸하는가?
   제 행(行)은 이미 지었고[已作] 이미 멸했으며[已滅] 아직 대치(對治)를 일으키지 않은 자상속(自相續)에 대하여 의행(意行)이 있기 때문에 신(身) 어행(語行)을 일으키는 것이며,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으며 저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을 연하는 식(識)도 또한 없다. 이것이 만약 전부 멸한다면 식(識)도 또한 따라서 멸함을 알아야 한다.
   어떠한 식(識)이 있지 않기 때문에 명색(名色)이 있지 않으며, 어떠한 식(識)이 멸(滅)하기 때문에 명색(名色)이 멸하는가?
   종자식(種子識)이 있지 않기 때문에 과식(果識)도 있지 않으며, 이것이 모두 멸하기 때문에 명색(名色)도 모두 멸한다. 식(識)이 명색(名色)에 대한 도리(道理)가 이와 같듯이 수(受)에 이르기까지 그 나머지 지(支)도 그 상응하는 것에 따라서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만 한다. 무명을 연하는 행(行)의 도리(道理)가 이와 같듯이 애(愛)를 연하는 취(取)와 취(取)를 연하는 유(有)의 도리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만 한다. 행(行)을 연하는 식(識)의 도리가 이와 같듯이 유(有)를 연하는 생(生)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만 한다. 식(識)을 연하는 명색(名色)의 도리와 같이 생(生)을 연하는 노사(老死)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만 한다.
   어떠한 수(受)가 있지 않기 때문에 애(愛)가 있지 않으며, 어떠한 수(受)가 멸하기 때문에 애(愛)가 멸하는가?
   행(行)을 연하는 식(識)의 도리(道理)와 같이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만 한다.
   앞에서 설한 것과 같은 여덟 가지 연기문(緣起門)66) 중 몇 가지 문(門)
  
64) 발기(發起)와 전(纏)과 수면(隨眠)의 세 가지 무명 모두를 가리킨다.
65) 개별적인 업(業)을 일으키는 무명(無明)을 가리킨다.
66) 연기문(緣起門)에 대해서는 앞의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 9권에서 설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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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12지연기(支緣起)를 나타내는 것이며, 몇 가지 문(門)이 그렇지 않은 것인가?67)
   3문(門)이 그것68)을 나타내는 것이니, 말하자면 두 가지는 일부분[一分]을 나타내는 것이며, 한 가지는 전체적 부분[全分]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 밖의 문(門)은 나타내지 않는다.
  무엇 등을 두 가지는 일부분[一分]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는가?
  내식생문(內識生門)과 자업소작문(自業所作門)을 말한다.
  무엇 등을 한 가지가 전체적 부분[全分]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는가?
  유정세간전문(有情世間轉門)을 말한다.
   여실하게 연기(緣起)의 도리(道理)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의 과환(過患)이 있는가?69)
   다섯 가지가 있으니, 말하자면 아견(我見)을 일으키는 것이며, 능히 전제와 함께 작용하는 견[前際俱行見]을 일으키는 것이며, 전제와 함께 작용하는 견(見)과 같이 이와 같이 후제와 함께 작용하는 견[後際俱行見]과 전제 후제와 함께 작용하는 견[前際後際俱行見]도 또한 그러하다. 또한 그70) 견(見)에 대하여 맹리하게 굳게 집착하여 취하는 것[取]도 있고 두려움[怖]도 있어서 현법(現法)에서 반열반(般涅槃)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다섯 번째 과환(過患)이라고 한다.
   여실하게 (연기의 도리를) 아는 사람은 몇 가지의 뛰어난 이익[勝利]이 있는가?
  
