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스님

부처님만이 가지는 특별한 힘,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通達無我法者 2008. 11. 25. 14:39

 

 

부처님만이 가지는 특별한 힘,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글· 광덕큰스님


십팔불공법 중 부처님의 십력(十力)을 보면 첫째 여실하게 이치가 아닌 것을 아는 힘, 부처님은 지혜가 환하십니다. 둘째 여실하게 과거와 미래에 지은 바 업과 그 업의 결과로 받는 과보, 그 인과를 다 아는 힘입니다. 셋째는 모든 선정과 삼매의 순서와 심처를 아는 힘입니다.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한 곳에 모아서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서 세밀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움직이지 아니하는 정(定)과 말끔한 혜(慧)가 균등하게 살아있는 상태를 선정이라고 하고, 선정의 깊이의 정도에 따라서 사선팔정(四禪八定)이라고 하는 천상에 태어나는 도가 있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마음을 지키는 가운데 있는 것이 선정이고, 삼매(三昧)라는 것은 정(定)을 말하는 것으로서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 데 독서삼매라든가, 어떤 사람은 술 마시는 데 삼매가 되어서 밤이 가는지도 모르고 집안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마는 이것도 아마 삼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삼매는 옳은 삼매가 못 되고 그르치는 데 빠지는 데 외곬으로 가는 삼매입니다. 삼매는 마음을 맑고 고요한 데에 모으는 것으로 삼매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무슨 무슨 삼매에 드셨다 하는 것이 있습니다마는 그 깊은 마음 경계에 머물러 계신 것을 말합니다.


반야바라밀 수행이 최상의 수행


그런데 일체 삼매, 일체 선정이 반야바라밀에서 나고, 중생을 성취하고(중생이 성불한다는 뜻, 완전한 지혜를 이루는 것), 불국토를 이룸도 또한 반야바라밀에서 나며, 집안이 보살의 집안이 되는 것도 반야바라밀에서 된다는 것입니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 자생물(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물건, 생활도구, 즉 말을 바꾸면 재산을 말하는 것), 이것을 성취하는 것도 반야바라밀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효성스럽고, 복스럽고, 덕스럽고 지혜스러운 권속(형제, 자녀, 제자)을 성취하는 길도 반야바라밀에서 나옵니다. 또 대자대비를 성취하는 것도 반야바라밀에서 나오고, 모든 천상에 태어나는 그것도 반야바라밀에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반야바라밀을 닦으면 천상에 나고 싶으면 천상에 납니다. 닦은 데 따라서 자기 세계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라한이나 모든 보살 등 성인이 되는 것도 마하반야바라밀을 닦아서 되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의 일체 종지(일체를 알고, 총괄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세밀한 부분까지 일체를 다 아시는 지혜)도 반야바라밀에서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 가득 찬 사리보다도 더 먼저 반야바라밀을 공양하고 공경한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반야바라밀 수행이 바로 최상의 수행이라는 데 대해서 자신을 갖고 긍지를 갖자고 하는 결론입니다.

최상의 도법을 성취하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재산을 이루고, 권속을 이루고, 모든 덕성을 이루고, 천상에 태어나고, 성자가 되고, 부처님의 지혜를 성취하는 그 모두가 마하반야바라밀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이 금강경을 읽고, 반야심경을 읽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열심히 염송하는 데 대해서 자신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오셔서 “마하반야바라밀 염송 이외에 더 좋은 것이 없는가? 지장보살 염불을 좀 해볼까? 관세음보살 염불 좀 해볼까? 고왕경 독경을 해볼까? 천수경 좀 해 볼까?”하고 물어옵니다.

