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호법 護法 / 현종개불화법본내전 顯宗開佛化法本內傳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8:06
 

 

 

호법 護法

 

현종개불화법본내전 顯宗開佛化法本內傳

 

《傳》云: 「明帝.永平十三年, 上夢神人, 金身丈六, 項有日光. 寤已, 問諸臣下, 傅毅對詔: ????有佛, 出於天竺.???? 乃遣使往求, 備獲經像及僧二人.[1] 帝乃爲立佛寺畵壁, 千乘萬騎繞塔三匝. 又於南宮[2]淸凉臺[3]及高陽門上‧顯節陵所, 圖佛立像,[4] 幷《四十二章經》緘於蘭臺石室, 廣如前集.」《牟子所顯傳》云: 「時有沙門迦葉摩騰‧竺法蘭, 位行難測, 志存開化. 蔡愔使達, 請騰東行, 不守區域, 隨至雒陽,[5] 曉喩物情, 崇明信本. 帝問騰曰: ????法王出世, 何以化不及此????? 答曰: ????迦毘羅衛國者, 三千大千世界‧百億日月之中心也, 三世諸佛, 皆在彼生, 乃至天龍鬼神, 有願行者, 皆生於彼, 受佛正化, 咸得悟道. 餘處衆生, 無緣感佛, 佛不往也. 佛雖不往, 光明及處, 或五百年, 或一千年, 或二千年外, 皆有聖人, 傳佛聲敎而化導之.????」 廣說敎義, 文廣故略也.《傳》云: 「永平十四年正月一日, 五岳諸山道士,[6] 朝正之次, 自相命曰: ????天子棄我道法, 遠求胡敎, 今因朝集, 可以表抗之.???? 其表略曰: ????五岳‧十八山觀‧太上‧三洞弟子褚善信等六百九十人, 死罪上言. 臣聞太上, 無形無名, 無極無上, 虛無自然, 大道出於造化之前, 上古同遵, 百王不易. 今陛下, 道邁羲‧黃, 德高堯‧舜, 竊承陛下, 棄本追末, 求敎西域, 所事乃是胡神, 所說不參華夏. 願陛下, 恕臣等罪, 聽與試驗. 臣等諸山道士, 多有徹視遠聽, 博通經典, 從元皇已來, 太上群錄‧太虛符祝, 無不綜鍊, 達其涯極. 或策使鬼神, 或呑霞飮氣, 或入火不燒, 或履水不溺, 或白日昇天, 或隱形不測. 至於方術, 無所不能, 願得與其比較. 一則聖上意安, 二則得辨眞僞, 三則大道有歸, 四則不亂華俗. 臣等, 若比對不如, 任聽重決, 如其有勝, 乞除虛妄.???? 勅遣尙書令宋庠, 引入長樂宮, 以今月十五日, 可集白馬寺. 道士等, 便置三壇, 壇別開三十四門, 南嶽道士褚善信, 華嶽道士劉正念, 恒嶽道士桓文度, 岱岳道士焦得心, 嵩嶽道士呂惠通, 霍山‧天目‧五臺‧白鹿等十八山道士祁文信等, 各䝴《靈寶眞文》․《太上玉訣》․《三元符錄》等五百九卷, 置於西壇;《茅成子》․《許成子》․《黃子》․《老子》等二十七家子書二百三十五卷, 置於中壇; 饌食奠祀百神, 置於東壇; 帝御行殿在寺南門, 佛舍利‧經‧像, 置於道西. 十五日齋訖, 道士等, 以柴荻和檀沈香爲炬, 遶經泣曰: ????臣等, 上啓太極大道‧元始天尊‧衆仙百靈. 今胡神亂夏, 人主信邪, 正敎失蹤, 玄風墜緖, 臣等敢置經壇上, 以火取驗, 欲使開示蒙心, 得辨眞僞.???? 便縱火焚經, 經從火化, 悉從煨燼,[7] 道士等, 相顧失色, 大生怖懼. 將欲昇天隱形者, 無力可能, 禁效鬼神者, 呼策不應, 各懷愧恧, 南嶽道士費叔才, 自憾而死. 太傅張衍語褚信曰: ????卿等所試無驗, 卽是虛妄, 宜就西來眞法.???? 褚信曰:『《茅成子》云「太上」者, 靈寶天尊, 是也. 造化之作, 謂之太素, 斯豈妄乎????? 衍曰: ????太素有貴德之名, 無言敎之稱, 今子說有言敎, 卽爲妄也.???? 信黙然. 時, 佛舍利, 光明五色, 直上空中, 旋環如盖, 遍覆大衆, 暎蔽日光; 摩騰法師, 踊身高飛, 坐臥空中, 廣現神變. 于時, 天雨寶華, 在佛僧上, 又聞天樂, 感動人情, 大衆咸悅, 歎未曾有, 皆遶法蘭, 聽說法要. 蘭, 並吐梵音, 歎佛功德, 亦令大衆, 稱揚三寶, 說: ????善惡業, 皆有果報, 六道三乘, 諸相不一.???? 又說: ????出家功德, 其福最高; 初立佛寺, 同梵福量.???? 司空陽城侯.劉峻, 與諸官人士庶等千餘人出家; 四嶽諸山道士呂惠通等六百三十人出家; 陰夫人‧王婕妤等, 與諸宮人婦女二百三十人出家. 便立十所寺, 七所城外, 安僧, 三所城內, 安尼, 自斯已後, 廣矣.」《傳》有五卷, 略不備載. 有人[8]疑此《傳》近出, 本無角力之事, 案《吳書》, 明費叔才憾死, 故《傳》爲實錄矣.[9]