67)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열 다섯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와 여덟 가지 연기문(緣起門)과의 관계를 밝힌다.
68) 12지연기(支緣起)를 가리킨다.
69)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열 여섯 번째로 연기(緣起)를 모르고 아는 과환(過患)과 승리(勝利)에 대하여 밝힌다.
70) 앞에서 나열한 여러 가지 견(見)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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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다섯 가지 과환(過患)을 번복하여 뛰어난 이익에도 다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다음에 이 12지연기(支緣起)는 몇 가지가 실유(實有)인가?71)
  아홉 가지를 말한다.
  몇 가지가 실유(實有)가 아닌가?
  그 나머지를 말한다.
  몇 가지가 하나의 현상[事]을 자성(自性)으로 하는가?72)
  다섯 가지를 말한다.
  몇 가지가 하나의 현상[事]을 자성(自性)으로 하지 않는가?
  그 나머지를 말한다.
  몇 가지가 소지장(所知障)의 인(因)인가?73)
  한 가지를 말한다.
  몇 가지가 능히 고(苦)를 생기게 하는가?74)
  다섯 가지를 말한다.
  몇 가지가 고(苦)의 태장(胎藏)인가?
  다섯 가지를 말한다.
  몇 가지가 단지 고(苦)일 뿐인가?
  두 가지를 말한다.
  몇 가지를 인(因)의 부분[分]이라고 하는가?75)
  
71)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열 일곱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의 실유(實有)와 가유(假有)에 대하여 밝힌다.
72)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열 여덟 번째로 12지연기의 일사(一事)와 다사(多事)의 자성(自性)의 관계를 밝힌다.
73)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열 아홉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 중 소지장(所知障)의 인(因)을 밝힌다.
74)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스물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의 고(苦)와 고(苦)의 인(因)을 밝힌다.
75)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스물 한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 중 인(因) 과(果) 인과(因果)가 섞인 부분[雜分]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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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자면 앞의 무명(無明)에서 촉(觸)에 이르기까지의 여섯 가지와 애(愛) 취(取) 유(有)의 세 가지를 인(因)의 부분이라고 한다.
  몇 가지를 과(果)의 부분[分]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뒤의 두 가지를 과(果)의 부분이라고 한다.
  몇 가지를 인과(因果)가 섞인 부분[雜分]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그 밖의 지(支)76)를 섞인 부분[雜分]이라고 한다. 왜냐 하면 잡분(雜分)이라고 이름하는 두 가지의 수(受)가 있는데, 첫째는 후법(後法)을 촉(觸)함을 연(緣)으로 하는 인(因)의 수(受)를 말하며, 둘째는 현법(現法)에 애(愛)에게 연(緣)이 되는 과(果)의 수(受)를 말한다. 이 두 가지가 섞인 것을 촉(觸)은 수(受)에 연(緣)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다음에 몇 가지가 능히 애(愛) 비애(非愛)의 경계(境界)의 과(果)를 생기게 하며, 몇 가지가 능히 자체(自體)의 과(果)를 생기게 하는가?77)
  말하자면 앞의 여섯 가지 지(支)는 능히 앞의 과[前果]78)를 생기게 하고, 뒤의 세 가지 지(支)는 능히 뒤의 과[後果]79)를 생기게 하며, 한 가지 지(支)80)는 두 가지 과(果)를 모두 생기게 한다.
  몇 가지 지(支)가 낙수(樂受)와 함께하는가?81)
  두 가지를 제외한 그 밖의 지(支)를 말한다.
  몇 가지 지(支)가 고수(苦受)와 함께하는가?
  
76) 수(受)를 가리킨다.
77)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스물 두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의 경계(境界)의 과(果) 자체(自體)의 과(果)를 밝힌다.
78) 애(愛) 비애(非愛)의 경계(境界)의 과(果)를 가리킨다.
79) 자체(自體)의 과(果)를 가리킨다.
80) 수(受)의 지(支)를 가리킨다.
81)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스물 세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와 3수(受)와의 관계에 대해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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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밖의 것 중의 한 가지를 말한다.
  몇 가지 지(支)가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와 함께하는가?
  말하자면 낙수(樂受)와 같은 도리(道理)로 알아야 한다.
  몇 가지 지(支)가 수(受)와 함께 작용하지 않는가?
  그 밖의 것 중의 한 가지를 말한다.
  다음에 몇 가지 지(支)가 괴고(壞苦)에 포함되는가?82)
  말하자면 낙수(樂受)와 함께 작용하는 지(支)와 수(受)와 함께 작용하지 않는 지(支)의 일부분[一分]이다.
  몇 가지 지(支)가 고고(苦苦)에 포함되는가?
  말하자면 고수(苦受)와 함께하는 지(支)와 수(受)와 함께하지 않는 지(支)의 일부분[一分]이다.
  몇 가지 지(支)가 행고(行苦)에 포함되는가?
  말하자면 모든 괴고(壞苦) 고고(苦苦)의 지(支)는 또한 행고(行苦)의 지(支)이다.
  혹은 행고(行苦)에는 포함되면서 그 밖의 두 가지 고(苦)가 아닌 경우가 있으니,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와 함께하는 지(支)와 수(受)와 함께하지 않는 지(支)의 일부분을 말한다.
   일체(一切)의 생처(生處)와 삼마발저(三摩鉢底)에서는 모두 일체의 지(支)의 현행(現行)을 얻을 수 있는가?83)
   얻을 수 없다. 말하자면 무상천(無想天)과 멸진정(滅盡定)과 무상정(無想定)에서는 유색(有色)의 지(支)는 얻을 수 있지만 무색(無色)의 지(支)는 얻을 수 없다. 만약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면 무색(無色)의 지(支)는 얻을
  
