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어록(達磨語錄)

관심론(觀心論)-1. 깨닫고자 하면 마음을 관(觀)하라

通達無我法者 2008. 8. 15. 19:28

1. 깨닫고자 하면 마음을 관(觀)하라

혜가(慧可)가 무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뜻으로 불도(佛道)를 구하려 한다면 마땅히 어떤 법을 닦아야 가장 간략한 요점이 됩니까?"

스님께서 답하시었다.
"오직 '마음을 관하는' 일법(一法)만이 모든 행위를 총괄하여 포섭하는 것이니 이름하여 간략한 요점이라고 한다."

묻기를, "어떠한 일법(一法)이 제행(諸行)을 총괄하여 포섭하는 것입니까?"
스님께서 답하시길,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다. 일체 모든 법이 오직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만약 마음을 깨달을 수 있으면 만행이 구비되는 것이 마치 큰 나무가 소유한 가지와 및 모든 꽃과 열매가 다 뿌리로 인한 것과 같아서 나무를 재배(栽培)하려면 뿌리를 둠으로서 비로소 생기고, 나무를 벌목하려면 뿌리를 제거함으로서 반드시 죽는 것이니, 만약 마음을 깨달아 도를 닦으면 공력(功力)을 생략해도 쉽게 이루어지고, 만약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서 도를 닦으면 이내 공력을 소비할지라도 이익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선과 악이 다 자기의 마음을 말미암은 것이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면 마침내 옳지 않다."

또 물었다.
"어떻게 마음을 관하는 것이 그것을 일컬어 깨닫는 다고 하는 것입니까?"
답하시었다.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이 본래 텅 비어서 나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을 깨닫는 것이며,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난 작용에 두 가지 차별이 있음을 보아 아는 것이다. 무엇을 두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청정한 마음이요, 두 번째는 오염된 마음이다. 그 깨끗한 마음이라는 것은 곧 무루진여(無漏眞如, 번뇌가 없는 진실 그대로)의 마음이요, 그 오염된 마음이라는 것은 유루무명(有漏無明, 번뇌가 있어 밝지 못한)의 마음이니, 이 두 가지 마음은 자연히 본래 갖추어 있어서 비록 거짓으로 인연이 화합하였으나 서로 형상을 내는 것이 아니다. 정심(淨心)은 항상 선인(善因)을 좋아하고, 염심(染心)은 항상 악업(惡業)을 생각하나니, 만약 진여(眞如)를 스스로 깨달아서 깨달음이 오염을 받지 않으면 그것을 일컬어 성인이라 한다. 드디어 능히 모든 고통을 멀리 여의고 열반락을 얻을 것이요, 만약 오염을 따라 악업을 지어 그것에 얽히고 덮임을 받으면 그것을 이름하여 범부라 한다.

이에 있어서 삼계(三界)에 빠져서 갖가지 고통을 받는다. 왜냐하면 저 오염된 마음이 진여(眞如)의 본체를 장애함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다. {십지경(十地經)}에 말씀하시길, '중생의 몸 가운데에 금강과 같은 불성(佛性, 여래장, 부처의 성품)이 있어서 마치 태양은 본체가 밝고 원만해서 광대하고 끝이 없는 것과 같건마는 다만 오음(五陰)의 검은 구름에 덮인 바가 되어서 마치 병 속의 등 빛이 나타날 수 없는 것과 같다'하시고,

또 {열반경(涅槃經)}에서 말씀하시기를,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이 있으나 무명(無明)에 덮인 까닭으로 해탈할 수 없다'하시니, 불성(佛性)이라는 것은 깨달음이다. 다만 능히 스스로 깨달아서 깨달은 지혜가 명료(明了)하게 그 덮인 바를 여의면 이름하여 해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알라 일체 모든 선이 깨달음으로써 근본을 삼으니, 그 깨달음의 근본으로 인해서 마침내 능히 모든 공덕의 나무를 나타나게 하며 열반의 열매가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나니 이와 같이 마음을 관하는 것을 이름하여 깨닫는 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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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觀心) : 자기 마음의 본 성품을 바르게 살펴보는 일을 관심이라 한다. 마음은 일체 만법의 주체로서 모든 것은 마음과 관계되므로 마음을 관조하는 것은 곧 일체만법을 보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마음의 작용을 살펴보면 모든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