그러면 제가 “반야바라밀이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여러 가지 하려고 하느냐.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라. 앉아서 염하고 서서 염하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일심으로 염하라.”고 그럽니다. 신심을 가지고 시간 있는 분이 그렇게 하시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금강경을 읽든지 반야심경을 지송하는 것 이외에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일심으로 염하라고 합니다. 구도정진 때도 절을 많이 하는 것을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너무 앉아 있다 보면 그것에 심취하기 쉬우니까 포행 대신, 혹은 부처님께 예경을 드리기 위해서 108배를 드리는 것은 권해도 천 배다, 이천 배다 하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다 아신다


부처님이 가지고 계시는 십력 가운데 네 번째는 중생의 능력과 성질에 우열을 알아내는 힘입니다. 어느 정도의 능력이 있고 어떤 정도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처님은 다 아십니다.재작년부터 건강이 좋지 못해서 여러 형제들에게 걱정을 게치면서도 내가 지금 이 수행을 하고 있는데 힘이 들어도 부처님이 다 아신다는 마음을 가지니까 편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중생의 이해 정도를 아는 힘입니다. 중생이 이 정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이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을 내린다는 정도를 부처님은 다 아십니다.
여섯 번째 중생의 성질과 소질이나 그 행위를 아는 힘입니다.

일곱 번째, 인간과 천상 모든 세계(인간에 태어나든지, 천상에 태어나든지)에 태어나는 인과를 아는 힘, 예를 들면 너는 천상 도리천에 살았는데 그 때는 어디 어디에서 어떤 어떤 보살도를 닦았기 때문에 그 과보로 네가 천상에 태어났다. 혹은 얼마만큼 결과를 바라고 과보를 바라고 대가를 바랐기 때문에 복이 얼마밖에 되지 않아서 그 복이 끝나서 다시 인간이 됐다는 것을 부처님은 다 아십니다.
아홉 번째는 천안(일체를 막힘없이 다 보는 눈)으로 중생이 나고 죽는 때와 미래세의 선악경계를 다 아십니다. 언제 죽는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드시면서 제자들을 다 모아놓고 법문을 하시며 “물을 것이 있으면 다 물으라.” 그리고 나서 법문을 쭉 하시고 나서 “그만 둬라 그만 때가 됐다.” 하시고 조용히 육체서부터 의식을 거두십니다. 생사를 자재하셨습니다.

열 번째는 자신의 번뇌가 다해 없어져서 아주 구름이 다 없어지고 먼지가 다 날아가서 말끔한 것처럼 다시는 후유(後有, 금생 다음에 다시 몸을 받는 것이 후유입니다. 내생에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천상에 태어나든지 인간으로 태어나든지 지옥에 태어나든지 하는 것은 번뇌라는 것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번뇌의 그림자에 따라서 어두운 그림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맑고 깨끗하고 투명한 그림자는 천상에 태어날 것이고, 중간쯤 되면 인간에 태어날 것이고, 그 안에 무수한 차별이 있으면 차별세계에 태어납니다.)가 없다는 것입니다.

번뇌가 다했기 때문에 후유가 없습니다. 진리 그대로입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다시 변화의 몸을 나타내서 천상에도 나고 인간계에도 태어나고 지옥에 가서 중생제도를 하실지언정 업으로서의 후유가 없고 다른 사람도 또한 그렇게 되었으면 그렇게 된 상태를 다 아십니다.


네 가지 두려움이 없는 힘


그 다음은 사무소외(四無所畏), 네 가지의 두려움이 없는 힘입니다.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 네 가지 확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째 부처님은 일체법을 다 깨달았습니다. 다 깨닫고 다 증득했습니다. 부처님은 자신 있어 하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일체 번뇌는 다 끊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부처님은 다시 끊을 번뇌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도를 다 닦고 나서 도는 다 닦아서 번뇌를 끊었는데 아직도 조금 더 닦을 것이, 미진한 것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 못 통한 것입니다. 아직도 남아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철 종정스님이 주장하는 돈오(頓悟)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 마치면 일체 마치는 것이지 마치긴 마쳤는데 조금 남았다는 것은 덜 된 것이지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성철 종정스님과의 돈오와 점수에 관한 이론이 많이 논쟁이 된 시절이 있었습니다마는 성철 종정스님은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데 부처님이야말로 일체 번뇌가 다 끊긴 것입니다.