82)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스물 네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와 괴고(壞苦) 고고(苦苦) 행고(行苦)의 3고(苦)와의 관련에 대하여 밝힌다.
83)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스물 다섯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와 생처(生處)와 삼마발저(三摩鉢底)와의 관련에 대하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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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있지만 유색(有色)의 지(支)는 얻을 수 없다.
   자못 지(支)에 의하여 지(支)를 여읠 수 있는가?84)
   있다. 말하자면 상지(上地)의 지(支)에 의하여 하지(下地)의 지(支)를 여읠 수 있으나 이것은 단지 일부분이고 전체가 아니며 잠시(暫時)일 뿐이고 구경(究竟)은 아니다.
   몇 가지 지(支)가 염오(染汚)이며, 몇 가지 지(支)가 불염오(不染汚)인가?85)
   세 가지는 염오이며, 나머지는 두 가지에 통하니, 만약 불염오(不染汚)의 경우는 선(善)과 무부무기(無覆無記)로 다르기 때문에 나누어서 두 가지로 하는 줄 알아야만 한다.
   몇 가지 지(支)가 욕계계(欲界繫)인가?86)
   모든 지(支)이다. 화합하여 똑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지(支)가 색계계(色界繫)인가?
   모든 지(支)의 일부분이다.
   어떻게 그것에 노(老)가 있다고 알아야만 하는가?
   그것의 제 행(行)에는 썩어 무너지며 부패(腐敗)하는 성품[性]이 있기 때문이다. 색계계(色界繫)와 같이 무색계계(無色界繫)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만 한다.
   몇 가지 지(支)가 학(學)인가?87)
  
84)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스물 여섯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는 지(支)에 의하여 지(支)를 여읠 수 있음을 밝힌다.
85)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스물 일곱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 중 염오(染汚)의 지(支)와 불염오(不染汚)의 지(支)에 대하여 밝힌다.
86)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스물 여덟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와 3계계(界繫)의 관계를 밝힌다.
87)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스물 아홉 번째로 12지연기(支緣起)와 3학(學)과의 관련에 대하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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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다.
   몇 가지 지(支)가 무학(無學)인가?
   역시 없다.
   몇 가지 지(支)가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인가?
   일체(一切)이다.
   모든 선(善)의 유루(有漏)의 지(支) 그것은 무슨 까닭에 학(學)이 아닌가?
   유전(流轉)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선(善)의 유루법(有漏法)의 학(學)이라면 그것은 유전(流轉)과 상위(相違)하기 때문에, 명(明)을 연(緣)으로 하기 때문에 지(支)가 아니다.
   예류과(預流果)는 몇 가지 지(支)가 끊어졌다[已斷]고 말해야 하는가?88)
   일체(一切)의 일부분[一分]이니, 전체가 끊어지는 것[全斷]은 없다. 예류과(預流果)가 이와 같듯이 일래과(一來果)도 또한 그러하다.
   불환과(不還果)는 몇 가지 지(支)가 끊어졌다[已斷]고 말해야 하는가?
   욕계(欲界)의 일체(一切)이며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는 일정하지 않다.
   아라한(阿羅漢)은 몇 가지 지(支)가 끊어졌다[已斷]고 말해야 하는가?
   3계(界)의 일체(一切)이다.
   다음에 이런 저런 경(經)에서는 몇 가지의 언설(言說)의 도리(道理)에 의하여 연기(緣起)를 설하는가?89)
   간략하게 여섯 가지의 언설(言說)의 도리에 의하여 설하는 것이니, 첫째
  
