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49. 계란건곤(鷄卵乾坤)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21:16

 

 

계란건곤(鷄卵乾坤)

“아는 데 집착하면 반드시 마가 침입하니…”

貪瞋癡愛는
안에서 마군을 돕고
酒色財氣는
밖에서 마군 돕는다.



혜가는 계속해서 스승에게 질문했다.

“육적(六賊)이 주인공을 혼미케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가르쳐 주시기 바라옵나이다.”
“육적이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아니더냐. 본래 이 육적의 주인공은 마음이니라. 마음은 크고 작은 마군(魔軍)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거느리고 있느니라. 마음은 원숭이같이 변덕스럽고 뜻(意)은 말(馬)처럼 날뛴다는 말도 이래서 생겨났느니라. 마음은 경계(境界)를 마음대로 넘나들며 하늘에까지 치솟기도 하느니라. 이럴 때는 천병천장(天兵天將)이라고 할지라도 제압하기 어려우니라. 그러나 그런 마음, 곧 마군도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는 없느니라.
그러므로 수행자는 본성(本性)으로 돌아가 정과(正果)를 이루고 귀일(歸一)해야 하느니라. 이때 관음주(觀音呪)를 외워도 효험이 있느니라. 그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현묘한 방책일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잡아매어 다스리는 것이 요체이니라. 육적 가운데서 의마(意馬)를 특히 잘 다스려야 하느니라. 본성에 귀의하여 서천(西天)으로 가려면 이 의마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니라. 이 의마가 곧 용마(龍馬)이니라. 만약 본성을 닦아 바르게 귀일하지 못하면 의마 곧 용마가 날뛰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죽이게 되느니라. 이 말은 하늘 끝까지 달리면서 날뛰어도 제지할 수가 없느니라. 이것이 다름 아닌 마군이니라. 마군 가운데서도 눈·귀·코·혀는 장군 구실을 하느니라. 이들은 무슨 소식이 있게 되면 사문(四門)으로 달려나가 소란을 피우느니라. 이때 탐진치애(貪瞋癡愛)는 안에서 마군을 돕고 주색재기(酒色財氣)는 밖에서 마군을 돕느니라. 안과 밖이 상응하여 주인공의 자리를 뺏으니 칼과 창과 화살이 어지러이 꽂히는 형국이니라. 만약 주인공의 자리를 진정으로 지키고자 한다면 진인(眞人)에게 엎드려 간청하여 용정(龍庭)에 좌정해야 할 것이니라. 그리하면 관음과 부처가 법술(法術)을 베풀고 삼교(三敎)의 성인(聖人)이 하늘의 무상인(無相印)을 빌어 사요(四妖)를 내쫓고, 진경(眞經)으로 육적을 항복시켜 주인공을 지켜 주느니라. 이렇게 되면 천요만괴(千妖萬怪)가 일제히 명령에 복종하고 지지정정(知止定靜)으로 천하(天下)가 평온해질 것이니라. 팔대금강(八大金剛)이 관문(關門)을 잠그고, 사천왕(四天王)이 사문(四門)을 지키며 모든 진인(眞人)이 항상 보살펴 지켜 줄 것이니 주인공은 연심(蓮心) 자리에 앉게 되느니라. 이때 주인공은 단지 하늘 북 소리 울리기만 기다렸다가 행차하면 되느니라.”달마의 소상한 설명에 혜가는 마음이 한층 밝아옴을 느꼈다. 또 다시 엎드려 배례(拜禮)했다.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아서 여쭙는 것이니 헤아려 주시옵소서. 무엇을 일컬어 기사동정(起死動靜)이라고, 하고 왜 그것을 생사(生死)의 근원이라고 하는지요?”달마는 즉답 대신 게송을 읊기 시작했다.

