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여리실견분/2/일체의 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通達無我法者 2008. 9. 30. 17:22

 

 

일체의 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身在海中休覓水 日行嶺上莫尋山 鶯吟燕語皆相似 莫問前三與後三

몸이 바다 속에 있으면서 물을 찾지 말고, 날마다 봉우리를 다니면서 산을 찾지 말지어다. 꾀꼬리의 노래나 제비의 지저귐은 (본질이) 서로 비슷하니, 이러쿵 저러쿵 묻지 말지어다.

[說] 淸淨水中 遊魚自迷 赫赫日中 盲者不睹 常在於其中 經行及坐臥 而人 自迷 向外空尋 身在海中 何勞覓水 日行山嶺 豈用尋山 鶯與鶯吟 聲莫二 燕與燕語 語一般 但知物物 非他物 莫問千差與萬別

청정한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가 스스로 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혁혁한 햇빛 속에서 눈이 멀어 보지 못한다. 항상 그 가운데 있으면서 다니고 앉고 눕고 하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미혹하여 공연히 밖을 향해 찾아 헤매니, 몸이 바닷물 속에 있는데 어찌 수고로이 물을 찾을 것이며 날마다 산봉우리에 오르면서 어찌 산을 찾을 것인가.
꾀꼬리와 꾀꼬리 소리가 둘이 아니요, 제비와 제비 소리도 하나이다. 단지 눈앞의 사물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 천가지 만가지 차별에 대하여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佛 告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무릇 모습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모습을 모습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보충설명> 1) ‘범소유상’은 일체의 유위(有爲)적인 모습, 2) ‘개시허망’은 인연화합에 의해 모였다가 흩어지는 유위의 모습이 허무(虛無)한 것, 3) ‘약견제상비상’은 일체의 사물을 공(空)한 진리의 입장에서 관찰하는 것, 4) ‘즉견여래’는 공(空)에도 무(無)에도 유(有)에도 떨어지지 않는 중도(中道)로서 여래를 보는 것, 즉 자신을 전체 우주와 동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인연화합에 의해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체의 사물은 假相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威德相도 부정하셨습니다.
이 四句偈는 유위의 긍정→유위의 현상이 허무임을 관찰함으로써 유위를 부정→허무의 본원이 空임을 관찰하여 유위를 수용→空과 유위의 여실한 관찰로써 진공묘유의 중도사상을 이끌어 내보인 귀중한 가르침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오직 불교에서만 등장하는 가르침입니다.

[說]目前 無法 觸目皆如 但知如是 卽爲見佛

눈앞에 차별된 법이 없으니 눈 닿는 것 마다 모두가 진리로다. 단지 이와 같이 안다면 곧 부처님을 보리라.

<보충설명> 눈앞의 사물을 진공묘유의 눈으로 관찰하면 우주의 온 가족이 진리의 모습이며 부처님의 모습이며 나의 모습입니다. 일렁이는 물결도, 살며시 스쳐가는 바람도 서로 평등한 나의 모습이지요. 만약에 善과 惡, 動과 靜으로 나눈다면 그 것은 二乘의 경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山이 물소리를 듣고 물이 산을 바라보는 通身의 한 살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六祖] 如來 欲顯法身 故說一切諸相 皆是虛妄 若悟一切諸相 虛妄不實 卽見如來無相之理也

여래가 법신을 드러내고자 하시므로 “일체의 모든 상이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일체의 모든 상이 허망하여 실답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곧 여래의 무상(無相)의 진리를 보리라.” 하고 설하신 것이다.

[傅大士] 如來 擧身相 爲順世間情 恐人 生斷見 權且立虛名 假言三十二 八十 也空聲 有身非覺體 無相乃眞形

여래가 겉모습을 든 것은 세간의 인정을 따르기 위한 것이니, 사람들이 단견(斷見)을 낼까 꺼려하여 방편으로 헛된 이름을 세운 것이다. 32상도 빌려서 말씀하신 것이고 80종호도 공연한 소리다. 겉모습은 깨달음의 본체가 아니요, 모습이 없어야만 진정한 모습이다.

