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어록(達磨語錄)

중도론(中道論)-5. 마음에 머물지 않는 한 모든 것이 완전하다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4:59

 

 

그 어떤 곳에도 안주하지 않을 때 거기에 탐냄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없다. 마음이 하나의 허구이며 실재하는 것은 모두 공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님을 안다. 중생은 마음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아라한은 그 마음을 부정하며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보살과 부처는 마음을 만들어내지도 않으며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마음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을 중도라고 부른다.

달마는 아라한을 비난한다. 하지만 그의 비난은 소위 성자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지 아라한이 아니다. 아라한이나 보살은 마음을 만들어 내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을 넘어가 버린다. 그것과는 싸우지 않는다. 마음과 싸운다는 것은 마음을 하나의 실체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과 싸울 필요가 없다. 단지 그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마음과 싸우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그것은 사라질 것이다. 관조의 불빛 앞에서 마음은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다. 각성의 불빛을 밝혀라. 관조의 횃불을 밝혀라. 그 점에 있어서는 아라한도 보살도 붓다도 아무런 구분이 없다.

그대의 내면에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 바깥 세계도 생겨나지 않는다. 이 말은 매우 아름다운 말이며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그대 외부의 세계는 그대의 마음이 투사된 것이라는 뜻이다. 그대의 마음이 내면에서 일어날 때 외부세계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독일의 시인 하이네(Heinrich Heine)는 어느 날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는 사냥을 하러 나갔는데 그만 동료들과 헤어져서 집에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숲 속을 사흘 동안 헤매면서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그는 너무 지치고 배가 고팠으며 맹수에 대해서도 걱정해야 했다.

밤이 되면 그는 맹수를 피하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사흘째 되는 밤은 마침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피로와 배고픔이 극심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달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곤란한 처지도 잊어버린 채 달에 대해 아름다운 시를 지었다. 그 날밤만은 달랐다. 그의 마음이 다른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달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보름달이 빵으로 보였다.

후에 그는 그날의 일을 이렇게 적었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항상 저 달이 나의 사랑하는 여인으로 보여왔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한번도 그것이 빵으로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흘 동안 굶은 사람의 눈에는 달이 빵으로 보일 것이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그렇게 투사한 것이다. 그래서 달은 사라지고 하늘에는 빵이 떠다니게 되었다.

그대가 보는 것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보는 것은 그대 마음의 투사체일 뿐이다. 물라 나스루딘(Mulla Nasruddin)은 산 속에 아름다운 집 한 채를 갖고 있었다. 그는 매우 못생긴 한 여인을 고용해서 그 집을 돌보게 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물라, 분명 이유가 있겠지? 왜 그렇게도 못생긴 여자를 선택했지?"

물라 나스루딘이 대답했다.
"물론 이유가 있지. 때가 오면 말해 줄게."

이런 물라의 대답은 친구들의 궁금증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직접 그 여자에게 찾아가서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라는 산에 가서 며칠씩 쉬었다 오곤 했는데, 어느 날 그는 그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산에 가면 3주일 동안 있을 걸세."

그런데 그는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궁금하게 여긴 친구들이 그를 찾아와서 물었다.
"3주 동안 머물겠다고 말하고 떠나지 않았어?"

물라가 대답했다.
"물론 그럴 생각이었네만, 어떤 사건이 일어나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네."

그리고는 그는 다시 산으로 갔다. 이번에는 6주 동안 머물겠다고 말하고 떠났다. 그런데 갑자기 2주 만에 돌아왔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드디어 친구들은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네. 자네는 저번에도 3주 동안 있겠다고 말하고는 일주일 만에 돌아왔는데, 이번에도 또 자네가 한 말을 지키지 않았어."

물라가 말했다.
"이제 있는 대로 말을 하는 게 좋겠네. 사실은 내가 말일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가장 못생긴 여자를 그곳에 머물게 했다네. 내가 그 산에 도착하면 처음에는 못생긴 얼굴로 보이지만, 며칠이 지나가면 다른 여자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못생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네. 2주일이 지나가면 그녀가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 그리고 4주가 지나면 그녀는 이제 매우 아름다운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단 말일세. 그때가 되면 나는 돌아와야 한다네. 위험 수위에 이르렀기 때문이지. 여자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산이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네."

마음은 상황에 따라 제멋대로 변한다. 이제 마음은 진실 같은 것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허구를 만들어낸다. 4주 동안 여자를 가까이 안한 것은 확실한 굶주림이다. 그 굶주림이 못생긴 여자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맛있는 요리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거의 모든 언어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맛있는 요리라고 부르고 있다. 성적 굶주림이나, 본능적 굶주림은 굶주림의 차원에서 같은 것이다. 그대가 보는 세상은 거의 그대 마음의 투사체이다. 마음이 완전히 사라질 때, 그대는 전적으로 다른 세상을 볼 것이다. 모든 투사체가 사라지고 나면 오직 실재만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 실재에는 어떤 집착도 생기지 않는다. 집착만이 투사하는 마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대의 내면에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 바깥 세계도 생겨나지 않는다. 바깥 세계와 마음이 둘 다 사라질 때 그것이야말로 참된 견해이다. 그러한 이해는 바른 이해이다. 달마는 모든 기본적인 관점에서 옳은 시각을 갖고 있다. 그의 말을 깊이 이해할수록 그대가 진실에 가까워지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다. 그가 보지 못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그의 몇 안 되는 맹점에 비한다면, 그의 시각은 탁월한 것이며 거의 완전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은 맹점이 그로 하여금 편견을 갖게 했다. 그는 아라한을 비난하고 보살을 칭찬했다. 그러므로 그는 한 가지 영역에 속해 버렸다. 그는 대승불교라는 종파에 속해 버린 것이다.

진정한 이해를 가진 사람은 홀로 서게 된다. 그는 어떤 종파, 어떤 조직체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형태의 이해력을 갖고 있지만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아서 그의 그런 본질이 종교의 근본이 되었다. 나는 이것을 종교의 근본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인은 단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다. 힌두교도 역시 조직된 교리 체계의 일부분이기에 종교적이지 않다. 자이나교도도 한 가지 노선을 택했기에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종교적 인간은 홀로 서 있다. 그리고 그의 홀로 있음은 너무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그런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나는 그대에게 진정한 위대함과 장엄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홀로 있음은 에베레스트 산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대는 그 속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별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런 홀로 있음 곳에서 그대의 모든 잠재력이 꽃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대는 하나의 교리를 고집하는 신앙인이 되지 말라. 추종자가 되지 말라. 어떤 조직체에도 가담하지 말라. 그대 자신에게 진실하라. 그대 자신을 저버리지 말라. 그러면 그대 자신이 바로 종교의 근본이 될 것이다.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