88)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이하는 아홉 번째의 연기(緣起)의 서른 가지 분별연(分別緣)에 대한 기술 가운데 서른 번째로 12연기지(緣起支)와 4과(果)의 단지(斷支)의 관계에 대하여 밝힌다.
89) 생(生)의 유전(流轉)의 내용은 열 가지의 연기(緣起)로서 설해지는데, 그 열번째로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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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순차제(順次第)90)에 의하여 설하며, 둘째는 역차제(逆次第)91)에 의하여 설하며, 셋째는 1분지(分支)에 의하여 설하며, 넷째는 구분지(具分支)92)에 의하여 설하며, 다섯째는 흑품(黑品)에 의하여 설하며, 여섯째는 백품(白品)에 의하여 설하는 것이다.93)
   세존(世尊)께서 연기(緣起)는 매우 깊다[甚深]고 말씀하셨듯이 이 매우 깊다는 뜻[甚深義]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열 가지 상(相)에 의하여 연기(緣起)의 매우 깊은 의미[甚深義]를 알아야 하리니, 말하자면 무상(無常)의 의미[義] 고(苦)의 의미 공(空)의 의미 무아(無我)의 의미에 의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무상(無常)의 의미[義]에 의한다란 자신의 종자[自種子]로부터 생기면서도 다른 연[他緣]을 기다린다는 것[待]이며, 또한 다른 연[他緣]으로부터 생기면서도 자신의 종자를 기다린다는 것이며, 또한 자신의 종자로부터 또는 다른 연[他緣]으로부터 생기지만 종자와 연은 이것이 생기는 대상[事]에 대하여 작용(作用)도 없고 운전(運轉)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다시 이 두 가지는 인(因)의 성품[性]인 공능(功能)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또한 모든 유지(有支)들은 무시시래로부터 그 상(相)을 성취하였지만 찰나찰나 새록새록 서로 구른다[相轉]는 것이며, 또한 연기지(緣起支)는 비록 찰나로 속히 멸할지라도 머무름[停住]과 흡사하게 운동(運動)의 상(相)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苦)의 의미[義]에 의한다란 연기지(緣起支)는 일미(一味)의 고상(苦相)이지만 3종상(種相)과 흡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空)의 의미[義]에 의한다란 연기지(緣起支)는 유정(有情)의 작자(作者)와 수자(受者)를 여읠지라도 여의지 않는 것[不離]과 흡사하게 현현(顯現)한다는 것이다.
  
90) 연기(緣起)의 순관(順觀)에 의해서 설하는 것을 말한다.
91) 연기(緣起)의 역관(逆觀)에 의해서 설하는 것을 말한다.
92) 연기의 지(支)를 갖추어 설하는 것을 말한다.
93)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것 가운데에, 첫 번째로 연기를 설하는 경(經)의 6종(種)의 도리(道理)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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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아(無我)의 의미[義]에 의해서 말씀하신다란 연기지(緣起支)는 자재(自在)가 아니고 실로 아상(我相)이 있지 않은데도 아상(我相)과 흡사하게 현현한다는 것이다.
  승의제(勝義諦)에 의한다란 비록 제 법(法)의 자성(自性)은 설할 수 없지만, 그런데도 제 법(法)의 자성(自性)을 가히 설하는 것을 말한다.94)
   몇 가지 지(智)로써 연기(緣起)를 알아야 하는가?
   두 가지이니, 법주지(法住智)와 진실지(眞實智)로써 알아야 한다.
  법주지(法住智)로써란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님께서 시설(施設)하시고 개시(開示)한 대로 전도 없이 아는 것을 말한다.
  
