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法語)

도는 사람을 떠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버린다

通達無我法者 2008. 4. 26. 15:17

 

 

 

도는 사람을 떠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버린다
백운수단(白雲守端)스님 / 1024∼1072


1.
공보(功輔)가 태평주(太平州)의 요직을 맡고 강을 건너 해회(海會)에서 백운 수단(百雲守
端:1024∼1072)스님을 방문하였다. 스님이 공에게 "소가 순하던가?"하고 묻자, 공이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스님이 호통을 치자 공은 팔짱을 낀 채 끄떡도 안했다. 스님은 찬탄하였다.
"순하고 순하군. 남전(南泉)과 위산(山) 큰스님도 꼭 이러하셨다네."
그리고는 이어 노래를 지어 불러주었다.
산속에서 소가 내려오니
물도 풀도 가득하네.
소가 산을 떠나니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노니네.
牛來山中 水足草足
牛出山去 東觸西觸
또 한 수 읊었다.
훌륭하신 공자(軫子)는
삼천 제자를 교화했으니
예의를 알았다 하리라.
上大人 化三千 可知禮也 『행장(行狀)』

2.
백운스님이 공보에게 말하였다.
"옛날 취암 가진(翠巖可眞:?∼1064)스님은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선관(禪觀)의 맛에 빠져들
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말재주로 여러 납자들을 꾸짖고 욕하며 자기 마음에 든다고 인정
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깨달음에 있어서는 확실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는 금란 선(金¡善) 시자(侍者)가 그를 보고 비웃으며 말하였다.
`사형(師兄)께서는 참선은 많이 했지만 오만하여 깨닫지는 못했으므로 어리석은 선(痴禪〕
을 한다고밖에 못하겠군요.'" 『백운야화(百雲夜話)』

3.
도가 융성하고 폐지되는 문제에 어찌 정해진 원칙이 있겠는가. 사람이 도를 넓히는 데 있
을 뿐이다. 그러므로 "잡으면 존재하고 놓아버리면 없어진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도가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버리는 것이다.
옛사람은 산림(山林)에 살거나 조정과 시장에 은둔하거나 명리에 끄달리지 않고 외물에 눈
멀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청아한 기풍은 그 시대에 진동하고 아름다운 명성은 만세에 드날
렸다. 그러나 어찌 옛날에만 그랬고 요즈음이라 해서 되지 않겠는가. 교화가 지극하지 못하
고 실천에 힘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옛사람은 순박했기 때문에 교화될 수 있었지만 요즈음 사람은 들뜨고 천박하
므로 교화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실로 사람들을 부채질하여 현혹시키는 말로써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 『답공보서(答功輔書)』

4.
백운스님이 무위 거사(無爲居君) 양걸(楊傑)에게 말하였다.
"말만 하고 실천에 옮길 수 없다면 아예 말하지 않느니만 못하며, 해놓고도 말하지 못할
것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말을 꺼내려면 반드시 그 결과를 생각해야 하고, 행동을 개
시하려면 반드시 폐단을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선철(先哲)께서는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
려 하셨다.
말을 꺼내는 이유는 되지도 않는 말로 진리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깨닫지 못한 납자를
끌어주기 위함이며, 무엇인가를 시행함은 자기 하나만 착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못한 납자를 가르치려 함이었기에 언행에는 모두 법도가 있었다. 그리하여 말과 행동이 재
앙과 욕됨을 부르지 않고 떳떳한 법칙이 되었다. 그러므로 `언행(言行)은 군자의 핵심〔樞
機〕이며 몸을 닦는 큰 근본으로서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도 감동시킨다'라고 한 것이니, 조
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백운광록(百雲廣錄)』

5.
백운스님이 오조 법연(五祖法演)스님에게 말하였다.
참선하는 사람의 지혜로는 지난 자취를 보는 경우는 많아도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한다. 지관정혜(缺觀定慧)로는 나타나기 전에 방비하며, 작지임멸(作止任滅)로는 지난
뒤에 깨닫는다. 그러므로 작지임멸은 보기 쉽지만 지관정혜는 어떻게 닦는지를 알기 어렵다.
옛사람은 깨달음에 뜻을 두고 싹이 트기 전에 사념을 끊어버렸다. 비록 지관정혜와 작지임
멸을 말했다 해도 모두가 본말관계(本末關係)를 논했을 뿐이다. 때문에 `털끝만큼이라도 본
말에다가 말을 붙이는 자는 모두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궁극
적인 경지를 봄으로써 자신을 속이지 않았던 옛사람의 태도이다." 『실록(實錄)』

6.
경전도 보지 않고 원대한 계획도 없는 납자를 종종 보게 되면, 나는 총림이 쇠퇴할까 염려
스럽다. 양기(楊岐)스님께서도 늘 걱정하시기를, "웃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자신만의 편안을
도모하는 것이 불교 문중의 가장 큰 근심거리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지난날 귀종사(歸宗寺)의 서당(書堂)에 은거하면서 경전과 역사를 열람할 때, 수백번
도 더 읽었으므로 책장이 떨어지고 매우 낡아버렸다. 그러나 책을 펼 때마다 반드시 새로운
의미를 터득해냈다. 여기에서 `학문이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
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백운광록(百雲廣錄)』

7.
백운스님이 과거 구강(九江)의 승천사(承天寺)에 살다가 다음으로는 원통사(圓通寺)로 옮겨
갔는데, 그때 나이가 매우 어렸다. 당시 회당 조심(晦堂祖心:1024∼1100)스님이 보봉사(¿峯
寺)에 머물고 있으면서 효월 공회(曉月公晦)스님에게 말하였다.
"새로 온 백운은 투철하게 근원을 보았으므로 양기(楊岐)스님의 가문을 욕되게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다. 너무 일찍 드러나 쓰였으니 총림의 복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공회스님이 곧 그 까닭을 묻자 회당스님은 대답하였다.
"명성과 재능은 하늘이 아끼는 것이므로 사람에게 둘 다 주지는 않는다. 사람이 굳이 욕심
내면 하늘이 반드시 빼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백운스님이 서주(舒州)의 해회사(海會寺)에서 56세로 돌아가시자 식자(識者)들은 회당스님
이 기미(機微)를 알았으니 참으로 지혜로운 이라고들 하였다. 『담당기문(湛堂記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