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세계는 주관이 만든 환상(三界唯心, 萬法唯識)”이라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듣고 있습니다.
불교적인 너무나 불교적인 영화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는 1951년에 <라쇼오몽(羅生門)>이라는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대상과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동시에 수상하여, 일본 영화를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흑백의 낡은 필름이 일반 극장 상영관 한편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저는 상영이 끝나고, 그들이 하는 토론까지 다 듣고 나서, 손을 들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를 개관해 주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첫 장면은 폭우가 쏟아지는데,
‘승려’와 ‘나무꾼’과 ‘걸인’이 쇠락한 절터의 라쇼오몽(羅生門) 아래에 모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서로 다른 증언들
‘나무꾼’: 숲 속을 걷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장면이 바뀌어, 악명 높은 ‘산적’ 다조마루가 밧줄에 묶여 관청에 잡혀왔습니다.
‘산적’ 다조마루의 증언: “그때 산들바람만 불어오지 않았어도….
그녀는 남편이 당한 꼴을 보고, 단도를 빼들고 달려들었고,
나는 간단히 그녀를 제압하여 키스를 퍼부었는데, 놀랍게도 그녀가 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절간에 숨어 있다 발견된 여인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무라이의 아내’ 마사코: “산적은 나를 범한 다음, 남편에게 조롱을 퍼붓고 나서, 숲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남편에게 다가갔으나, 남편은 몸을 버린 나를 차가운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절망적 심정으로, ‘그런 시선을 못 견디겠어요.
차라리 나를 죽이세요’라며 단도를 꺼내들고 남편에게 다가가다가, 격한 마음에 실신해 버렸다.
깨어나 보니, 남편은 이미 죽어 있었고, 나는 정신없이 강가로 달려가 몸을 던졌으나,
목숨이 모질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걸인’은 짜증을 내며, 들을수록 헷갈린다면서 투덜댑니다.
‘사무라이’ 다케히로: “산적이 아내를 범할 때, 나는 질투를 느꼈다.
앞서가는 산적의 허리를 붙들고,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가리키며,
‘아노 히토오 코로시테 쿠다사이, (저 남자를 죽여주세요) 하고 외치던 아내의 얼굴을….”
과연 진실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이 죽은 자의 독백에도 나무꾼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듭니다.
“땅바닥에 있는 여인의 모자를 줍고 나서 숲 사이로 훔쳐보니,
산적은 여인에게 사랑을 맹세하며, 결혼해 달라고 애걸하고 있었다.
그러자 여인은 둘 다에게 ‘사내답지 못하게시리’하고 비웃었고,
이 비웃음에 두 남자는 마지못해 결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당당하고 늠름한 결투가 아니라,
잔뜩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빙빙 도는 꼴이 측은할 지경이었다.
이쯤에서 우리는 드디어 ‘객관적 진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걸인이 기어코 아기의 옷을 벗겨내 챙겨 떠나자, 승려는 인간 존재의 ‘거짓’에 대한 깊은 환멸에 젖습니다.
나무꾼이 아기를 데려가려고 손을 내밀자,
승려는 “아직 더 훔칠 것이 있느냐”라고 화를 냈고,
나무꾼은 자식 하나쯤 더 있어도 별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 아기를 돌보고 키우겠노라고 말합니다.
승려는 이 말에 인간에 대한 희망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나무꾼에게 아기를 건네줍니다.
이것이 영화의 스토리, 그 대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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