  진실지(眞實智)로써란 무엇을 말하는가?
  학(學)이 적(跡)을 보는 것과 같이 매우 깊은 뜻[甚深義]를 관하는 것을 말한다.95)
   세존께서 "이 모든 연기(緣起)는 나의 소작[我所作]이 아니고 다른 것이 짓는 것도 아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거나 세상에 나오시지 않거나 간에 법성(法性) 법주(法住) 법계(法界)에 안주하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무엇을 법성(法性)이라고 하며, 무엇을 법주(法住)라 하고, 무엇을 법계(法界)라 하는가?
   이 모든 연기(緣起)는 무시시래(無始時來)로 도리[理]로써 성취된 성품을 법성(法性)이라고 하며, 성취된 성품 그대로 전도 없는 문구(文句)로써 안립하는 것을 법주(法住)라고 이름하며, 이 법주는 그 법성을 인(因)으로 삼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를 법계(法界)라고 이름하는 것이다.96)
   경(經)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생(生)이 만약 없다면 처(處)도 없고
  
94)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두 번째로 연기의 매우 깊음[甚深]을 10종상(種相)으로 밝혔다.
95)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세 번째로 연기의 두 가지 법주지(法住智)와 진실지(眞實智)을 밝혔다.
96)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네 번째로 연기는 아(我)와 타(他)의 소작(所作)이 아님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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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位)도 없으며, 생(生)이 가히 있어도 만약 일체종(一切種)이 생(生)이면서 있지 않다면 생(生)은 노사(老死)의 연(緣)이 되는 것은 가히 얻을 수 없어야만 한다"라고 하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 그것97)의 자성(自性)은 자성의 연(緣)이 된다고 설하는가?
   자신의 종자[自種子]로부터 과(果)가 생기는 것에 의하여 설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식(識)에서부터 수(受)의 지(支)에 이르기까지는 생(生)의 종자(種子)이기 때문에 이치로 설해서 생(生)이라고 하는 것이며, 이것이 있기 때문에 후시(後時)에 곧 이것의 과지(果支)를 유를 연하는 생[有緣生]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머지의 지(支)는 경(經)에서 설한 것과 같이 그 상응하는 것에 따라서 모두 알아야만 한다.98)
   "일체지(一切支)는 서로간에 연(緣)이 되지 않는다"고 설하셨는데, 무슨 까닭에 명색(名色)과 식(識)이 서로 연(緣)이 된다고 건립하는가?
   식(識)은 현법(現法)에서 명색(名色)을 연(緣)으로 하기 때문에, 명색(名色)은 다시 후법(後法)에서 식(識)을 연(緣)으로 하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어머니의 뱃속에서는 상속(相續)하는 시간이 있어서 서로 연(緣)이 된다고 설하기 때문이다. 식(識)이 연(緣)이 되기 때문에 어머니의 뱃속에서 여러 가지 정혈(精血)의 색(色)이 명(名)에 섭수되어 화합하고 함께 갈라람의 성품[羯羅藍性]을 만들며, 곧 이 명색(名色)이 연(緣)이 되어 다시 저 식(識)으로 하여금 여기에 머물 수 있도록 한다.99)
   무슨 까닭에 보살은 흑품(黑品)100)을 관할 때에 다른 지(支)에 이르러서가 아니라 오직 식지(識支)에 이르러 그 의식이 전환(轉還)하는가?
   이 두 가지 지(支)는 서로간에 연(緣)이 되기 때문에 식(識)이 명색(名色)에 연(緣)이 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명색(名色) 또한 식(識)의 연(緣)이
  