[冶父] 山是山水是水 佛 在甚麽處

산은 산대로 거기에 있고 물은 물대로 거기에 있으니 (그 것을 떠나)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說] 若一向佛身 無相 相外 必有佛身 卽今見山 卽是山 見水 卽是水 佛 在甚麽處

만약 한결같이 불신(佛身)이 무상(無相)이라 한다면 모습 밖에 반드시 불신이 있다고 할 것이니, 이제 산을 보면 곧 그 것이 산이요, 물을 보면 곧 그 것이 물이니 (모습을 떠난)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有相有求 俱是妄 無形無見 墮偏枯 堂堂密密何曾間 一道寒光 爍太虛

상이 있고 구함이 있으면 모두 망령된 것이요, 형상도 없고 보는 당처도 없다면 반쪽짜리 고목이 된다. (치우친 소견에 떨어진다). 당당하고 꽉 차서 어찌 일찍이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리오. 한 道의 차가운 광명이 태허공에 빛난다.

[說] 執有執無 俱成邪見 有無無二 一味常現

유에 집착하고 무에 집착하는 것은 모두 삿된 소견을 이루는 것이니, 유와 무가 둘이 아니라야 한 맛(참된 도의 맛)이 항상 드러날 것이다.

[宗鏡] 金身顯煥 巍巍海上孤峰 妙相莊嚴 皎皎星中圓月 雖然如是 畢竟非眞 經 云眞非眞恐迷 我常不開演 且道 意在於何 一月 普現一切水 一切水月 一月攝

금신(金身)이 환하게 나투심이여! 바다에 우뚝 솟은 외로운 봉우리 같도다. 묘한 모습의 장엄이여! 교교한 별 무리 가운데 둥근 달 같도다. 비록 이와 같으나 필경에는 진짜가 아니니, 경에 이르길, ‘진(眞)과 비진(非眞)에 미혹될까 염려스러워 나는 항상 일변도의 이야기를 연설하지 않는다’ 하셨다. 또한 일러라.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의 달이 널리 일체의 강물에 비취니, 일체의 강물에 비친 달은 하나의 달에 포섭됨이로다.

<보충설명> 하늘에 있는 하나의 달은 진리이며, 물에 비친 수많은 달은 진리의 그림자로서 나투어진 차별의 모습입니다. (화엄경의 원융사상).

[說] 報化高大 一似海岳之巍巍 妙相端嚴 猶如江月之皎皎 然 此身此相 遇緣卽現 緣盡則隱 任他報化隱現 寂光眞身 常湛湛 從敎水月有無 天上一輪 常皎皎 一身 應爲千百億 千百億身 一身攝

보신(報身)과 화신(化身)의 크고 높음은 마치 바다에 솟은 산이 우뚝한 것과 같고, 묘한 모습의 장엄은 마치 강에 비친 달처럼 교교하다. 그러나 이런 몸과 이런 모습은 인연을 만나면 나타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숨는 것이니, 인연 따라 보신과 화신이 숨고 드러나지만 고요한 광명의 진신(眞身)은 항상 담담하고, 물에 비치는 달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하늘에 하나 뿐인 둥근 달은 항상 교교하다. 한 몸이 응연하면 천백억의 몸이 되고 천백억의 몸은 한 몸에 포섭된다.

報化非眞了妄緣 法身淸淨廣無邊 千江有水千江月 萬里無雲萬里天

보신과 화신은 진짜가 아니고 망령된 인연에 따른 것임을 깨달을지니, 법신은 청정하고 넓기가 가없도다. 천 개의 강이 있으면 천 개의 비친 달이 있고, 만리에 구름이 없으면 만리가 하늘 뿐이로다.

[說]看取棚頭弄傀儡 抽牽 全借裡頭人 裡頭人 量恢恢 瑩若淸空絶點瑕 絶點瑕 隨機普現百億身 刹塵有機刹塵身 刹塵無感但眞身

무대의 인형극을 보라. 당기고 끄는 것이 모두 무대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의 손을 빌린 것이다. 무대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여! 그 양이 얼마나 많은가? 빛나기가 마치 맑은 허공 같아 작은 티끌조차 없다. 티 한 점 없음이여! 중생의 기틀을 따라서 널리 백억신을 나투도다. 국토에 기틀이 맞으면 국토신의 몸이 되고, 국토에 감응이 없으면 다만 진리의 몸일 뿐이다.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