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상투화 되는 조사(弔辭)
옛사람들이 죽은 승려를 위해 불사(佛事)를 하는 것은 그의 견도(見道)가 밝지 못하여 죽는 순간에 막히거나 집착할까봐 두려워 실로 이를 일깨워주고자 몇자 썼을 뿐, 그가 생시에 지냈던 벼슬과 기연에 관한 이야기들을 구구히 쓰지는 않았다.
무준(無準)스님이 경산사 주지로 있을 때 관(觀)상좌의 다비식에서 불을 붙이면서 말하였다.
”큰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물 이야기 하기가 어려운 법이니 물결이 다하면 물거품도 없어진다. 이제는 바다도 사라지고 물거품도 없어졌으니 머리를 돌려 자기 집에 안주하였다.” 운운하였는데 당시 그곳에 있던 큰스님들이 뒤따라 조사(弔辭)를 써서 조사는 그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제 총림에서는 조사 쓰는 것이 상투화되어 아무 의미없는 어거지 문장을 엮어내니 이른 바 죽은 승려를 일깨워주려던 원뜻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산암잡록(山艤雜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59. 무정불성(無情佛性)에 관하여 논하다 / 경산 여암(如菴)장주 (0) | 2008.03.07 |
---|---|
58. 관세음보살의 현신 / 조료 원(照寮元)스님 (0) | 2008.03.07 |
56. 경전과 어록에 보이는 염화시중의 이야기 (0) | 2008.03.07 |
55. “선림보훈(禪林寶訓)”에 기재된 임시변통의 문제에 대하여 (0) | 2008.03.07 |
54. 통쾌한 납자가 없는 이 세상 / 육왕사 설창(雪窓)스님 (0) | 2008.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