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法語)

조주의 가풍

通達無我法者 2008. 5. 9. 10:17

 

 

 

 

 

조주의 가풍

 

1
물음 [화상의 가풍은 어떤 것입니까?]
조주 [나는 귀가 멀었어. 더 큰 소리로  물어 봐요.]
학승이 다시 물었다.
조주 [그대가 나의 가풍을 물음으로써 오히려 나는  그대의 가풍을 알았다.]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云 老僧耳背高聲問 僧再問 師云  問我家風 我 識 家風

원래 조주의 가풍은 아무것도 세우지 않는 가풍(不立家風)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든지 질문자의 문제점을 간파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경청하라." 이것이  카운슬러
의 제1 법칙이다. 세속의 고뇌를 벗어나는 방법을 질문하는 데에 정확한 답을  내려
주려면 카운슬러 역시 세속을 떠난 객관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 그렇게  세
속을 초월한 자가 누구일까?

조주 스님이 귀가 먹었다며 큰소리로 물으라 했을 때 유혹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학인은 순진하게 큰소리로 되 묻자 나는 오히려 너의 가풍을 알아  차려버렸
다. 너는 너에게 흙을 던져주면 뭐 먹을 것이 있는가 하고 쫓아가는 견공과 같은 자
야 이렇게 질문자의 가풍을 알아채는 것이 나의 가풍이야 라는 뜻이다.

나는 귀가 멀었으니 큰 소리로 물어보라고 했을 때 알아채야 했다.  그러나  학인은
알아채지 못하였기 때문에 노련한 조련사에게 스스로 본전을 들키고  말았다.  이럴
때는 "저도 반벙어리라 때로는 묻고 때로는 묻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나는 귀가 멀었으니 큰 소리로 물어 보라 말했을 때 조주의 가풍이 들어있다. 왜 이
렇게 말했는지 여기에서 잘 착안해보라.

2
물음 [멀리서 이렇게 노스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노스님의 가풍은 어떤 것입니까?]
조주 [사람에게 말을 안 해]
학승 [어찌하여 사람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십니까?]
조주 [그것이 나의 가풍이야.]
학승 [노스님께서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하여도 사방 바다로부터 찾아오는 데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실 것 아닙니까?]
조주 [그대는 바다이지만 나는 바다가 아니야.]
학승 [바다 속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조주 [노승의 낚시에 한 마리가 걸렸어.]

問 遠遠投師 未審家風如何 師云 不說似人 學云 爲什 不說似人 師云 是我家風
學云 和尙旣不說 似人 爭柰四海來投 師云  是海我不是海 學云 未審海內事如何
師云 老僧釣得一箇

사람에게 말을 안 한다는 것은 대담을 안 한다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말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안 한다고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방자가 스스로 보아야 한다.
스스로 보지 못했다 하여도 설명해서는 안 된다.
설명해주면 문자에 사로잡히게 되므로 영원히 본질을 볼 기회를 놓치
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다와 같이 넓은 곳에서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올 텐데
그 중에는 똑똑한 사람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말을 해주어야 뭔가 알지 않을까요? 그대는 말에 집착하는 바다 저쪽
사람이지만 나는 말이 필요 없는 바다 이쪽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맞지 않을 것이므로 더욱 할말이 없어.

바다 속 상황은 어떻습니까?
바다 속에 있으면 욕심을 버리지 못하므로  내 말만 물고늘어진다.
그러니 나의 낚시에 걸려든 꼴이 아니고 뭐겠어.

조주 스님은 원래 진귀한 보물은 꼭꼭 숨겨두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낚시질만 한다.
대체적으로 다 낚시에 걸리지만 걸리는 않는 사람에게만은 진귀한 보물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낚시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선사를 만났을 때는 욕심을 버리면 된다. 
출처: 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