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명구·무비스님

팔만사천법문

通達無我法者 2008. 8. 13. 21:38

 

 

 

팔만사천법문

 

팔만사천 법문이란

팔만사천 가지의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다.

다만 교화하고 맞이해서 이끌어들이는 문이다.

본래는 일체의 법이 없었다.

八萬四千法門   對八萬四千煩惱

 팔만사천법문    대팔만사천번뇌

祗是敎化接引門   本無一切法

 지시교화접인문    본무일체법

- 황벽 선사 『전심법요』

 

 

   불교의 가르침을 표현하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다.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이라고도 하고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라고도 하고, 대장경(大藏經) 또는 팔만(八萬)대장경, 그리고 팔만사천법문이라고도 한다. 황벽(黃蘗, ?~850) 선사는 『전심법요』에서 팔만사천법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묶어서 한마디로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하며 이는 곧 사람들의 팔만사천 가지나 되는 번뇌를 상대하여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해인사에 소장하고 있는 고려대장경을 팔만대장경이라고 일컫는 것도 곧 이러한 뜻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다른 어떤 종교의 성전(聖傳)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양이 많으며, 교리의 내용도 대단히 복잡하다. 경전을 읽다보면 과연 이와 같은 내용들이 인간의 번뇌를 다스리는데 꼭 필요한 가르침인가, 도리어 인간의 마음을 더욱 번거롭고 복잡하게 만든 일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사람 하나를 두고 삼승(三乘)이니 사과(四果)니, 십신(十信)이니, 십주(十住)니, 십회향(十廻向)이니, 십지(十地)니, 등각(等覺)이니, 묘각(妙覺)이니, 십칠지와 십팔불공법과 삼십칠조도법과 오위 칠십오법과 백법과 삼세육추의 구상차제와 육근, 육진, 육식, 십이인연, 사성제, 팔정도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을 만들어 나열하고 있다.

   이 모든 법문은 실은 인간의 번뇌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번뇌란 사람들이 겪는 온갖 문제와 병고와 망상과 잡념들을 말한다. 만약 문제가 없고 병고가 없고 번뇌가 없으면 이 팔만사천 가르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 많은 가르침의 문[法門]이란 다만 사람들을 교화하고 맞이하여 이끌어 들이는 문(門)일 뿐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달라지면서 인간이 겪는 문제와 번뇌도 많이 늘어났다. 그에 따라 부처님 당시에는 없던 무수한 방편들이 만들어졌다. 내 나라 내 민족만을 위하는 호국불교(護國佛敎)가 그렇고, 오늘날의 불공이니 기도니 천도니 하는 일들이 그렇고, 온 몸을 혹사시키면서 오체투지로 절을 하고 법당이 떠나가라 성호를 외치는 일이 그렇다.

   이 외에도 별별 방편들이 널려 있다. 황벽 선사는 “본래는 일체의 법이 없었다. 다만 번뇌만 떠나면 그것이 곧 법이다. 번뇌를 떠날 줄 아는 사람이 부처다. 일체의 번뇌를 떠나면 그 어떤 법도 찾을 길이 없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선불교(禪佛敎)에 와서는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것도 번거롭다 하여 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인다든지 꽃을 한 송이 들어 보인다든지 고함을 한 번 친다든지 몽둥이로 한 대 후려갈긴다든지 주장자를 들어 보인다든지 하는 일로 대신하고 있다. 복잡하고 잡다한 교리에 얼마나 질렸으면 그와 같은 방법이 등장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날 『불교사전』을 다 외우려고 시도하고 대명법수(大明法數)를 모두 암기하려고 만용을 부리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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