“기(起)란 일어나는 것이니 일어나는 곳에선 강물이 뒤집히고 바다가 요란하도다. 낙(落)이란 떨어지는 것이니 떨어지는 곳에서는 허공(虛空)에서 산산이 부서지도다. 동(動)이란 움직이는 것이니 움직이는 곳에서는 열쇠로 자물쇠를 여는 것 같도다. 정(靜)이란 고요이니 고요한 곳에서 홍몽(洪 )이 열려 세상이 생기도다. 무상성곽(無相城廓)을 조견(照見)하니 불로(不老)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도다. 무생지상(無生地上)에 안면(安眠)하니 반달(半月)의 노중(爐中)에 자재(自在)하도다. 세상에 내려온 지 몇 해인지 모르니 내력(來歷)과 시종(始終)도 모르도다. 젖먹이때 이름이 금강불괴(金剛不塊)라고 했으니 나가고 들어올 때 자취조차 볼 수 없도다. 그때의 미타 부처가 여기 있는데 어찌 문 밖으로 나가 만나고자 하는고.”달마의 게송은 혜가의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혜가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스승에게 고개 숙여 간곡하게 물었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집으로 돌아가서 주인공을 만날 수 있을는지 교시하여 주시옵소서.”달마는 다시 게송을 읊었다.

“하늘(天)에 통하고 땅(地)을 꿰뚫으니 금목(金木)이 교합(交合)하도다. 영아( 兒)와 타녀( 女)가 서로 도우니 한 마리 황룡(黃龍)에 올라타도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으니 드디어 극락궁중(極樂宮中)에 이르도다. 무극(無極)께 참배하니 보경천궁(普慶天宮)에서 즐거이 지내도다.”게송이 끝나자 촌각(寸刻)의 여유도 없이 혜가가 다시 물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는 무극은 자연 그 자체의 그 자리가 아니온지요? 그리고 자연의 그 자리에 이르면 자기가 그것을 알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가르쳐 주시옵소서.”달마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또박또박 간략하게 대답했다.

“자연의 그 자리에 이르면 황홀한 가운데 그 무엇이 있으며, 아물아물한 가운데 정(精)이 있느니라. 음양합병을 알 수는 있으나 알지 못한 자처럼 되어야 하느니라. 동(動) 가운데 정(靜)이 있는 것을 알게 되지만 아는 데 집착하면 반드시 마가 침입하게 되느니라. 지혜있는 자는 깨닫기 쉬우나 미매한 자는 행하기 어려우니라.”달마의 대답은 수행의 진경에 따라 지켜야 할 심오한 계율을 교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혜가는 머리를 숙인 채 한동안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잠잠히 앉아 있었다. 한데 갑자기 머리에서 묘한 의문이 떠올랐다. 스승의 표정을 힐끔 살폈다. 혹시 쓸데없는 질문을 하여 핀잔을 들을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마의 얼굴은 자애롭기 그지없었다. 무엇이든 물으면 모두 받아들일 것 같았다. 혜가는 용기를 내서 기묘한 질문을 했다.

“스승님, 닭이 먼저입니까, 달걀이 먼저입니까? 계란건곤(鷄卵乾坤)의 이치를 가르쳐 주시옵소서.”달마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겨우 생각해 낸 것이 그런 질문이더냐?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수수께끼로 삼고 있는 그런 질문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하니라.”달마는 혜가에게 앞으로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면서 대답을 이었다.

“혼돈(混沌)의 시기에는 닭도 달걀도 없었느니라. 청탁(淸濁)의 이기(二氣)가 혼돈 속에서 한 덩어리였느니라. 이것이 바로 무극의 본체이니라. 자시(子時)가 되면 일양(一陽)의 성(性)이 동(動)하여 청기(淸氣)의 느낌이 있게 되니, 달걀의 흰자위가 그것이니라. 축시(丑時)가 되면 이음((二陰)의 명(命)이 동하여 탁기(濁氣)의 영(靈)이 통하니 달걀의 노른자위가 그것이니라. 음과 양이 교감(交感)하면 이기(二氣)의 영이 통하여 무극에서 태극(太極)이 생겨나느니라. 하루 아침에 홍몽이 열리면 혼돈이 생겨나니 이것이 태극에서 양의(兩儀)가 생기는 것이니라. 이때 달걀에서 닭이 생겨나느니라. 그러므로 달걀이 먼저고 그 뒤에 닭이 있는 것이니라. 이 이치를 분명히 안다면 천기(天機)를 아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니라.”혜가는 마치 어리광하듯이 물었다.

