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어록(達磨語錄)

달마의 중생론(衆生論)-3. 마음은 그대를 얽어매는 굴레이다

通達無我法者 2008. 10. 18. 19:18

 

 

달마의 중생론(衆生論)-3. 마음은 그대를 얽어매는 굴레이다


유대인들의 설화가 한 편 생각난다. 구약에 나오는 두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보면서 신은 매우 화가 났다. 유대교의 신은 화를 잘 내었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매우 비정상적인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은 그들을 멸망시킬 준비를 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실제로 신이 그 도시를 파괴했다. 마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처럼 말이다.

그러나 유대교 내에는 진정한 신비주의의 한 작은 흐름이 있다. 그것은 유대교가 이 세상에 공헌한 유일한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하시디즘(Hasidism)이다. 그들은 유대교의 정통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은 정통 유대교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진리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이 화를 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썼다. 그들은 구약의 내용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 하시드신비주의자가 신이 소돔과 고모라를 명망시키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신에게 말했다.

"당신께서 그들을 멸망시키기 전에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해주셔야 합니다. 먼저 이 도시에 그 영혼이 순결하며 깨달음을 얻은 깨끗한 사람이 200명 있다면 그들과 함께 이 도시를 멸망시키시겠습니까?"

신은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그는 깨달은 사람 200명을 함께 죽일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그 사실을 가르쳐 주어 매우 고맙다. 나는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이 200명의 사람들이 20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 하시드는 말했다.
"두 번째 질문은 만약 그들의 숫자가 200명이 아니라 20명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이 20명을 죽이겠습니까? 질보다 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은 또다시 낭패스러웠다. 확실히 양보다 질이 더욱 중요했다. 깨달은 사람이라면 200명이나 20명이 뭐가 다르겠는가? 신이 말했다.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20명의 숫자라도 그대가 증명할 수 있다면 그 도시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 하시드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만약 거기에 20명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깨달은 자가 있다면, 그래서 그가 1년 중 6개월은 소돔에서 살고, 나머지 6개월은 고모라에서 산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여전히 질이 양보다 귀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은 이 사람이 지겨워졌다. 그는 진짜 유대인이었다. 신은 그에게 최종적으로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 한 사람을 데려와 보라."

그 하시드가 말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유대교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외면했다. 그들은 그것이 단지 꾸며낸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신이 화를 내어 고모라와 소돔을 멸망시켰다는 이야기가 허구이다. 나에게는 하시드의 이야기가 더 진실하게 보인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단 한 명의 진리의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이 세상은 구원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신은 그 한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다. 이 세상이 그를 죽일 것이다.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그를 죽일 것이다.

마음이 없이는 부처도 없다는 말의 뜻은 부처가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나 부처는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연꽃과 같다. 그것은 진흙에서 나온다. 하지만 진흙은 아니다. 진흙과 연꽃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았는가? 연꽃은 진흙에서 나와서 물 위로 피어오른다. 그때 연꽃은 하나의 초월이다. 진흙이 없다면 거기에 연꽃도 없다.

연꽃이 없어도 진흙은 존재할 수 있다.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 고귀한 것은 연약해서 부서지기 쉽다. 그러나 천한 것은 매우 딱딱하다. 바위는 장미꽃보다 훨씬 딱딱하다. 그대가 고차원으로 올라갈수록 그대는 더욱 부서지기 쉽다. 이런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나 예수나 달마 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독살될 수 있다. 그들은 연꽃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진흙 같은 마음은 그들을 보면 매우 화가 난다. 그들은 연꽃같은 사람을 보면 화를 낸다. 물론 그 사실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연꽃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이 세상의 연꽃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만한 꽃은 없다. 그래서 부처는 자신의 낙원을 '연꽃 낙원'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있어서 하나의 궁극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특별히 '연꽃'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진흙은 연꽃없이 존재할 수 있어도 연꽃은 진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음은 단 한 명의 부처도 없이 수백만 개가 존재할 수 있어도 부처는 이 모든 마음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마음은 진흙과 같은 구실을 한다. 그리고 부처는 진흙과 물을 초월해서 태양과 만난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부처는 마음에서 나오지만 마음은 아니다.

누구든지 부처를 보기 원한다면 부처를 보기 전에 먼저 그 마음을 보라. 부처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육안에 보이는 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내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꽃이다. 그대가 내면의 눈을 뜨지 않는 한 그대는 부처를 알아볼 수 없다.

