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명구·무비스님

기틀을 돌리다[廻機]

通達無我法者 2008. 8. 13. 21:30

 

 

 

기틀을 돌리다[廻機]

 

털을 몸에 쓰고 뿔을 머리에 이고 저자에 들어오니

우담바라 꽃이 불속에서 피는구나.

번뇌의 바다에서 비가 되고 이슬이 되며

무명의 산 위에서 구름이 되고 우레가 된다.

확탕지옥 노탄지옥 불어서 소멸시키고

검수지옥 도산지옥도 꾸짖어 없애버리네

무쇠로 된 쇠사슬과 깊고 깊은 관문에 머물지 않고

걸어다니는 다른 동물이 되어 또 윤회를 한다.

披毛戴角入廛來  優鉢羅華火裏開

 피모대각입전래    우발라화화리개

煩惱海中爲雨露  無明山上作雲雷

 번뇌해중위우로    무명산상작운뢰

鑊湯爐炭吹敎滅  劍樹刀山喝使摧

 확탕로탄취교멸    검수도산갈사최

金鎖玄關留不住  行於異類且輪廻

 금쇄현관류부주    행어이류차윤회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9

 

   선불교에서 자주 쓰이면서 그 의미도 중요한 글자 가운데 하나가 기틀 기[機]자이다. 기(機)자는 본래 베틀을 움직이는 장치나 석궁(石弓)을 발사할 때의 장치를 의미한다. 요즘 말로 하면 모든 전기장치의 스위치이다. 다시 말하면 ‘여닫개’, ‘개폐기’, ‘접선기’ 등으로 부를 수 있다.

   불교에서 기(欺)자는 근본 또는 근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구체적인 용례로는 본체(本體)와 작용이 인격화되었을 때를 나타내는 대기대용(大機大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고 깊은 뜻을 의미하는 현기(玄機), 선승이 다른 수행자를 대할 때 보이는 태도를 의미하는 기봉(機鋒), 자연과 만물의 변화를 뜻하는 기사(機事), 가르침을 듣고 수행하여 얻는 능력인 기근(機根) 등의 표현을 들 수 있다.

   십현담에서 ‘기틀을 돌리다[廻機]’라는 말은 근원을 움직여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이다. 한 인간의 마음의 움직임은 곧 온 우주가 움직이는 일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온 우주가 흔들림을 보았다”는 말이 그와 같은 뜻이다. 그것을 “바람이 일어나니 꽃향기 진동하고 구름이 걷히니 달그림자 옮겨간다[風起花香動 雲收月影移]”라고 지극히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때로는 동물이 되어 몸에는 털을 입고 머리에는 뿔을 달고 저자거리를 헤매니 이 또한 신기하고 신기한 일이 아닌가. 마치 우담바라 꽃이 불 속에서 피는 것과 같다. 우담바라 꽃은 성인이 출현해야 피거나 혹은 3천년 만에 한 번 핀다는 전설의 꽃이다. 그 크기 또한 가로와 세로 높이가 각각 3미터 이상이나 된다.

   부처가 몸에 털을 입고 머리에 뿔을 달고 저자거리에 다니는 일은 그 신비한 우담바라가 활활 타는 불 속에서 피는 것과 같다. 우담바라 꽃이 피는 것도 어렵지만, 불 속에서 피어나기란 더욱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다. 기틀을 돌이키는 일이 이와 같다. 수억 년의 어두운 동굴에 전기를 가설하고 스위치를 올려 환하게 밝히는 일이다.

   번뇌와 무명이란 무엇인가. 무명의 성품이 곧 부처의 성품이며 허망한 이 육신이 그대로 법신이다. 그러니 번뇌와 무명이 얼마나 소중하며 허망한 이 육신이 또한 얼마나 귀중한가. 번뇌가 없는 불성은 없으며 육신이 없는 법신은 없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확탕노탄 금수도산이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그러므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자리가 바뀌고 지위가 옮겨지면 기틀을 돌이키는 일도 그에 따른다. 한 번 두 번 돌이킴에 일정한 법칙이 없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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