“염불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본성(本性)이니라.”
“본성을 제외하면 누가 하는 것입니까?”
“영광(靈光)의 발현(發現)이니라.”
“그것은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그대에게 있느니라.”
“24시간 하루 온종일 그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쌍림수(雙林樹)에 있느니라.”
“만약 태허공을 찔러 깨어 버리면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다시 구할 수 있습니까?”“허공을 깨어 버리면 건곤삼계(乾坤三界)를 뛰어나가느니라.”
“삼계란 무엇입니까?”
“동토(東土)의 사바세계, 서천(西天)의 극락세계, 선천(先天)의 무극세계이니라. 이 가운데 선천의 무극세계만이 오직 모든 남녀의 본래 고향이니라. 동토의 중생은 너무나 미매하여 사바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느니라. 서방 극락세계로 가고자 하면 자성(自性)을 밝혀야 하니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어려우리라.”“서방은 어디에 있습니까?”
“십만팔천리(十萬八千里) 밖에 있으니, 그 곳엔 분명 극락궁이 있느니라. 그러나 깨닫고 보면 서방은 바로 눈앞에 있느니라. 오직 미매한 인간만이 그 길을 찾지 못하느니라.”“항시(恒時) 어디에 귀의하여야 하는지요? 경(經)을 독송한다면 어느 경이 좋습니까?”“무봉탑(無縫塔)에 귀의하여 무자경(無字經)을 묵념(默念)하도록 할지어다. 입을 열면 신기(神氣)가 흩어질 것이고, 조용히 입 속으로 염송하면 법륜(法輪)이 돌아가리라.”“무봉탑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무봉탑이란 자기의 진보(珍寶)이니 자기 안에 있느니라. 그것은 몸 밖에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니라. 몸 안에 사리자(舍利子)가 있으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빛을 발하느니라. 털 없는 사자는 하늘로 날고, 청개구리는 털옷을 벗고 나무 위에 앉아 있으니, 죽은 자는 산 자를 의탁하여 달리고, 모기가 저울추를 매달고 돌아온다는 ‘예화(例話)’ 등은 그것을 이르는 것이니라.”“삼심삼회(三心三會)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눈(眼)은 과거심(過去心)이니 연등불(燃燈佛)의 연지회(蓮池會)이니라. 귀(耳)는 현재심이니 석가불의 영산회(靈山會)이니라. 코(鼻)는 미래심이니 미륵불의 안양회(安養會)이니라.”“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요?”
“과거불이 관리하는 천하홍분(天下紅粉) 세계와 현재불이 관리하는 천하사바세계와 미래불이 관리하는 천하청담(天下淸淡) 세계를 이르는 것이니라.”대답을 마친 달마는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짧은 게송을 한 수 읊었다.

“무쇠 아이는 나이가 몇이던고. 무정무진(無情無盡)인데 언제 쉬는고. 한 번 소리지르니 천지도 놀라고, 건곤사부주(乾坤四部洲)도 진동(震動)하네.”혜가는 스승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사자경(四字經)이니 육자경(六字經)이니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그런 질문은 그 옛날 문수보살이 석가세존에게도 했었느니라.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사자경이든 육자경이든 간에 그것은 법문(法門)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느니라. 초회(初會)에는 네 글자로 공경(公卿)들을 유인했고, 이회(二會)에는 여섯 글자로 현인(賢人)을 이끌었으며 삼회(三會)에는 십자(十字) 곧 열 글자로 뭇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니라.”

'달마이야기·이규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51. 폐허의 천성사(千聖寺)   (0) 2008.09.22
50. 의발전수(衣鉢傳授)   (0) 2008.09.22
48. 진경가(眞經歌)   (0) 2008.09.22
47. 만법귀일(萬法歸一)   (0) 2008.09.22
46. 삼귀수행(三歸修行)   (0) 2008.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