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봉산 일원(鳳山一源)스님의 염고(拈古)
나는 천력(天曆:1329~1330) 연간에 호주(湖州) 봉산사(鳳山寺)에서 일원 영(一源靈)스님을 찾아뵙고, 조주스님이 오대산 노파를 시험했다는 화두를 참구했으나 깨치지 못했다. 하루는 시봉하는 차에 이 화두를 들어 물으니, 스님께서 말하였다.
”내 젊은 날 태주(台州) 서암사(瑞岩寺) 방산(方山文¿)화상의 문하에 있을 때 유나(維那)를 맡아 보면서 나 역시 이 화두를 물었더니 방산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영유나(靈維那)야, 네가 한마디 해 보아라.'하셨다. 나는 그 당시 입에서 나오는대로 “온누리 사람들이 노파를 어찌할 수 없다'고 하였더니, 방산화상은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온누리 사람들이 조주스님을 어찌할 수 없다고 하겠다' 하였다. 나는 그 당시 마치 굶주린 사람이 밥을 얻은 것마냥, 병든 이가 땀을 흘린 것처럼 스스로 기쁨을 알았다.”
이어서 말하였다.
”시자야! 너는 달리 한마디 해보아라.”
나는 그 당시 인사하고 곧장 그곳을 떠나버렸다. 내 기억으로는 지난날 스님이 처음 이곳에 부임하여 상당법문을 할 때 “세존이 법좌에 오르시자 문수가 백추를 치고…'라는 공안*을 들어 설법한 후 염송하였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잘못 말씀하시고
문수도 이것을 잘못 전했으며
오늘 나도 이것을 잘못 거론했도다.
알겠는가.
한 글자를 세차례 베껴쓰면
오(烏)자와 언(焉)자는 마(馬)가 되느니라.
世尊以是錯說 文殊以是錯傳
新鳳山今日以是錯擧
會麽 字脛三寫烏焉成馬
그 당시 은사 축원(竺元)스님은 육화탑(六和塔)에 은거하면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선정원(宣政院)*에서 수많은 노스님을 천거하였으나 봉산(일원)스님이 조금 나은 편'이라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일원스님은 영해(寧海) 사람이며 경산사 운봉(雲峰)스님이 직접 머리 깎아 준 제자인데 주지로 세상에 나와서는 방산스님의 법을 이었다. 인품이 자애롭고 참을성이 있어 남을 용납하는 아량이 있었으며 제자들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므로 스님께서 입적하자 그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모두가 애도해 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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