사람이 부처를 보려면 먼저 무심의 경지가 되어야 한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 벌어졌다. 그때 그가 제일 처음 생각한 것은 다시 왕궁으로 돌아갈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아직 죽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매우 연로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부처는 그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독자였고 그의 아버지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것이다. 본래 부처는 노년기에 접어든 아버지를 모시면서 왕위를 이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부처는 왕위를 잇기 전에 왕궁을 빠져 나왔다. 그래서 그의 첫 생각이 바로 왕궁으로 돌아가 그의 깨달음과 축복을 그의 아버지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처는 그의 아버지가 자신을 부처로 알아줄 수 없다는 생각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직 내면의 눈을 뜨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오직 마음을 통해서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를 대면했을 때, 그 노인은 진자로 화를 냈다. 그대도 그 노인이 화를 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내가 늙었음에도 나를 속였다. 12년 동안 어디서 떠돌아다니다가 이제 나타났느냐? 그리고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 왕의 아들이 동냥 그릇이나 들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처사란 말인가? 너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의 아들로 태어났다. 점성술사들이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장차 위대한 군주가 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삶을 선택했단 말인가?"

석가모니 부처는 묵묵히 서 있었다. 그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우선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분노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그의 아버지가 소리치고 꾸짖고 비난하는 동안 석가모니 부처는 절대적인 침묵속에 빠져서 마냥 서 있었다. 그는 문이 완전히 닫혀진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부처가 입을 열었다.
"나의 침묵이 옳은 행동입니다. 나는 이전에 당신을 떠난 그가 아닙니다. 그는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물론 나는 같은 몸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그가 진흙이라면, 지금의 나는 연꽃입니다. 그러니 그 연꽃에 대고 화풀이를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 진흙 때문에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로 하여금 당신의 눈물을 닦게 해주십시오."

그 늙은 왕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다.
"눈물을 닦고 새롭게 나를 쳐다보십시오. 나는 왕궁을 떠났던 그 사람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왕궁을 떠날 때는 중생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이제 나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가 왕궁을 떠날 때는 보통 사람이었지만 이제 나는 부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나를 한번 쳐다보십시오."

그 아버지는 그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거기엔 뭔가 큰 변화가 있었다. 그 순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를 그저 쳐다보기만 했는데 거기에 뭔가가 전달되었다. 드디어 아버지가 말했다.

"나를 용서해라. 내가 화가 나고 눈물이 나서 너를 자세히 보지 못했다. 이제 내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너는 나를 입문시켜서 나도 진흙에서 연꽃으로 변하는 길을 걷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다. 너는 확실히 연꽃이 되었구나. 나는 이렇게 아름답고 은총이 넘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부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부친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입문한 것이다. 그대가 깨닫는 순간 그대는 그것을 일부러 선언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저절로 알려진다 그러나 오직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만이, 그의 가슴에 음악이 있고 시가 있는 사람만이 그대를 알아볼 수 있다. 그너 은행 잔고에만 관심이 있고, 권력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장님이다. 그들은 부처가 자신 앞에 나타나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한번 그대가 부처를 보았다면 그대는 마음에 대해서 잊어버린다. 한번 그대가 연꽃을 보면 그대는 진흙에 대해서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 만약 그대가 마음에 대해서 잊어버리지 않으면 그 마음은 그대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그대의 아들에게, 혹은 그대의 친구에게 이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대는 아마 그 변화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를 알아보려면 그대는 가슴을 열고 이전에 갖고 있던 그에 대한 인상이 이제 틀렸음을 시인해야 한다.

그대가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그대 내면에 하나의 씨앗이 된다. 그때 그대는 더 이상 마음속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이제 진흙 같은 세상에 만족하고 남아 있을 수가 없다. 그대는 또 하나의 연꽃이 되고 싶어한다. 그대는 하나의 도전을 받은 것이며, 그대도 내면에 연꽃이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대는 아직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내면에 묻힌 채로 남아 있다.

모든 사람이 부처이다. 그러나 진흙 속에 묻힌 씨앗의 상태이다. 연꽃을 알아보는 것은 그대 미래를 알아보는 것이며, 그대의 가능성과 그대 자신의 위대함을 알아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