《법본내전》에 말하기를 「명제 영평 13년에 황제께서 신인의 꿈을 꾸었는데 1장6척의 금색 몸으로 목덜미로 햇살 같은 빛이 있었다. 잠에서 깬 뒤 신하들에게 물으니 부의가 조서에 대답하기를 ????부처님이란 분이 천축에서 나셨습니다???? 하기에 사신을 파견하여 가서 구하게 하였더니 경전과 불상 및 승려 두명을 갖추어 돌아왔다. 황제가 이에 그들을 위해 부처님의 사원을 세우고 벽화를 그렸으며 1천의 수레와 1만의 기마로 탑을 감싼 채 세 번을 돌았다. 또 남궁의 청량대와 고양문 위 및 현절능 등에 불화를 그리고 불상을 세운 뒤《사십이장경》과 아울러 난대의 석실에 밀봉하여 보관하였으니, 자세한 것은 전집에 있는 것과 같다」라 하였다.

《모자소현전》에 말하기를 「이 때에 사문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있었으니 처신하는 바와 행동하는 바는 예측하기 어려웠으며 뜻은 중생을 개화시키는데 있었다. 채음이 사자로 가서 마등에게 동쪽으로 갈 것을 청하니 구역을 지키지 않고 그를 따라 낙양에 이르러 중생들의 감정을 깨우쳐주고 믿음의 근본을 숭상하여 밝혔다. 황제께서 마등에게 묻기를 ????법왕이 세상에 나오셨는데 어찌하여 그 교화가 여기는 미치지 않는가????? 하니 답하기를 ????가비라위국은 삼천대천세계와 백억일월의 중심이니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그 곳에서 태어나시고 게다가 천룡과 귀신 등 원력의 행이 있는 자는 모두 그곳에서 태어나서 부처님의 바른 교화를 받고 모두 도를 얻어 깨우치게 됩니다. 나머지 다른 곳의 중생들은 부처님의 교화에 감응할 인연이 없기에 부처님께서 가시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비록 가시지는 않지만 광명이 미치는 곳에는 혹은 5백년, 혹은 1천년, 혹은 2천년 뒤에 모두 성인이 있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그들을 교화하고 이끌 것입니다????」라며 가르침의 뜻을 폭넓게 얘기하였는데 그 글이 광범위하여 생략한다.