97) 생(生)을 가리킨다.
98)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다섯 번째로 처(處)도 없고 위(位)도 없는 생(生)에 대해서 밝혔다.
99)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여섯 번째로 명색(名色)과 식(識)이 서로 연(緣)이 되는 까닭에 대해서 밝혔다.
100) 흑품(黑品)이란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의 유전문(流轉門)을 말하며, 백품(白品)이란 멸제(滅諦)와 도제(道諦)의 환멸문(還滅門)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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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관찰 할 때 식(識)에 이르러 전환하는 것이지 다른 지(支)에서는 이와 같은 전환(轉還)101)의 도리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한 곳에서 서로간에 연(緣)이 되는 도리를 현시(顯示)하기 때문에 전환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환멸품(還滅品)에서 명색(名色)은 후유(後有)의 식(識)에 환멸(還滅)의 인(因)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인연에 의해서 다시 지나쳐서 관찰(觀察)하는 것이다.102)
   무슨 인연 때문에 연기지(緣起支)는 자작(自作)도 아니고, 타작(他作)도 아니며, 함께 짓는 것[俱作]도 아니며, 또한 무인(無因)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가?
   생겨나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緣)은 작용이 없기 때문에, 연(緣)의 힘으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103)
   연기(緣起)에서 어떤 것들이 고(苦)의 싹[芽]이며, 무엇이 고(苦)의 싹[芽]을 지키면서 키우는 것이며, 어떤 것들이 고(苦)의 나무[樹]인가?
   무명(無明)과 행(行)을 연(緣)하여 끌어당겨진 식(識)으로부터 수(受)에 이르기까지가 고(苦)의 싹[芽]이며, 수(受)를 연(緣)하여 끌어당겨진 애(愛)에서 유(有)에 이르기까지가 고(苦)의 싹[芽]을 지키면서 키우는 것이며, 생(生)과 노사(老死)가 고(苦)의 나무임을 알아야만 한다.104)
   몇 가지의 연기지(緣起支)가 심지[炷]와 같다고 알아야만 하는가?
   식(識)에서부터 수(受)에 이르기까지이다.
   몇 가지의 지(支)가 기름[膏]과 같은가?
  
101) 환멸품(還滅品)의 가르침은 그 식(識)과 명색(名色)이 서로 연(緣)이 되기 때문에 심(心)을 관하여 식지(識支)에 이르르고 물러나 다시 노사(老死)에 이르기 때문에 전환(轉還)이라고 이름한다. 『바사(婆沙)』 제 40권을 참조하라.
102)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일곱 번째로 식(識)의 전환에 대해서 밝혔다.
103)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여덟 번째로 연기(緣起)의 자작(自作) 타작(他作) 구작(俱作) 무인생(無因生)이 아님에 대해서 밝혔다.
104)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아홉 번째로 연기지(緣起支)의 고(苦)의 싹[芽] 및 지키면서 키우는 것과 나무[樹]에 대해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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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無明) 행(行) 애(愛) 취(取) 유(有)이다.
   몇 가지의 지(支)가 불꽃과 같은가?
   생(生)과 노사(老死)임을 알아야만 한다.105)
   무슨 인연 때문에 연기(緣起)의 흑품(黑品)의 가르침[敎]을 증익(增益)이라고 이름하는가?
   일체의 유지(有支)는 순대고취(純大苦聚)106)가 후과(後果)가 되기 때문이며, 또한 모든 유지(有支)는 전전(前前)을 연(緣)으로 하여 후후(後後)가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무슨 인연 때문에 백품(白品)의 가르침[敎]을 손감(損減)이라고 이름하는가?
   일체의 지(支)는 전전(前前)을 영원히 끊음으로써 후후(後後)가 없어지기[減] 때문이며, 또한 이 순대고취(純大苦聚)는 손감(損減)의 인(因)이기 때문이다.107)
   몇 가지의 연기지(緣起支)를 유인법(有因法)이라고 이름하는가?
   앞의 일곱 가지를 말한다.
   몇 가지의 연기지(緣起支)를 유인고(有因苦)라고 이름하는가?
   그 밖의 다섯 가지이다.108)
   몇 가지의 지(支)가 멸(滅)해야 누진(漏盡)이 드러나게 되는 것[所顯]인가?
   세 가지109)이다.
   몇 가지의 지(支)가 멸(滅)해야 연진(緣盡)110)이 드러나게 되는 것인가?
  