세 번째 설법에 있어서 수행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은 다 설했다고 하는 확신입니다. 그 다음에 고에서 벗어나서 해탈의 방법을 다 설했다는 확신입니다. 네 번째는 모든 물음에 대해서 자유자재로 대답할 수 있어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무소외입니다. 부처님의 설법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완전무결합니다. 법 그 자체이십니다. 법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부처님은 영원하시고 자재하시고 항상하시는 우리 부처님이십니다.

중생이 기뻐하여 설법을 들어도 환희심을 내지 아니하고, 중생이 한결같이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고 마음이 태연하며, 한 곳에서 하나는 기뻐하며 열심히 듣고, 하나는 전혀 듣지 아니함을 보고도 근심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항상 평정한 삼념주(三念住)와 대자대비(大慈大悲)를 합하여 부처님만이 가지시는 십팔불공법이라고 합니다.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은 대승십팔불공법이라고도 하며, 이것은 부처님만이 가지신 특별한 위신력 열 여덟 가지로 십력과 사무소외와 삼념주(三念住) 대자대비를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달리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도 학자들 주장이고 사전에도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에 형제들에게 소개를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부처님만 가지는 열 여덟 가지 공덕

부처님께만 있는 공덕으로서 이승(二乘)이나 보살들에게는 있지 않은 열여덟 가지로서 하나는 신무실(身無失), 몸에 허물이 없습니다. 둘째는 구무실(口無失), 부처님은 입의 행위에 있어서 잘못이 없습니다. 셋째는 의무실(意無失), 뜻에 잘못이 없습니다. 넷째는 무이상(無異想), 생각에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다섯 번째는 무부정심(無不定心), 정심(定心) 아닐 때가 없습니다. 흔들림이 없는 깊은 삼매 속에 항상 계십니다. 여섯 번째는 무부지이사(無不知已捨), 삼매를 가지고 있는 분은 나한 같은 도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지은 자취가 있기 때문에 이승이라 하고 부처님은 지은 바가 없는 진리 자리 그 자체에 그대로 있습니다. 일곱 번째는 욕무감(欲無減),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마음에 싫어함과 족함이 없습니다. 여덟 번째는 정진무감(精進無減), 불과(佛果)를 이룬 후에도 정진력에 감소함이 없습니다. 아홉 번째는 염무감(念無減), 부처님이 일체 지혜를 구비하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열 번째는 혜무감(慧無減), 부처님이 지혜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마음에 부족한 생각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열한 번째는 해탈무감(慧脫無減), 부처님은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 유위, 무위의 해탈을 구현하고 일체 번뇌를 멸함을 말합니다. 열두 번째는 해탈지견무감(解脫智見無減), 일체의 해탈에 관하여 명백한 지견을 가지고 조금도 결함이 없음을 말합니다. 열세 번째는 일체신업수지혜행(一切身業隨智慧行), 일체 몸으로 행하는 업이 지혜를 따라서 행하시고, 열네 번째는 일체구업수지혜행(一切口業隨智慧行), 말하는 것이 지혜를 따라서 행하시고, 열다섯 번째는 일체의업수지혜행(一切意業隨智慧行), 뜻하시는 바도 일체 지혜에 따라서 행하시고, 열여섯 번째는 지혜지과거세무애(智慧知過去世無碍), 과거세를 다 아시는데 무량무애 조금도 막힘이 없으시고, 열일곱 번째는 지혜지미래세무애(智慧知未來世無碍), 미래세계 모두 다 아시는데 막힘이 없으시고, 열여덟 번째는 지혜지현재세무애(智慧知現在世無碍), 현재세를 다 아시는데 무량무애입니다.

이렇게 해서 십팔불공법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이와 같이 큰 도력, 도를 이룬 그 모두도 반야바라밀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오늘 법문의 결론입니다. 우리 불광형제들은 반야바라밀 수행을 합니다. 다른 어느 법회보다도 항상 반야경을 소중히 여기고 반야바라밀 수행을 하는 데에 전념을 기울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와 같은 근거가 있는 것이니까 자신을 가지고 다른 것 안 해서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 조금도 갖지 마시고 크게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보리가 크게 장양하는 시간이 되도록 정진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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