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晋)나라 담무갈(曇無竭)스님은 법현(法顯)스님 등이 몸소 부처님의 나라를 답사했다는 말을 듣고 느낀 바 있어, 법을 위해서라면 자기 몸을 잊으리라고 맹세하였다. 그리하여 영초(永初) 원년(420)에 담랑(曇朗). 승맹(僧猛)스님 등 25명의 도반을 모아가지고 장안(長安)을 출발하였다.
서쪽으로 유사(流沙 ; 고비사막)를 건너는데 하늘에는 나는 새도 없었고 땅에는 달리는 짐승도 없었으며, 사방을 돌아보아도 망망하여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해를 보아 동서를 분간하고 해골을 보면서 이정표를 삼을 뿐이었다.
총령(葱嶺 ; 텐산산맥)에 이르자 그 곳에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눈이 쌓여 있었으며, 독룡(毒龍)은 독풍(毒風)을 토해내어 모래와 자갈이 비오듯 하였다. 앞으로는 설산을 넘어야 하고 아래로는 큰 강이 있었는데 급류가 화살처럼 빨랐다. 동서 양쪽 산 협곡에 밧줄을 매어 다리를 만들고 한 번에 10사람씩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하고 나면 연기를 들어 표시를 내었다. 뒷 사람은 연기를 보고 앞 사람이 건넜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다시 전진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연기가 보이지 않으면 폭풍이 밧줄에 심하게 불어 사람이 강 가운데로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설산을 지나는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 발을 디딜 곳이 없었다. 절벽에는 옛날에 박아놓은 말뚝이 있었으며 구멍구멍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네 말뚝을 잡고 올라서서 이미 밟고 올라온 아랫말뚝을 뽑아 윗말뚝으로 연결해 가며 나아갔다. 3일 동안이나 그런 식으로 이어 나가고서야 비로소 평지에 도달하였다. 도반들을 점검하여 보았더니 12명을 잃었다. 중천축을 향해서 전진하는데 길에는 인적이 없이 텅 비어 있었으므로 석밀(石蜜 ; 자연꿀)을 싸 가지고 가면서 양식을 하였으며, 이 곳에서 13명 가운데 또 8명이 죽어버렸다.
담무갈스님은 위험한 고비를 여러 차례 지냈으나 관음보살님께 생각을 매어두고 잠시를 떼지 않았다. 사위국(舍衞國)에 이르러 사나운 코끼리떼를 만났으나 곧 관음보살에게 귀명(歸命)하였더니 홀연히 사자가 나타나 코끼리들이 도망을 가버렸다. 항하(恒河)에 이르러 다시 물소떼를 만났을 때에도 처음과 같이 귀명하자, 잠깐 사이에 큰 독수리가 날아오더니 물소들이 놀라서 흩어져버렸다. 훗날 남천축(南天竺)에서 돌아올 때는 뱃길로 광주(廣州)에 도착하였는데, 경전을 가지고 왔다.
찬탄하노라.
인도구법기〔西行傳〕를 읽어보았더니
천년 지난 오늘에도 눈물이 흐른다.
바로 지금 읽는 한마디 한마디 경구가
모두가 선덕(先德)들의 피와 땀이다.
그런데도 더러는 경솔한 마음으로 대하고
더러운 손으로 잡으며 불결한 곳에 두기도 한다.
또 간직하기만 할 뿐 읽지는 않고
읽어도 실천하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의식(衣食)을 얻고
명리를 사는 데 쓰고 있구나.
슬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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