《법본내전》에 이르기를 「영평 14년 정월 초하루에 오대산악 모든 산의 도사들이 정월 조례에 참석하던 차에 스스로 서로간에 논의하여 이르기를 ????천자께서 우리의 도법을 버리고 멀리서 오랑캐의 가르침을 구하였으니 이제 조례에 모인 것을 기화로 표로써 항의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였으니 그 표를 간단히 요약하면 ????오악 십팔산관 태상 산동제자 저선신 등 6백90인은 죽을 죄로 말씀을 올립니다. 신들이 듣건대, 태상노군은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다함도 없고 위도 없으며 허무하고도 자연스러움에 큰 도가 천지가 조화되기 이전에 나왔기에 상고로부터 한결같이 좇아지키며 백대의 제왕도 이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폐하께서는 도가 복희씨나 황제씨 보다 나으며 덕은 요 임금과 순 임금 보다 높으시거늘 가만히 듣자오니, 폐하께서는 근본을 버리고 끝단을 추구하여 서역으로부터 가르침을 구하니 섬기는 바는 곧 오랑캐의 신이며 말하는 바는 화하의 정서와 가지런하지 않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신 등의 죄를 용서하시고 시험해 보임을 들어주십시오. 신 등 모든 산의 도사들은 대체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멀리까지 들으며 경전에 널리 통하여 원황 이래로부터 태상太上의 뭇 기록과 태허太虛의 부축符祝 등 자세히 익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지극한 곳까지 통달하였습니다. 혹은 귀신을 채찍질하여 부리고, 혹은 노을을 삼키고 기운을 마시며, 혹은 불 속에 들어서도 타지 않으며, 혹은 물을 밟아도 빠지지 않으며, 혹은 밝은 대낮에 하늘을 오르며, 혹은 모습을 숨겨 헤아리지 못하게도 합니다. 방술에 이르러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원컨대 그들과 더불어 비교하여 주소서. 그러시면 첫째는 성상의 뜻이 편안할 것이며, 둘째는 참과 거짓을 분별하게 될 것이며, 셋째는 대도가 그 귀의처를 가지게 될 것이며, 넷째는 화하의 풍속이 어지럽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 등이 만약 상대와 견주어 여의치 않다면 중대 결단에 맡겨 따르겠으며, 만일 이기는 바가 있으면 바라건대 허망한 것을 제거하여 주십시오????라 하였다.

칙서를 내리고 상서령 송상을 파견하여 장락궁으로 불러들이고는 그 달 15일에 백마사에 모이도록 하였다.

도사 등이 곧 세 개의 단을 설치하고 단에 따로이 34개의 문을 개설한 뒤에 남악도사 저선신과 화악도사 유정념과 항악도사 환문도와 대악도사 초득심과 숭악도사 여혜통과 곽산‧천목‧오대‧백록 등 18산 도사 기문신 등이 각자《영보진문》과《태상옥결》및《삼원부록》등 5백9권을 가져다가 서쪽 단에 안치하였으며,《모성자》‧《허성자》‧《황자》‧《노자》등 27가家의 자서子書 2백35권을 중앙 단에 안치하였으며, 1백신에게 제사 드릴 음식은 동쪽 단에 두었으며, 제께서 머무는 어행전은 절의 남쪽 문에 두었고 부처님의 사리와 경전 및 불상은 길의 서쪽에 안치하였다.

15일 점심공양을 마치자 도사 등이 억새로 엮은 섶에 전단과 침향나무를 더하여 횃불을 만들어 경전을 에워싼 채 울며 이르기를 ????신 등은 위로 태극대도 원시천존 중선백령에게 여쭈옵니다. 지금에 오랑캐의 신이 화하를 문란하게 하고 백성의 주인된 이가 삿된 것을 믿으니 바른 가르침은 실종되고 현묘한 교풍은 그 위업이 땅에 떨어짐에, 신 등이 감히 단 위에 경전을 안치하고 불로써 시험하여 덮씌워진 마음을 열어 보임으로서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고자 합니다????라 하였다.

곧 불을 놓아 경전을 태움에 경전이 불길을 따라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리니 도사 등이 서로 돌아보며 실색하고 크게 두려움을 드러내었다. 또한 하늘로 올라가 모습을 숨기려고 하던 자는 그렇게 할 힘이 없었고 귀신을 주술로써 부리려던 자는 호통치고 채찍질하여도 응하지 않았기에 각자 부끄러운 생각을 품었으니, 남악도사 비숙재는 스스로 한탄하며 죽었다.

태부 장연이 저신에게 말하기를 ????경 등이 시험한 바는 영험이 없으니 곧 이는 허망한 것이므로 마땅히 서쪽에서 온 참된 법을 취하겠다????고 하자 저신이 말하길『《모성자》에 이르기를 「태상노군은 신령스럽고 보배로운 천존이 그 분이며, 조화를 지어 놓은 것을 일컬어 태소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허망한 것이겠습니까???? 하기에 장연이 이르기를 ????태소는 귀하고 덕스러운 이름은 있으나 말씀과 교법의 칭호가 없거늘 이제 그대가 말씀과 교법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곧 허망한 것이다???? 하자 저신이 침묵하였다.

