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28. 양황참범(梁皇懺法)의 효험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42
 

 

 

28. 양황참범(梁皇懺法)의 효험


지정(至正) 경자(1360)년에 정해(定海)의 뱃사공 하태삼(夏太三)이 양곡을 싣고서 연(燕:北海)으로 가는 길에 바다에 빠져 죽었다. 그후 16년이 지난 홍무(洪武) 을묘(1375)년에 그의 아내 진씨(陳氏)와 아들 선(善)이 지난 날 하태삼을 생각해 보니, 그는 성품이 포악하여 아랫사람을 거느리는 데 인정이 없었으므로 비명에 죽은 외로운 넋이 바다에 잠겨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제도를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 나머지, 재물을 모아 은주(鄞州) 십자항암(十字港菴)에 엄숙하게 도량을 차리고 갖가지로 훌륭하게 장엄하였다. 청정한 스님 열 분을 모시고는 협만종(叶萬宗)스님에게 그 일을 주관해 주십사 청하고 “양황참법(梁皇懺法)”을 닦았다.

진씨는 지극정성이었으므로 그가 처음 도량에 들어와 사연을 전했을 때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가 없었다. 이날 “예참”의 제 2권을 마치고 밤이 깊어 선잠을 부치게 되었는데 의변(宜便)이라는 승려가 느닷없이 놀라 신음하면서 잠꼬대를 하였다.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고 오직 겁에 질린 모습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만종 등 여러 스님은 그가 깨어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모두 일어나 한참 동안이나 주문을 외웠으며 다급하게 부르자 겨우 소생하였다. 그에게 까닭을 묻자 울기만 하다가, 다시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위태천(韋駄天)처럼 생긴 한 신인(神人)이 위엄스런 의관을 갖추고 일산과 화려한 수레, 그리고 창칼로 매우 삼엄하게 호위하며 나를 강제로 동행시켜 하태삼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천도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해포(蟹浦)를 지나가자 신인의 위엄이 늠름하여 행인들은 멀리 피했으며 험한 곳을 두루 지나 큰 바닷가에 이르니, 귀신떼들이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어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신인은 나에게 바다 속으로 들어가 하태삼의 손을 잡고 데리고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하태삼은 원나라 모자를 쓰고 세찬 파도 속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하였으므로 도저히 그의 손을 붙잡을 수 없었으며, 게다가 다른 귀신이 나에게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마침 수중에 돈이 있어 그들에게 주고 힘을 다해 하태삼을 붙잡아 언덕으로 올라서려는 찰나에 그대들이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울었는데 그것은 너무나 고생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 죄를 없애고 죽은 이를 천도하는 데에는 이 참법보다 더 좋은 공덕이 없을 것이기에 나는 짐짓 이를 기록하여 세인에게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