105)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열 번째로 연기지(緣起支)의 주(炷) 고(膏) 염(焰)에 대해서 밝혔다.
106) 오로지 괴로움만이 모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107)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열 한 번째로 연기(緣起)의 흑품교(黑品敎) 백품교(白品敎)의 증익(增益) 손감(損減)에 대해서 밝혔다.
108)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 열 두 번째로 연기지(緣起支)의 유인법(有因法)과 유인고(有因苦)에 대해서 밝혔다.
109) 무명(無明) 애(愛) 취(取)를 말한다. 이것들은 루(漏)를 자성(自性)으로 하기 때문에 이를 단진(斷盡)하는 단계를 누진(漏盡)의 소현(所顯)이라고 한다.
110) 무명(無明) 등의 루(漏)가 단진(斷盡)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다른 지(支)들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연진(緣盡)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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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이 세 가지이니, 나머지 지(支)의 연(緣)이 되기 때문이다.
   몇 가지의 지(支)가 멸(滅)해야 수진(受盡)이 드러나게 되는 것인가?
   한 가지이다. 말하자면 번뇌(煩惱)가 이미 끊어졌기 때문에 소의(所依)가 멸(滅)할 때 이 일체의 수(受)는 모두 영원히 끊어 없어졌기 때문이다.111)
   무슨 인연 때문에 연기(緣起)에 의지하여 77지(智)112)를 건립하는가?
   유인잡염지(有因雜染智)113)를 드러내기 위함이며, 또한 다시 자상속(自相續)114)에서 스스로 이미 지었던 잡염지(雜染智)를 드러내기 위함이며, 또한 다시 전제(前際)115)의 여러 지(支)들이 무시시래[無始時]임을 드러내기 위함
  
111)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열 세 번째로 연기지(緣起支)의 누진(漏盡) 연진(緣盡) 수진(受盡)에 대해서 밝혔다.
112) 12연기지(緣起支) 가운데 무명지(無明支)는 그것의 인(因)이기 때문에 이것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11지(支)에 대해서 그 인법(因法)을 관하는데 일흔 일곱 가지의 지(智)가 있다. 생(生)을 연(緣)으로 하여 노사(老死)가 있다고 관하고 또한 생(生)을 연(緣)으로 하지 않으면 노사(老死)가 있지 않다고 관하는데, 이와 같은 것을 과거(過去) 현재(現在)로 관찰하기 때문에 6지(智)가 있으며, 3세(世)를 종합적으로 관찰하는 법주지(法住智)를 첨가하면 7지(智)가 된다. 11지(支) 각각에 7지(智)가 있기 때문에 77지(智)가 된다.
113) 유인잡염지(有因雜染智)란 위의 물음에 대한 총괄적인 답(答)이다. 무명지(無明支) 이외의 11지(支)는 모두 인(因)이기 때문에 유인(有因)이라고 하며, 잡염(雜染)을 연(緣)하여 일어나게 되는 지(智)이기 때문에 잡염지(雜染智)라고 한다.
114) 낱낱이 현재의 지(支)를 관하는데에는 두 가지의 지(智)가 있으니, 첫째는 현재의 생(生)을 연(緣)으로 하여 노사(老死)가 있음을 관하는 것으로 이는 인(因)을 관하는 지(智)이며, 둘째는 현재의 생(生)을 연(緣)으로 하지 않고서는 노사(老死)가 있지 않다고 관하는 것으로 이는 거듭 인(因)을 심찰(審察)하는 지(智)이다. 처음의 지(智)는 '과(果)는 인(因)이 있다'는 것을 관찰해서 그 연유를 드러내는 것이며, 두 번째 지(智)는 '과(果)는 인(因)이 있어서 불결정(不決定)으로 있지 않다'는 것을 관찰하여 외도의 망계(妄計)를 파(破)하는 것이다.
115) 낱낱이 과거의 노사(老死)를 관하는데에 두 가지의 지(智)가 있으니, 첫째는 과거의 생(生)을 연(緣)으로 하여 노사(老死)가 있다고 관하는 것이며, 둘째는 과거의 생(生)을 연(緣)으로 하지 않고서는 노사(老死)가 있지 않다고 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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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며, 또한 다시 후제(後際)116)의 여러 지(支)들이 잡염(雜染) 환멸(還滅)이 되어야 할 의미[義]를 드러내기 위함이며, 또 다음에 지(支)에 포함되지 않는117) 여러 가지의 무루혜(無漏慧)의 변지(遍知)의 의미[義]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11지(支)에 모두 7지(智)를 지어서 총 77지(智)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118)
   무슨 인연 때문에 연기(緣起)에서 44지(智)를 건립하는가?
   11지(支)에서 4성제(聖諦)에 의해서 도리를 관찰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총 44지(智)119)가 있는 것이다.120)
  다음에 욕계(欲界)에 태어나면 욕계의 몸[欲界身]에 의지하여 상지(上地)의 눈이나 귀를 끌어당기고[引發] 이것에 의해서 하지(下地)의 모든 색(色)과 소리를 보고 듣는다. 또한 이 몸에 의지하여 3계(界)의 의(意)와 불계(不繫)의 의(意)를 일으켜서 현재전(現在前)한다. 만약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면 그 하지(下地)를 제외하고는121) 욕계에 있는 것과 같이 일체
  