그 때에 부처님의 사리에서 오색광명이 곧장 공중으로 치솟아 마치 일산처럼 둥글게 선회하여 두루 대중들을 덮었고 그 빛은 햇빛을 가렸으며, 마등법사는 몸을 솟구쳐 높이 날며 공중에서 앉고 눕는 등 신비한 변화를 널리 드러내었다. 이 때 하늘에서 보배로운 꽃비가 부처님과 스님네의 머리 위로 내리고 또한 하늘음악이 들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니 대중들이 함께 기뻐하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며 모두 법란을 에워싼 채 불법의 요점을 설하는 것을 들었다. 법란이 아울러 범음梵音을 내뱉으며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또한 대중으로 하여금 삼보를 찬양하게 하며 설법하기를 ????선업이던 악업이던 그 모두에 과보가 있어서 육도와 삼승의 모든 상相이 하나가 아니니라???? 하였으며, 또 설법하기를 ????출가의 공덕은 그 복이 가장 높으며, 처음으로 부처님의 사원을 세우면 범천梵天이 지닌 복의 양과 같다????라 하였다.

사공 양성후 유준은 모든 관인과 선비 및 서민 등 1천 여 명과 함께 출가하였으며, 사악제산도사 여혜통 등 6백30인이 출가하였으며, 음부인과 왕의 궁녀 등 모든 궁인과 기녀 2백30인이 함께 출가하였다. 곧 10곳의 사찰을 세움에 7곳은 성밖에 세워 비구를 안치하고 3곳은 성안에 두어 비구니를 안치하였으니, 이로부터 그 이후로 더욱 광범위해졌다」라 하였다.

《법본내전》은 5권이 있으나 생략하고 모두 싣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법본내전》이 근자에 나온 것이라 의심하며 본래 힘을 겨루었던 일이 없었다고 하였으나《오서》에 의하면 비숙촌이 한탄하며 죽은 것이 분명하므로《법본내전》을 실록으로 여겼다.

【1】帝遣博士王遵等十八人, 同往西域, 求其佛法, 至月支國, 遇二梵僧, 帶白氎畵釋迦立像及舍利幷《四十二章經》, 駄白馬而至.

【2】禮部司.

【3】五臺山.

【4】明帝預造壽陵, 號曰顯節陵, 於此畵佛立像.

【5】雒, 本作洛. 漁豢云: 「光武, 以漢火行忌水故, 去水加隹, 自光武後, 改爲雒字.」

【6】士者, 事也. 身心順理, 唯道是從, 從道爲事, 故曰道士也.

【7】佛經不燒, 但烟熏爲黃色而已. 其後造紙者, 表經皆染爲黃色而尊稱黃卷云.

【8】道士尹文操.

【9】《吳書》「闞澤對吳主曰: ????佛法初來, 五岳道士與摩騰角力, 道士不如, 費叔才憾而死, 門徒歸葬南岳, 故不預出家.????」

【1】황제가 박사 왕준 등 18명을 파견하여 함께 서역으로 가서 불법을 구하게 하였더니, 월지국에 이르러 두 명의 범승을 만나서 흰 모직물에 그린 석가의 입상 및 사리를《사십이장경》과 더불어 백마에 싣고 돌아왔다.

【2】예부의 관아이다.

【3】오대산이다.

【4】명제가 생전에 미리 무덤을 만들어 현절능이라 부르고는 그곳에 부처의 입상을 그렸다.

【5】雒은 본래 洛으로 되어 있었다. 어환이 말하기를 「광무제가 한 나라는 火行이어서 水를 꺼리는 까닭에 水를 떼어버리고 隹를 더했더니, 광무제 이후로는 고쳐져 雒자가 되었다」고 하였다.

【6】士란 섬긴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이 이치에 순종하여 오직 道만을 좇으니, 道를 좇는 것을 일삼는 까닭에 道士라 일컫는 것이다.

【7】불경은 불타지 않고 다만 연기에 쪼여 황색이 될 뿐이었다. 그 후에 종이를 만드는 자가 경전을 표지 할 때는 모두 물들여 황색으로 만들었고 불경을 존칭하여 黃卷이라 하였다고 한다.

【8】도사 윤문조이다.

【9】《오서》에 「감택이 오나라 군주에게 말하였다. ????불법이 처음 건너왔을 때 오악의 도사들이 마등과 더불어 힘을 겨루었는데 도사들이 뜻대로 되지 않자 비숙재가 원한을 품고 죽어 그 문도들이 남악으로 돌아가 장사를 지냈던 까닭에 출가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