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바꾸다[轉位]
열반성 안이 오히려 위태로워서
저잣거리 길에서 언제든지 서로 만난다.
방편으로 때 묻은 옷 걸어놓고 부처라 하니
아름다운 보배로 꾸미면 다시 무엇이라 이름하랴.
나무로 만든 장승이 밤중에 신을 신고 떠나고
돌로 만든 여자는 새벽에 모자를 쓰고 돌아간다.
만고의 푸른 못에 잠긴 하늘의 달을
두 번 세 번 건지고서야 비로소 아는가?
涅槃城裏尙猶危 陌路相逢勿定期
열반성리상유위 맥로상봉물정기
權挂垢衣云是佛 卻裝珍御復名誰
권괘구의운시불 각장진어부명수
木人夜半穿靴去 石女喘鳴戴帽歸
목인야반천화거 석녀천명대모귀
萬古碧潭空界月 再三撈漉始應知
만고벽담공계월 재삼로록시응지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8
모든 존재는 그 어떤 것을 막론하고 일체가 변화무쌍하다. 얼른 보면 그 변화하는 속도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별 차이가 없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똑 같다.
그래서 “머무는 바 없다[無所住]”라고도 하고, “흐르는 물은 쉬지 않는다[川流不息]”라고도 한다. 이것은 동물과 식물의 세계나 범부들의 세계나 성인들의 세계나 다를 바 없다. 열반의 경지와 저잣거리가 다른 곳이 아니다.
이러한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열반의 경지에 있는 것도 저잣거리에 있는 것도 인연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부처님도 인연에 따라 별의 별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때 묻은 옷을 입고 여기 저기 떠돌면서 구걸하는 사람의 모습일 수도 있고 금으로 조각하여 온갖 아름다운 장식을 곁들인 장엄한 모습일 수도 있다. 자비를 베풀어 사람들의 환심 살 수도 있고 때로는 화를 낼 수도 있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 살아있는 참 부처님이다.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런 것을 진리라 하고 법이라 한다.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며 여름에는 검푸른 잎이 무성하다가 가을이 오면 붉은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잎이 다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산하대지(山河大地)가 그렇듯이 사람도 대자연의 산물인 이상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 진리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걸음걸음 흰 물결과 푸른 산이다[步步白水靑山]”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취한다고 해서 아름다운 것도 아니며 버린다고 해서 묘한 경계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지위를 다시 굴리니, 굴리고 또 굴려 맞이하여 들임에 너무나 바쁘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천변만화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일러 무엇이라고 할까? 동안 상찰 선사는 이 십현담에서 “나무로 만든 장승이 밤중에 신을 신고 떠나고 돌로 만든 여자는 새벽에 모자를 쓰고 돌아간다. 만고의 푸른 못에 잠긴 하늘의 달을 두 번 세 번 건지고야 비로소 아는가?”라는 함축성 있는 말로 표현하였다. 특히 마지막의 “만고의 푸른 못에 잠긴 하늘의 달을 두 번 세 번 건지고서야 비로소 아는가[萬古碧潭空界月 再三撈漉始應知]?라는 구절은 비할 데 없이 훌륭한 명언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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