116) 분별하여 미래의 노사(老死)를 관하는데에 두 가지의 지(智)가 있으니, 첫째는 미래의 생(生)을 연(緣)으로 하여 노사(老死)가 있다고 관하는 것이며, 둘째는 미래의 생(生)을 연(緣)으로 하지 않고서는 노사(老死)가 있지 않다고 관하는 것이다.
117) 법주지(法住智)를 말하며, 이 지(智)는 두루 3세(世)의 연기(緣起)의 교법(敎法)을 알기 때문에 '지(智)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118)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열 네 번째로 연기지(緣起支)와 77지(智)와의 관계를 밝혔다.
119) 앞에서와 같이 무명지(無明支)를 제외한 나머지 11지(支)에 각각 4제지(諦智)가 있어서 총 44지(智)가 된다. 즉 첫째는 노사(老死)의 고과(苦果)를 관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둘째는 노사(老死)의 집인(集因)을 관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셋째는 노사의 멸리(滅離)를 관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넷째는 노사를 멸하는 참된 도(道)를 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머지 지(支)도 이에 준하여 알아야 한다.
120) 16부문으로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열 다섯 번째로 연기지(緣起支)와 44지(智)의 관계를 밝혔다.
121) 규기(窺基)는 이를 수순리문(隨順理門)이라고 한다. 즉 상지(上地)의 2계(界)에 있어서는 하지(下地)의 일체의 식(識)들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또한 진실리문(眞實理門)에서는 상지(上地)의 2계(界)에서는 하지(下地) 특유의 식(識)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3계(界)의 의식(意識)은 모두 현전(現前)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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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현전(現前)한다.122)
  다음에123) 이 세 가지 잡염(雜染), 즉 번뇌잡염(煩惱雜染)과 업잡염(業雜染)과 생잡염(生雜染)을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여섯 가지의 현관(現觀)124)을 닦는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 등을 여섯 가지라고 하는가?
  사현관(思現觀)125) 신현관(信現觀)126) 계현관(戒現觀)127) 현관지제현관(現觀智諦現觀)128) 현관변지제현관(現觀邊智諦現觀)129) 구경현관(究竟現觀)130)을 말한다.
122) 연기(緣起)에 대한 여러 경(經)의 설(說)을 밝히는 가운데에, 열 여섯 번째로 3계(界)의 12처(處) 관계를 밝혔다.
123) 위에서는 잡염등기(雜染等起)의 번뇌(煩惱)와 업(業)과 생(生)의 잡염에 대해서 밝혔다. 이하에서는 세 가지 잡염을 끊기 위한 여섯 가지 현관(現觀)에 대해서 나열한다. 이 현관(現觀)에 대해서는 『본론(本論)』의 제 71권(卷)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9권(卷)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24) 현관(現觀)이란 명료(明了)하게 현전(現前)에서 이 현경(現境)을 관찰하는 것이다.
125) 최상품(最上品)의 희수(喜受)와 상응하는 사소성(思所成)의 혜(慧)이다.
126) 정신(淨信)이다. 3보(寶)를 연(緣)하여 현관(現觀)을 도와 퇴전(退轉)하지 않게 한다.
127) 무멸계(無滅戒)이다. 파계(破戒)의 때[垢]를 제거하고 관을 더욱 밝게 하기 때문에 이 또한 현관(現觀)이라고 한다.
128) 견도와 수도의 2도(道)에 있어서의 근본지(根本智)와 후득지(後得智)이다. 즉 현전(現前)에서 비안립(非安立)의 제일의제(第一義諦)를 관하는 것이다.
129) 안립제(安立諦)를 연(緣)하는 세(世) 출세(出世)의 유루(有漏) 무루지(無漏智)이다.
130) 진지(盡智) 등의 구경위(究竟位)의 지(智)이다. 곧 무학도(無學道) 중의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등의 일체의 지(智)를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9권과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 71권에서 자세히 해석[廣釋]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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